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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최치선의 세상만사] 무형문화재 지정만하고 지원은 뒷전

[최치선의 세상만사] 무형문화재 지정만하고 지원은 뒷전 "문화재로 지정만 해놓고 관리를 안 해요. 지자체에서도 중앙정부에서도 장인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현실에서 판매가 이뤄지지 않으면 생계가 막연해지는데 이 부분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것이죠. 평생을 바쳐 전통을 계승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생계걱정은 덜어줘야 하는 게 맞잖아요." 지난달 휴가 중 고향 전주에서 아는 분의 소개로 중요무형문화재 선자장 128호인 김동식 씨를 만났다. 그는 "정부로부터 지정된 장인들이 작업에 몰두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동식 선자장은 또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하나 둘 돈 되는 일을 찾아 떠나고 남아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무형문화재의 지원에 구멍이 뚫린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들이 전통문화를 전수하고 복원하는 작업에 정부의 충분한 지원이 필요한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기때문이다. 특히 중요무형문화재보다 지방무형문화재에 대한 지원은 더욱 열악하다. 예를 들어 전북의 경우 '2015 무형문화재 전수활동비는 무형문화재 개인이 월 80만원, 단체는 월 60만원 지급된다. 또 1년에 한번 지급하는 공개행사비도 개인 250만원과 단체 340만원에 불과하다. 전수교육조교에 대한 지원은 아예 빠졌다. 전수조교 지원이 없는 곳은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전북이 유일하다. 다른 지역 전수조교는 25만원에서 60만원의 활동비를 지원받고 있다. 이렇게 전북 외에도 전국의 지자체에서 지정된 무형문화재들은 지원금만으로 생활과 작업을 병행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의 경우 일반은 월 131만원과 취약계층은 월 171만원으로 분류해 지원을 하고 있다. 무형문화재는 1962년1월10일 법률 제961호에 의거해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지정되기 시작했다. 국가에서 조사·지정한 것을 '중요무형문화재'라 하고, 시·도에서 조사·지정한 것을 '시·도 무형문화재'라 한다. 두 분야 모두는 '문화재보호법'에 근거한 문화재로 현재 문화재청에 등록된 중요무형문화재는 개인 68종목과 단체 64종목으로 총 132종목에서 171명의 보유자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 외에 명예보유자가 30명이고 보유자한테서 교육을 받고 있는 전수교육자는 295명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 제도는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세계인들의 문화유산으로 크게 각광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의 문화재는 곧 세계 속의 문화재로 그 위상이 매우 높아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제도를 운영하고 활용하는 데 앞서 김동식 선자장의 지적처럼 여러 가지 불합리한 점이 많아 개선이 시급하다. 중요무형문화재와 지역 시도 무형문화재의 지원격차가 커서 이에 대한 현실적 지원책이 뒤따르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격차는 금전적 지원뿐 아니라 행정적 지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증요무형문화재엔 매년 의료 급여, 학점 인정, 장례·입원 보조금, 특별지원금, 공개 행사 지원, 전승자 작품전 지원 등 무려 15∼18가지 각종 혜택이 부여된다. 반면 시·도 지방문화재는 한두 가지 정도의 제한적 지원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무형문화재들과 관계자들은 정부가 하루빨리 이러한 지원격차를 해소하지 않고 지금처럼 장인, 명장, 무형문화재관리에 소홀하면 결국 우리의 소중한 전통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번 사라진 전통문화는 복원이 불가능하다. 정부는 수대에 걸쳐 이어져 온 장인들의 노하우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대가 끊어지면 되살릴 수 없음을 간과하면 안되겠다.

2015-08-23 17:30:03 최치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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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수의 차이야기] 공공기관 정책용역 선정기준 개선해야

