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청와대 엇박…청렴 행보냐, 조기 레임덕이냐
[메트로신문 연미란 기자]국민권익위원회가 9일 입법예고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일명 김영란법) 시행령에 대해 산업계를 중심으로 내수 침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내수 침체 가능성을 예상해 국회에 김영란법을 다시 검토해 달라는 뜻을 밝혔지만 이 법은 각계의 수렴을 거친 뒤 오는 9월 2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b]◆입법취지 살려vs헌재에 떠넘겨[/b]
10일 정치권과 산업계에 따르면 김영란법의 영향을 받을 기업, 자영업자 등의 반발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권익위의 발표에 대해 '형평성을 갖춘 입법취지 청렴 행보'냐,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떠넘긴 마이웨이 행보'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내수 침체 우려를 몇 차례 제기했음에도 제대로 반영이 되지 않자 청와대와 권익위의 엇박자를 놓고도 무성한 말들이 오간다. 김영란법은 공무원, 사립학교 교직원, 언론인 등이 제3자로부터 고액 금품(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 초과)을 받거나 이를 제공한 국민을 직무 관련성을 따지지 않고 형사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시행령 제정안에 따르면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직무 관련인으로부터 3만원 이상의 식사를 대접받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이는 현행 공무원 행동 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상한액을 유지한 것이다. 선물 가격과 경조사 비용은 각각 5만원과 10만원으로 설정됐다. 김영란법에는 애초 명절·경조사와 관련돼 단가가 높은 한우·굴비 등 농축수산업과 화훼 관련 업종을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형평성 문제를 우려해 특정 업종을 배제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선물 가격이 통상 거래 시가를 기준으로 부가세까지 포함된 금액을 의미하기 때문에 높은 할인율로 물품을 구매할 경우 처벌 규정과의 간극은 난제로 남아 있다. 공직자 등의 외부강연 사례금에 대한 상한액도 설정됐다. 장관급은 원고료 등을 포함해 시간당 50만원, 차관급·공기업을 포함한 공직 유관 단체 기관장은 40만원, 임원은 30만원 등이다. 업계의 반발과 내수 침체 우려의 근거는 음식물과 선물, 경조사비 가액기준을 담은 제8조 3항 2호다. 음식 대접 기준 가액은 동일한데다 경조사비는 물가인상률 등을 반영한 것에 불과해 사실상 현행대로 유지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b]◆권익위, 朴대통령 "재검토해야" 당부 무시[/b]
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은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김영란법에 대한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고 법개정 필요성도 제기됐으며 내수 위축을 비롯한 여러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며 부정심리가 다수 존재함을 인정했다. 법률 시행일이 임박해 시행령 제정을 늦출 수 없어 일단 입법 예고를 했다는 설명이지만 사실상 헌재에 판단을 떠넘겼다는 일각의 비판이 나오는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영란법은 위헌소송이 제기돼 헌재의 심리를 받고 있다. 결과는 김영란법 시행 전인 9월 28일 전 나올 전망이다. 만약 헌재가 김영란법에 대해 위헌 등의 결정을 내리게 되면 국회는 법 개정 작업을 다시 거쳐야 한다. 내수 위축을 우려해 박 대통령이 주문했던 기준금액 상향 역시 반영이 되지 않자 여소야대 국회 이후 제기됐던 조기 레임덕이 벌써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영란법에 대한 질문을 받고 "지난번 박근혜 대통령이 말씀하신 것에서 제가 덧붙일 것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번 발언은 지난달 26일 박 대통령이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간담회에서 김영란법의 재검토를 언급한 것을 말한다. 당시 박 대통령은 "김영란법이 내수까지 위축시킬까 걱정스럽다"며 "국회 차원에서 다시 검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