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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교황청은 14조원대 부자…프란치스코 교황 개혁 나서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달리 교황청은 2000여년간 보물과 진귀한 예술품들을 모아오며 각종 투자를 통해 자산을 불려왔다. 이 때문에 각종 부패의 온상으로 지적되며 여러 추문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교황청의 재산은 얼마나 될까. 지난달 19일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가 이탈리아 주간지 레스프레소 보도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교황청이 자체 또는 제3자를 통해 관리하는 재산은 100억 유로(약 13조9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90억 유로는 주식, 10억 유로는 부동산이다. 교황청 재산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시로 작성된 보고서에서 밝혀졌다. 교황청의 부동산 소유 기구는 사무처 소속 사도좌세습재산관리처(APSA)로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당시 보유했던 부동산과 1929년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로 인한 피해 보상금을 관리하고 있다. 교황청이 투자회사 등 제3자를 통해 보유한 부동산 가운데는 런던 중심가 '뉴본드 스트리트'의 명품 상점들과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이 살았던 집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에도 은행 비밀주의로 유명한 스위스는 교황청 지주회사들을 유치하고 있다. 이 회사들은 교황청 재산의 일부를 은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한 뒤부터 바티칸은행(공식명칭 종교사업기구)을 개혁의 주요 대상으로 삼아 교황청 경제위원회를 통해 직접 혁신에 나섰다. 1942년 설립된 바티칸은행은 바티칸과 교황청의 재정을 담당하는 곳으로 재산운용 내역이 베일에 싸여있기로 유명한 데다가 돈세탁 등 각종 부패에 수시로 연루되면서 지탄을 받았다. 교황은 금융 개혁을 위해 프랑스의 금융인 장 바티스트 드 프랑수를 바티칸은행의 새 은행장으로 내정하며 파격적으로 외부인사를 기용했다. 구조개혁안에 따르면 그동안 비리의 근원으로 지목돼 온 자산 관리 기능은 점진적으로 새로 설립되는 기구로 넘겨지고 바티칸은행은 본래 역할인 대출, 선교자금 지원 등의 업무만 하게 된다.

2014-08-16 04:24:03 정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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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광화문 시복미사 124위 주요 인물

◆윤지충 바오로(1759-1791): 첫 조선 순교자 1759년 전라도 진산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전주에서 순교한 윤지헌(프란치스코)이 그의 아우이다. 1783년 진사 시험에 합격했고 이 무렵 고종사촌 정약용(요한) 형제를 통해 천주교를 접했다. 1787년 세례를 받은 그는 어머니와 아우, 이종사촌 권상연(야고보)에게도 교리를 가르쳤고 인척인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도 왕래하며 전교에 힘썼다. 1790년 중국 북경의 구베아 주교가 조선교회에 제사 금지령을 내리자 윤지충은 권상연과 함께 이 가르침에 따라 집안에 있던 신주를 불살랐고 이듬해 여름 어머니가 별세하자 천주교 예절에 따라 장례를 치렀으니 이를 '진산 사건'이라 한다. 이에 조정에서 두 사람에 대한 체포령이 내렸고 그들은 충청도로 피신했다가 1791년 10월 중순경 진산 관아에 자수했다. 숱한 고문과 배교 권유에도 굴하지 않은 윤지충과 권상연은 사형선고를 받았고 1791년 12월 8일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나란히 참수의 칼날을 받았다. ◆주문모 야고보 신부(1752-1801): 첫 선교 사제 1752년 중국 강남 지역에서 태어나 조실부모하고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으며 스스로 천주교에 입문한 뒤 북경교구 신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사제품을 받았다. 