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가 사람들] "핀테크, 美 보고 배워야" - 문병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금융당국이 핀테크(Fintech·정보기술을 활용한 금융) 산업 육성을 올해 최우선 금융정책 과제로 결정하면서 금융권에도 핀테크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지난 1일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올해의 역점 과제는 바로 핀테크 혁명"이라며 "규제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인프라 구축과 범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인 지원, 소비자 보호와 보안 강화 등의 정책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만으로 국내 핀테크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에는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메트로신문과 만난 문병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글로벌 수준에서는 이미 수 년에 걸쳐 핀테크 기업들이 활발하게 창업을 하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이에 반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IT인프라와 제조 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전세계 핀테크 100대 기업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문 연구원은 "지난해 10월 출시된 애플페이는 간편성과 보안성을 발판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알리페이와 페이팔, 민트닷컴 등 IT업체들 역시 예금과 송금, 대출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자산관리와 투자자문 영역에도 발을 넓혀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핀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액 또한 미국과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2008년의 9억3000만달러에서 2013년 29억7000만달러로 세배 이상 증가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해외 소비자들이 '천송이 코트'등의 제품을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하는 것이 어렵다는 불만이 제기된 후에야 공인인증서 의무화를 폐지했다"며 "다음카카오가 국내 14개 은행과의 제휴를 통해 '뱅크월렛 카카오' 서비스를 내놨지만, 핀테크에 기반한 글로벌 차원의 금융업 혁신 추세 대응은 미흡한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금융 주권까지도 해외 업체들에게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는 것. 문 연구원은 핀테크 산업 성장에 발목을 잡고 있는 요인으로 ▲금융실명제법상 비대면 본인인증 금지 ▲금융기관들의 공인증서 사용 강제 ▲비합리적인 규제 등 각종 '규제'를 꼽았다. 그는 "핀테크 서비스는 금융정보를 공유해야 가능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규제의 양도 문제이지만, 더 큰 장애물은 규제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규제가 선진국에서 자유롭게 출현하는 핀테크 서비스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며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성장한 다음에 우리 금융당국이 규제를 완화한다면, 우리 기업들은 후발 주자의 어려운 처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결책은 없을까. 문 연구원은 "투자자 보호와 금융기관 건전성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많고 복잡한 규제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는 미국이 혁신적인 핀테크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은 규제의 비용편익 분석에 기반해 비합리적인 규제를 최소화하고 있고, 비조치 의견서라는 면책 제도 등 규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장치들이 활성화돼 있다"며 "혁신적인 핀테크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또한 비합리적인 규제를 완화하고, 일관되고 예측가능한 규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문 연구원은 특히 "선진국들은 비용편익분석을 통해 비합리적인 규제를 정비하는 것이 의무화돼 있다"며 "이는 핀테크와 같은 혁신적인 비즈니스 출현에 도움을 주면서도 투자자보호와 금융질서 유지와 같은 다른 목적도 동시에 달성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금융당국의 규제 개혁 지원 노력은 고무적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과거의 비합리적인 규제 관행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글로벌 기업들이 성장한 뒤에 규제를 완화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규제 비용과 소비자 효용을 감안해 개선이 필요한 우선 영역을 선정하고, 이를 통한 제도 개선을 본격화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