올바른 방향의 제도와 법적 기준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후진적 제도를 개선하는 작업은 전체적인 조화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밑바탕이 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잘못된 제도와 법적 기준의 피해자는 국민이 되기에 더욱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정책방향 도출까지는 기초 정책용역 기관 선정과 여러 자문회의, 정책 세미나와 공청회 등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문제점을 개선하는 한편 해당 정부의 확인과 법제처 등의 각종 검증을 통해 최종적으로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이행하기에 앞서 유예기간을 둬 사회적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을 두는 이유다. 그래서 더욱 객관성과 보편타당성을 지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든다고 할 수 있다. 한번 잘못된 악법은 개선하기도 어렵지만 그 사이에 국민이 받는 후유증은 더 크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과정이 바로 초기 정책용역에 대한 기관 선정일 것이다. 초기 용역기관이 어디가 어떻게 선정되느냐에 따라 최종 법적 기준이 다르게 설정되기 때문이다. 기관의 응모에는 각종 조건 등 주변 상황에 따라 기업이 될 수도 있고 협회 등 공공성이 강한 기관이 될 수도 있다. 규모가 크면 컨소시엄을 구성해 시너지 효과를 생각하기도 한다. 정부 등 시행기관은 되도록 객관적으로 선정하기 위한 각종 기준을 만든다. 선정에 해당 기관이 개입할 수 없는 제도적 뒷받침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용역을 선정하는 방법에는 큰 문제점이 있다. 객관성을 기한다고 전문가 풀을 활용하는데 기밀을 요한다고 정작 하루나 이틀 전에 통보해 실질적인 전문가 참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능력 있는 전문가는 이미 일정이 잡혀 참석이 불가능해, 비전문가 수준의 심사위원이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결론은 이상하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응모업체 중 기준에도 못 미치는 업체가 선정, 첫 단추부터 잘못돼 그릇된 최종 결론에 도달하는 사례가 즐비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법은 악법이 돼 모든 국민이 부담하게 된다. 해당 정책시행으로 중소기업이 연달아 도산하기도 한다. 로비를 막기 위해 하루 이틀 전에 통보한다고 하지만 응모업체에서 심사위원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로비 역시 업체 선정에 압력이 되기도 한다. 아는 사람에게 점수를 더 주는 형국이 된다는 것이다. 금액이 큰 용역의 경우는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영역임에도 불구하고 편법으로 만든 대기업 대주주의 중소기업을 컨소시엄에 구성하면서 힘이 작용한다. 심지어 영역이 선정되면 용역비 중 수십%의 비율로 나누기로 한다. 전문 서비스 업체에 의뢰해 화려한 발표자료 등을 제작해 대신 시행해 주기도 한다. 주변에 다양한 홍보 관련 업체들이 존재하고 있다. 대학생 리포트를 다른 사람이 대신 아르바이트해 주고 비용을 받는 경우와 같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해당 기관과 무관하게 객관성을 기한다고 해 정보를 전혀 공유하지 못하게 하는 점이다. 이는 정책용역의 취지나 방향을 심사위원들이 가늠하지 못하고 최종 선정하는 경우다. 비전문가들이 모여 내용 취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적당히 선정한다는 뜻이다. 객관성을 기한다고 해놓고 도리어 악화된 결과가 도출된다고 할 수 있다. 발표시간도 심각하다. 그 중요한 정책이나 법적 기준을 만들면서 발표시간이 10분 내외인 경우가 많다. 질문 역시 관련 없는 한두 개로 끝나는 사례가 많다. 전문 심사위원이라 하더라도 이 짧은 시간에 응모 업체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수백억 원이나 하는 대규모 정책용역도 길어야 30분의 발표와 20분의 질문이 있을 뿐이다. 얼마 전에도 중요한 용역 기관을 선정하면서 용역 자체를 건의하고 기준을 만들며, 모든 과정을 1년여에 걸쳐 수립한 기관이 떨어졌다. 며칠 전에 급하게 응모를 한 기관이 선정됐다. 낙마한 기관의 관련 경력은 선정 기관과 비교과 되지 않을 정도로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일이다. 단순히 숟가락을 얹은 기관이 해당 기관의 의도였는지, 심사위원의 선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단 10여분의 발표로 선정됐다. 나중 결론에 대한 후유증은 역시 국민의 몫이다. 해당 기관은 잘못된 절차가 아닌 만큼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원래 근본부터 잘못된 시스템인 것을 누구를 탓하겠는가? 필자는 자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해당 기관의 의도나 목적 등을 별도로 듣고 꼭 참조를 한다. 필요하면 다른 심사의원에게 설명하고 의미를 전달한다. 조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발표 시간 등을 조금이라도 늘려 응모 기업의 특징이나 장점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자료와 미사여구를 항상 고민한다. 그렇게 해도 쉽지 않다. 그러면 정부는 무엇을 고민하고 개선해야 할까? 우선 실질적으로 우수한 전문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하루 이틀 전 통보해 기밀을 기한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각서를 작성하는 만큼 미리 통보해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심사위원장이 해당 기관의 의도와 목표, 중요한 요건 등을 들어 참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한다. 충분한 발표시간 확보도 꼭 필요한 부분이다. 충분한 질문으로 미흡하거나 빠진 것은 없는지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필요하면 1회성 심사가 아니라 해당 기관 심사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실수로 이상한 기업이 선정되지 않게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후 진행절차도 확실하게 검증해야 한다. 홍보기업이 관여해 나눠먹기를 할 경우 박탈 등 각종 제제를 기하는 일도 중요한 수단일 것이다. 몸에 밴 관행이 심사과정에 스며들면서 전체를 물들게 한다. 확인과 확인을 거듭하여야 할 것이다. 잘못된 기관 선정으로 추후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게 될지 걱정부터 앞선다. 언급하기도 힘든 기업이나 기관이 선정돼 그 많은 국민의 세금을 용역비로 낭비한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흐지부지 끝나는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 국민의 혈세 낭비를 막으려면 제대로 된 용역기관 선정부터 시작해야 된다. 아무리 객관성을 기해도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현명하고 확인 가능한 제도가 정착됐으면 한다. 시작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2015-08-23 14:47:31 이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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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의 명화 에세이] 몽파르나스의 어벤저스를 그리다-마레브나

