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윤열의 푸드톡톡] 세상에서 가장 비싼 루왁 커피가 부드러운 이유
커피 한 잔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루왁 커피(Kopi Luwak)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커피"라는 명성과 함께 사향고양이의 체내 소화기관을 통해 만들어진 커피라고 하는 흥미거리를 제공한다. 남아시아에 서식하는 아시아야자사향고양이만이 가능하다고 한다. 원두 수확기에 맞춰 아시아야자사향고양이에게 완전히 자란 빨간 커피 열매를 먹인 뒤 열매 과육은 소화되고 사향고양이가 미처 소화하지 못하고 배설한 원두만 세척해 살균을 한 뒤에 로스팅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사향 고양이의 배설물에서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이 커피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최근 연구에서 루왁 커피의 부드럽고 독특한 풍미의 원인이 단순히 희소하거나 흥미롭기 때문이 아니라 화학적 변화에 기인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루왁 커피가 일반 커피와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사향고양이의 소화과정인 장내발효에서 발생한다. 연구에 따르면 소화기관을 거친 루왁 원두는 일반 원두에 비해 크게 두 가지 변화를 겪는다. 첫째, 쓴맛을 줄여준다. 커피의 쓴맛을 유발하는 주요 성분 중 하나는 단백질이다. 사향고양이의 위액과 소화 효소가 원두 표면의 단백질을 일부 분해하여 이로 인해 루왁 원두는 단백질 함량이 낮아져 일반 커피보다 훨씬 부드럽고 쓴맛이 덜한 특징을 갖게 된다. 둘째, 지방 함량과 독특한 향이 높아진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방 성분의 변화다. 커피 생두에 함유되어 있는 지방은 주로 트리글리세롤(Triglycerol) 형태로 존재하며 이는 여러 종류의 지방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지방산 분자들은 로스팅 및 추출 과정에서 분해, 산화, 에스테르화 등의 화학 반응을 거쳐 커피의 최종적인 맛과 향을 결정하게 된다. 루왁 커피 원두는 일반 원두보다 총 지방산 함량이 유의미하게 높다. 또한 특정 지방산 메틸 에스테르(FAME)인 카프릴산 메틸 에스테르와 카프르산 메틸 에스테르의 함량이 일반 원두에 비해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 두 가지 지방산 메틸 에스테르는 우유 유제품과 유사한 풍미를 내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즉, 사향고양이의 소화과정과 장내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효소가 원두에 부드러운 유제품의 풍미와 풍부한 지방을 매개로 한 특별한 향을 입혀주는 것이다. 루왁 커피에서 이 두 가지 지방산 메틸 에스테르(FAME)가 증가했다는 사실은 사향고양이의 소화과정이 일반 커피의 지방성분을 분해하고 에스테르화로 결합시키는 특정 효소적, 미생물적 환경을 제공하여 일반적인 로스팅으로는 얻기 힘든 부드러운 유제품의 풍미를 분자 수준에 발현함을 의미한다. 지방산은 탄소사슬의 길이에 따라 휘발성과 반응성이 달라져 생성되는 향 분자가 완전히 달라진다. 탄소원자 수가 적은 단쇄 지방산은 휘발성이 매우 높고 특유의 강한 향을 유발한다. 이에 반해 탄소 사슬이 길고 이중결합이 있는 장쇄 불포화 지방산은 로스팅할 때 복합적인 아로마 분자를 생성한다. 리놀레산은 로스팅을 통해 산화와 열 분해되어 너티(Nutty), 그린(Grassy), 고소함을 형성하고 올레산은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열에 의해 분해되어 버터리(Buttery)하거나 오일리한 질감으로 바디감과 견과류 풍미를 나타낸다. 루왁 커피의 독특한 풍미는 사향고양이의 장이 만들어낸 정교한 '생체내 바이오 발효공정'의 결과물인 셈이다. 커피의 맛과 향을 결정 짖는 풍미 프로파일은 테루아(Terroir)라고 불리는 기후나 토양같은 환경적 요인뿐 아니라, 생두 내부에 축적된 특정 화학성분의 농도 차이에서 직접적으로 기인한다. 특히 로스팅 과정에서 이 성분들이 분해되거나 반응하여 수많은 휘발성 화합물을 생성하는 것이 풍미 차이의 핵심이다. 커피의 풍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인인 클로로겐산 (Chlorogenic Acids, CGAs)은 커피 생두에 가장 풍부하게 존재하는 폴리페놀 화합물로 커피의 항산화 능력과 신맛, 쓴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분자 물질이다. 로부스타(Robusta) 종은 아라비카 종에 비해 클로로겐산 함량이 약 2배 정도 많이 들어있다. 클로로겐산은 로스팅 시 분해되어 퀴닉산과 카페산 같은 유기산을 생성하는데이는 커피의 강한 쓴맛과 거친 산미, 그리고 바디감에 기여한다. 따라서 클로로겐산 함량이 높은 로부스타가 주로 재배되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일부 지역의 커피는 대체로 진하고 쓴맛이 강한 특징을 보인다. 케냐와 에티오피아같이 고도가 높고 서늘한 기후에서 느리게 자란 아라비카는 커피 열매의 숙성을 늦춰 생두 내부에 설탕(Sucrose)과 같은 당류와 구연산(Citric Acid), 사과산(Malic Acid) 같은 유기산을 더 많이 축적하고 클로로겐산의 분해가 잘 제어되어 섬세하고 밝은 산미를 내는 경향이 있다. 로스팅 시 당류는 카라멜화(Caramelization)와 메일라드 반응(Maillard Reaction)을 통해 단맛, 캐러멜 향, 초콜릿 향을 생성한다. 유기산은 과일처럼 밝고 깨끗한 산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케냐AA, 에티오피아 예가체프같은 고지대 아라비카 원두는 꽃향, 과일의 산미, 섬세한 단맛의 조화가 뛰어나다. 결국 커피의 원산지별 풍미 차이는 해당 지역의 기후(온도, 고도), 토양, 가공 방식이 생두의 유전적 특성과 결합하여 클로로겐산, 당류, 유기산과 같은 핵심 분자 성분의 비율을 결정하고 이 성분들이 로스팅할때 열을 만나 풍미를 결정짖는 수많은 휘발성 화합물로 변환되면서 최종적인 풍미 프로파일로 완성되는 것이다. /연윤열 푸드테크 칼럼니스트, 식품기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