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구룡포사랑모임, '구룡포=과메기' 새로운 지역 브랜드 이미지 창출
포항 구룡포가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어촌 마을로 자리 잡기까지에는 두 개의 흐름이 있다. 하나는 20여 년 전 출향인들이 주도해 '구룡포=과메기'라는 단일 브랜드를 만든 전략적 선택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 설화와 반세기 넘은 노포를 결합해 생활문화유산으로 재해석한 '구룡포 9대 노포 프로젝트'다. 출발 시점은 달랐지만, 두 흐름은 결국 구룡포를 이야기가 있는 지역 브랜드로 재탄생시키는 방향으로 모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출향인 공동체인 구룡포사랑모임이 있다. 구룡포사랑모임의 시작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에 거주하던 출향인들은 전국 지자체보다 앞서 '구룡포읍 공식 홈페이지'를 자발적으로 구축했다. 어촌 마을 소식과 과메기 생산 정보, 고향 이야기를 꾸준히 올리며 작은 온라인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지역을 알리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전환점은 2001년이었다.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열린 제1회 '서울 롯데 구룡포 과메기축제'를 계기로 '구룡포=과메기'라는 인식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 지역 축제 현장은 혼선이 적지 않았다. 1998년 포항시 주최의 북부해수욕장 포항과메기축제, 2000년 제3회 구룡포 특산품축제 및 문화행사는 '포항과메기', '구룡포 특산품' 등 명칭이 뒤섞인 채 오징어와 대게, 과메기를 함께 묶어 홍보했다. 이 과정에서 구룡포만의 정통성과 고유성이 흐려진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당시 지역 정치권과 구룡포과메기영어조합 고 정재덕 회장 역시 단일 특산품 중심 축제로의 전환이 내부 반발을 부를 수 있다며 명칭 변경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을 중심으로 온라인 홍보를 이어가던 구룡포사랑모임은 "과메기는 포항이 아니라 구룡포다", "과메기가 살아야 구룡포도 산다"는 문제의식을 분명히 했다. 출향인들이 서울에서 축적한 온라인 홍보 반응과 데이터는 분명했다. 과메기가 지닌 청정과 전통, 바다의 이미지는 산업도시로 인식되는 포항시보다 실제 삶의 이야기가 살아 있는 청정 어촌 마을 구룡포라는 지명과 훨씬 더 강하게 결합했다. 과메기의 경쟁력은 '포항 과메기'가 아닌 '구룡포 과메기'라는 단일 브랜드에서 나온다는 판단이었다. 정재덕 회장은 생전에 "구룡포는 과메기 숙성에 전국 최고로 완벽한 자연 조건을 갖춘 곳"이라며 "겨울이면 영일만을 건너온 북서풍이 눌태리를 넘어 구룡포로 내려오고, 이 바람과 해풍, 온도와 습도가 과메기 숙성에 최적의 황금 비율을 만든다. 정통 과메기는 반드시 구룡포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인식은 구룡포사랑모임의 문제의식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지역 여건상 축제 명칭을 즉각 바꾸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구룡포사랑모임은 "서울에서 먼저 불씨를 붙이자"는 전략을 택했다. 서울에서 열린 구룡포 과메기축제는 중앙지와 방송, 경제지와 문화면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구룡포=과메기'라는 인식을 전국에 각인시켰다. 이후 구룡포사랑모임은 과메기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온라인 홍보를 이어갔고, 2005년 네이버와 다음, 엠파스 백과사전에 '구룡포 과메기'가 신조어로 공식 등재됐다. 출향인이 주도해 지역 식품을 단일 브랜드로 정착시킨 국내 첫 사례로 평가된다. 최근 구룡포사랑모임은 또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구룡포의 50년 전통 노포를 지역 설화인 '열 마리 용의 전설'과 결합한 스토리텔링 기반 문화 프로젝트, 이른바 '구룡포 9대 노포 프로젝트'다. 설화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시절, 장기현 앞바다에 벼락이 내리치며 바다가 갈라졌고 그 틈에서 열 마리 용이 하늘로 솟구쳤다. 이 가운데 한 마리가 바다로 떨어져 겨울 해풍 속에서 말려지며 비린내는 사라지고 깊은 감칠맛만 남았다. 이 용이 바로 구룡포 과메기가 되었고, '용 한 마리가 떨어진 포구'라는 의미에서 구룡포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이야기다. 하늘로 오른 아홉 마리 용은 밤이 되면 별빛이 되어 다시 구룡포로 내려와 바람이 스미는 골목과 시장, 세대를 이어온 가게 위에 머문다. 구룡포사랑모임은 이 서사를 바탕으로 하남성반점, 까꾸네 모리국수, 제일국수공장, 철규분식, 함흥식당, 할매전복집, 모모식당, 할매국수, 백설분식 등 반세기 넘게 이어온 노포를 '아홉 마리 용의 별빛'으로 엮었다. 이 노포들의 공통점은 유명세가 아니라 시간이다. 새벽 조업을 마친 어부들이 들르던 국숫집, 겨울 바다에서 몸을 녹이던 분식집, 항구에서 바로 건져 올린 해산물로 하루 장사를 시작하던 식당들이 세대를 건너 오늘까지 이어졌다. 이 가게들은 단순한 음식점이 아니라 구룡포 항구 공동체의 생활사이자 기억이다. 하남성반점은 1934년 '동화루'로 문을 연 이후 구룡포에서 가장 오래된 중화요리집으로 남아 있다. 해산물 짬뽕은 항구의 식재료와 외식 문화가 결합한 구룡포식 중식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까꾸네 모리국수와 할매국수는 새벽 바다에서 돌아온 어부들의 하루를 책임져온 한 그릇 국수로, 구룡포 바다의 맛을 가장 소박한 방식으로 전해온 집들이다. 1971년 문을 연 제일국수공장은 지금도 해풍건조 방식으로 국수를 만든다. 바닷바람이 스며든 면발은 퍼지지 않고 탄력을 유지해 '바람을 먹은 국수'로 불린다. 철규분식과 백설분식은 단팥죽과 찐빵, 떡볶이로 구룡포의 겨울을 기억하게 하는 공간이다. 함흥식당과 할매전복집, 모모식당은 복어와 전복, 고래고기 등 구룡포 바다의 자원을 식탁 위에 올리며 지역 어업사의 흔적을 이어왔다. 구룡포사랑모임은 이 노포들을 개별 맛집이 아닌 생활문화유산으로 재정의했다. 과거를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지금도 숨 쉬는 구룡포의 현재라는 인식이다. 그 결과 구룡포는 설화와 노포, 항구의 풍경이 하나의 이야기 지도처럼 이어지는 새로운 지역 브랜드 이미지를 갖게 됐다. 구룡포사랑모임은 어족자원 감소와 관광 침체, 과메기 산업 정체 등 지역 현안 해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구룡포 과메기 연구소 설립'을 국회와 관계기관에 공식 제안하며 과메기 산업 고도화와 구룡포 미래 전략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렸다. 조이태 사무총장은 "구룡포의 노포는 세대의 기억이자 지역의 숨결"이라며 "전통을 지키면서도 구룡포의 미래 가치를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붙인 작은 불씨가 '구룡포=과메기'를 만들었듯, 아홉 마리 용의 노포 이야기는 구룡포의 다음 20년을 밝히는 새로운 불씨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