누구에게나 젊은 날, 가장 기억나는 동네가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그곳이 홍대입구다. 미대입시생 시절 경기도 일산에 살던 나는 재수생활을 하면서 홍대 앞에 있는 미술학원에 다녔고, 재수생들이 모여 있는 공부학원 역시 홍대 앞에 있었다. 지금은 미대입시학원이 많이 사라졌지만 2000년대 초반 홍대 앞은 학교의 정문을 등지고 반으로 잘라 놀이터가 있는 왼쪽은 대학생들의 거리였고, 오른쪽은 미대입시생들의 거리였다. 밤이면 온갖 밴드들의 연주소리가 들리고, 물감 묻은 앞치마를 입은 미대입시생들이 분주히 저녁밥을 사먹는 화려함과 치열함이 공존하던 곳. 홍대 앞은 십대 후반인 나에게는 늘 치열했던 동네였고 대학생이 되고나서는 모든 미대생들은 한 번씩 참가한다는 예술시장 '프리마켓'의 일원으로써 그날 번 돈은 그날 다 술값으로 탕진했던 내 기준에는 낭만적인 동네였다. 100년 전 프랑스의 파리에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예술의 낭만을 꿈꾸던 사람들이 모이던 곳이 있었다(물론 그들은 나보다 더 자유로운 보헤미안이었던 것 같지만). 바로 몽파르나스(Montparnasse)다. 학생들과 함께 한달 내내 주말마다 예술의 전당 을 관람하면서 나는 매일 몽파르나스에 놀러가는 기분이었다. 1900년대 초 파리에서 가장 예술적인 동네를 꼽자면 몽마르트와 몽파르나스일 것이다. 파리에서 가장 가난했던 동네를 뽑는다면 그것 역시 몽마르트와 몽파르나스일 것이다. 하지만 두 곳 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을지언정 정신은 풍요로운 동네였다. 센 강을 중심으로 마주하는 이 두 곳은 늘 예술가들의 낭만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예술의 도시 파리로 집결한 많은 예술가들은 집단으로 몽마르트와 몽파르나스에 거주했다. 모딜리아니 역시 처음엔 몽마르트에 있다가 몽파르나스로 이동했다. 당시 몽파르나스에는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영어가 공존했다. 스페인의 피카소, 러시아의 샤갈, 멕시코의 디에고 리베라, 페르낭 레제, 앙리 루소, 마티스등 다양한 나라의 많은 화가들이 몽파르나스에 모였다. 몽파르나스는 제2의 몽마르트였다. 몽마르트에 '세탁선(Bateau-Lavoir)'이라는 까페가 있었다면 몽파르나스에는 '라 로통드((La Rotonde)' 까페가 있었다. 고맙게도 라 로통드 주인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커피 한 잔만 시켜놓고 하루 종일 있어도 눈치를 주지 않았다고 하니 이 얼마나 천국 같은 곳인가. "요즘은 파리에 끌린다. 이곳 몽파르나스는 15년 전의 몽마르트처럼 시인과 화가들에게 있어 저들의 소박한 삶을 기댈 은신처가 되었다." 당시 몽파르나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말이다. 러시아의 여성 화가이자 최초의 여성 입체파 화가인 마레브나(Marevna/Marie Vorobieff·1892-1984)는 고맙게도 그 때의 추억들을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감각적인 선으로 표현한 그녀의 크로키 속에서 우리는 모딜리아니의 모습과 그녀의 연인이었던 디에고 리베라, 뱅스타일의 헤어를 고수했던 모이스 키슬링 등을 찾을 수 있다(마레브나는 디에고 리베라가 프리다 칼로를 만나기 전 파리에서 그를 만나 연인이 되어 딸 마리카 리베라를 낳고, 훗날 그들의 딸 마리카 리베라는 배우가 된다.) 그들에게 몽파르나스는 어떤 공간이었을까? 그녀의 그림을 보며 눈을 감으면 우리는 100년 전 몽파르나스로 이동할 수 있다. 그곳에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예술가들이 있었다. 몽파르나스는 그들에게 영감의 장소, 휴식의 장소, 열정의 장소, 사랑의 장소였다. 마레브나는 자신과 젊은 날을 함께했던 동료 예술가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난 후인 1960년대에 위의 작품을 완성했다. 그림의 중앙에 몽파르나스의 전설이었던 훈남 화가 모딜리아니가 상체를 드러낸 채 늠름하게 서있고, 그의 오른쪽 위에 그의 영원한 반려자인 잔느가 있다. 잔느의 옆에는 마법사 모자를 쓰고 자신이 쓴 시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막스 자콥, 그리고 그 아래로 모딜라니가 세상을 떠날 때 함께 했고 모딜리아니와 공동작품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폴란드 출신 화가 모이스 키슬링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 가장 상단에는 시인이자 화상이었던 즈보로프스키의의 모습이 보인다. 그림을 그린 마레브나는 화면의 제일 왼쪽 하단에 딸 마리카와 함께 있다. 그 위에 디에고 리베라와 우크라이나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일리야 에렌부르크, 갈색 상의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프랑스 화가 카임 수틴이 보인다. 화려했던 젊은 날의 인생을 함께 나눈 그들의 모습은 마치 '몽파르나스의 어벤저스'같다. 각기 다른 분야였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과 개성만큼은 넘쳐흐르던 그들에게 그녀의 그림은 말한다. "이제는 전설이 된 예술가 친구들과 함께였던 그날의 몽파르나스가 내 인생 최고의 장소였노라고." 그리고 나는 그녀의 그림 덕분에 치열했고 낭만적이었던 나만의 소중한 동네를 오랜만에 기억해낸다. 이소영(소통하는 그림연구소-빅피쉬 대표/bbigsso@naver.com/출근길 명화 한 점, 엄마로 다시 태어나는 시간 저자)

