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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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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4월 건보료 폭탄' 대책 마련…4·29 보선용?

당정 '4월 건보료 폭탄' 대책 마련…4·29 보선용? 정부와 새누리당이 '4월 건강보험료 폭탄' 논란에 대해 매월 급여에 맞춰 부과되는 건강보험료가 달라지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를 두고 한 달 앞으로 다가온 4·29보궐선거와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당정은 오는 31일 원유철 당 정책위의장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어 건보료 부과 방식 개편안을 협의한다고 30일 밝혔다. 당정이 고려하는 방식은 매월 급여에 맞춰 부과 보험료가 달라지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는 전년도 소득을 기준으로 인상·인하분 1년치를 매년 4월 한꺼번에 정산하고 있다. 가령 소득이 2013년 5000만원에서 2014년 6000만원으로 오른 경우 임금 인상분 1000만원에 해당하는 건보료 추가 납입액을 2015년 4월 보험료를 걷을 때 한꺼번에 받는 식이다. 이로 인해 임금이 인상된 경우 '4월 건보료 폭탄'을 피하기 어렵다. 이 같은 건보료 부과 방식 변화는 올해 초 '13월의 세금 폭탄' 논란을 일으킨 소득세 연말정산 방식과 같아 국민들 사이에서 4월에 '건보료 폭탄'을 맞게 됐다는 불만이 제기돼왔다. 여당으로서는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번 당정 협의가 4·29 재·보궐선거와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 '매월 더 내고 정산 때 (현행보다) 덜 걷는' 방식으로 바뀌는 셈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건보료 감소는 없다.

2015-03-30 18:35:30 이정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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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세, '사드·AIIB 비판'에 역정..."패배주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문제 등을 다루면서 지나치게 미중 양국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윤 장관은 30일 개막한 재외공관장 회의의 개회사에서 상당 부분을 우리 외교의 성과를 알리는데 할애했다. 특히 지난주 우리가 참여를 결정한 AIIB에 대해 "최적의 절묘한 시점에 가입 결정을 했다"고 자평하면서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일본 석좌가 '미국과 중국이란 고래를 길들인 의기양양한 새우'라고 말한 것을 소개하기도 했다. 우리가 AIIB 창설 멤버로 가입할 수 있는 사실상 막차를 타면서 조기 가입시 얻을 수 있었던 이득을 놓친 것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인다. 윤 장관은 또 미중 양국이 대립하는 AIIB와 사드 문제를 놓고 우리가 외교적 시험대에 놓이면서 미중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 섞인 비판에 대해서도 항변했다. 우선 윤 장관은 미중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딜레마가 아닌 축복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고차방정식을 1,2차원적으로 단순하게 바라보는 태도", "고뇌가 없는 무책임한 비판", " 패배주의적, 자기비하적, 사대주의적 시각"이라는 등 다소 감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윤 장관은 앞으로 외교 정책 수행과 관련, "국익의 관점에서 옳다고 최종 판단하면 분명한 중심과 균형 감각을 갖고 휘둘리지 말고 밀고 나가야 한다"면서 '소신 외교'를 주문했다. 윤 장관의 이런 발언을 고려해 볼 때 우리 정부가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와 관련, 앞으로 현재의 '3NO(요청·협의·결정도 없다)' 입장을 유지하면서 신중하게 접근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 장관은 전날 한 방송에서도 미국의 사드 배치 요청이 있으면 국방부의 군사기술적 검토에 이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종합 검토 등의 순으로 내부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15-03-30 17:00:56 정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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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외교비사] 김일성 사망 대비…일왕 첫 과거사 유감표명(종합)