당시 조선에 성직자 파견을 계획했던 북경의 구베아 주교는 신심이 깊고 외모가 조선인과 닮은 주 신부를 조선 선교사로 임명해 파견했다. 1794년 2월에 북경에서 출발한 그는 압록강이 얼 때까지 요동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약속된 날짜에 중국과 조선의 국경 마을로 가서 조선에서 파견한 밀사들과 함께 12월 24일 밤 입국했다. 이후 주 신부는 한양의 신자 집에 머물며 한글을 배우고 1795년 부활절에 신자들과 처음으로 미사를 드렸다. 입국 사실이 탄로나자 여회장 강완숙(골롬바)의 집으로 피신, 비밀리에 이곳저곳을 다니며 성무를 집행했다. 그가 활동한 지 6년 만에 조선의 신자 수는 1만 명에 이르렀으나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 많은 신자들이 신부의 행방을 자백하도록 강요받기에 이르자 주 신부는 신자들과 운명을 같이하기로 결심하고 그해 음력 3월 11일 자수했다. 군문효수형을 선고받은 그는 한강 근처의 새남터로 끌려가 5월 31일에 49세의 나이로 칼날을 받았다. ◆강완숙 골룸바(1761-1801): 조선 천주교 여성 리더 1761년 충청도 내포 지방에서 양반의 서녀로 태어났다. 혼인한 지 얼마 안 되어 천주교 신앙을 접했다. 1791년 신해박해 때는 옥에 갇힌 신자들을 보살피다 자신이 투옥되기도 했다. 시어머니와 전처 소생 아들(홍필주 필립보, 1801년 순교)를 입교시켰으나 남편은 입교시키지 못했고 이후 남편은 첩을 얻어 따로 지내게 됐다. 한양 신자들이 교리에 밝다는 이야기를 들은 강완숙은 상경, 성직자 영입을 위해 노력하는 교우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했고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주 신부는 그녀를 여회장에 임명해 신자들을 돌보게 했다. 1795년 을묘박해가 일어나자 강완숙은 여성이 주인으로 있는 양반집은 수색할 수 없음을 이용해 자신의 집을 주 신부의 피신처로 내놓았고 그 집은 신자들의 집회 장소가 됐다. 1801년 4월 6일 강완숙은 체포되면서도 주 신부의 피신을 도왔다. 박해자들은 강완숙을 통해 주 신부의 행방을 파악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그는 7월 2일 서소문 밖에서 40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았다. ◆황일광 시몬(1757-1802): "천당은 세상에 하나, 후세에 하나"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난 황일광은 천민 출신으로 어렵게 생활했다. 1792년 무렵 홍산 땅으로 이주해 살다가 '내포의 사도' 이존창을 찾아가 교리를 배운 다음 신앙의 자유를 찾아 경상도로 이사가 살았다. 명랑한 성격의 그는 교우들이 천민인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며 똑같이 대우해 주자 농담조로 이렇게 얘기했다. "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 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 1800년 황일광은 정약종 회장의 이웃으로 이주했고 정 회장이 한양으로 이주한 뒤에도 아우와 함께 따라가 땔나무를 해다 팔며 생계를 꾸리는 한편 힘 닿는 데까지 교회 일을 도왔다. 1801년 그는 땔나무를 하러 나갔다가 체포돼 투옥됐다. 천주교를 '성스러운 종교'라고 말한 그는 다리가 부러져 으스러지도록 매질을 당한 뒤 고향인 홍주로 보내져 참수됐다. 1802년 1월 30일, 나이 45세였다. ◆이순이 루갈다(1782-1802): 신앙으로 동정 지킨 부부 1782년 한양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함께 시복될 이경도(가롤로, 1801년 순교)·이경언(바오로, 1827년 순교)과 남매간이고 유중철(요한, 1801년 순교)이 남편이다. 부친 이윤하(마태오)는 이익 선생의 외손으로 처남인 권철신·권일신 형제들과 교류하며 1784년 한국 천주교회 창설 직후 입교했다. 1795년 주문모 신부에게 첫영성체를 받은 그는 덕행을 쌓으며 동정 생활을 결심했으나, 당시에 처녀가 혼인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15세 때 그가 어머니에게 동정의 결심을 고백하자 어머니는 이를 존중해 주 신부와 상의했고, 주 신부는 동정 생활을 결심한 호남의 청년 유중철을 이순이에게 소개했다. 1798년 이순이는 유중철의 고향으로 내려가 동정 서약을 했고 두 사람은 오누이처럼 지내며 신앙생활을 했다. 1801년 시아버지 유항검과 남편 유중철이 먼저 체포됐고, 이순이는 나중에 체포된 뒤 전주의 감옥에 갇혔다. 