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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大記者의 西村브리핑] 부동산PF, 금감원장 의지가 중요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미국의 유명 작가 마크 트웨인(1835년~1910)은 "은행은 맑은 날에는 우산을 빌려줬다가 비가 오면 뺏어간다"며 은행의 맨 얼굴을 비난했다. 사업가도 아닌 소설가가 은행을 이 정도로 깎아내릴 정도면 100여년전에도 은행의 횡포가 어느 정도인지 알만하다. 문제는 마크 트웨인이 뭐라도 해도 그 당시 은행이나 지금의 은행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행은 이윤에 목마른 기업이라 욕을 먹을지언정 돈벌이를 포기할 리 없다. 돈 없는 사람일수록 더 높은 금리로 이자를 받고, 제때 돈 갚기 어려운 사람부터 대출을 회수하는 게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의 논리다. 이달 14일 금융감독원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질서 있는 연착륙을 위한 향후 정책 방향'을 발표한 바 있다. 금감원은 각 업계의 고충과 조언을 듣고 상당히 많이 고심하고 노력해서 아이디어를 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물론 PF 연착륙 대책을 위해 제도 개선을 취한 것은 시의적절하다는 반응도 있다. 반면 부동산 개발사들은 "현장 사정을 너무 도외시한 결과물"이라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당장 통상 1년이던 금융권 대출 만기 기간이 작년 하반기부터 3개월로 줄어들었고, 대출 만기를 4번 연장하면 부실 사업장으로 분류하는 제도를 그대로 놔둔 것 등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사실 금융권이나 부동산 개발 관계자들은 이번 발표가 부동산 PF 부실 문제를 풀어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설사 제도와 시스템이 아무리 잘 만들어졌더라도 이것을 운영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정책 효과가 '구두선'으로 끝나는 것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흔히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한다. 선동열이나 최동원 같은 투수만 있으면 일단 70%는 이기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금융시장도 아무리 시스템이 잘 갖춰졌다해도 금감원장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금감원장의 의례적인 제스처로는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이복현 금감원장의 역할과 리더십이 매우 중요하다. 이 원장은 우선적으로 금융인이 추구해야할 선(善)과 선량한 관리자에 대한 개념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재교육해야 한다. '금융을 자양분 삼아 각 산업이 원활하게 돌아가고, 국가 경제가 융성하게 해야 하는 것'이 금융인의 사명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고객과의 공존 공영, 상생이 금융이 추구해야할 자세임을 재인식하게 해야 한다. 두번째로는 사익을 추구하고 불공정 계약과 노예 계약으로 갑질을 하며, 리스크 관리라는 명목으로 '비가 올 때 우산 뺏기'를 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사람이나 집단에게는 예외 없이 강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보기 보다는 담보만 있으면 대출하겠다는 후진적 여신 문화를 경계해야 한다. 선제적 리스크 관리라며 경매와 공매를 남발해 전체 산업을 위태롭게 하는 자들은 엄벌해야 한다. 세번째로는 올바른 금융 문화를 만드는 데는 채찍보다는 칭찬의 효과가 더 큰 법이다. 금융사들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서로 양보하고, 시장 참여자 모두의 리스크를 낮추며 상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면 크게 칭찬해줘야 한다. 위반 사례 적발보다는 모범 사례를 적극 발굴해 표창하고 전파해 전체 금융사들이 따라오게 하면 감독 정책의 효과는 더욱 커지게 된다. 건전한 금융 문화를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참금융을 세우는 것이 5년후, 10년후 대한민국을 더욱 융성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헌신할 만하지 않을까?

2024-05-23 08:00:18 이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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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한국 공공미술이 나아갈 방향