[5공외교비사] 김일성 사망 대비…일왕 첫 과거사 유감표명 1984년 한반도 비사 담긴 외교문서 공개 외교부가 30일 '외교문서공개에 관한 규칙'에 따라 1984년도 문서를 중심으로 총 26만 여쪽의 외교문서를 30년 만에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는 5공화국시절의 외교비사가 담겨 있다. 남북관계 비사, 공산권과의 비밀외교, 한일관계 등은 물론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해외에서 치밀하게 감찰했던 기록도 있다. ◆ 김일성 퇴임설 첩보에 '사망 시나리오' 준비 정부는 1984년 주일본대사관을 통해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의 '퇴임설' 첩보를 입수한 뒤 '사망 후 권력승계' 시나리오까지 구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주석 사망시와 생존시 두 가지 상황별 시나리오에는 정부대변인 명의의 성명 등 실질적 대비책이 담겼다. 사망시 성명에서 정부는 김 주석에 대해 "남북통일을 외면하고 한반도 분단을 획책해 이를 영구화 시켰다"며 "민족배반자 및 전쟁범죄자"라고 비판했다 또 "2000만 북한 동포를 무자비하게 탄압했다"며 "북한은 김일성 사망을 계기로 지난 과오를 뉘우치고 민족통일을 위한 대업에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생존시 성명에서는 "김일성 일가의 가계는 조작된 것"이라며 "김정일은 무자비한 대남도발을 주모했던 인물로서 또 도발할 경우 국제사회로부터 추방될 것이며 우리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미국 측에서 "외교문제에 대해 김일성이 강력한 권한을 갖겠다는 조짐도 파악됐다"는 내용의 첩보가 나오며 이같은 대응책은 없던 일이 됐다. ◆ 북한, 5·18때 유엔서 인권공세 북한이 1980년대 유엔 인권협약기구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등을 거론하며 남한의 인권 상황을 비난한 사실도 이번에 공개됐다. 당시 북한은 영문보고서를 통해 "남한에서 시민적, 정치적, 사회·경제적 권리는 특히 최근 몇년간 무자비하게 억압되고 있다"며 5·18 진압에 대해 "동포들에 대한 냉혹한 학살"이라고 비난했다. 우리 정부는 급히 대책 마련에 착수해 대사관과 유엔 대표부 등을 통해 관련국 설득작업에 나섰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보고서에서 한국 문제를 언급한 것이 '보고서는 규약 당사국이 취한 제반 조치와 진전 사항에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는 규약 내용 및 의사규칙에 위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설득작업은 효과를 거뒀다. 1984년 4월 9일 이뤄진 북한 보고서 토의에서 위원장은 "타국의 인권에 관계되는 정치적인 발언을 삼가라"고 북한 측에 주의를 줬고, 당시 북한의 주유엔 대사도한국 관련 발언을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왕, 84년 방일한 전두환에 과거사 유감 첫 표명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처음 이뤄진 우리 정상의 1984년 국빈 방일시 일왕의 첫 과거사 유감 표명이 있었던 사실도 이번에 드러났다. 우리 정부는 관계부처 회의를 통해 1984년 1월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일본 총리의 전년도 공식 방한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추진하는 '무궁화 계획'을 추진했다. 첫 국빈 방문인 만큼 일왕의 과거사 언급 문제가 주요 관심사가 됐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일왕에게 "과거의 불행한 역사에 대한 솔직한 인정, 유감 표명 및 깊은 반성 내지 통감, 금후의 겸허한 자세"라는 발언을 요구했고, "공식 발언 문서화 또는 최소한 만찬사에 포함"이라는 발언형식까지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측도 "천왕(일왕)에 의한 과거사 언급은 불가피한 것으로 본다"고 우리 정부는 파악했다. 히로히토 일왕은 9월6일 만찬에서 "금세기의 한시기에 있어 양국간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는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식민 지배의 상징적 존재인 일왕이 우리나라와 관련한 과거사 발언을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당국자 논평을 통해 "천왕이 우리 국가 원수를 대면해서 과거에 대한 반성을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대중 밀착감시 "귀국하면 재수감해야" 당시 외무부는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도착시점인 1982년 12월23일부터 정부에 김 전 대통령의 동향을 보고했다. 김 전 대통령이 미국 현지에서 한 기자회견 내용이나 강연 중 발언은 정리돼 정부에 보고됐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집권 의지나 귀국시점에 관한 내용은 자세히 보고됐다. 발언 내용 외에 접촉한 인사와 동선까지 점검 대상이었다. 정부의 태도는 김 전 대통령의 정부 비판 발언이 이어지자 점점 강경해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원경 당시 외교부 장관은 1984년 12월 류병현 주미 대사에게 보내는 발신전보에서 "12월2일 뉴욕에서의 (김대중의) 기자회견은 대한민국 헌정 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이며 단호히 대처하겠다"며 "당초 정부는 내년 중 적당한 시기에 김대중이 귀국한다면 미국정부가 갖게 될 부담 등도 고려해 재수감이 아니고 일반적인 활동을 허용할 방침이었지만 이번 김대중의 헌정질서 파괴적 언동을 접하고서는 완전히 생각을 달리하지 않을 수 없으며 김대중이 굳이 귀국한다면 부득이 귀국 즉시 재수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기술했다.