유배형을 받고 함경도로 끌려가던 그는 전주에서 파견된 포졸들에게 다시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았고 1802년 1월 31일 전주 숲정이에서 20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았다. ◆이성례 마리아(1801-1840):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 1801년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났다. '내포의 사도' 이존창의 집안 사람이었던 그녀는 17세 때 최경환(프란치스코, 1984년 시성)과 혼인해 홍주 다락골에서 살며 1821년, 조선의 두 번째 한국인 사제가 될 최양업(토마스)을 낳는다. 수리산(현 경기도 군포시)에 정착해서는 남편을 도와 교우촌을 조성했다. 그 사이 최양업은 신학생으로 선발돼 마카오로 떠났다. 1839년 기해박해 때 남편이 한양을 오가며 순교자의 시신을 거두고 교우들을 돌보자 이성례도 남편을 뒷바라지하다 수리산에서 온 가족과 함께 체포됐다. 고문보다 모성 때문에 번민하던 이성례는 젖먹이 아들이 굶어죽어 가는 것을 보다 못해 신앙을 부인하고 석방됐다. 그러나 장남이 신학생 신분으로 중국 유학 중임이 드러나자 다시 체포됐고 형조에 이른 이성례는 동료 신자들의 격려를 받으며 유혹을 이겨내며 당고개(현 서울 용산구 원효로2가)로 끌려가 3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았다.

2014-08-16 04:00:49 김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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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광화문 시복미사 '124위'는

◆124위 순교자 시복의 의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은 국내 전 지역 순교자들의 안건을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통합 추진했다. 이번 시복 결정은 한국 가톨릭 교회의 힘으로 이끌어낸 것이며 전 세계 교회가 한국교회의 역량, 평신도들의 순교자 공경과 기도를 인정한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 1984년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동료 순교자 103위 성인이 탄생했다. 이들의 경우는 시복 작업부터 파리외방전교회가 주도했기 때문에 파리외방전교회 진출 전에 발생한 박해의 순교자들이 누락됐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 124위 순교자 시복 추진 작업은 한국 교회 초기 박해인 신유박해(1801) 순교자들의 행적을 밝혀냄과 동시에 선교사 없이 자발적 노력으로 교회 공동체를 일궈낸 선조들의 열정을 인정받았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숫자로 본 124위 순교자 분포 ▲순교지별 분류 한양 (옛 서울, 37명, 29.8%)·경기도 (13명, 10.5%)·강원도 (3명, 2.4%)·충청도 (18명, 14.5%)·전라도 (24명, 19.4%)·경상도 (29명, 23.4%) ▲신분별 분류 양반(60명, 48.4%)·중인(33명, 26.6%)·천민(4명, 3.2%)·신분미상(27명, 21.8%) ▲최연소 12세, 최고령75세 이번 124위 중 연령상으로 12세 이봉금이 최연소자이고 75세 김진후가 최고령자다. 10대는 5명·20대는 15명·30대는 21명·40대는 21명·50대는 19명·60대는 11명·70대는 5명·나이를 알 수 없는 순교자는 27명으로 30~40대에 대다수가 포함돼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124위 순교자 중에는 '베드로'(12명)라는 세례명이 가장 많다. 다음은 '바오로'(9명)·'프란치스코'(9명)·'야고보'(7명)·'안드레아'(7명)·'요한'(6명)·'바르바라'(5명)·'마티아'(3명)·'안토니오'(3명)·'시몬'(3명)·'토마스'(3명)·'마르티노'(3명) 순이다. 기타 세례명으로 요셉·타데오·가롤로 등이 있다.