2015-08-20 16:30:3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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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형의 딴생각] 한일 정상, 역사수정에 박차를 가하다

[송병형의 딴생각] 한일 정상, 역사수정에 박차를 가하다 [메트로신문 송병형기자] 한국과 일본의 양국 수뇌부에서 역사수정주의가 판치고 있다. 2015년 아시아식민 110년이 아시아해방 110주년이 되고, 건국 96주년이 건국 67주년이 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4일 8·15담화에서 한반도 침략전쟁인 러일전쟁을 식민지 해방전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러일전쟁은 식민지 지배 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줬다"고 말했다. 일본은 청일전쟁에 승리한 뒤 전쟁배상금을 쏟아부어 10년간 러시아와의 일전을 준비했다. 총과 대포를 만들기 위해 제철소를 지었고, 국민을 전쟁에 효과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각종 제도를 정비했다. 외교적으로는 1902년 영일동맹으로 당대 최강대국 영국으로부터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1905년 7월 러일전쟁 종전을 앞두고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한반도 식민지배 체제에 미국을 합류시켰다. 영미는 열등한 아시아국가에 불과했던 일본을 새로운 강자로 추켜세웠고, 이에 힘입어 일본은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조약으로 승전의 달콤한 열매를 따먹었다. 아베 담화로 인해 일본의 전쟁 준비는 산업화와 근대화로, 포츠머스조약은 아시아해방의 승전비가 됐다. 현재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머지않아 9월 5일은 일본인들에게 아시아해방 기념일로 다가오리라. 다만 아시아해방 115주년으로 시작할지, 120주년으로 시작할지 알 수 없을 뿐이다. 설마이긴 하지만 111주년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혹자는 지나친 비약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이땅에서 목격한 일이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8·15경축사에서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집권 첫해인 2008년 8·15경축사를 건국절 찬양으로 도배한 지 꼭 7년만의 일이다. 상하이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3일 대한민국 건국을 선포했고, 절반의 땅에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대한민국 건국으로 당시 왕정 복고를 바라던 복벽주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민주공화정의 역사가 열렸다. 29년 뒤 단독정부 수립은 민주공화정 앞에 '자유'를 더했다. '건국 67주년'이란 평가는 '자유'에만 집착하다 몸통을 잘라먹는 격이다. 절름발이 행세를 자처하는 꼴이다. 박 대통령은 2013년 집권 첫해 "오늘은 68주년 광복절이자 대한민국 정부수립 65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했고, 다음 해에도 "69주년 광복절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66주년을 맞이하여"라고 말했다. '건국 67주년'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모를 리가 없다. 아베 총리와 박 대통령은 아직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다. 과거사 때문이다. 역사수정주의에 물든 양국 정상이 역사전쟁을 벌이며 얼굴조차 맞대지 않는 모습은 한 마디로 아이러니다.

2015-08-20 14:05:08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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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의 본초 테라피] 휴가 후 지친 피부 되살리기

