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사람들] ‘거리의 한계를 넘어서’… 김태영 중앙대 국제물류학과장이 말하는 국제물류의 미래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물류'는 단순한 운송을 넘어 기업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 ESG 경영, 라스트마일 자동화, 인공지능 기반 수요 예측까지. 물류산업은 전환기 한가운데 서 있다. 이 같은 시대 변화에 맞춰 교육 현장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중앙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진행된 <메트로신문(메트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김태영 중앙대 국제물류학과장은 "이젠 물류도 데이터를 다룰 줄 아는 문제 해결형 인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전엔 물류가 보조적 기능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팬데믹을 지나며 기업들이 깨달았죠. 물류가 이익을 창출하는 전략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걸요." 김 교수는 최근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리질리언스(회복탄력성) 있는 물류체계 구축'을 꼽는다. 예측 불가능한 물류비용, 급등한 컨테이너 운임, 지역별 정책 차이까지. 공급망 전략 전환 없이는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는 판단이다. ■ 물류가 바뀌어야 기업이 산다 김 학과장은 국내 물류기업들이 디지털 전환의 후발 주자라고 진단했다. "제조업은 이미 자동화가 많이 됐습니다. 그런데 물류는 비교적 늦었어요. 하지만 이제 기업도 물류 디지털화를 통해 투자 대비 이익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죠." 특히 최근에는 물류 산업에서 소프트웨어 기반 비저빌리티(가시성) 확보, 자동화 솔루션 도입, 물류 오퍼레이션 최적화 기술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다는 게 김 학과장의 설명이다. 유통시장 변화도 물류 혁신을 강제하고 있다. 김 교수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유통 매출의 40%가 온라인에서 발생하고 있다"라며 "이커머스는 물류 없이는 불가능한 비즈니스"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특히 온라인 유통에서는 소량 다빈도 배송이 많고, 패키지별 작업이 필요해 자동화 없이는 운영이 어렵다"라며 "사람이 수작업으로 하던 걸 이제는 자동화와 로봇이 대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드론 배송과 자율주행 기술 확산보다 오히려 "물류센터 내 자동화 확대"가 더 시급하고,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드론은 인프라나 법규 제약이 있어 당장은 어렵지만, 물류창고 내부는 기업이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죠. 실제로 아마존이나 국내 일부 기업은 로봇이 피킹하고 적치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오토스토어와 같은 고밀도 큐브형 보관 시스템도 주목할 사례다. ■ 배송의 편리함 뒤에 숨은 탄소 발자국 이커머스 시대에 라스트마일 물류는 편의성과 환경 부담이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김 교수는 "소비자 중심 물류 체계가 탄소 문제로 이어지는 만큼, 정책적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미래 물류는 도시, 소비자, 기업이 함께 만드는 생태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중앙대 국제물류학과가 참여하고 있는 기획재정부 경제 혁신 파트너십 프로그램(eipp) 일환으로 진행 중인 헝가리 도시형 파슬라커(무인택배함) 프로젝트는 김 교수가 주목하는 대표적인 탈탄소 전략 중 하나다. "도심에서 이커머스 물류가 늘면서 라스트마일 배송이 교통 혼잡, 탄소 배출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요." 그는 개별 기업이 설치하던 택배함을 도시 또는 지자체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모델로 전환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방식은 단순한 유통 효율화를 넘어서 환경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김 학과장은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김 학과장은 "현재는 민간 기업이 각자 '파슬 라커'를 설치하고 있지만, 확장성과 공공성이 떨어지는 구조"라며 "정부나 지자체가 인프라를 깔고, 여러 기업이 공유하도록 하면 중복 투자도 줄이고 시민 편의도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무인 택배함 이용이 일상화돼 있고, 한국도 점차 전환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중소 물류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언급했다. 김 학과장은 "디지털 전환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게 더 절실하지만, 초기 비용이 큰 게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공동 물류센터나 자동화 장비를 인프라 차원에서 구축하고, 중소기업이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라며 "정부가 초기 3~4년을 버틸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중소기업도 물류 혁신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산업 맞춤형 인재, 물류 교육의 지형 바꾸다 물류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현장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처럼 법·정책 중심 이론 교육에서 벗어나, 지금은 데이터 기반 실습 교육이 핵심이다. 김 교수는 '데이터기반 물류관리 혁신' 등의 수업을 운영하며, 학생들에게 문제 정의, 최적화 모델링, 생성형 AI 코딩 실습까지 경험하게 한다. "이제 중요한 건 코딩을 잘하는 게 아니라, 어떤 문제를 정의하고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느냐입니다. 목적 함수와 제약 조건만 사람이 명확히 설정하면, 해결은 AI가 도와줄 수 있는 시대가 됐으니까요." 중앙대 국제물류학과는 산업공학 기반 최적화 소프트웨어 활용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애니로직, 심플렉스 등 산업용 알고리즘을 접목한 실습을 통해, 물류센터 인력 계획, 배송 라우팅, 시설 입지 결정 등 실무형 과제를 다룬다. "중요한 건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정을 내리느냐예요. 이게 바로 기업이 원하는 실무형 역량입니다." 그는 최근 중앙대 국제물류학과 학생들이 참여한 국제 물류 시뮬레이션 대회에서 중국 칭화대를 제치고 종합 2위를 차지한 사례도 소개하며, "감에 의존하지 않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략을 수립한 점이 높게 평가받았다"고 소개했다. 문제를 모델링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검증하며, 현실에 적용해보는 과정을 반복한 끝에 나온 결과였다. 김 교수는 이러한 문제 해결 중심 교육의 필요성을 산업 현장의 변화에서 찾는다. 그는 "예전에는 반복적 작업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수요 예측, 탄소 시뮬레이션, 창고 최적 입지 선정 등 복합적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라며 "머신러닝이나 최적화 알고리즘의 숙련도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풀어야 하는 문제로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통찰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앙대는 국토부와 함께 '데이터기반 물류인력양성사업'을 5년간 수행했고, 현장 실습, 솔루션 교육, 경진대회 등 실무형 프로젝트도 운영해왔다. "물류는 거리의 개념을 바꾸는 기술입니다." 김 교수는 'Death of distance(거리의 죽음)'이라는 개념을 언급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인터넷이 국경의 경계를 허물었다면, 물류는 그 과정를 현실화하는 수단이에요. 소비자는 단지 하루 배송이 좋아진 걸로 느끼지만, 실은 '거리'가 사라진 겁니다. 물류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가장 현실적인 기술입니다." / 이현진 메트로신문 기자 lhj@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