2014-08-16 04:00:47 김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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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굴렁쇠 소년부터 직장인까지…4400여명 자원봉사자, 현장 곳곳 누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기간 중 4400여명의 신자들이 자원봉사에 나선다. 봉사자들은 현장 곳곳에서 행사진행·외신기자통역·안내데스크 지원·취재진 통솔·환경미화 등의 일을 도맡아 행사의 주요 일원으로 참여한다. 교구별로는 ▲서울대교구 2600여명 ▲대전교구 450명(아시아청년대회 150명·한국청년대회 300명) ▲청주교구 352명 등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서울대교구 준비위원회 봉사자분과 위원장인 김연범 신부는 "지원기간 중 모집 인원의 2배, 많게는 3배의 지원자가 몰리는 등 신자들의 관심이 매우 뜨거웠다"고 전했다. 특히 대전교구에서는 아시아청년대회(AYD)와 한국청년대회(KYD)를 진행하는 만큼 각 대회에 참가한 450여명의 교구신자 전원이 교황 방한 행사를 비롯한 전체 일정에 봉사자로 투입된다. 특히 다양한 이력을 가진 이들이 교황 행사에 참여하고자 자원봉사에 지원해 눈길을 끈다. 88서울올림픽 개막식의 '굴렁쇠 소년'으로 잘 알려진 배우 윤태웅(33·세례명 안토니누스)씨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할 '124위 시복식' 행사에서 소그룹을 이끄는 '청년리더' 역할을 담당한다. 그는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운동인 '꾸르실료'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다 이번 봉사자 모집 소식을 접하고 지원하게 됐다. 윤 씨는 "교황님의 방한 행사중 어디에서든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란다"며 "현장에서 관심을 갖고 찾아온 시민들을 위해 봉사해야 하므로 교황님을 뵙지는 못할 것 같지만 좋은 일에 함께하니 괜찮다"고 밝혔다.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에서 부사관으로 근무 중인 현역 군인 변무근(24·세례명 마르첼리노)씨도 15~16일 연휴를 이용해 자원봉사자에 합류한다. 시복식 등 대규모 인원이 몰리는 현장에서 봉사업무를 진행할 것으로 예정돼 있다. 그는 "무더위로 주위에서도 걱정이 많지만 '더위'는 군인으로서 익숙한 환경이라 내겐 문제 없다"고 각오를 전했다. 휴가를 반납한 직장인도 있다. 김승현(34·세례명 데레사) 씨는 외국계 제약회사 IT부서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대학시절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가 쌓은 영어실력으로 내외신 기자들이 머무는 메인 프레스센터에서 취재진 지원업무를 담당할 예정이다.

2014-08-16 03:26:38 정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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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현재 한국 천주교회는?

지난해 12월 31일을 기준으로 한국 천주교회 신자는 총 544만2996명이다. 이는 총 인구 5212만7386명의 10.4%의 비율이며 2003년부터 지난 10년간 총 인구 대비 천주교 신자 비율은 소폭이지만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또 신자의 연령대는 50~54세가 전 신자의 10.1%로 가장 많다. 아동·청소년 연령기인 10~19세 신자는 모두 46만5007명으로 전체의 8.5%이며 65세 이상 노인 신자의 비율은 전 신자의 15.9%에 해당한다. 2013년 한국교회 영세자는 모두 11만8830명으로 한해 평균 10만 명이 넘는 이들이 영세를 받고 있다. 세례 유형은 ▲유아 세례(21.5%) ▲어른 세례(73.3%) ▲대세(5.2%) 등이다. 총 신자 대비 주일 미사 참례율은 21.2%로 이는 전년 대비 5.1% 하락한 수치다. 아울러 영세자 수는 전년 대비 10.0%, 혼인 건수는 6.2%의 감소율을 기록했으며 성사혼과 관면혼의 비율은 38.3%대 62.4%다. 이와 함께 한국 교회는 전국에 1668개 본당과 791개 공소를 보유하고 있다. 또 전체 성직자 수는 추기경 2명을 포함해 주교 36명, 한국인 신부 4695명, 외국인 신부 170명이다. 수도자는 총 165개 수도회에 1만1737명이며 한국 성직자 중 교구 신부는 3995명, 수도회 신부는 697명, 선교회 신부는 173명이다. 전국의 신부 1인당 평균 신자 수는 1119명이며 교구 사제 가운데 본당 사목에 종사하는 사제 수는 2125명으로 전체 신부의 53.2%에 해당한다. 여기에 특수 사목이 22.8%(910명), 국내외 연학이 4.7%(187명), 교포 사목이 4.3%(173명), 군종이 2.3%(92명)이며 1957년에 반포된 회칙 '피데이 도눔(Fidei Donum)'에 따른 교구 사제의 해외 파견은 2.1%(82명), 원로 사목자는 6.7%(269명)다.