뜨거운 여름 더위를 피해 쉴 수 있는 시간이 휴가이지만 정작 휴가를 보내고 오면 더 지치게 된다. 특히 야외에서 장시간 레포츠를 즐기거나 장거리 여행을 다니다 보면 낮 시간에 모발이나 피부가 그대로 자외선에 노출되기 쉽다. 꼼꼼하게 자외선 차단제를 발랐다고 해도 높은 온도 때문에 땀과 피지가 뒤엉키면서 피부나 모발이 손상 받기 쉽다. 휴가철에 손상된 피부를 그대로 두면 피부 속 수분이 바짝 마른 상태에서 노화가 가속화될 수 있다. 이럴 때는 수분 공급에 좋은 당귀를 달여낸 물에 세안을 해주거나 당귀차를 자주 마시면 도움이 된다. 당귀는 혈액의 생성과 혈액순환의 촉진에 효과가 있다. 그래서 피부 대사를 좋게 만들어주며 피부 재생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휴가로 지치고 손상된 피부를 빨리 회복시켜주는 데 좋다. 햇볕에 붉게 달아오르고 손상된 피부에는 차가운 성질의 오이도 도움이 된다. 오이는 수분 함량이 90% 이상이기 때문에 피부에 수분을 공급하는데 효과적이며, 달아오른 피부를 진정시켜줄 수 있다. 비타민 B와 C, 엽산, 마그네슘, 철분 같은 미네랄도 들어 있어서 피부 대사를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데도 좋다. 휴가 후에는 모발도 수분을 잃어 푸석푸석해지기 쉽다. 자외선에 그대로 노출된 모발은 케라틴 성분이 손상되어 툭툭 끊어지거나 탈모가 가속화될 수도 있다. 모발은 신장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검은콩을 많이 먹거나 검은콩 물에 머리를 감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검은콩을 삶아낸 물은 세정력도 갖고 있어서 두피나 모발에 쌓이는 노폐물을 말끔하게 제거하는 데도 효과가 있으며, 수분 및 영양 공급을 원활하게 만들어준다. 휴가 후에는 피로가 많이 쌓이면서 기혈의 순환이 나빠지고, 이는 피부나 모발에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혈색도 나빠지고 피부가 거칠어지며 탄력도 떨어진다. 귀와 목 등에 림프절이 모여 있는데, 이 곳을 집중적으로 마사지를 해주면 신진대사가 좋아지면서 휴가로 인한 피로도 풀 수 있고, 피부의 탄력을 되찾는 데도 도움이 된다. 김소형 한의학 박사 (bonchotherapy.com)

2015-08-20 11:19:22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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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의 본초 테라피] 열대야, 숙면에 좋은 음식

폭염이 계속되면 낮에는 더위에 지치고 밤에는 열대야로 잠을 이루지 못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 쉽다. 숙면을 이루기 좋은 실내 온도는 18~20℃ 정도인데, 열대야로 밤 기온이 25℃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체온을 낮추기 위해 온도조절 중추가 계속 자극을 받고 활동하기 때문에 쉽게 잠들기 어려워진다. 열대야로 잠을 못 이룰 때는 실내 온도를 쾌적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자는 동안 계속 냉방기기를 틀어놓는 것은 건강에 해롭지만 자기 전에 방 안 온도를 적정 수준으로 떨어뜨려 놓으면 수월하게 잠을 잘 수 있다. 잠들기 전에 더위를 식히려고 차가운 물에 샤워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샤워 후 오히려 체온이 더 오를 수 있으므로 미지근한 물로 샤워하는 것이 좋다. 차가운 맥주도 마찬가지로 잠깐은 시원함을 느낄 수는 있어도 숙면을 방해하기 때문에 삼가야 한다. 열대야로 잠들기 힘들다면 솔잎차를 마시는 것이 도움이 된다. 솔잎에는 비타민 C, 플라보노이드 같은 항산화 성분들이 풍부하기 때문에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데 좋다. 또한 간의 기능을 돕기 때문에 체내 독소 및 노폐물 배출을 원활히 만들어준다. 따라서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거나 피로가 많이 쌓여 잠이 잘 오지 않을 때 도움이 된다. 상추도 숙면에 효과적이다. 특히 수분이 풍부하고 찬 성질의 상추는 몸에 쌓인 열을 내려주는 데 좋다. 상추의 락투카리움 성분은 예민하고 날카로운 신경을 편안하게 진정시켜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심리적인 스트레스나 피로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도움이 된다. 트립토판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도 숙면에 도움이 된다. 트립토판은 체내에서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세로토닌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따라서 트립토판이 풍부한 우유, 닭고기, 견과류 등을 섭취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 국화차도 좋다. 국화는 심장에 쌓인 열을 내려주며 더운 열기가 위로 치솟아 머리가 무겁고 두통이 생겼을 때도 도움이 된다. 김소형 한의학 박사 (bonchotherapy.com)

2015-08-20 11:13:1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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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발, 피로와 냄새 잡는 본초

더위와 피로에 시달리다 보면 하루 일과가 끝나는 저녁 시간에는 만사가 귀찮고 무기력한 상태가 된다. 이럴 때 술 한 잔으로 피로를 푸는 직장인들도 많지만 술은 잠깐의 즐거움은 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건강을 해치고 피로를 가중시킨다. 대신 일찍 퇴근해 15분간의 족욕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발은 제 2의 심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한데 혈관과 신경이 발에 집중되어 있으며 뇌를 비롯해 오장육부의 건강이 모두 발 건강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족욕은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며, 혈액순환을 돕고 오장육부의 기능을 활성화하는 데 좋은 건강법이다.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는 것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다양한 본초를 활용하면 족욕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하체와 발에 피로가 많이 쌓이는 사람들은 소금을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소금에 풍부한 미네랄성분들이 혈액순환을 촉진해서 발의 피로를 풀어주는 데 좋다. 소금이 살균 및 해독 작용을 하기 때문에 피부 속 노폐물을 말끔하게 제거해주며 묵은 각질 제거에도 도움이 된다. 생강을 우려낸 물에 족욕을 하게 되면 발 냄새를 잡는 데 좋다. 생강이 살균 및 항균 작용을 하기 때문에 발에 땀이 많이 나서 축축해지는 사람들이나 발 냄새 때문에 대인관계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라면 생강을 우려낸 물로 자주 족욕을 해주면 도움이 된다. 여름철 냉방기기 때문에 몸 속 냉기가 가중되어 손발이 차고 시린 경우에도 생강이 좋다. 더운 성질의 생강이 몸을 따뜻하게 해주며 신진대사를 촉진시켜주기 때문에 생강을 우려내 족욕을 하거나 생강차를 자주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 녹차 역시 살균 및 수렴 작용을 하기 때문에 땀이 많이 나서 발이 늘 축축하고 무좀이나 발 냄새가 심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지나친 땀을 줄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습기 때문에 늘어나는 곰팡이나 세균을 잡아주는 데도 좋다. 노폐물이나 각질이 쌓여 지저분해진 발을 청결하게 만드는 데도 효과적이다. 녹차 가루를 사용하거나 녹차 티백을 우려낸 물을 사용해서 족욕을 해주면 된다. 김소형 한의학 박사 (bonchotherapy.com)