한국 공공미술의 역사 반세기, 그동안 이런저런 문제가 많았다. 공공미술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하는 지에서부터 실천 방식의 오류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도 다양했다. 특히 시간의 두께에 비해 시민 삶의 일부로 스며드는 '생활의 미술'로 인정받기엔 여러모로 미흡했다. 우리의 공공미술은 아직 건축물 내외를 장식하는 부속물로 이해된다. 공들여 만들었지만 공공의 주체인 시민들에게 외면받은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인천공항처럼 막대한 세금을 쓰고도 관리조차 제대로 못 하는 공공기관 주도형 작업 또한 넘쳐난다. 세상에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문화 행위로서의 공공미술은 거의 발견할 수 없는 반면 도시 흉물화를 부추기는 '비싼 쓰레기'는 지금도 지천이다. 외국은 다르다. 모든 작품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 구성원들은 시각적인 질을 높이는 것 저편의 의미를 지닌 무언가에 관심을 가졌고, 화려하고 장식적인 작품 대신 약속과 참여가 우선시되는 작품들을 공공의 공간에 위치시켰다.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당대성이 반영된 작업들도 심심찮게 선보였다. 일례로 영국 작가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은 지난해 런던 국립 초상화 갤러리의 육중한 청동 문에 45점의 여성 초상화로 구성된 'The Doors'라는 제목의 작품을 새겼다. 공공시설의 출입문에 각인되며 수많은 시민과 공유된 이 초상화들은 전 세계 주요 기관의 컬렉션에서 오랜 시간 소외돼 온 여성 예술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넓게는 여성의 인권에 대한 작가의 발언이기도 했다. 2022년 9월 이란에서는 이란 여성 마샤 아미니(Masha Amini)가 히잡을 부적절하게 착용한 혐의로 도덕 경찰에 구금된 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죽음은 이란을 넘어 세계적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시위대는 거리로 나와 여성의 생명과 자유를 외쳤다. 이에 이란 작가 쉬린 네사트(Shirin Neshat)는 런던의 한 건물에 'Woman. Life. Freedom'이라는 제목의 영상 작업을 선보이며 자유와 기본 인권을 위한 이란의 투쟁을 구현해야 한다고 외쳤다. 2022년 6월 캐나다 토론토의 한 거리에는 코끼리 형상의 청동 조각상 'Couch Monster'가 세워졌다. 캐나다 예술가 브라이언 융겐(Brian Jungen)에 의해 시도된 이 공공예술 프로젝트엔 거대한 코끼리가 등장한다. 1885년 화물열차에 치여 사망한 서커스 코끼리 점보(Jumbo)다. 작가는 점보를 통해 평생을 인간에 의해 갇히고 이용당하는 야생동물의 비극을 말하고, 인간과 동물의 공존에 대해 질문했다. 이 밖에도 소수자를 위한 배려로서의 공공미술, 지역을 반영할 수 있는 장소 특정적(place-specific) 성격의 공공미술, 시대의 발언으로 존재하는 공공미술 작품은 세계 도처에 있다. 공공미술은 메시지다. 민주적 의사표시로서의 사회적 행위다. 지역의 이슈와 자신의 주변 환경에 대해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경험이기도 하다. 공공미술도 미술이라면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논의의 매개가 돼 마땅하며, 미술을 통해 보다 건강한 사회 구축에 일조해야 한다. 한국의 공공미술은 이제라도 공공미술이 부르주아적 유산으로부터 이탈한 결과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대중을 위한 미술이자 대중의 참여를 통해 완성되는 미술이라는 것도 간과하면 안 된다. 더불어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처럼 의미 있는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하는 불합리한 체계가 합당한지 짚어보고 존치 여부 역시 고민해야 한다. 공공미술의 밝은 미래를 원한다면 그래야 한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4-05-22 14:12:36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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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준의 부동산수첩] 아파트와 완전 경쟁시장