2014-08-16 03:23:01 황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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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민족과 함께 해 온 한국 천주교

한국 천주교는 외국에서는 유례가 없는 평신도의 탐구에 의해 시작된 태생적 특징이 있다. 또 수많은 순교자의 목숨을 건 순교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이에 한국 천주교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봤다. ◆자생적으로 태동한 한국에서의 천주교 17세기 초 중국 예수회 선교사들이 한자로 저술한 천주교 관계 서적들이 조선에 들어오며서 '서학'이라는 새로운 학풍이 태어났다. 이는 실학사상을 토대로 서양 기술을 도입하는 실천적인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종교운동으로 이어졌다. 초기 신앙인들의 이런 활동으로 당시 조선 땅에는 성직자나 선교사 없이 신자 수가 5년 만에 4000명으로 늘어났으며 이렇게 한국 천주교회는 자생적으로 태동했다. 평등과 제사 금지령 등으로 조정의 혹독한 탄압과 박해를 받게 됐지만 당시 신앙인들의 용기가 교회 공동체를 보호하면서 조선 땅에 천주교의 씨앗을 뿌린 셈이다. ◆세계 사랑의 손길을 받아 식민지 시대를 거쳐 1950년 시작된 한국전쟁은 교회는 물론 한국 민족 전체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모든 것을 잃고 깊은 좌절 속에서 신음하는 우리 국민을 위해 세계교회가 사랑의 손길을 내밀었다. 세계 교회의 애덕의 실천은 한국 교회와 민족이 자신의 종교·사회적 생명력을 회복하는 밑거름이 됐다. 특히 세계 전역의 가톨릭교회에서 많은 사제와 수녀 선교사들이 파견됐으며 재정적으로도 미국 가톨릭구제회와 독일 미제레올, 오스트리아 부인회 등이 나눔의 은혜를 베풀었다. 이후 한국 교회는 단순 보조에서 자립형 개발 지원 방식으로 지원 형태를 변경해 갔으며 외국의 원조를 민족의 사회·경제·문화적 역량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후에 원조를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역할을 전환하는 계기가 된다. ◆사회 복지 사목을 통한 지역사회의 복음화 천주교가 20세기 한국 사회의 근대화에서 가장 크게 기여한 부문 중 하나는 '사회 복지'다. 소록도와 나자로 마을, 꽃동네로 대변되는 한국 교회의 '돌보는 사목'은 한국 근대화에 기여한 분야 순위에서 첫째를 차지할 만큼 높이 평가받고 있다. 또 1989년 10월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성체대회'를 준비하면서 서울대교구가 '한마음한몸운동'을 시작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나눔을 현대 세계에 육화시키고자 하는 기본 취지를 갖고 있었다. 이에 이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됐으며 이후 입양 결연 및 헌혈운동, 장기·조혈모세포 기증 등과 같은 생명나눔운동과 환경운동 등의 토대가 됐다. ◆민족의 운명에 동참한 교회 이와 함께 교회는 한국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며 사회적 위상을 제고하고 있다. 1962년 전국위원회를 조직한 'JOC(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는 군부독재의 암울한 상황에서 소외된 노동자 권익을 옹호하며 가톨릭 노동운동을 대중화했으며 1987년 인천교구 사제단의 호헌 철폐 및 민주 개선을 갈구하는 단식 돌입, 김수환 추기경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 조작 발표 등은 민족의 운명과 함께한 한국 교회의 업적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 가톨릭농민회 창설로 시작된 농민운동, 모자보건법 폐지운동, 사형폐지 운동 등도 빠뜨릴 수 없으며 이런 활동을 통해 한국 천주교회는 신뢰를 주는 교회로 사회적 위상을 갖게 됐다.

