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점포 줄이는데 신입 직원 뽑으라고? 보험사 구조조정 해야할 판
# 지난해 8월 A대 수학과를 졸업한 박모 씨(25·여)는 학점이 4.3점 만점에 3.7점, 토익 점수는 950점이었다. 지난해 하반기(7∼12월) 시중 은행들에 지원했지만 2곳은 서류전형에서, 1곳은 면접에서 각각 탈락했다. 박 씨는 "금융권 취업은 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려워졌다고 다들 얘기한다"며 "연초 공채까지 떨어지고 나니 더 걱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불리해질 것이 뻔해 너무 불안하다"고 하소연했다. # K대 경제학과 09학번인 이모 씨(26)는 졸업을 내년으로 미룰까 고민 중이다. 그 역시 은행권에 마음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은행의 문턱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다. 이 씨는 "학점이 문제가 아니다. 지원자가 넘쳐 나다 보니 서류전형조차 통과하는 선배들이 많지 않다"며 "자격증 등 스펙을 더 갖춰서 지원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금융권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취업 유목민((Nomad)'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은행과 보험, 증권사 등 금융업권별 전방위적인 구조조정의 여파로 올 하반기 금융회사의 신입사원 채용 규모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여서다. 수익성 악화로 고심하고 있는 금융회사 가운데 상당수는 하반기 채용 여부조차 확정 짓지 못하고 있다. 금융사 인사 담당자들은 좁은 입사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탈(脫)스펙' 전형의 취지를 이해하고 화려한 스펙보다 자신의 직무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시중은행 한 인사담당자는 "인터넷이나 매체를 통해 지원하려는 금융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신이 적성과 잘 맞는지 잘 따져보고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점포까지 줄이는데 신입 직원 뽑으라고? 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우리은행만 채용 시기와 규모를 예고했으며, 대다수의 은행의 하반기 채용 규모는 전년 동기와 비슷하거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이달 말 300명 규모의 하반기 정규직 채용 공고를 낼 예정으로, 구체적인 일정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9월 공채 예정으로, 채용 규모는 채용시점의 인력수급 현황에 따라 변동 가능성이 있지만 작년 수준(200명)으로 예상되고 있다. 올 상반기 유일하게 일반직 공채를 진행한 신한은행은 하반기 채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일정과 규모를 확정하지 못했다. 신한은행의 상반기 올해 채용 계획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올 하반기 일반직 240명, 사무인력 60명, RS직 40명 등 총 340명의 채용이 계획돼 있으나 인력 수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해운업 부실대출로 충당금 부담을 안고 있는 NH농협은행도 하반기 채용을 계획 중이다. 농협은행은 국책은행 다음으로 조선·해운업 위험노출액이 높아 신규 채용에 부담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올 상반기 채용을 하지 않아 하반기에는 채용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은행은 모회사인 농협중앙회와 회의를 통해 법인별 채용 규모를 정하기 때문에 9월 말이나 10월 초쯤 채용 윤곽이 잡힐 것으로 전망된다. KEB하나은행도 상반기 채용을 하지 않은 상태로, 하반기 채용을 계획 중이다. 하지만 채용 규모는 작년에 비해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해 통합은행 1기로 대규모(310명) 신입직원을 채용한데다 전산통합이후 중복 지점을 통폐합하면서 인력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채용 규모와 시기는 아직 미정이다. IBK기업은행은 작년 이맘때쯤 하반기 채용을 진행했으나 올해 하반기 채용 계획은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채용 규모는 작년(200명)과 얼추 비슷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은행 중에서도 아직까지 하반기 채용 윤곽이 나온 곳은 없다. 일반적으로 지방은행의 하반기 채용 시기는 시중은행보다 늦은 10월 전후다. 은행들의 소극적인 채용 계획은 '은행권의 현실'을 보여준다. 현재 은행권은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며 순이자마진(NIM)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데다 비대면거래 활성화로 은행직원과 점포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또 상반기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에 따른 충당금 적립 부담을 비롯해 하반기 출범할 인터넷전문은행과의 경쟁, 성과연봉제 도입을 둘러싼 노사간 갈등 등으로 채용에 부담을 느끼는 모양새다. ◆증권·보험, 구조조정 해야 할 판 증권사도 마찬가지다. 증시가 2000선을 넘나들며 여의도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지만 구조조정 여파로 채용 시장은 찬바람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미래에셋대우, 미래에셋증권, 하나금융투자 등 대부분의 증권사가 하반기 신입 채용계획을 잡지 못하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은 박현주 회장이 조직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내 비친 바 있어 하반기 채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금융투자도 전년과 마찬가지로 지주사 공채를 통한 채용을 실시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은 불확실한 상황이다. 최근 2년간 신규 공채를 하지 않은 NH투자증권의 하반기 채용도 미지수다. 현대증권도 KB금융지주의 그늘로 들어서면서 신규 채용은 안갯속이다. 합병 등 급선무인 과제가 있기 때문. 메리츠종금증권은 지난 2011년부터 대졸 직원 채용을 수시 채용으로 바꿔 신입 공채를 하지 않고 있다.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증권사도 채용에선 한 발짝 물러섰다. 이미 매물로 나온 하이투자증권은 하반기 공채 계획이 없으며, 매각설에 시달리고 있는 삼성증권과 SK증권도 몸을 낮추고 있어 채용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구조조정을 진행한 보험사는 인력 감축 이후 직원 재배치와 뒤숭숭한 내부 분위기 등 사정으로 하반기 신규 채용은 엄두도 못낸다. 보험업계 및 통계청에 따르면 금융 및 보험업 종사자 수는 2013년 86만4000명, 2014년 83만7000명, 2015년 78만9000명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