2015-08-20 10:55:36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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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월마트의 교훈

박찬희 한국수력원자력 홍보 자문 최근 언론 속에 비친 롯데그룹 사태를 지켜 보면서 한때 내가 몸담았던 월마트가 생각났다. 특히 월마트의 창업주 샘월튼(1918~1992) 회장은 롯데 그룹의 신격호 회장(1921~) 못지 않은 카리스마와 비전으로 온갖 역경 속에서 미 중서부 아칸소주의 작은 소매점 체인을 미국 최대의 유통 업체로 키워냈다. 월마트 역시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면서 많은 성장통과 외부 도전에 직면했다. 월마트를 흔들리지 않게 한것은 개인존중과 최상추구, 고객서비스로 요약되는 3 대 기업 가치와 독특한 기업 문화였다. 월마트 코리아 근무 당시 글로벌 CEO 리 스캇은 "우리는 언제나 예외로 인해 판단 받는다"며, 회사가 커질수록 작게 생각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라고 전세계 직원들에게 윤리와 투명 경영을 강조했던 것이 생각난다. 리스캇은 샘월튼 회장 생전의 혹독한 후계자 양성 과정을 거친 사람이다. 월마트 협력사 직원이었던 그는 입사후 패기와 열정으로 경영진과 사사건건 충돌하다 신뢰를 쌓고 인정을 받기에 이른다. 수많은 월마트 직원들의 희망이자 롤 모델이었던 그는 2000년 CEO 취임후 월마트를 2002년 포춘지 500대 기업 매출액 1위 기업으로 성장시킨데 이어 2003년에는 포춘지 선정 가장 존경받는 기업 1위로 만들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월마트 성장의 비결을 독특한 기업 문화와 장기적 안목의 후계자 승계 작업에서 찾는다. 일찌감치 후계작업을 시작했던 그의 원칙은 기업 문화와 전통은 혈육이 승계하되 성장과 혁신은 내부 검증을 거친 전문 경영인에게 맡긴다는 것이었다. 그가 암으로 사망하자 월마트에서 잔뼈가 굵은 장남 랍 월튼에 지체없이 회장직이 승계됐다. 20여 년간 성공적으로 회장직을 수행한 그는 올해 6월 월마트 주주 총회에서 자신의 사위 그렉 페너에게 3대 회장직을 물려준다. 그 역시 월마트에서 15년간 근무한 사람이다. 월마트 창업주 일가의 지분은 1970년 기업 공개 당시 61%에서 40여 년이 지난 현재도 50%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월마트의 고유한 기업 문화를 지키며 일관된 성장 정책을 가능케 하겠다는 월튼가의 의지를 보여준다. 기업을 세운 것은 창업주지만 이를 토대로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은 꿈과 열정, 그리고 진정성을 공유한 직원들이라 생각한다. 나는 월마트에서 양질의 다국적 기업 문화를 보고 배웠다. 롯데 역시 세계 시장에서 특유의 기업 문화와 탁월성으로 승부해야 할 것이다. 위기는 또다른 기회이다. 그리고 그 기회는 오늘의 롯데를 만들어낸 내부 역량에 있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했고 자랑스러웠던 기업 월마트 코리아는 한국을 떠났지만 이들이 내게 남긴 교훈은 지금, 이 시점에서 더욱 유효하다.