2014-08-16 02:15:42 황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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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교황, 아시아 청년들에게 '용기·희망' 강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이틀째인 15일 오후 아시아청들과의 만남을 위해 충남 당진의 솔뫼성지로 향했다. 솔뫼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생가로 교황은 이곳에서 헌화와 짧은 기도를 했다. 교황을 보러 온 사람들과 인사를 한 뒤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을 위해 자리를 옮겼다. 이자리에는 한국 청년 4000여명을 포함, 아시아 지역 23개국에서 온 6000여명의 청년이 함께 했다. 캄보디아·홍콩·한국 청년들은 대표로 성소(하느님께 받은 소명), 선교, 가치관을 주제로 교황에게 질문했다. 교황은 용기와 희망을 강조했다. 교황은 청년들에게 "장벽을 극복하고 분열을 치유하며 폭력과 편견을 거부하는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다양성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뤄 더 풍요롭게 하는 일치를 이루도록 부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교황은 이어 "우리를 괴롭히는 사회의 빈부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우리 삶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는 물질과 권력, 쾌락 숭배의 징후들을 본다"라며 "우리 가까이에 있는 많은 친구와 동료들이 엄청난 물질적 번영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빈곤·외로움·절망감에 고통 받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그러나 여러분은 바로 이러한 세상 속으로 나아가 희망의 복음과 하느님 나라의 약속을 전하고 증언하라는 부름을 받았다"며 "모든 인간의 마음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그 어떠한 상황도, 가장 절망적인 상황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복음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바로 이것이 학교·직장·가정·지역 공동체 안에서 여러분이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나눠야 할 메시지"라고 청년들에게 조언했다. 다음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시아 청년들과 만난 자리에서 연설한 내용의 전문이다. ◆사랑하는 젊은 친구 여러분,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마태 17,4). 이는 성 베드로 사도가 타보르산에서 영광 속에 변모하신 주님께 드린 말씀입니다. 정말 우리가 오늘 이곳, 한국 교회 초기에 주님의 영광을 드러낸 순교성지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아시아 전역의 젊은이들이 함께 모인 이 대회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에 계심을, 모든 국가와 언어와 민족을 포용하는 교회 안에 계심을, 그리고 모든 것을 새롭게 젊게 살아있게 하시는 성령 안에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따뜻한 환대와 열정, 즐거운 찬양, 신앙 고백, 그리고 여러분의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를 보여준 아름다운 공연에 모두 감사 드립니다. 특별히 여러분의 희망과 문제와 관심사들을 저와 함께 나누었던 세 젊은이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으며, 이를 마음속에 간직하겠습니다. 유흥식 라자로 주교님의 소개 말씀에도 감사 드리며 여러분 모두에게 마음을 다하여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제 6차 아시아 청년대회 주제의 일부인 "순교자의 영광이 너희를 비춘다"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주님께서는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증언을 통해 당신 영광을 비추셨던 것처럼, 여러분의 삶에서 당신의 영광이 빛나게 하시고, 또 여러분을 통하여 아시아 대륙에 생명의 빛을 밝히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오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일어나 깨어있으라고, 또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깨달으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 밖으로 나아가 다른 이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그들의 삶 안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초대하라고 요청하고 계십니다. 아시아 청년들이 모이는 이 훌륭한 대회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 안에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 곳곳에서 모인 젊은이들과 함께, 우리 모두가 평화와 우정을 나누며 사는 세상, 장벽을 극복하고 분열을 치유하며 폭력과 편견을 거부하는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입니다. 교회는 전 인류의 일치를 위한 씨앗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국가와 민족들이 일치를 이루도록, 그러나 다양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성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어 더 풍요롭게 하는 일치를 이루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 놀라운 전망과 계획으로부터 얼마나 동떨어져 있습니까! 