2015-03-30 16:00:26 정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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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도 출마… 문재인號 '빨간불'

정동영도 출마… 문재인號 '빨간불' 국민모임의 정동영 전 의원이 30일 서울 관악을 출마를 선언했다. "기득권 보수정당 체제를 깨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과거 야당 내 개혁 동지인 천정배 전 의원은 한발 앞서 "양대 정당의 독과점 체제를 깨야 한다"며 호남 광주의 서구을에 출마한 상태다. 두 지역 모두 낙승이 예상되던 야당의 텃밭이라 새정치민주연합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특히 문재인 대표로서는 대권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권 도전을 위해서는 내년 총선 승리가 필요하고, 이번 4·29 보궐선거는 그 전초전 성격이기 때문이다. 야권분열로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를 얻을 경우 문 대표의 통합 리더십은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지난 23일 발표된 휴먼리서치 여론조사(21∼22일 관악을 유권자 702명 대상, RDD/ARS 방식,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7%)에서 3자대결시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가 38.4%의 지지율을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정 전 의원이 28.2%로 오차범위내 2위, 정태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24.4%로 3위에 머물렀다. 실제 지난 2012년 19대 총선에서도 이상규 옛 통합진보당 후보는 야권분열로 신승을 거둔 바 있다. 당시 이 후보 38.24%, 김희철 무소속 28.47%,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 33.2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광주 서구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30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광주타임즈 의뢰, 25~26일 서구을 유권자 1000명 대상,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에서 천 전 의원은 37.2%의 지지를 얻어 29.9%의 조영택 새정치연합 후보를 눌렀다.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를 얻지 못한 점만 관악을과 다를 뿐이다. 정승 새누리당 후보는 12.6% 지지에 그쳤다. 위기에 처한 문 대표는 정면돌파 의지를 밝혔다. 그는 "정 후보의 출마로 관악을 선거가 더 어려워진 것 같다"면서도 "(새정치연합 후보가) 독자적으로 출마한 이상 정 후보와 단일화를 놓고 논의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후보 단일화 불가론에 쐐기를 박았다.

2015-03-30 14:56:11 이정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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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외교비사] 1984년 '김일성 조기 퇴진설' 부상