경제학은 그 역사가 비교적 짧은 학문이다. 경제학의 근본이 되는 행위는 선사시대부터 있어 왔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정비한 애덤 스미스가 등장한 지 불과 300년이 되지 않았다. 경제학은 인간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비단 인간만이 아니라 어떤 생명체도, 심지어 식물조차도 각자의 종자를 퍼뜨리기 위해 진화해왔다. 시장 참여자들의 이기적 행동들이 모여 합리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시장의 수요 공급이 이미 균형을 이룬 상황에서 수요가 더욱 증가한다면 수요자들의 경쟁으로 인해 가격이 상승하고, 다시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이 내려가는 원리이다. 완전경쟁시장은 이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단순화한 시장 모델이다. 참여자들이 조건없이 경쟁하여 즉시 가격조정이 일어나는 완전경쟁시장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우선 시장에서 동일한 상품을 생산하는 공급자가 충분히 많아야 하며, 시장에 진입하고 퇴출하는 데 있어 어떠한 걸림돌이 없어야 한다. 또한 상품과 수요에 대한 정보가 수요자, 공급자 모두에게 완벽히 제공되어야 한다. 하나같이 부동산 시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부동산은 항상 걸림돌이 있고 상품은 동일하지 않으며 정보는 불균형하고, 때로는 각자의 신념이 정보를 앞서기도 한다. 그럼에도 부동산 시장 역시 가격의 결정은 수요 공급곡선의 접점일 수밖에 없다. 완전 경쟁시장이 아니어서 생기는 문제는 가격의 일시적 왜곡과 얼마간 지체되는 시간일 뿐이다. 최근 분양이 침체된 지방 아파트 시장에 저렴하게 나온 미분양 물량을 두고 시행사 및 할인 매수자, 제값을 낸 수분양자 간의 충돌이 잦아지고 있다. 대구 동구의 300세대 신규 분양 단지가 미분양 물량을 털기 위해 약 1억원 가량 할인 혜택을 제공하자, 기존 분양자들이 서울의 건설사 사옥까지 상경해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 수분양자들은 할인 분양자들에게 관리비를 20% 더 낼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에 앞서 수성구에는 분양률이 20%에 미치지 못하자 공매로 넘어가서 분양가보다 3억원 이상 낮은 가격에 거래가 이뤄지는 단지도 있었다. 이에 기존 입주자들은 가압류 등으로 대응하며 신규 입주자를 막기 위해 철조망을 치고 순번을 정해 보초를 서기도 했다. 광주 북구에서는 메이저 브랜드의 1600여세대의 대단지임에도 미분양 물량에 15%까지 할인혜택을 부여했다. 이 단지는 극심한 반발을 미리 예상했기에 기존 수분양들에게도 동일한 금액만큼을 환불해주었다. 서울 반포에서는 래미안 원베일리의 조합원 취소분 1세대를 갖기 위해 3만5000여 명이 청약을 접수했다. 당초 조합원이 계약하지 않아 공급이 취소된 단 하나의 물량이 일반분양 방식으로 공급된 것이다. 해당 아파트의 공급가는 19억5000만원. 그러나 같은 아파트를 40억원에 입주한 다른 소유자들은 누구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3만 5000명이 참여한 대대적인 이벤트를 아파트의 인기가 올라가는 현상으로 즐겼다. 물론 위의 미분양 사례와는 사유도 절차도 다르다. 둘 다 가격표와는 확연히 다른 특수한 거래임에도 하나는 그 자체로서 변동된 시장가격의 발로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가격에 조금도 변동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는 점도 다르다. 부동산은 그 특유의 고정성, 이질성, 부증성으로 여타 재화의 시장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아파트와 같은 생산형 물건은 정보화 시대를 만나서 점차 완전 경쟁 시장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격을 결정하는 시장참여자의 수가 많을수록 가격의 왜곡은 줄어든다. 어느 지점에서건 수요와 공급이 만나면 개별 공급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 채 결정된 가격을 그대로 수용한다. 시장만큼 솔직한 것이 없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다수에게 합리적인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수준 로이에아시아컨설턴트 대표