우리가 뿌리려는 선행과 희망의 씨앗이, 우리 주변뿐 아니라 바로 내 마음 안에 있는 이기심, 적대감, 불의라는 잡초에 질식해 버리는 경우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를 괴롭히는 사회의 빈부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는 물질과 권력, 쾌락 숭배의 징후들을 우리는 봅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많은 친구와 동료들이 엄청난 물질적 번영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빈곤, 외로움, 남모를 절망감에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 하느님의 자리는 더 이상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정신적인 사막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청년들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희망을 앗아가고, 많은 경우에 삶 그 자체를 앗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바로 이러한 세상 속으로 나아가 희망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약속을 전하고 증언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하여,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하느님 나라가 조용히 와서 소리 없이 자라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영은 모든 인간의 마음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그 어떠한 상황도, 가장 절망적인 상황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복음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학교, 직장, 가정, 지역 공동체 안에서 여러분이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나누어야 할 메시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요한 6, 68). 주님의 말씀에 모든 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악을 선으로 이기며 세상을 바꾸고 구원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는 젊은 친구 여러분, 이러한 시대에 주님께서는 바로 여러분에게 의지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세례를 받던 그날 여러분의 마음에 들어오셨고, 견진을 받던 그날 여러분에게 성령을 내려주셨습니다. 또한 성체 안에 현존해 계시면서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힘을 주시어 여러분이 세상 앞에 주님을 증언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주님께 "예' 하고 대답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정말 준비 되셨습니까? 이제 여러분이 진실되고 기쁜 마음으로 복음을 증언할 수 있는 방법 세 가지를 제안해 드리겠습니다. 이 세가지를 늘 생각하시고 여러분 삶의 원칙이 되게 하십시오. 첫째,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힘을 믿으십시오. 그분 말씀의 진리와 은총의 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주님의 파스카로 세례를 받았으며, 우리 마음에 살아 계시는 성령의 힘으로 견진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힘을 결코 의심하지 마십시오. 둘째, 날마다 기도 안에서 주님과 가까이 지내십시오. 하느님을 경배하십시오. 주님께 대한 경배를 잊지 마십시오. 주님의 성령이 여러분의 마음을 들어올려 아버지의 뜻을 알고 실행하는데 도움을 주시게 하십시오. 성체 성사로부터 기쁨과 힘을 얻으십시오.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를 받아, 여러분 마음이 순수함을 잃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게 하십시오. 본당의 일에 적극적으로 열심히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사랑의 복음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해 사랑의 실천에 참여하십시오. 마지막으로, 복음에 반대하는 수많은 유혹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으니, 여러분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가 그리스도 말씀의 지혜와 진리의 힘으로 인도되게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이 모든 일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고, 또 매일매일 당신이 여러분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 알려 주실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사제직이나 수도생활로 당신을 섬기도록 부르신다면, 두려움 없이 "예"하고 대답할 수 있는 은총도 함께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행복과 완성을 향한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제 제가 가야 할 시간입니다. 주일 미사 때 여러분을 다시 만나 이야기 하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도록 강복해 주신 주님께 감사 드리고, 아시아와 전 세계에 주님의 사랑을 기쁜 마음으로 충실히 증언할 힘을 주시도록 간청합시다.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여러분을 보살펴 주시고 여러분이 그 아들 예수님 곁에 늘 가까이 머물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또한 세계 청년 대회를 처음 시작하신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하늘로부터 항상 여러분을 이끌어 주시기를 빕니다. 크나큰 사랑으로 여러분에게 저의 강복을 드립니다.

