[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63>가성비+가심비=크뤼 부르주아 2020
<63>프랑스 메독 '크뤼 부르주아' 2020 미국이나 칠레 등 신세계 와인의 질이 높아졌다지만 그래도 와인을 향한 애정의 시작은 역시 프랑스 와인이다. 다만 두 가지 단점이 있었으니 자주 마시기엔 비싼 가격과 뭘 골라할 지 모르는 난해함이다. 와인애호가라면 선망의 대상인 그랑 크뤼(Grands Crus) 등급의 와인. 1등급이 그 유명한 샤토 라피트 로칠드 등 다섯 곳이며, 2등급 14곳, 3등급 14곳, 4등급 10곳, 5등급 18곳이다. 1등급은 가격이 100만원 안팎이고, 다른 등급도 10만원 이하라면 싸다고 평가할 정도지만 막상 마셔보면 기대 이하인 와인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도 그럴것이 등급이 정해질 1855년 당시에서 몇 곳을 빼고는 160년이 넘게 재평가 없이 그대로 유지된 탓이다. 그랑크뤼 와인이라면 가심비는 채웠지만 가성비는 꽝인 셈이다. 그럼 눈을 낮춰 정부가 품질을 관리하는 AOC 등급을 보자. 원산지와 포도품종, 알콜함량 최소치, 포도재배 방식까지 까다롭게 정해놔서 품질이 일정 수준 이상이다. 가격도 부담없는 선이라 시중에서 만나기 쉽다. 그러나 프랑스 와인 중 절반에 가까운 45%가 AOC 조건을 갖추고, 종류만도 무려 500종에 달한다. 가성비는 만족했지만 어떤 샤토의 와인을 고르는지에 따라 품질 격차가 너무 크다. 가성비와 가심비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게 바로 메독의 크뤼 부르주아 등급이다. 원래 크뤼 부르주아 등급은 1920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랑크뤼 등급이 재평가 없이 유지되는 것과 달리 크뤼 부르주아 등급은 심사평가를 거쳐 조정이 이뤄진다. 등급 유지를 위해 품질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는 만큼 일부 그랑크뤼 와인보다 더 맛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가격은 그랑크뤼보다 현저히 낮다. 메독 크뤼 부르주아 연합이 지난달 20일 크뤼 부르주아 2020 리스트를 내놨다. 새로운 분류를 와인에 스티커로 붙일 수 있게 해 '와린이(와인+어린이)'도 알기 쉽게 했고, 각각의 기준도 명확히 제시했다. 메독 크뤼 부르주아 연합은 크뤼 부르주아 등급을 3개로 다시 나눴다. 먼저 크뤼 부르주아 엑셉시오넬(Cru Bourgeois Exceptionnel)이다. 앞으로 2018, 2019, 2020, 2021, 2022 빈티지의 프랑스 메독 와인에 크뤼 부르주아 엑셉시오넬 스티커가 붙여있다면 크뤼 부르주아 와인 중에서도 블라인드 테이스팅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14개 와인 중 하나라고 여기면 된다. 그 아래가 크뤼 부르주아 쉬페리외르(Cru Bourgeois Superieur)다. 모두 56개다. 역시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며, 포도도 친환경으로 재배해야 하는 등 조건을 모두 만족한 곳들이다. 마지막이 크뤼 부르주아다. 179개 샤토다. 올리비에 뀌블리에(Olivier Cuvelier) 메독 크뤼 부르주아 연합 회장은 "새로운 분류로 거래는 더 잘되고, 와인메이킹도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품질관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3단계로 나눠 크뤼 부르주아 와인들에 대해 좀 더 명확히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