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가결]與野, 사상 초유의 격량 속으로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됨에 따라 여야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격랑에 휩싸이게 됐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소속 의원의 절반 정도인 62명이 탄핵에 찬성하면서 '분당'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야당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그리고 소위 '개헌파'와 '호헌파' 사이에 주도권 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개헌론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제3지대'가 부상할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새누리, 분당 가속화… 친박 '폐족'되나 새누리당 입장에서 이번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은 보수 정당사에 사실상 첫 분당 사태를 몰고 올 대형 쓰나미라고 할 수 있다. 새누리당은 친박으로 대표되는 주류와 비박으로 대표되는 비주류의 심각한 내부 다툼으로 인한 분당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주류는 탄핵을 주도한 비주류의 축출을, 비주류는 당 지도부를 포함한 정통 친박계의 인적 청산을 예고한 만큼 정치 생명을 건 외나무다리 싸움이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탄핵안 결과에 따라 일단 주도권은 비주류가 쥐게 됐다. 여당 내 탄핵 찬성표가 비주류를 넘어 중립 지대와 친박계에서도 나온만큼 현재 당을 장악한 주류는 사면초가에 빠지며 고사 위기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비주류 진영은 탄핵안이 압도적으로 가결됨 만큼 즉시 친박계 인적청산에 나설 것으로 예측된다. 정병국 의원은 최근 CBS라디오에서 "통과되면 벌써 사퇴했어야 하는 지도부는 즉각 사퇴해야 하고, 새누리당은 청산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새누리당이 보수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건전한 보수 세력에게 그 자리를 넘겨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처음부터 분당을 각오했던 비주류가 탄핵과 함께 탈당을 결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집권여당 신분으로서 탄핵안 가결에 동의한 의원들 역시 새누리당에 남는 데 대한 정치적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다. 실제 비상시국위에 참석한 김무성 전 대표가 '인적청산', '현실적으로 불가능', '탈당' 등이라고 적은 메모가 사진 기자에 포착되기도 했다. 친박은 사실상 당에 남게 되더라도 '폐족'의 오명을 쓸 가능성이 높다. 특히 촛불 집회를 통해 드러난 민심의 분노는 박 대통령과 비선실세를 넘어 친박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전국의 친박 의원 사무실 앞에는 1인 시위와 항의집회가 연일 진행되고 있어 이들이 앞으로 지역구에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야권, 적과의 동침 끝… 본격 주도권 다툼 시작 박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됨에 따라 야권의 수싸움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경제·민생 챙기기 등 '수권정당'의 면모를 어떻게 보일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 조기 대선의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대선후보 선출로 대표되는 주도권 싸움의 한 판 승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탄핵 이후 국정 공백을 방치한다면 야권 역시 무책임하다는 비난에 처할 수 있는 만큼 수권정당으로서 혼란을 체계적으로 수습하기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탄핵 이후 과도내각을 '관리형'으로만 머무르게 하면서 조기 대선에 집중할지, 아니면 탄핵 전에 국무총리를 교체해 적극적인 국가 재정비에 나설지 등에 대해서는 야권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어 이후 진통이 예상된다. 여기에 탄핵 이후 개헌 주장이 본격화하면서 야권 내부의 정계개편 시도나 주도권 다툼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엿보인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탄핵안 가결을 전제로 "경제대책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부터 해서 민생 문제를 포함해 논의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탄핵 후 정국 수습책이 물밑에서 논의되고는 있지만 야권내 각 진영의 이견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황교안 대행체제'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엇갈리고 있다. 한 편에서는 황교안 대행체제를 수용하는 대신 총리의 권한을 최소화하고 '관리형 내각'을 구성해 다음 정권 준비작업에 주력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반면에 이제라도 총리를 교체해 적극적으로 '국정 개조'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은 지난 6일 의원총회에서 "공안검사 출신인 황 총리가 역사적 국면의 책임자가 된다는 것은 모욕"이라며 "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국민의당 김동철 비대위원장이 합의하면 총리를 바꿀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추 대표는 지난달 28일 기자단과 오찬간담회에서 "촛불민심이 바라는 '국민 추천 총리'를 국회가 동의하고, 그다음에 황 총리가 물러나는 정치적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는 로드맵을 제시하기도 했다. ◆탄핵정국 속 개헌론 '제3지대' 부상하나 사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직전, 정치권 최대 화두는 '개헌'이었다. 지난 10월 24일 박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개헌 논의를 언급했지만 공교롭게도 그날 언론을 통해 최순실 테블릿 PC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서 개헌 논의는 시작도 못한채 묻히고 말았다. 때문에 개헌론자들은 박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지금 개헌을 공론화할 적기(適期)를 맞은 것 아니냐는 인식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집권 초기에는 막강한 권력을 쥔 현직 대통령의 반대로, 집권 말기에는 유력 대권주자들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돼 온 개헌의 불씨를 살릴 기회를 잡았다는 게 개헌론자들의 주장이다. 관건은 개헌론이 현시점에서 어느정도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이다. 일단 정치권에서는 탄핵표결을 전후해 개헌 논의를 띄우려는 움직임이 다시금 활발해지고 있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여당과 제1야당의 비주류에 제2야당이 힘을 보태는 방식이다. 일단 탄핵안 표결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새누리당 비주류를 중심으로 개헌 추진이 본격화하고 있다. 새누리당 비주류는 탄핵안 표결 이후 당내 세력을 '개헌파'와 '호헌파'로 나누고, 온건 성향의 중도·주류를 끌어들인 개헌파로 외연 확장을 시도할 태세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 비주류, 즉 비문(비문재인) 진영과 개헌을 고리로 손잡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로 꼽히는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견제하는 동시에 양당 비주류의 연대를 모색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 손학규 전 대표,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이 이미 이 같은 '비(非) 패권지대'의 세력화를 모색하는 가운데 일각에선 내년 초 귀국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현실정치에 뜻을 둘 경우 이들과 손을 잡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측면의 개헌논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탄핵을 이끌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촛불민심'이 정치권의 담론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각 정파가 대선을 앞두고 추진 중인 개헌논의가 어느정도 탄력을 받을 지는 회의적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IMG::20161209000074.jpg::C::480::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집회를 하던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2표, 무효 7표로 가결됐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