정부가 지난 1984년 김일성 북한주석의 '연내 퇴진설'이 제기되자 이에 대비한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는 그해 5∼6월 진행된 김일성 주석의 소련·동유럽 순방이 사실상 '고별 방문' 성격이 짙다고 보고 김정일로의 조기 권력 이양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됐다. 외교부가 30일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1984년 6월 23일 당시 일본 외무성 북동아과장은 주일 한국대사관 정무과장에게 "김일성이 머지않아 주석직에서 은퇴하고 김정일이 주석이 될 것"이라는 정보를 알렸다. 김일성의 직전 방문지였던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외무성 고위 관리가 현지의 일본대사관 고위직에게 말한 정보가 그 근거였다. 불가리아 고관은 "1985년에는 김정일이 주석이 돼 있을 것이라 한다"며 "이번 소련·동구 방문은 김(일성)이 머지않아 은퇴, 김정일에게 뒤를 물려주기 위한 준비의 의미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주일 한국대사관은 보고했다. 정부는 김일성 자신이 불가리아·루마니아 방문에서 '조기 은퇴설'을 표명했다고 보고 퇴임에 대비한 구체적인 대책 논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1984년 7월11일에는 박세직 당시 안기부 제2차장이 주재하고 청와대, 총리실, 외무부, 내무부, 국방부, 통일원, 문화공보부 등이 참여하는 실무국장회의가 열렸다. 정부는 김일성 생존시와 사망시 두 경우로 나눠 문공부 장관이 발표할 김정일 권력 승계 관련 대북 성명의 골자도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부는 대외적으로 김정일 정권의 비정통성에 대해 '은밀한 홍보활동'을 편다는 내용을 대책에 포함했다. 서방뿐만 아니라 공산권 사회도 김정일의 권력 세습을 인정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군 내부에서는 권력을 넘겨받은 김정일이 대남 무력 도발을 감행할 구체적 시기를 예상하기도 했다. 국방정보본부가 1984년 7월10일 작성한 '김정일 권력승계에 따른 대남도발 위험성 판단 및 대비책' 문건에서 "88년 한미 대통령 선거기, 1988년 올림픽 개최 및 북한군 훈련 양상 등의 면에서 88년 4월이 가장 취약하다"고 기술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남북교류 추진을 위해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안도 정부는 검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외무부가 그해 8월 작성한 '외무부 대책'에는 김일성 퇴진 직후 1개월은 김일성을 집중적으로 규탄하되 이후 1∼2개월은 대북 비방을 전면 중지하고 아웅산 사건에 대한 거론을 일단 유보한다는 내용이 있다. 퇴임설이 제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84년 10월 해리엇 아이솜 당시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은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에게 "외교 문제에 관한 김일성이 강력한 권한을 계속 행사하겠다는 조짐도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솜 국무부 과장은 이시바시 마사시(石橋政嗣) 일본 사회당 위원장이 방북시 김정일을 면담하지 못한 데 대해 이같이 평가하고 "최근 일련의 동향으로 볼 때 김정일이 실권을 장악했다는 일반적 평가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2015-03-30 11:06:10 정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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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외교비사] KAL기 격추기 사건 이후 소련외교관 접촉금지 지침

정부가 1983년 소련에 의한 대한항공(KAL) 여객기 격추사건 이후 소련 외교관과의 접촉을 사실상 금지하는 지침을 재외공관에 내렸다가 정세 변화를 이유로 1년도 안 돼 무효화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부가 30일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1983년 9월 1일 KAL기 사건이 발생한 후 외무부는 같은 달 14일 "소련 외교관과의 개별 상호 접촉은 일절 지양하고 소련측의 제의가 있을 경우 목적을 탐문해 사전에 본부에 청훈하라"고 전문 지시했다. 또 이틀 뒤인 16일에는 국경일 리셉션 등에 소련 외교관과 무관에 초청장을 보내지 말고 소련의 초청에는 응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에도 소련외교관을 먼저 접촉한 후 사후보고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강조했다.하지만 외무부는 이런 지침을 내린 지 1년도 안 된 1984년 5월 '아국의 대소 관계 개선 활동 건의' 문서를 작성해 KAL기 사건 이후에 내려진 소련외교관 접촉지침을 무효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외무부는 그 이유로 18년 만의 김일성 북한주석의 소련 방문으로 소련과 북한의 관계가 강화될 조짐이 보이는 등 정세가 변했다는 점과 단시일 내에 소련이 KAL기 격추 사건의 책임을 시인하고 배상 요구에 호응하기는 어렵다는 판단근거 등을 들었다. 여기에는 1988년 올림픽에 소련이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도 거론됐다. 결국 정부 부처 논의 등을 통해 외무부의 소련 외교관 접촉지침은 1년도 안 돼 무효화됐다. 한편 외무부는 '아국의 대소 관계 개선 활동 건의' 문서에서 비정치분야에서 소련과 상호 교류를 추진하자고 건의했다. 정부는 내부 논의를 거쳐 1984년 6월 비정치분야 교류에 대해서는 개별 사안별로 판단해 신중히 대처키로 방침을 정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8월부터 9월까지 6차례에 거쳐 우리 국민 8명이 세계지질도편찬위원회 참석 등의 이유로 소련이 개최하는 국제행사에 참석했다. KAL기 격추사건은 1983년 9월 1일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해 앵커리지를 경유해서 김포국제공항으로 오던 대한항공 소속 007편 여객기가 비행 중 소련 상공에서 소련 공군 소속의 공격을 받아 사할린 서쪽에 추락하여 탑승자 전원이 숨진 사건이다.

2015-03-30 11:05:47 정윤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