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상인들 똘똘 뭉쳐 하루 2만명 찾는 명소로 만든 서울 망원시장을 가다
2013년 합정동 홈플러스와 싸우던 조직력, 시장 활성화에 '올인'
기획력등 총동원, 상인 교육·브랜드 마케팅·서비스 다양화 시도
하루 평균 방문객 2017년 7500명서 2018년엔 2만명으로 '훌쩍'
상암동등에 대형복합쇼핑몰 예고, 젠트리피케이션도 '첩첩산중'
전화를 걸면 대신 장을 봐 배달해주고, 외국인을 위한 캐리어 보관서비스에, 청소년들은 티머니 교통카드로 군것질을 할 수 있는 전통시장이 있다.
시장을 찾는 고객들이 믿고 살 수 있도록 원산지와 가격 표시까지 완벽하다. 전통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실행가능한 모든 것을 시도해 하루 평균 약 2만명에 달하는 고객들이 발걸음을 하고 있는 이곳은 서울 마포구에 있는 망원시장이다.
사람들이 모이면서 상권이 발달한 용산 경리단길 이름을 딴 '망리단길' 역시 망원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망리단길에 젊은이들이 찾아오고, 이들이 망원시장으로 발길을 옮겨 시장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모인 젊은이들이 주변 곳곳으로 확산되다보니 망리단길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다. 망원시장은 시장 자체가 관광상품이다."
자신도 망원시장 주변에서 20년 넘게 두부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한 망원시장상인회 김진철 회장의 말이다.
1970년대 초 자연스럽게 형성된 망원시장은 현재 노점 7곳을 포함한 점포 94곳에서 297명의 상인들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여느 전통시장과 다름없이 공산품 등 생필품을 파는 슈퍼, 과일가게, 야채가게, 생선가게, 반찬가게, 분식점 등이 눈에 띈다.
망원시장 상인들이 똘똘 뭉쳐 서울의 200여 곳 전통시장 중 '꽤 잘 나가는 시장'으로 탈바꿈시키기 시작한 것은 다름아닌 SSM(기업형 슈퍼마켓)과의 싸움에서 비롯됐다.
상인들은 2013년 초 당시 시장과 가까운 합정역 바로 옆에 홈플러스가 입점을 예고하면서 생존투쟁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 2만명 가량도 힘을 보탰다.
"오랜 줄다리기 끝에 홈플러스가 일부 품목을 팔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상생협약을 맺었다. 그때 망원시장은 경제민주화를 이뤄낸 첫 전통시장이라는 타이틀도 갖게 됐다. 홈플러스와 싸우면서 상인들이 의식화되고 단련됐다. (상생협약)이후엔 그 동력을 시장을 활성화시키는데 집중했다." 김진철 회장의 설명이다.
망원시장은 홈플러스로부터 지원받은 13억원을 활용, 건물을 구입해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다. 이 공간은 상인들의 친목을 다지고, 시장을 찾는 고객들이 쉬어가는 장소로 쓰고 있다. 1주일에 한 번씩은 아이들을 위한 좋은 먹거리 교육과 무료 식당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주방은 공유도 가능하다.
상인들이 모인 상인회와 '찰진기획단'으로 이름붙인 상인기획단은 대형 유통업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점포의 상품 진열을 개선하고, 눈에 쏙 들어오는 '망원시장' 브랜드도 만들어 바닥 안내표시, 쇼핑백, 포장지 등에 활용해 마케팅 효과도 높였다. 서울시로부터 도움을 받고, 상인들도 자체적으로 비용을 부담해 고객이 전화로 주문하면 쇼핑을 대신해 배달까지해주는 서비스도 시작했다. 배송은 마포구내면 어디나 가능하고 5만원 이상이면 배송료가 없다.
망원시장사업단 황재오 단장은 "상인들 스스로가 원산지표시를 하고 있었지만 이를 더욱 조직적으로 시행했고,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받기 위해 가격표시까지 확산했다"면서 "원산지표시와 가격표시는 현재 100%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망원시장은 신용카드 가맹률이 100%, 제로페이는 일부 노점 때문에 85%, 그리고 티머니 결제시스템까지 갖춰놔 현금 외에도 다양한 결제수단으로 장을 마음껏 볼 수 있다.
지난 24일 기자와 함께 망원시장을 찾은 조봉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사장은 "시장을 활성화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상인들의 노력과 깨어있는 생각"이라면서 "결국 전통시장의 성공요체는 상인들에게 달려있다"고 말했다.
접근성이 좋아 망원시장은 관광온 외국인들도 자주 찾는 명소가 됐다.
홍콩에서 왔다는 4명의 관광객이 시장안의 한 분식집에서 컵떡볶이를 먹으며 즐거워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들에게 "맛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맛있다'는 뜻의 중국어로 "하오츠(好吃), 하오츠"라며 활짝 웃었다.
망원시장은 외국인 여행자들이 좀더 편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캐리어 보관서비스도 하고 있다. 올해엔 맡긴 캐리어와 이들이 시장에서 산것들을 호텔이나 공항 등 원하는 장소로 배송하는 서비스도 시작해 볼 예정이다.
이런 노력으로 2017년에만해도 하루 평균 7500명 정도였던 고객수는 지난해엔 2만명까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 상인은 "주말이면 유모차가 다니기 힘들 정도로 손님들이 많다"며 "장사가 잘 되니 우리로선 매우 반길 일"이라고 귀뜸했다.
하지만 이렇게 잘 나가고 있는 망원시장도 고민거리가 많다.
바로 대형 유통 매장이 또다시 인근에 들어서기 위해 준비하고 있고, 장사가 잘 되니 몇몇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터무니없이 올리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망원시장 중앙엔 망원시장상인회 이름으로 '지역상권 파괴하는 축구장 32개 크기 상암 DMC 롯데복합쇼핑몰 강행 즉각 중단하라!!'고 쓴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김진철 회장은 "상암동엔 롯데가, 강건너 마곡동엔 신세계가 동양 최대의 쇼핑몰을 준비하고 있고, 멀지 않은 고양시에 들어선 스타필드까지 상권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롯데에겐 입점 매장수를 줄여 지역 주민들을 위한 건강과 문화공간으로 꾸며달라며 상상생방안을 제시한 상태지만 오히려 행정소송을 하고 서울시를 압박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기획부동산까지 가세하며 가파르게 오르는 임대료도 골칫거리다.
상인회가 임대료대책위원회를 최근 새로 꾸려 건물주들을 설득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태다.
김 회장은 "'상인들이 살아남아야 건물도 살아난다'는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건물주들에게 전달하려고 한다"면서 "임대료가 급등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망원시장 내에 있는 40여 개의 건물 중 30곳 가량은 건물주가 따로 있다. 건물의 75% 정도는 입주 상인들이 매달 수 백만원씩의 임대료를 내며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며 현대화 등의 명목으로 매년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결국 배를 불리는 것은 영세 상인들이 아니라 건물주라는 지적이 '잘 나가는' 망원시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