2024-05-22 11:11:12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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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의 전원에 산다] 아직 봄날이라서 좋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되면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다. '봄이되 봄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지 않고 지나온 봄은 없는 것 같다. 늘 그럴 듯 해서 은근히 저항감이 들기도 했다. 또 '겨울 다음에 여름'이라는 한탄도 자주 들었다. 잠시 벚꽃. 개나리를 스치듯 느끼곤 바로 여름을 맞았다는 푸념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니 우린 봄을 잊은건가? 벌써 봄이 가려고 한다. 내게도 그렇던가. 어떻게 봄을 맞고 보내는지 다시금 느껴본다. 2월 중순경 비가 내리고, 그 새벽녘 개구리소리가 요란했다. 잠결에서도 갑자기 계절이 바뀌어 개구리들이 깨어났다는게 실감 났다. 그리고 채소밭에 무엇을 심을까 자연스레 여러가지를 궁리하기까지 했다. 웃기는 일이다. 잠결에 개구리소리를 듣고 밭 일굴 생각을 했다니. 이어 벚꽃과 산수유꽃이 피고 지고. 어느 덧 아침 추위도 스러졌다. 한여름 열대야가 그러는 것처럼. 어느 날 텃밭을 일궈 몇개의 두둑을 만들고 상추, 고추, 호박 등을 심을 채비를 했다. 오랫만의 밭일이 즐거웠다. 그날 모종을 모두 마치느라 어두워져서야 일을 끝냈다. 그리고 물은 다음날 아침에나 주기로 하고는 못내 불편했디. 일이란게 그렇지 않는가. 다 끝내지 못했을 때 일의 즐거움이 보람이 되지 않는다는 걸. 내가 그랬다. 그렇게 잠 들었고, 새벽녘 거센 빗소리가 들렸다. '어허! 비가 온다는 뉴스가 있었지만 실제 비 오네'. 외등을 켜고 잠시 비오는 광경을 지켜봤다. 비에 적셔져 가는 텃밭. 이번 비로 모내기철에 물 걱정 없을 마을 사람들이 스쳐 갔다. 그리곤 빗줄기를 보며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채소를 심고 나니 비가 내리는 구나. 세상이 언제나 어긋난 것 같다가도 조화로운 날도 있네'. 이런 기분이라면 올 봄 춘래불사춘은 아니다. 이건 소확행이라기보다는 '그저 날씨가 잘 맞춰져 생긴 행복감'이랄까. 그렇게 조화로운 날 이후 읍내 종묘사에 갔더니 고구마순이 떨어져 있었다. 헛걸음하고 돌아와서 언짢았다. '내일까지는 심어야 되는데, 또 읍내 나가야 하나'. 차가 없는 나로서는 하루 대여섯 번 있는 마을버스를 이용하자면 한나절을 공쳐야 한다. 답답하다. 아침 고구마밭자리를 고루고, 몇 시 차로 읍내 다녀올까 궁리할 때다. 그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마을 이장이었다. 그는 "혹시 고구마 모종 필요하세요"라고 물었다. 어찌 알았을까. 잠시 후 그가 남은 고구마 모종을 가져왔다. 내가 가겠다고 해도 한사코 잣나무골까지 올라왔다. 이장은 나보다 열살 가량 어리다. 동네에서 가장 젊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 다녀온 후 줄곧 여기서 살았다. 부모님 모시고 농사 지으며 살고 있는, 성실한 사람이다. 동네사람이 억지로 이장을 시켜 부려먹고 있다고 해야 맞을 듯 싶다. 그는 어제까지 마을 유휴농지에 고구마를 심었다. 말하자면 노는 땅을 모두 모아 일종의 마을 수익사업으로 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다. 그나마 땅은 놀릴 수 없고, 손은 적게 가는게 고구마 농사라나. 아무튼 그렇게 남은 모종을 내게 나눠줬다.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또 읊조렸다. '고구마순을 찾으니 마을 이장이 가져다 주는구나. 이번 봄 참으로 순조롭네'. 이렇게 보내는 날들, 이제 나는 봄날이 봄날같지 않다는 말도, 불현듯 봄날이 스쳐 지나갔다는 말에도 반발하지 않을 것 같다. 내게 저질러진 자연의 순리, 이웃의 선행이 바람결 처럼 연결되는 봄날 굳이 짧지도 길지도 않게 그저 흘러가고 있다. 그냥 하루하루를 느끼면서 아직 봄날이라서 좋다.

