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오의 신비한 심리사전] 정치 성향, 타고나는가…진화유전학과 성격심리학으로 읽는 인간의 정치
어느 순간 한국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한다는 게 혹시라도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과 맞짱 뜨는 사태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을 하는 사회게 되었다. 연예인 가십이나 야한 농담, 혹은 코인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다른 뭔가 더 심각한 주제가 되어 버렸다. 어떤 경우에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당신의 성적 취향은 어떠세요?"라고 묻는 주제보다 더 무례하고 위험한 주제가 되었다. 특히 공공 장소에서 강의를 하거나 할 때 정치적 성향을 논하면 어느 쪽에서든 밥줄 끊어지기 좋은 주제중 하나가 정치적 성향이 아닐까 한다. 명절처럼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끼리 밥상머리에서 정치 얘기가 나오는 순간, 갑자기 공기가 무거워지고 눈치를 보게 된다. 어떤 이는 "복지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이는 "아무개는 정이 안가"라며 이야기 한다. 그런데 이 극단적인 차이는 단지 신문을 어디서 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더 깊은 곳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최근 진화유전학과 성격심리학은 정치 성향이 부분적으로 유전적인 기질과 성격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보수적인지 진보적인지의 일부는 이미 우리 뇌와 성격 속에 '기본값'처럼 설정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약 30만 년 전부터 현대 인류의 형태로 진화했다. 우리가 정치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태도 역시 이 오랜 진화의 결과물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먼 과거 어떤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자원을 발견해 살아남았고, 또 어떤 사람은 낯선 존재를 회피함으로써 위험을 피했다. 이러한 생존 전략의 차이는 유전적인 기질로 남았고, 오늘날에는 정치 성향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낯선 것, 변화, 외부 집단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경향을 보인다. 이는 마치 "저기 저 이상한 열매, 혹시 독 있는 거 아닐까?"라고 의심하던 선조들의 사고방식과 닮았다. 반대로 진보적인 사람들은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 개방성이 높다. "이 낯선 열매, 맛있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진화적으로도 살아남은 것이다. 뇌 과학적으로 보면 이런 차이는 편도체(amygdala)와 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활성화 차이로 설명되기도 한다. 편도체는 공포와 불안을 감지하고, 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역이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이 부위가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반면, 전두엽은 문제 해결, 계획, 창의적 사고와 관련이 있는데, 진보적인 사람들에서 더 활발히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차이는 '누가 더 뛰어난가'의 문제가 아니다. 위험을 피하고 질서를 중시하는 성향은 위기 상황에서 집단을 보호하는 데 유리하고, 반대로 새로운 자원과 기회를 탐색하는 개방성은 평화로운 시대에 유리하다. 말하자면, 진보도 보수도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양 날개였던 셈이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성격을 대표적으로 설명하는 모델로 '빅5 성격 이론(Big Five Personality Traits)'이 있다. 이 모델에 따르면, 인간의 성격은 다섯 가지 요인으로 구분된다.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 새로운 경험에 대한 관심, 창의성, 상상력), 성실성(Conscientiousness, 책임감, 계획성, 규칙 준수), 외향성(Extraversion, 사교성, 활력,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 우호성(Agreeableness, 협조적이고 친절한 성향), 신경성(Neuroticism, 불안, 감정 기복 등 정서적 민감성). 이 중에서 특히 정치 성향과 강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두 요소는 개방성과 성실성이다. 연구에 따르면,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성실성이 높은 사람은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향이 강하다. 왜일까?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다문화 사회, 환경 보호, 성소수자 인권처럼 기존 질서와 다른 '새로운 이슈'에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반면, 성실성이 높은 사람은 사회 규칙, 전통, 가족구조처럼 이미 존재하는 질서와 규범을 중시한다. 이들에게 진보적인 변화는 혼란스럽고, 때로는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환경세를 신설하자는 제안이 나왔을 때 개방성높은 사람은 "지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성실성이 높은 사람은 "경제 질서에 혼란을 줄 수 있어"라고 걱정할 수 있다. 같은 이슈를 보면서도 정반대의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정치 성향이 100% 유전자나 성격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가정 환경, 사회적 배경, 교육 수준, 미디어 소비 습관 등도 정치적 입장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같은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라도 서로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질 수 있다. 필자의 가족을 봐도 그렇다. 본인의 글을 읽어본 독자는 필자가 매우 개방적인 사람이라고 눈치를 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의 동생은 반대까지는 아니여도 필자가 볼 때 약간 클래식-이걸 보수적이라고 한다고-하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면 아이러니한데 부모님의 성향이 동생과 더 가까운 듯 한 느낌은 필자의 고향에 대해 공상에 빠져들게 한다. 혹시 '난 어디 다리에서 주워온 존재가 아닐까'라는. 여러 연구들은 정치 성향의 약 30~50% 정도가 유전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즉, 어떤 사람은 진보적인 성향지니고 태어났고, 어떤 사람은 보수적인 성향에 더 적합한 뇌와 성격 구조를 가지고 태어난다. 남은 부분은 환경과 경험이 채운다. 이렇게 보면, 정치적 논쟁이 격해질 때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아, 저 사람은 위험 회피 성향이 나보다 강하구나" 혹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구나"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게 상대를 보는 눈이 조금은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정치는 단순히 법과 제도에 대한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어떤 세상을 더 안전하고, 더 공정하다고 느끼는지에 대한 내면의 표현일 수 있다. 진화유전학과 성격심리학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서로 다른 정치 성향은 서로 다른 생존 전략의 표현일 뿐,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 아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꼭 싸울 필요는 없다. 그들의 말 속에 담긴 '공포'와 '희망'이 다를 뿐이라는 걸 이해하면 좋지 않을까. 당신은 무지개를 보며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그들은 그 무지개 뒤의 먹구름을 먼저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시 누군가와 신문 기사를 보고 "그래도 보수는 나라를 지켜"라고 말하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어보자. "이 분의 편도체가 오늘도 열일 중이시군…." /진성오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