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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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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 "최순실이 미르재단 설립·사업 주도"

김성현 미르재단 사무부총장이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재단 설립과 사업에 깊이 관여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최씨와 차은택 씨에 대해 "같은 사람들이 지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도 진술했다. 김 부총장은 3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씨의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나와 이같이 말했다. 김 부총장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에 적힌 재단의 정관과 미르의 뜻, 사무실 위치 등이 최씨로부터 들은 내용과 같느냐'는 검찰 측 질문에 "아마 (최씨와 차씨) 두 분 중 한 분에게 (들은 것 같다)"고 대답했다. 검찰이 누구에게 지시받았는지 불분명한 이유를 묻자, 그는 "최씨와 차씨가 저한테 이야기하는 것이 분리돼 느껴지지 않았다"며 "같은 사람들이 지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김 부총장은 두 사람의 이해관계에 대해서는 모른다면서도 "차씨 지시가 곧 최씨의 지시로 느껴졌다"고 진술했다. 김 부총장은 차씨의 지시로 재단 설립 직전에 차명폰을 만들었다는 진술도 했다. 그는 "(차씨가) 정확한 이유는 설명한 적이 없었다"며 "제 기억에는 보안상의 문제로 만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에 검찰이 '최씨 말대로 문화융성이나 좋은 의미로 만드는 재단이라면 재단 만드는 일로 증인 같은 실무진에게까지 차명폰을 만들라고 안 할 것 같다'고 하자, 김 부총장은 "당시 거기까지 생각 못했지만 분위기상 만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부총장은 최씨와 차씨에게 차명폰으로만 연락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차씨에게 전화로 말하면 최씨에게 보고되는 것으로 알았느냐'는 물음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김 부총장은 최씨가 미르재단을 통해 프랑스 요리학교 에콜페랑디 사업에 관여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사업과 관련해 최씨의 지시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통화했다고도 진술했다. 김 부총장은 최씨가 에콜페랑디 관련 회의를 주재하는 등 직접 사업을 챙겼다고 증언했다. 그는 '최씨가 증인에게 사업 진행과 관련해 정부 부처 협의가 필요하면 안 전 수석과 상의하라고 했느냐'는 검찰 측 질문에 "두세 차례 정도 들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이 '2015년 10월 24일부터 2016년 3월 4일까지 총 32차례 문자나 전화통화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증인 명의 전화로만 연락했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김 부총장은 최씨가 사업과 관련해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을 세 번 만난 사실도 증언했다. 그는 '63빌딩 중식당에서 최씨, 차은택 씨와 함께 최 전 총장을 만난 사실이 있느냐'는 검찰 측 물음에 "최순실씨와 함께 만난 것이 총 세차례"라고 말했다. 김 부총장은 검찰이 '최씨가 에콜페랑디 사업의 경우 학교 부지와 수강료, 커리큘럼에도 구체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이한선 전 미르재단 이사에게 이야기를 했고 그에 따라 이 전 이사가 별도로 보고를 하기도 했느냐'고 묻자 "그렇게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의 이날 증언은 최씨의 주장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앞서 최씨는 헌법재판소에서 에콜페랑디에 대해 들어보기만 했고 나중에 차은택 씨를 통해 알았다고 주장했다.

2017-01-31 16:13:56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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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IMF가 '함께 먹는 밥의 소중함' 가르쳐줬죠"