2024-05-21 09:00:25 이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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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청맹과니'] 그릇을 비우는 법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이 있다.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렇듯 사람은 그릇에 자주 비유된다. 확실히 사람은 그릇과 같은 존재이다. 우리는 각자가 자신의 그릇을 가지고 있다. 이 그릇에는 좋은 것만 담고 싶다. 누군가는 돈과 권력을, 다른 이는 멋진 애인과 아름다운 외모를 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각자의 그릇은 용량이 있어서, 원하는 것을 모두 담을 수는 없다. 또 그릇에 좋은 것만 담아서도 안 된다. 올바른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그릇 속에 슬픔도 아픔도, 그리고 치욕스런 기억까지 담겨있어야만 한다. 이런 부정적인 경험들이야 말로 우리를 보호하고, 위기에서 구해 줄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의대생 A씨가 자신의 여자 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건이 터졌다. 세상은 큰 충격에 빠졌다. A씨가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수재였다는 점과, 현재 명문의대에 재학 중이라는 점은 사람들을 더 놀라게 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2018년 당시 A씨는 다른 수능만점자처럼 세간의 관심이 되었다. 지역 단체에서는 장학금을 지급하였고, 학원에서는 수험생을 위한 멘토가 되었다. 수험생들에게 공부방법의 팁을 주면서, 언론에도 몇 차례 소개되기도 했다. 밝은 장래, 수능만점의 명예,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 그리고 예쁜 여자 친구까지... 무엇하나 부족한 점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A씨의 삶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친구들과의 대인관계는 썩 좋아 보이지 않고, 유급까지 당했다. 여자 친구는 이별을 통보했다. A씨의 그릇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혹시 자신에게 명예와 장래를 보장해 준 '공부하는 법'만 들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실 대인 관계라는 것은 어려서부터 여러 친구와의 경험을 통해서 만들어 진다. 때로는 친구와 즐겁게 놀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면서, 함께 협력하는 방법과 우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혼자 공부만 하고, 자신의 석차에만 집중하면, 친구는 없고 경쟁자만 남게 된다. 사랑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함께 주고받는 것이지, 누군가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직접 사랑을 해 보면서 배울 수밖에 없다. A씨의 사건을 보면서, 'A씨의 그릇 속에서 공부를 조금만 비웠으면 어땠을까?'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 빈 공간에 우정을 넣고, 사랑을 넣고, 실연의 아픔까지 넣었다면, 이런 비극적인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릇은 채우는 것 보다, 비우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다. '욕심' 때문이다. 자신의 그릇에서 성공과 영광을 일부 덜어내고, 그곳을 실패와 고통으로 채우겠다는 결심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그릇을 비우는 기술을 연마해야만 한다. 종합격투기 선수였던 김동현 선수가 어느 예능프로에 나와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경기에서 계속 이기면, 영원히 잘 될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순간, 올라가는 것만큼 아프게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적절한 패배와 깨닫음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한다." 그가 어떻게 일류선수가 되었는지는 이말 한마디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릇을 비우는 법'을 반드시 가르쳐야 할 것이다. 김준형 / 칼럼니스트(우리마음병원장)

2024-05-20 14:55:37 구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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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수 교수의 라이프롱 디자인] 고슴도치형 리더십과 평생학습

여우는 고슴도치를 잡아먹을 생각으로 약삭빠르게 상황을 예측한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복잡한 전략을 세우고는 고슴도치 굴 앞에서 서성거린다. 고슴도치는 시치미를 뚝 떼고는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온다. 그렇지만 여우와 맞닥트리면 공처럼 둥글게 몸을 말고 가시를 곤두세워 결국 여우를 놀림감으로 만들어버린다. 거대한 기업이 여우라면, 위대한 기업은 고슴도치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의 저자인 경영학자 짐 콜린스(Jim Collins)는 위대한 기업은 좋은 것, 거대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리만치 일관성을 보이는 고슴도치형 기업이라고 말했다. 위대한 기업은 여우의 약삭빠름보다는 고슴도치의 무던한 사랑을 먹고 자란다. 고슴도치형 리더십은 단순함과 일관성을 말한다. 단순함은 복잡한 비즈니스 세계를 하나의 사업개념과 체계로 단순화할 수 있는 통찰을 의미한다.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처럼 논리적이지 않은 복잡한 것을 사유의 면도날로 다 잘라내 버려야 한다. 일관성은 창업에서 수성까지 인재를 중시하고, 기술을 연마하며, 역경을 딛고 성공하리라는 믿음으로 경영하는 것이다.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쉬우나 그것을 유지하고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어렵다는 '창업이수성난(創業易守成難)'의 뜻이야 말로 일관성과 다름없다. 고슴도치는 여우처럼 자기 잇속에 맞게 재빠른 행동을 할 줄 모른다. 외부에서 자원을 빼앗아오기보다는 내부에서 가치를 창출한다. "혼자 힘으로 성공했다고 믿는 사업가는 자신의 손에 능력 있는 노동자, 기계, 시장, 평화, 질서를 쥐여 준 사회 시스템의 존재를 알아야 한다."는 이론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의 교훈을, 고슴도치는 실천할 줄 안다. 고슴도치는 이렇게 부단한 자기노력과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신뢰를 연상시킨다. 고슴도치가 단순하다고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다. 부산을 떨지 않지만 움직일 때를 안다. 명견만리의 리더십이라 할 수 있고 창조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산업화와 지식사회를 지나, 다가온 지능정보사회는 통찰과 확신으로 업(業)을 창조하는 창업자의 사회다. 거대한 기업이 지식사회의 표상이었다면 이제는 창조적 기업이 시장을 이끈다. 사람이 가진 가장 위대한 자산은 바로 창조성이다. 문제는 이러한 타고난 창조성의 샘물이 마르지 않도록 샘을 평상시에 잘 관리하고, 평생 동안 물을 떠내어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평생학습이다. 짐 콜린스의 첫 마디인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다"라는 명언은 고슴도치처럼 평생 동안 학습하라는 말이다. 그럴 때 창조의 샘물은 마르지 않는다. 학습의 열매를 먹은 자는 세상을 얻은 것이다. /임경수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교수/성인학습지원센터장