2015-08-19 22:53:37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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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헌변호사의 BizLaw] 미국소송과 디스커버리(discovery)

미국소송과 디스커버리(discovery) 나의 경험상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인 것 같다. 사실관계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당사자들이 승소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에 재판이 쉽게 종결되지 않는다. 승패에 대한 전망도 쉽지 않다. 반면에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면 당사자는 승패에 대한 전망을 보다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정확한 평가는 당사자가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을 방지해 준다. 그래서 합의 등으로 사건이 종결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한국에서 소송사건을 처리해 오면서 내가 늘 아쉽게 느끼는 것이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증인신문을 해 보면 시간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증인에게 많은 질문을 하기가 여의치 않다. 그래서 증인으로부터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증거서류도 마찬가지다. 증거서류를 스스로 확보해 놓지 않으면 소송과정에서 상대방으로부터 중요 자료를 제공받는 것이 쉽지 않다. 상대방에게 증거서류를 제출해 달라고 해도 '영업비밀이다', '서류가 없다'는 등 이유로 서류를 잘 제출하지 않는다. 한편 미국소송의 경우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제도로서 디스커버리(discovery)가 있다. 디스커버리란 심리(trial) 전에 당사자가 증거와 서류를 상호 공유하여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절차를 지칭하는 것이다. 실무상 디스커버리에는 △ 상대방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서(interrogatories), △ 문서제출요청(request for production of documents), △ 증언녹취라고 하는 데포지션(depostion) 등이 포함되어 있다. 심리를 할 때까지 보통 1년여 동안 디스커버리가 진행된다. 여기서는 문서제출요청 부분에 대해서 주목하고자 한다. 미국소송에서 소송당사자는 분쟁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삭제하지 않고 보존할 의무를 부담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요청이 있는 경우 관련 문서를 모두 제출하여야 한다. 문서에는 이메일도 포함된다. 이메일과 같은 전자문서의 경우 삭제하여도 흔적이 남게 되는데, 코오롱과 듀폰의 소송에서 코오롱은 이메일을 삭제하였다는 이유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만으로 제공을 거부할 수 없다. 특이한 것은 변호사에게 제공된 서류는 변호사-고객간 특권(attorney-client privilege)에 의해서 제공을 거부할 수 있다. 이러한 문서제출요청에 대해서 상대방이 불이행하게 되면 강력한 제재가 가해진다. 심지어 패소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변호사들은 디스커버리절차를 진행하면서 이런 제재를 의식한다. 그래서 제출될 서류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서류를 정리하는 노력을 한다. 디스커버리제도는 한국에도 꽤 많이 알려져 있고, 한국에 도입을 하기 위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소송진행에 있어서 사실관계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핵심인데 오랜 세월 동안 미국에서 검증된 제도인 디스커버리제도의 장점을 도입한다면 실체진실의 발견과 분쟁의 신속한 종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2015-08-17 14:46:50 강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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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의 명화 에세이] '성바실리 성당'-화가의 눈으로 기록하다.

