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재판 중간정리] 2. 삼성의 재단 출연, 모종의 거래 있었다?
2015년 7월 2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체육과 문화융성을 위해 힘써달라"는 당부를 했다. 당시 이 부회장 외에도 7개 그룹 총수들이 대통령과 개별 면담 시간을 가졌고 이러한 당부를 공통적으로 받았다. 삼성을 비롯한 15개 대기업들은 당시 대통령의 당부가 있었기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요청을 하자 미르·K스포츠재단에 총 774억원을 출연했다. 그룹별 출연금 규모는 전경련이 기업들의 사회협력비 납부액을 기준으로 산정한 것이었다. 삼성이 204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현대차 128억원, SK 111억원, LG 78억원 등이었다. ◆재단 출연, 어떻게 이뤄졌을까 특검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한 것을 두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제3자 뇌물죄로 기소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것을 두고 최순실씨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특검은 7월 독대에서 박 전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 재단을 언급하며 출연을 직접적으로 요구했으며 기업들의 현안 해결에 도움을 주겠다는 약정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특검의 시각과 달리 앞서 수사를 진행했던 검찰 특수본은 삼성을 포함한 대기업들의 재단 출연을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압박을 가해 강제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판단했다. 때문에 이들에게 직권남용과 권리행사방해, 강요 등의 혐의를 적용했었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3월 박 전 대통령 탄핵선고를 인용하며 "박근혜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등에 관여한 것은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 측은 강요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2015년 7월 독대에서 박 전 대통령이 '문화와 체육발전에 관심을 가져달라'라는 취지의 당부를 했다"면서도 "재단 지원에 대한 부탁을 한 사실은 없다"고 강조한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이 총수들에게 문화·스포츠 발전에 힘써달라는 당부를 했다는 인식에는 차이가 없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은 이를 단순한 당부로, 검찰과 헌재는 이를 대통령이라는 지위를 감안해 강요로 받아들였다는 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기업 현안을 두고 대등한 관계로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특검 주장의 근거는 확인하기 어렵다. 재단 출연은 전경련을 통해 이뤄졌기에 특검의 표적이 된 삼성과 수사를 받지 않은 다른 기업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볼 근거도 없다. ◆삼성, 부정한 청탁 있었나 특검은 삼성의 재단 출연을 형법 130조의 제3자 뇌물죄로 규정했다. 제3자 뇌물죄는 '부정한 청탁'이 성립요건이다. 이 부회장이 부정한 청탁을 했고 박 전 대통령이 이를 인식한 상태에서 업무수행을 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4월 7일 시작된 재판은 총 37차례가 열렸다. 자정을 넘어서까지 재판이 진행되는 강행군의 연속이었지만 이 부회장이 부정한 청탁을 하거나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의 현안에 관여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 특검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삼성생명 중간금융지주회사 전환,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등 다양한 안건을 들춰보고 있지만 청와대가 삼성에 도움이 되도록 관여한 정황마저 없는 상태다. 청와대는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지는 시기 통상적으로 국민연금공단, 금융감독원 등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지만 합병 찬성이나 처분 주식 수 절감 등 삼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삼성생명의 경우 지배구조 선진화에 필수적인 중간금융지주회사 전환을 금융위원회의 반대로 인해 포기하기도 했다. 특검의 주장대로 삼성의 청탁이 있었고 청와대의 동조가 있었다면 발생할 수 없는 결과다. 특검은 안종범 수첩을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 수석이 작성한 업무일지에는 박 전 대통령이 전해준 현안이 메모돼 있다. 2015년 7월 독대 시기 메모에도 '재단'이라는 한 단어가 적혀있는데 특검은 이를 "재단 출연을 요청한 증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수첩은 문장이 아닌 단어 위주로 적혔고 명백한 오기로 판정되는 부분도 다수 발견됐다. 안 전 수석이 수첩 메모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했기에 재판부는 "안종범 수첩에 직접증거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