2024-05-20 10:59:39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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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의 본초 테라피] 강력한 항산화 물질 셀레늄의 보고 '렌틸콩'

2000년대 초, 미국 <헬스> 지에서 발표했던 5대 건강식품에 한국인들이 열광했던 적이 있다. 김치가 리스트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나머지 리스트도 만만치 않은 것들이었는데 일본의 낫토와 그리스의 요거트, 스페인의 올리브, 마지막으로 '렌틸콩'이다. 인도인들의 주식인 렌틸콩은 렌즈콩이라고도 불리는데 모양새가 흡사 렌즈와 비슷해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수 이효리 씨의 아침 식단으로 주목을 받고 실제로 수입량이 큰 폭으로 증가한 적도 있다. 건강한 다이어트의 흐름과 맞물려 이제 렌틸콩은 인도인만이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짠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들은 심혈관질환, 위암 등 과도한 나트륨 섭취 때문에 생기는 성인병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평소 음식을 짜게 즐긴다면 적절한 칼륨 섭취를 통해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것이 중요한데 칼륨이 가장 많이 들어있는 식재료 중 하나가 두류(콩)이다. 렌틸콩 역시 칼륨을 포함하여 여타 필수 미네랄이 대체적으로 풍부하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미네랄은, 강력한 항산화, 항암 성분인 셀레늄이다. 셀레늄을 대표하는 달걀이나 돼지고기보다도 더 많이 들었으며 대두와 비교했을 때 10배 이상에 달한다. 셀레늄은 정력을 보강하는 데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평소 기력이 약하고 쉬이 지친다면 렌틸콩을 꾸준히 섭취하는 것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렌틸콩에는 탄수화물의 흡수를 늦추는 저항성 전분이 풍부하여 당뇨 걱정을 덜어준다. 당뇨 환자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어 준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몸에 좋은 유산균의 먹이가 되는 양질의 식이섬유 또한 무척 풍부하여 변비를 예방하고 체중 관리에 효과적이다. 렌틸콩은 그 종류나 도정 횟수의 차이로 인해 색상이 갈색, 빨강, 녹색 등 다양하다. 조리법 또한 렌틸콩의 색에 따라 밥 이외에 샐러드, 카레나 수프 등 색다른 요리로 활용이 가능하니 취향에 맞춰 몸에 좋은 렌틸콩을 즐겨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 할 수 있다.

2024-05-20 05:14:3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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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희 변호사의 도산법 바로알기] 나이 어려도 '사정' 있으면 파산신청 가능

재산보다 빚이 많으면 언제라도 회생이나 파산을 임의로 선택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회생은 채무 전액을 갚을 수는 없어도 향후 10년간 일정 채무를 변제할 계획을 세워, 이를 착실히 수행하겠다는 전제 아래 절차가 진행된다. 그러나 파산은 파산 선고와 동시에 면책결정을 받게 되면 결정 당시 채무자가 가지고 있던 재산을 채권자에게 나누어주는 것으로 채무자는 채무에 대한 모든 부담에서 벗어나게 된다. 물론 파산이 선고된 채무자는 일정 기간 경제활동도 자유롭게 할 수 없고, 은행에서 신용카드도 개설하지 못하는 등 제약이 따르긴 한다. 대신 더 이상 어떤 채무도 변제할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은 파산선고와 면책결정에 엄격하다. 특히 채무자가 일정 소득을 얻고 있고 필수 생계비용을 제외하고도 채무 일부를 지속적으로 변제할 수 있는 상황에 있으면서도 파산을 신청한 경우 받아들이지 않는다. 즉 회생절차를 진행할 수 있음에도 그저 채무 변제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파산을 선택한 것으로 보일 때, 법원은 이를 '파산절차의 남용'이라고 본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통상 채무자가 충분히 노동을 통해 소득을 창출해낼 수 있는 나이에 있거나, 업무 경력이 있어 취업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의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파산절차의 남용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 물론 단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소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파산을 진행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과일도매상에서 배달업무에 종사하는 A씨는 월 76만원 가량의 소득으로 장애인인 어머니를 부양하고 있었다. A씨는 버는 소득으로는 더 이상 빚을 변제하기 힘들다며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원심 법원은 "A씨가 1973년생의 남자로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노동능력을 가지고 있고 어머니 외에 다른 부양가족이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A씨의 노력에 따라 경제활동에 종사해 채무를 변제할 수 있는 자력을 갖출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파산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가 버는 소득은 평균적인 2인 가족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일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추가적인 지출도 예상되는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단지 A씨가 노동능력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회생을 도모할 수 있는 상태, 즉 추가적인 채무변제가 가능한 상태에 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시해 원심 결정을 파기했다(대법원 2009. 5. 28. 선고 2008마1904,1905 결정). 위 사례의 원심법원이 취한 태도에서도 알 수 있듯 ▲노동이 가능한 연령대에 있으면서 ▲직업적 경력이 존재하고 ▲실제로 노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채무를 변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채무자의 파산신청은 기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채무를 변제할 수 있을 정도의 노동능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 단지 나이가 어리다거나 경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파산신청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도산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채권자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법원이 무조건적으로 이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따라서 도산절차를 택해 채무를 면책받는데 있어서는 채무자 스스로 도산절차 신청 요건에 적합함을 적극적으로 설득할 필요가 있다.