선뜻 '오피스텔'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주황색 건물을 가리키며 우힘찬(31·가명)씨가 말한다. "저기예요. 우리 가족이 다시 마련한 집이." 1997년 IMF 사태의 여파로 아버지 우직한(61·가명)씨는 나라 밖을 돌아다녔다. 식구들은 정든 집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희망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버텨온 아버지와 아들은 설 연휴 마지막 날 마주앉아 웃었다. "우리 회사가 국내 5위였죠. 하지만 은행이 망하는 상황인데 버틸 수가 있나요." 우씨는 4형제가 운영하던 가구회사에서 제품개발과 디자인을 맡았다. 근속 연수는 18년. 그의 마지막 명함에는 '이사'가 적혀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한 순간이었다. "낌새요? 대통령도 직전에야 알았다니 말 다했죠 뭐." 우씨 회사는 매출액 100억원에 직원 180명 규모였다. 정부기관과 조흥은행, 대학교 등 공공시설물 위주로 사업을 이어갔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 경기장의 스탠드, 방송 비품 등의 가구를 도맡아 만들었다. 금융 전산화 이전에는 매일 저녁 회사에 넘치는 현금을 입금하기 위해 은행 직원들이 포대를 가져와 쓸어 담아야 했다. 일이 끊이지 않았다. "조흥은행 200개 지점을 맡았는데, 5년 전 공사한 것을 부수고 새로 맞춰요. 그런데 일주일에 한 개 지점밖에 공사를 못해. 그러니 계속 하는 거예요(웃음)." 경주에 1만평짜리 수출용 공장을 짓기도 했다. "1995년이었죠. 다른 세 곳은 내수용이었고. 그런데 물건을 좀 팔만 하니까 IMF가 터져버린 겁니다." 은행이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어음 결제 구조는 회사에 덫이 됐다. "갑자기 현금으로 100억원 가까이 달라는 겁니다." 이럴 때 회사가 돈을 마련할 방법은 하나였다. "다 같이 망해서 너도 나도 공장을 팔려고 하니, 누가 사나요. 그러니 부도가 났죠." 18년 동안 일주일에 3일만 집에서 자며 달렸다. 그러다 일거리 미터기가 '0'을 가리켰다. 1998년 초. 우씨는 시동이 꺼진 몸을 이끌고 곤지암 근처에서 한 달을 머물렀다. "의사가 '죽기 싫으면 새소리 병원 가서 3년 사시라'는 거예요. 숲 같은 데서 쉬라는 거야 그냥." 미국계 회사가 그를 찾아온 건 이 무렵이었다. "부도 날 무렵에 그 회사에서 우리한테 6000만원을 선입금했죠. 그러니 우리한테 돈을 뜯기게 된 겁니다. 공장에 가 보니, 딱 그쪽이 주문한 수량만큼의 재료가 있어요. 그래서 한 달 내내 일했습니다. 그렇게 물건을 만들어 보내고 공장 전기를 내렸지." 돈을 날렸다고 생각했던 회사는 우씨에게 이직을 제안한다. 그는 카자흐스탄 지사에서 통역사를 둔 채 150명 직원과 일했다. "이제는 밥 얻어먹을 정도는 돼요. 러시아어가, 허허." 우씨는 이후 8년 동안 카자흐스탄과 우크라이나, 서유럽을 오가며 나무를 만졌다. 그러는 사이, 한국에 남은 아내와 두 아들은 경매로 넘어간 송파구 집을 등지고 경기도 광주로 살림을 옮겨야 했다. "빨간 딱지가 집안 곳곳에 붙는 모습을 봤어요. 서울에서만 20년을 넘게 살다 나오니까, 서울에 내 집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더라고요." 둘째 아들 우힘찬 씨는 성동구에 있는 9평짜리 오피스텔을 얻어 서울에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돌아봤다. "어머니와 경기도 광주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했어요. 저는 학업을 위해 서울에서 냉장고 같은 옥탑방에 살았죠. 그러다 어머니께서 일하시는 오피스텔에서 월세를 얻었어요. 온 식구가 열심히 돈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오피스텔 방 5개를 갖게 된 거죠." 현재 우씨 부부와 그의 형이 쓰는 방을 제외한 나머지 세 곳에선 월세가 나온다. 우힘찬 씨는 아내와 함께 독립해 살고 있다. 아버지 우씨는 "외환 위기로 해체된 가족이 많은데 우리는 그래도 각개전투로 살다가 다시 모여 고맙게 생각한다"며 "좋고 나쁜 시절 다 살고 보니, 외환위기 시절도 어찌 보면 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함께 어려움을 극복한 우씨 가족은 설 연휴에 처음으로 노래방을 찾았다. 아들은 아버지를 마주보며 웃었다. "제 나이 서른이 넘어서 가족이 다 같이 모여 뭔가를 새로 했다는 사실이 뜻 깊어요. 낡고 작은 오피스텔이지만, 지금이라도 하루하루 얼굴 보고 밥 먹으며 좋은 얘기, 싫은 얘기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한 생활이구나 생각하면서 지냈으면 좋겠어요."

2017-01-31 16:13:05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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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학재단, 1학기 푸른등대 기부장학생 350명 선발중

한국장학재단, 1학기 푸른등대 기부장학생 350명 선발중 한국장학재단(이사장 안양옥이은 저소득층 우수 대학생을 지원하기 위해 기업, 기관, 단체 등으로부터 모금한 기부금으로 맞춤형 '푸른등대 기부장학생'을 신규로 선발한다. 2017년 1학기에는 7개 기관(구찌코리아, 넥슨코리아, 대한LPG협회, 월곡주얼리산업진흥재단, 한국화웨이, 말남장학금, 한국투자공사)의 기부금으로 총 350명의 신규장학생을 선발한다. 대한LPG협회는 2012년부터 총 55억 원을 기부하여 택시기사 가정의 저소득층 성적우수 대학생 자녀를 지원하였으며 작년에 이어 264명을 신규로 지원한다. 월곡주얼리산업진흥재단에서는 2015년부터 2억 8000만 원을 기부하여 주얼리 관련 학과 전공 대학생을 지원하였으며 2017년에도 43명 신규로 지원한다. 한국화웨이는 2014년부터 2억 5000만 원을 기부하여 IT·컴퓨터·통신 등 공학계열 학과 전공 대학생을 지원하였다. 올해도 10명을 신규 지원한다. 특히 한국화웨이는 장학생들에게 중국 본사 방문 등 연수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미래 공학계열 인재 양성을 위해 재단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기로 협의했다. 푸른등대 기업기부장학금은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으며, 신청기간은 1월 31일(화)부터 2월 17일(금) 18시까지이고, 선발결과는 4월에 발표된다. 푸른등대 기부장학금과 관련하여 궁금한 사항은 고객상담센터로 문의하면 된다. 안양옥 이사장은 "정부 재원의 장학금 지원과 함께 민간 장학금 등을 융합하여, 미래를 밝히는 대학생들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종합 지원 체계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며 "민관이 한마음 되어 대학생의 꿈을 지원하고, 수혜를 받은 장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이 받은 혜택을 다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법정기부금 단체인 재단은 개인·기업의 기부금을 모금하여 청년들의 꿈을 지원하는 기부금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푸른등대 기부장학금은 교육지원을 통한 사회공헌이라는 기부자의 숭고한 뜻을 모아 기부처별 지원분야에 따라 저소득층 성적우수 대학생에게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한다. 기부를 원하는 법인이나 개인은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 또는 전화로 언제든 상담이 가능하다.

2017-01-31 14:34:00 송병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