16세기. 몽고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모스크바 대공국의 황제였던 이반4세는 나라가 여러 개로 나뉘어져있던 어지러운 시기에 등장한 리더였다. 그는 200여 년간 러시아를 점령하던 몽골의 카잔칸국을 항복시키고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성당 건축 설계를 명령한다. 1555년에 시작된 건축은 5년이라는 시간동안 완성되고 많은 사람들이 성당의 아름다움에 탄복한다. 성당의 이름은 존경받던 예언자인 바실리의 이름에서 유래해 '성바실리 성당'이 된다. 지독한 아름다움은 치명적인 욕심을 부를 때도 있는 법. 이반 대제는 설계를 담당했던 '바르마'와 '보스토니크'에게 섬뜩한 명령을 내린다. "여봐라. 이 건축가들이 다시는 똑같은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눈을 파서 장님을 만들어라!" 누군가는 이 이야기가 사실에 근거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소문이라고도 한다.(그 이후에도 건축가들이 활동한 기록이 있어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라면 활동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반증 때문에) 심지어 성바실리 성당의 아름다움을 탐낸 영국의 여왕이 건축가에게 작업을 의뢰하자 독살을 당했다는 설도 있다. 어찌됐건 성바실리 성당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기에 충격적인 이야기임은 확실하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 자리 잡은 성바실리 성당은 엄마가 사온 빨간 망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양파들을 닮았다. 그 양파들에 오색빛깔 곱게 색칠을 한 듯하다. 외모도 훌륭한데 똑똑하기 까지 한 사람들을 보면 샘이 나듯 성바실리 성당도 그렇다. 신비스러운 외형에 추운 러시아 날씨를 이겨낼 좁은 창문을 겸해 실용성마저도 훌륭하다. 나무가 많았던 환경인 러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목조건축이 발달했다. 하지만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국가가 통일이 되면서 15세기 말, 16세기 초 유럽의 건축술들이 들어와 모스크바의 풍경은 점차 변한다. 바실리 대성당의 양식은 그들 중 가장 독특하고 기묘하다. 단층처럼 보이는 커다란 기단 위에 높은 탑 모양을 올리고 주변에 양파모양 형태의 8개의 예배당이 중심을 감싸는 형태이다.(8개의 돔은 카잔칸과의 8번의 전투를 상징한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색채를 덧칠해 더욱 화려해졌다. 화가들은 자신과 함께 살아가던 대상들을 그림으로 남긴다. 성바실리 성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러 러시아 화가들이 그린 그림 속에서 이제는 박물관이 된 성바실리 성당을 살펴볼 수 있다. '러시아의 민중화가'로 불리는 바실리 수리코프(Vasily Ivanovich Surikov/1848-1916)는 귀족의 초상화에 열정을 보이던 당대화가들과는 다르게 핍박받는 민중이나 체제에 저항하는 혁명가들을 주제로 삼았다. 러시아의 '오노레 도미에' 같다고 해야 할까. 그는 민중들이 있는 곳으로 작품을 보여주려고 화폭을 들고 이리저리 이동하며 전시했다고 하여 '이동파'라고도 불린다. 이 그림은 그에게 과거의 역사 속 한 장면이다. 표트르 대제가 권력을 잡던 시절, 그의 군 개혁에 반대하는 친위 수비대들은 강력히 봉기한다. 반란에 가담한 수비대들은 결국 처형을 당하는데 첫 날 표트르대제가 5명의 목을 베고, 그 이후로 6개월간 2000명이 넘게 참수를 당한다. 이라는 이 작품은 그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이자 러시아의 역사를 그림으로 기록하고자 했던 그의 의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림 속 주인공들은 화가 수리코프의 지인들을 모델로 활용해 표현했다. 피바람이 불었던 그날, 붉은 광장에는 처형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는 성바실리 대성당이 있었다. 러시아의 입체파 화가 아리스타크 렌트로푸(Aristarkh Lentulov/1882-1943)의 그림 속 성바실리 성당은 경쾌하다. 이쪽저쪽 사방으로 울퉁불퉁하게 표현했으니 피카소의 입체주의와 맥락이 닿아있지만 왠지 그것만 거론하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색이 많고 풍부하다. 나뉜 면마저도 찬란해 보이는 배부른 작품이다. 1910-11년간 파리에서 공부하며 입체파 화가들과 교류하고 조국인 러시아에 돌아온 렌트로푸는 훗날 러시아의 아방가르드한 아티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 위의 화가가 파리 여행 중 피카소와 페르낭 레제와 교류하며 러시아 스타일의 입체파 그림을 그렸다면 콘스탄틴 유온(Konstantin Yuon/1875-1958)은 피사로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했다. 그래서인지 표현이 정교하지는 않아도 전체적인 어울림이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 오후 붉은 광장에 모였다. 그림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파 화가들의 자잘한 붓터치처럼 느껴진다. 어릴 적 엄마가 늘 했던 말을 우리는 이렇게 그림에서도 만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처럼 친구 따라 인상파가 된다는 말. 시냇물처럼 흘려듣던 어른들의 말들이 이 그림을 보니 문득 그리워진다. 표도르 알렉셰프(Fedor Alekseev/1753-1824)가 그린 성바실리 성당 풍경은 상반되는 두 이미지를 안고 있는 듯하다. 웅장하면서도 귀엽고, 소란스러워 보이면서도 한산하고, 어두우면서도 밝고…그림이 화가를 닮는 것인지 화가가 그림을 닮는 것인지 그의 말년의 인생도 상반되게 기울었다. 젊을 때는 유명한 풍경 화가였으나 점점 인기는 추락하고 빈곤하게 지내다 세상을 떠났다. 한 푼의 돈도 없었던 그를 위해 아카데미는 장례식비용을 지불해주었다. 이제야 이 성당이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다면 혹시 이 장면이 아닐까? 30-40대의 어린 시절과 함께 성장한 세계적인 게임 테트리스. 이삿짐을 차곡차곡 정리할 때도, 아이가 가지고 노는 블록을 볼 때도 생각나는 바로 그 게임. 테트리스의 시작화면 속에 있는 건축물이 바로 성바실리 대성당이다. 1984년 테트리스 게임 개발 당시 미국과 소련은 냉전관계였지만 이 게임을 개발한 모스크바 과학아카데미 연구원이던 알렉세이 파지트노프는 러시아 전통퍼즐 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게임의 첫 화면에 바실리 성당의 이미지를 넣는다. 파리의 화가들이 수없이 에펠탑을 그렸듯이, 러시아의 화가들은 모스크바의 성바실리 성당을 그렸다. 화가들이 자신의 나라와 문화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그린 그림에는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상황과 마음이 담겨있다. 1560년대에 완성된 성 바실리 대성당은 슬프고 참혹한 러시아의 역사적 순간에도, 기쁘고 소소한 러시아의 일상적 순간에도 늘 그 자리에 있었다. 하루에도 급격히 변하는 세상 속에서, 매일 마음이 바뀌는 변덕쟁이 애인 옆에서 우리는 종종 지친다. 그럴 때면 몇 백년이상 말없는 증인이 되어 살아가는 건축물을 보면서 엄숙해진다. 감정의 기복이 날씨보다 심한 내 성격도 그들이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 같아서. 우리의 삶 속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를 말없이 지켜봐주던 건축물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아침이다. 이소영(소통하는 그림연구소-빅피쉬 대표/bbigsso@naver.com/출근길 명화 한 점, 엄마로 다시 태어나는 시간 저자)

2015-08-17 13:29:29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