2024-05-19 11:35:33 신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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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237>알프스와 지중해의 협작…伊 대표 화이트 '칸티나 트라민'

<237>이탈리아 칸티나 트라민 어디서든 적응하고 잘 자라는 포도품종이 있는 반면에 특정한 환경에서만 제 맛을 보여주는 애들이 있다. 화이트 와인 품종인 게뷔르츠트라미너가 그렇다. 조금만 조건이 맞지 않으면 과실만 진득하거나 알콜이 가득해 쓴 맛만 나고 만다. 근데 잘 키우면 과실과 꽃향이 기가 막히고,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보기 드문 화이트 와인이 된다. 이탈리아 최북단이라 선선한 기후 속에서 천천히 다 익을때까지 기다렸더니 일부러 달게 하지 않아도 좋은 향은 물론 풍미와 산도까지 다 갖춘 게뷔르츠트라미너 와인이 만들어졌다. 이탈리아 와이너리 칸티나 트라민의 울프강 클로츠 마케팅 디렉터는 지난주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칸티나의 게뷔르츠트라미너는 산미가 잘 보존되면서 완숙될 수 있는 테루아로 떫은 맛을 없애기 위해 당도를 남길 필요가 없다"며 "아름다운 향과 함께 달지않은 이탈리안 스타일의 와인으로 우리가 게뷔르츠트라미너를 어떻게 이해하고 소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칸티나 트라민 누스바우머 게뷔르츠트라미너'는 품종 특유의 우아함을 가장 잘 표현했다. 황금빛에 장미 꽃잎과 이국적인 과일향이 느껴지는가 하면 미네랄 느낌까지 복합적이다. 그는 "잘 잡힌 균형미로 무거운 느낌이 일체 없기 때문에 어떤 음식과도 충돌없이 잘 어울린다"며 "특히 매운 음식도 과실과 향신료 향이 잘 감싸주기 때문에 한국의 김치와 같이 마셔도 잘 어울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칸티나 트라민의 포도밭이 위치한 알토 알디제 지역은 이탈리아 지도로 장화 모양을 떠올리면 입구 부분이다. 알프스 산맥이 와이너리 좌우로 뻗어있고 주변에는 눈이 쌓여있지만 아래쪽은 지중해성 기후의 연장선으로 포도가 잘 익을만큼 따뜻하다. 낮에 온도가 올라가면 인근 가르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포도알을 식혀준다. 칸티나 트라민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게뷔르츠트라미너 품종으로 만든 '에포칼레'가 세계적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100점을 받으면서다.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으로는 사상 최초다. 경매 등의 2차 시장에서도 가격이 뛰면서 칸티나 트라민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의 위상을 높였다. '칸티나 트라민 소비뇽' 역시 여느 소비뇽 블랑 와인과는 다르다. 뉴질랜드 등 다른 지역의 소비뇽 블랑이 일단 파릇파릇한 향으로 존재감을 내세운다면 칸티나 트라민 소비뇽은 향보다 입 안에서 가치를 드러낸다. 울프강 디렉터는 "포도 자체가 좋은 완숙미에 산미를 잘 갖추고 있어 공격적이거나 풋내없이 매끄럽다"며 "일반적인 소비뇽 블랑 재배지 대비 비교적 따뜻한 테루아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칸티나 트라민 스토안 비앙코'는 샤도네이를 중심으로 소비뇽 블랑, 피노 비앙코, 게뷔르츠트라미너 등을 섞어 만들었다. 스토안은 독일어 방언으로 돌을 뜻하는데 석회암이 있는 테루아를 반영했다. 서늘한 곳에서 자란 샤도네이는 풍미와 색, 향을 착실히 축적해 복합미와 구조를 갖췄고, 소비뇽 블랑과 게뷔르츠트라미너는 다채로운 아로마를 더했다.

