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가 유출된다] ⑤원청기업 따라서…늘어나는 인건비에… 中企도 '엑소더스'
근로시간 단축 등 인력 관리 어렵고, 내수 침체 장기화 등에 해외로 '눈'
中, 지자체 차원에서 韓 기업 적극 유치전… 동남아 여전히 진출 매력
획기적인 리쇼어링 정책, 국내 기업 신규 투자 위한 규제 타파 절실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2층 소회의실. 공간을 꽉 채운 60여 명의 사람들이 발표자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받아적고 있다.
중국 산동성에 있는 한중 옌타이 산업단지 관리위원회와 옌타이 개발구 관리위원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산업단지 투자정책 설명회를 듣기 위해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다.
한국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살려 옌타이시가 한국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 나섰다.
기존 옌타이 산업단지는 중국의 14개 국가급 경제기술개발구 중 하나로 이 가운데 7위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1984년부터 조성해 온 옌타이 산업단지에는 현재 한국기업만 500곳 가량이 공장, 사무소 등의 형태로 진출해 있고 이들이 현지에 투자한 금액만 24억 달러, 우리 돈으론 2조8000억원이 훌쩍 넘는다.
LG디스플레이, 현대자동차 연구개발센터, 두산공정기계, 대우조선해양 등이 대표적으로 진출한 기업들이다. 특히 LG디스플레이의 경우 여기에만 4억7400만 달러(약 5500억원)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기업들 추가 유치를 위해 이날 설명에 나선 옌타이 상무국 황문해 국장은 "수 많은 한국기업들이 (옌타이에서)이미 제조업을 영위하고 있고, 중국에서 생산하는 한국 상품의 집산지가 옌타이"라면서 "육·해·공을 넘나드는 편리한 교통으로 물류에 강점을 갖고 있고 입주기업들을 위한 지원책도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분 정도 이어진 프리젠테이션 마지막 장에는 '손잡고 꿈과 미래 창조합시다'란 글귀로 참가 기업들에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엿보였다.
옌타이의 경우 이미 수 많은 한국기업들이 진출해 제조 본거지로 삼고 있지만 이번 한중 산업단지를 통해 친환경자동차, 인공지능(AI), 신소재, 그린에너지 등 미래 분야의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국내에 터를 잡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최저임금 급등과 주52시간제 시행으로 인력 운영에 갈수록 애를 먹고, 지속적인 내수 침체까지 겹치면서 판로가 고민인 터여서 자꾸 나라밖을 쳐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날 투자정책 설명회도 이런 한국기업들이 현실을 간파하고 중국 지자체가 앞장서 마련했다.
이에 대해 25일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지난 17일 설명회는)중국측이 먼저 제안해 진행하게 됐다"면서 "하지만 기업들이 자꾸 해외로 나가면 결국은 국내 일자리가 사라지기 때문에 (자리를 주선하는 것이)조심스럽기는 하다. 다만 중소기업들에게 여러 정보를 전달해 개별 기업들의 판단에 맡기자는 차원에서 열게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업들 추가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중국은 앞으로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겐 유행이 지난 곳이다. 인건비가 가파르게 오르는 등 진출 매리트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포스트 차이나'로 불리는 베트남이 가장 많은 한국기업들이 진출한 나라 반열에 올라선지 오래고, 미얀마 등 주변국도 대안 진출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대통령 직속으로 신남방정책위원회까지 꾸려 이들 나라와 필리핀,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인도 등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어 국내를 떠난 중소기업들이 이들 지역에 추가 진출할 가능성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
앞서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올해 1·4분기(1~3월) '해외직접투자 동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사이 국내 제조업체가 해외에 투자한 금액은 57억9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또 1분기 전체 해외투자액 역시 141억1000만 달러로 관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1980년 4분기 이후 최대 규모로 집계됐다.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등 너나 할 것 없이 해외로, 해외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개성공단이 강제 폐쇄되며 대체 공장을 베트남 호치민 인근에 마련, 현재 운영하고 있는 한 중소기업인은 "향후 개성공단의 문이 열려 재입주를 한다고 하더라도 위험 분산차원에서 해외 공장을 상당기간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그렇다고 기업들이 해외에 한 번 자리잡은 공장을 국내로 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납품하는 하청기업들은 이들의 해외 현지 공장을 따라서, 또 나머지 기업들 역시 투자나 인력 운용에 보다 자유롭고 비용이 적게 되는 곳을 찾아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하는 정책적 의지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기업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다.
중소기업연구원이 이날 내놓은 '7월 중소기업 동향' 자료에 따르면 내년 1월부터 50인 이상~300인 미만 기업에도 적용될 예정인 주 52시간 근무제로 인해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이 월평균 33만원 줄고, 중소기업 부담은 2조9000억원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투자나 신기술 개발 등을 막는 규제는 쉽게 풀리지 않고, 빠르게 변화는 국내 노동정책과 환경으로 인건비는 크게 오르고 생산 효율성은 떨어지는 현실에서 생존을 위해 해외로 나가는 현상이 갈수록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는 회의적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
중소기업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지금은 많은 기업들이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동남아도 언제 매력이 떨어질 지 모르는 상황이다. 일본의 경제 보복,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 등을 지켜보면서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반드시 염두해야 할 것은 '자립'이다. 글로벌 시장 다변화에 따라 기업들의 해외 진출은 불가피하겠지만 국내 산업이 공동화되고, 기업이 없어 일자리를 찾지 못할 정도의 악순환 고리를 이참에 반드시 끊어야한다. 해외에 나가 있는 기업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생산활동을 할 수 있는 근본적이고 획기적 조치가 필요하고, 국내에 있는 기업들이 고용을 늘리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범국가적 대전략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