2014-08-16 01:23:52 김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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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광화문 시복미사 '이모저모'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을 거행한다. 시복 예식은 미사 초반, 참회 예식과 자비송을 바친 후에 시작한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안명옥(천주교 마산교구장) 주교와 124위 순교자 시복 건의 로마 주재 청원인으로 일해 온 김종수(로마 한인 신학원장) 신부가 시복청원을 하고 교황의 시복 선언이 이어지면 124위 복자화가 처음 공개된다. 신자들이 낭독하는 보편지향기도는 한국어·영어·중국어로 진행하며 고등학생·신학생·중국인 사제·수녀·임산부인 성당 주일학교 어머니 교사 등이 한 주제씩 맡아 낭독할 계획이다. 이외에 광화문에서 열릴 시복 미사 현장의 이모저모를 모았다. ◆거리는 가깝게, 미사는 간소하게 시복식은 최대한 소박하고 간소하게 진행한다. 일례로 봉헌예식에는 전례에 필요한 내용 이외의 다른 봉헌을 하지 않는다. 전례에 관한 모든 사항은 교황청 전례원과 협의를 거쳤다. 신자들과 직접 만나 교감하기를 원하는 교황의 뜻에 따라 교황과 시민의 거리는 최대한 좁혔다. 교황방한준비위원회(위원장 강우일 주교)는 이날 시복식 행사를 위해 가로 7m·세로 1.5m·높이 0.9m의 제대를 설치했다. 제대 뒤로는 주문 제작한 십자가(가로3.6m·세로 4.6m)가 설치되고 행사장 곳곳에는 LED 전광판 24대를 둬 참석하는 교황과 신자들과의 거리감을 최대한 좁힐 계획이다. ◆'한복'입은 성모상·교황좌엔 '건곤감리' 시복미사 제대 한 켠에는 한복을 입은 성모상이 놓인다. 복건을 쓴 아기예수와 비녀를 꽂은 성모가 한복을 입고 인자한 미소를 띤 것이 특징이다. 교황이 미사 중 앉을 의자에는 '건곤감리' 4괘를 새겼다. 미사에서 교황은 라틴어를 사용하며 신자들은 한국어로 응답한다. 강론은 교황이 이탈리아어로 전하면 단락별로 한국어로 순차 통역된다. ◆전국 16개교구 추첨으로 참가구역 결정 교황방한준비위원회는 시복미사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에서 서울광장(대한문)까지 1.2㎞를 6개 구역(S, A~E)으로 나누고 지난 6월 20일 전국 16개 교구 담당자들이 참석해 교구별 착석 구역을 배정하기 위한 추첨을 실시했다. 그 결과 교황이 자리하는 제대(광화문 앞)에서 가장 가까운 A구역에 배정된 교구는 춘천·원주·안동·인천 등 4개 교구로 결정됐다. ◆자원봉사자만 5000여명·제병 18만개 준비 시복미사 자원봉사에 나서는 이들은 무려 5000여명에 달한다.이들은 행사장 안내와 미사전례, 환경미화와 지방에서 올라오는 버스 1600여대의 주차관리 등을 담당한다. 성체분배는 평신도 700여명, 성직자 200명 등 900여명이 한다. 이들이 신자들에게 분배할 제병(밀가루로 만든 빵으로 미사 중 사제의 축성 후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한다)만 18만 개가 준비됐다. ◆새벽4시 입장, 입장권·신분증 지참해야 시복식 참가자들은 행사 시작 전 행사장 곳곳에 설치된 13개 출입구를 통해 입장한다. 입장은 새벽 4시부터 오전 7시까지 진행되며 안전을 위해 유리병 제품·페트병 음료· 플라스틱 재질의 음식 용기·우산 및 금속성 물건은 제한된다. ◆식수대·물품비치대 부스 25개 입장을 마친 참석자들에게는 모자와 방석·전례 예식서·서울 천주교순례길 가이드북 등이 전달된다. 깔끔한 뒷마무리를 위한 쓰레기봉투도 함께 나눠준다. 의료진과 식수대, 물품 비치대 등이 있는 부스는 행사장 안에 10개, 밖에 15개가 설치된다. ◆버스·지하철 등 일부 우회 운행 시복미사 당일 서울과 수도권 지하철은 오전 4시 30분부터 조기 운행된다. 다만 이날 시복미사가 완전히 끝나는 오후 1시께 까지는 행사장 구역 내의 모든 역(시청역·경복궁역·광화문역)에서 열차가 무정차 통과한다.

2014-08-15 23:01:22 김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