2024-05-16 16:24:00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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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덕의 냉정과 열정사이] 카이로스의 시간2

며칠 전 수신자 부담 전화(콜렉트콜·collect call)가 걸려왔다. 강원도 최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하는 아들이다. 상하관계가 분명한 군대에서 12개월째다. 고참이어서 크게 힘든 것은 없단다. 그런데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했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이등병, 일병을 지나 상병 몇 호봉이 되더니 여유가 생긴 듯 해서다. 작전(근무) 외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책을 보면 시간이 잘 간다는 말 밖에 달리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냥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에 의미를 더하는 시간을 보내길 바랄 수밖에. 그리스어로 시간을 뜻하는 단어는 두가지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다. 크로노스는 물리적인 시간, 변함없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상대적인 시간, 의식적으로 보낸 시간을 의미한다. 2년여 전 썼던 '카이로스의 시간'이란 칼럼을 다시 들췄다. 2022년 3월 대통령선거가 끝난 시점이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정권도 마찬가지다. 크로노스냐 카이로스냐다.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고 자만하다간 큰 코 다친다. 국민의 심판은 엄중하다. 오는 6월 지방선거와 2년 후 총선(2024년 4월 10일)에서 민의가 결과에 반영될 것이 자명하다. 승리에 취해 밀어붙이다간 역풍을 맞는다… 오직 국민이라 말하고 고집대로 한다면 국민은 돌아선다…'.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다. 지난 4월 치러진 총선에서 국민들은 여권에 등을 돌렸다. 범야권이 192석, 여권이 108석을 얻었다. 여권의 참패였다. '정권견제'에 대한 민의가 총선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선거는 인물, 구도, 바람이 중요하다. 각 지역구에서 어떤 사람이 출마했는지가 관심사다. 또 전체적인 선거 구도가 핵심이다. 여기에 어떤 바람이 부느냐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한다. 이번 선거에선 상대적으로 인물이 중요하지 않았다. 바람은 불지 않았다. 구도가 결정적이었다. 현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민의가 '거야의 입법독주'를 막자는 명분보다 앞섰다. 지금의 대한민국.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기업인, 자영업자, 샐러리맨 모두 현실이 힘들고 미래를 걱정한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은 서민들의 삶을 조이고 있다. 나라의 미래도 밝지 않다. 저성장, 저출산이 고착화되고 있다. 현 정권의 임기는 3년 가까이 남았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만들어 가길 주문한다. 미래세대에게 희망을 줘야 할 의무도 있다. 과거 대통령을 떠올리면 상징적인 업적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금융실명제, 하나회해체 등이 떠오른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 극복과 포용의 정치, IT·벤처산업 육성이, 노무현 대통령은 권위주의 청산과 정책 토론문화, 지방 분권화 추진(지역주의 타파) 등이 인상깊었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선 대통령도 달라져야 한다. 2년의 정치가 심판을 받은 만큼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협치와 협력이 없다면 국정운영도 순탄치 않다. 192석 범야권의 입법독주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만들 수 있다. 국회권력이 민생과 경제를 위한 입법이 아닌 집권세력에 대한 반대급부라면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파생되는 고통은 국민들이 감내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먼 훗날 어떻게 기억될까. 의미있는 3년을 보낼 결심을 해야 한다. 아내의 특검을 받아 들인 대통령, 한 군인의 순직사건 특검법을 수용한 대통령은 어떨까. 가계부채를 줄이고 집값을 안정시킨, 출산율을 높이고 저성장 국면을 극복할 구조개혁을 이룬 정부는 어떨까. /금융·부동산부장 bluesky3@metroseoul.co.kr

2024-05-16 07:25:57 박승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