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4주년 기획]준비된 황혼, 여유와 행복 깃든다② '4050세대 자산관리 해법'
금융자산만 20억원대인 이부자 씨(45·가명)는 지난해 12월 은행 프라이빗뱅커(PB)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가입한 펀드가 예상을 뛰어넘는 수익률을 내면서 종합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 씨는 울며 겨자먹기로 다른 펀드를 해지하고, 종합과세를 피해할 수 있었다. 이 씨 처럼 '수퍼 리치(super rich·거액 자산가)'들은 노후 걱정이 덜하다. 하지만 평범함 40~50대 서민들은 사정이 다르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중산층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노후를 위한 3가지 연금(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비율은 13.9%에 그쳤다. 전체의 48.7%는 아예 노후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당장 쓸 돈이 없기 때문이다. 가계 빚이 너무 많아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부채는 1206조원(지난해 말 기준)이다. 3년 만에 244조원이 늘었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2년 133%에서 147%로 늘었다. 가계는 돈을 벌어도 빚 갚는 데 쓰느라 바쁘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노후를 포기할 수도 없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의 3층 연금에다 주택연금과 은퇴 후 일자리를 더한 5층 안전판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센터장은 "첫째도 분산, 둘째도 분산, 셋째도 분산"이라고 말했다. 이같이 분산을 강조하는 것은 노후 자산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리스크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자산투자해야 노후가 든든 은퇴 후 재량껏 사용할 수 있는 가용시간은 11만 시간이다. 이는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근무시간을 기준으로 50년에 해당하는 긴 시간이다. 이 시간을 잘 보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은퇴후 월 226만원이 필요하지만, 실제 준비할 수 있는 돈은 그 절반(110만원)도 되지 않는다는 조사도 있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중산층(소득 상위 25~50%) 60대 2인 가구의 적정 은퇴생활비를 추산했더니 약 260만원으로 나타났다. 준비할 수 있는 돈(110만원)보다 150만원이 더 있어야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은퇴 준비를 하지 못한 탓에 은퇴자 10명 중 6명은 생활비에 쪼들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통계청·금융감독원이 2만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지난해 3월 말 현재 은퇴 부부의 62.1%는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여유 있다'는 가구는 7.9%에 그쳤다. 은퇴 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연금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야 한다.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등 이른바 '3층 연금'만으로는 은퇴후 '소득 절벽'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나라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구원은 "장수(長壽)는 위기가 아니라 투자의 기회"라며 "은퇴 자산을 운용할 수 있는 투자 기간이 늘어나 재산을 불릴 기회가 생긴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오래 살수록 투자하라(투자의 시간지평을 늘려라) ▲분산투자하라 ▲무모한 투자는 금물. 자신의 현금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적금만으로는 살기 힘든 세상이 됐다. 금융자산 투자는 필수다. 또 어느 정도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정 연구원은 "주식 투자의 연 수익률이 4.46%, 주가 변동성이 14.65%일 경우 주식에 1년 투자했을 때 원금을 잃을 확률은 38%이지만, 30년을 투자한다면 4.8%로 줄어든다"며 "이는 주가가 단기적으로는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지만 장기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산수익률의 변동성을 낮추기 위해서는 '지역별, 자산군 내, 자산군 간' 분산투자 해야 한다. 실제로 1985년부터 최근까지 국내 상장주식에만 투자했을 때 1년 수익률의 변동성(표준편차)은 38.7%나 됐다. 하지만 해외 선진국 주식(MSCI World)에 절반씩 투자했을 때에는 24.5%로 -14.2%포인트나 하락했다. 은퇴 이후 현금흐름을 감안해서 투자하는 것도 필수다. 은퇴 이후 자산에서 생활비를 인출해 써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금과 같은 정기적인 소득이 있는 사람도 있어서다. ◆퇴직금 지키는 전략 2013년 4월 '정년 60세 연장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내년 부터는 300인 미만 전 사업장에서도 정년 60세 이상이 의무화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다. 늘어나는 정년만큼 인건비 부담이 더 커질 수 밖에 없어서다. 그래서 '정년 60세 연장법' 에서는 정년이 늘어난 곳은 임금체계 개편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했다. '임금피크제'가 대표적이다. 20·30 세대는 피부로 와 닿지 않는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가 도입된다면 생애 자산관리도 달라져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퇴직연금은 임금과 직결된다. NH투자증권 은퇴연구소 김민영 연구원은 "퇴직연금이 줄어드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는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라 향후 자산도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임금피크제 적용 이후 퇴직하는 근로자는 임금 감액이 시작되기 전에 퇴직연금을 확정기여형(DC형)으로 전환하는 게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실제 '근속연수 30년, 퇴직 시 평균임금이 1000만원'으로 총 3억원의 퇴직금을 받는 근로자를 상정하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이 근로자가 근속연수 30년 이후 매년 10% 임금이 삭감되는 임금피크제의 적용을 받으면서 3년 더 일하고 퇴직한다고 할 때 DB형은 2억4100만원, DC형은 3억2400만원(운용실적 제외)을 각각 받게 된다. 다만 DC형은 운용주체가 근로자이기에 운용에 따른 위험부담은 근로자가 지게 된다. 따라서 임금피크제에 직면하거나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중장년층 근로자라면 퇴직연금 자산의 안정적 수익 창출에 초점을 맞춰 쌓아놓은 퇴직금을 최대한 지키는 게 좋다. 전문가들은 돈 보다 좋은 인간관계를 쌓으라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경제학에는 '이스텔린의 역설'이 있다. 소득과 행복이 결코 비례하지 않고, 오히려 가난한 삶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을 분수로 볼 때 분모가 욕구라면 분자는 소득이다. 74년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텔린의 논문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논문에서 "소득이 어느 이상이 되면 더 이상 돈이 행복의 크기를 늘릴 수 없고, 그 다음부터 행복의 크기를 늘리는 것은 좋은 인간 관계다"라고 기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