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만난 기업인들… '세이프가드 대신 윈윈을'
재계 대표들이 7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내외를 위해 마련한 국빈만찬에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자리에선 국내 기업들의 현안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인들과 트럼프 대통령 만찬은 미국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당초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기업인들과 트럼프 대통령의 간담회를 추진했지만 일정 조율 과정에서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대안으로 미국측이 미국에 투자한 기업 관계자들을 청와대 만찬 행사에 초청하자고 제안하며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삼성, 현대차, SK, LG, 한화 등이 참석했다. 만찬에선 박용만 상의회장이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등과 1테이블에 배석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데릭 라이언즈 대통령 부비서관 등과 함께 3테이블에 앉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존 맥엔티 대통령 개인보좌관과 6테이블에 자리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 대표 비서실장과 8테이블로, 구본준 LG그룹 회장은 앨리슨 후커 백악관 NSC 한국 담당 보좌관과 9번 테이블에 배정됐다.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과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조단 카림 백악관 선발팀 부국장과 10번 테이블에 앉았다. 기업인과의 간담회가 아닌 만큼 활발한 의견 전달은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인들은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겪고 있는 통상압력에 대한 입장을 최대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한국산 태양광 패널에 산업피해 판정을 내렸고 10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에도 자국 가전기업들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해 ITC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구제조치를 요청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ITC의 요청에 응할 경우 내년 초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가 발동돼 국내 기업들의 미국 수출길이 막힐 수도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미국에 연간 200만대 이상, 1조원 규모의 세탁기를 수출 중이다. 세이프가드로 30~50% 수준의 높은 관세가 부과되거나 수입 총량이 제한된다면 국내 기업들은 미국 시장을 잃게 된다. 또한 세탁기 외에 청소기와 반도체, 화학, 섬유, 철강 제품 등도 ITC로부터 덤핑 판정을 받았거나 조사 중에 있어 통상압력이 전 방위로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의 통상압력이 강화된다면 국내 기업들도 미국 투자를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3억8000만 달러(약 4340억원)를 투자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세탁기 생산공장을 조성하고 있다. 고용 규모도 950여명에 이를 전망이다. 이 소식을 접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땡큐 삼성! 함께하고 싶다(Thank you, @Samsung! We would love to have you)'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LG전자 역시 2억5000만 달러(약 2820억원)을 투자해 테네시주에 가전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2019년 1분기 공장이 완성되면 600명 이상의 고용효과가 기대된다. 다만 세이프가드가 발동될 경우 이러한 투자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조성 중인 공장은 완제품을 조립하는 공장으로, 부품은 한국 등지에서 조달해야 한다. 세이프가드가 발동되면 부품 조달도 막히기에 이러한 공장을 지을 이유가 없어진다. 현지에 부품공장까지 세우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때문에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와 테네시 주에서는 주지사와 장관 등도 "세이프가드가 발동될 경우 신규 창출될 일자리가 사라져 지역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라며 삼성전자와 LG전자 원군을 자청하고 있다. 이날 한국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은 경기 평택에 있는 캠프 험프리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회의가 잘 풀려서 미국 내에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게 되기 바란다. 그것이 내가 여기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국내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들은 만큼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자국 기업 보호 또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만찬은 트럼프 대통령과 보좌진이 한국 기업들의 목소리를 접하는 기회"라며 "세이프가드 발동 등 극단적 선택 대신 한미가 윈윈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국빈만찬에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초청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