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서울 사람들은 어떤 여가를 즐겼을까?"
역사 암흑기라 칭해지는 일제 강점기, 서울 사람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여가 생활을 향유했을까. 서울역사편찬원은 일제강점기 서울사람(경성부민)들의 여가생활을 유형별로 조명하는 연구서를 발간했다고 1일 밝혔다. 책은 대로변의 번화가와 뒷골목의 유흥가, 음반 산업과 기생출신 여가수, 영화 관람과 영화산업, 선술집과 음주의 위계, 여름철 여가활동인 수영과 수영장, 외식문화의 형성과 경성의 향토음식, 오락장과 공인된 도박장 등 7개의 주제를 다룬다. 여가는 근대를 시작으로 3·1운동 이후 만들어진 개념이다. 위기감을 느낀 조선총독부는 '교화'를 명목으로 다양한 여가시설을 만들었다. 공원, 도서관, 운동장 등 공공시설뿐만 아니라 극장, 영화관, 카페, 바, 당구장, 경마장 등의 유흥·오락 시설을 조성했다. 라디오와 음반이 새로운 취미로 등장했다. 외식은 행복한 가정을 상징하는 문화현상으로 대두됐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여가생활에 차이가 난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경성의 음반산업은 일본에 의존하는 식민적 산업구조로 성장했다. 일본과 조선을 연결하는 레코드회사 간부들은 일본 제국에 의해 만들어진 '슬픈 이미지'라는 조선인의 심성을 마케팅에 활용해 큰 수익을 벌어들였다. 음주 문화는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달라졌다. 선술집은 후미진 골목에 위치했고, 요릿집과 카페는 번듯한 건물에 입주했다. 바와 카페를 통해 근대 일본 음주 문화가 경성에 퍼져 나갔다. 한강 수영장은 여름에는 피서지로 겨울에는 스케이트장과 낚시터로 이용됐다. 인도교와 뚝섬, 서빙고 등지의 수영장은 하루에 2만~3만명이 찾는 서울의 대표적 관광지였다. 오락장은 일상의 피로와 고통을 풀고 익명성을 보장받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그러나 공공시설로서의 오락장의 등장은 도박의 출현을 수반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일제강점기 경성부민의 여가생활'은 서울 소재 공공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으며, 구입을 원할 경우 신청사 시민청의 서울책방에서 1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 김우철 서울역사편찬원장은 "책의 발간을 계기로 일제강점기 서울 사람들의 여가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어 2천년 서울 역사의 체계화에 기여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더 좋은 '서울역사 중점연구총서'를 발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