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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왜 스팸메일이라고 할까?

무더기 광고성 메일을 스팸메일이라고 한다. 스팸은 햄 통조림 상표인데 왜 엉뚱하게 광고성 전자우편에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스팸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햄 대체 통조림이다. 미국 식품회사인 호멜사에서 햄 통조림을 개발했는데 통조림 제조 후 남는 돼지 어깨살이 처치곤란이었다. 부산물로 골치를 앓던 호멜사는 1937년, 다진 어깨살에 햄과 소금, 전분을 섞어 햄 대체 통조림을 만들었다. 바로 스팸(SPAM)이다. 돼지 어깨살과 햄(Shoulder of Pork And Ham)에서 따온 브랜드다. 싸구려 돼지 어깨살을 고부가가치의 햄 통조림으로 바꾼 것이다. 스팸이 나온 지 2년 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영국은 전시 배급제를 도입했고, 햄 역시 통제품목에 포함됐다. 반면 햄 대체 통조림 스팸은 배급 종목에서 제외되면서 전쟁 중 연합군과 영국 국민에게 무제한 공급됐다. 전시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 된 것이다. 영국은 전쟁이 끝난 후 1954년까지 배급제를 유지했는데, 햄은 배급제에서 풀려나지 못해 계속 통조림을 먹어야 했다. 영국인들이 드디어 통조림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음식점 메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스팸 통조림을 풍자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BBC 방송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쓸데없이 넘쳐나는 물건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게다가 영국에서 PC통신시대에 코미디 프로그램의 스팸 대사를 인용해 게시판을 어지럽힌 사람까지 등장했다. 이런 사람을 스팸이라고 불렀다. 이후 인터넷 시대가 열리며 쓰레기 메일을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 전쟁 때 허기를 달래주던 스팸이 졸지에 오명을 뒤집어썼다. 세상일이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음식문화평론가

2013-09-05 09:05:09 안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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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전어 값이 비단 한 필?

전어는 가을이면 아무리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사먹는 생선이기에 얻은 이름이다. "육질이 부드러워 씹어 먹기가 좋으며 기름이 많고 맛이 좋다. 상인들이 소금에 절여서 서울로 가져와 파는데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모두 좋아하므로 사는 사람이 값을 생각하지 않고 사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한다." '난호어목지'에 나오는 설명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가을 전어는 수요가 많아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었다. 조선 중기, 경주에서는 가을 전어를 명주 한 필을 주고 바꾸고 평양에서는 겨울 숭어를 정포 한 필로 바꾼다고 했다. 예전에는 경상도에서 전어가 많이 잡혀 경주에서 진상했지만 지금은 전어가 잡히지 않음에도 진상품목에 들어있기 때문에 비단 한 필 값을 지불하면서라도 시장에서 전어를 사다가 한양으로 진상을 해야 한다는 비판이다. 전어가 주로 잡히는 곳은 서해안이다. 지금도 가을이면 주로 충남 서천의 홍원항, 전남 광양의 망덕포구, 전남 보성의 율포항 등에서 전어축제가 열린다. 조선왕조실록 지리지에서 모두 특산물로 전어를 꼽았던 지역이다. 그런데 전어를 공물로 바쳤던 곳은 엉뚱하게 경주였으니 현지 전어 시세가 비단 한 필 값까지 치솟았다. 그렇지 않더라도 가을이면 전어 찾는 사람이 많아 옛날에도 가격이 비싸졌다. 조선 중기 '쇄미록'에도 "듣자니 시장에서 큰 전어 한 마리의 값이 쌀 석 되 값"에 이른다고 적었다. 가을 전어 값 비싼 것이 각종 기록에 수록될 정도였으니 돈(錢) 생선(魚), 전어라는 이름이 지어질 만도 했다. 요즘, 때 이른 풍어로 전어 값이 많이 떨어졌다니 사 먹는 입장에서는 반가울 뿐이다./음식문화평론가

2013-08-28 14:28:38 안용기 기자
[이선호의 베이스볼 카페]이치로의 부상방지 본능

스즈키 이치로(40·뉴욕 양키스)가 얼마 전 개인통산 4000안타를 때렸다. 메이저리그에서 4000안타를 넘긴 선수는 피트 로즈(4256개)와 타이 캅(4189개)이었다. 그런데 일본 안타수가 포함돼 있어 메이저리그 4000안타와 견주기는 어렵다는 논란이 벌어졌다. 만일 이치로가 일본 오릭스가 아닌 1994년부터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경기수(162경기) 때문에 훨씬 많은 안타를 기록했을 수 있다. 이치로는 2001년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평균 200개가 넘는 안타를 때렸으니 어쩌면 로즈의 기록을 넘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그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베스트 툴스 플레이어'다. 탁월한 컨택 능력, 내야 안타 생산력까지 더해 안타 부문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빠른 발을 이용한 주루와 폭 넓은 수비력, 강한 어깨까지 갖췄고 경기를 읽는 영리함도 갖췄다. 더욱 높은 평가를 받는 대목은 노력과 성실성이다. 그는 풀타임 주전으로 발돋음한 1994년부터 정확하게 20년 동안 단 한번도 부상 장기 이탈이 없었다. 그만큼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훈련패턴은 언제나 똑같다. 오히려 음식은 편식이 있는 편이다. 야채보다는 불고기를 좋아하고 아내가 만들어준 카레를 즐기는 정도다. 그의 모토는 부상예방이다. "다치고 후회하지 않게끔 미리 예방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일어나서 잘 때까지 시계추처럼 똑같은 패턴을 갖고 있다. 야구장 도착과 훈련시각은 한치의 틀림도 없다. 허리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소파 대신 딱딱한 의자를 사용한다. 아울러 유연성을 기르는 훈련을 중시한다.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은 피하고 심지어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스파이크 대신 슬리퍼를 신는다. 심지어 끝내기 승리 직후 선수들끼리 격하게 몸을 부딪칠 때도 다치지 않도록 미리 충격완화를 생각한다고 한다. 이것이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로서 자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상이 많은 한국 선수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자세가 아닌가 싶다. /OSEN 야구전문기자

2013-08-26 17:21:10 유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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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사이다는 원래 사과술

무색투명한 탄산음료를 우리는 사이다(cider)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영어사전에는 사과술, 혹은 사과즙이라는 뜻으로 나온다. 톡 쏘는 맛의 탄산음료, 청량음료라는 의미는 전혀 없다. 본고장인 서양에서는 사과술을 나타내는 단어가 왜 한국에서는 엉뚱하게 탄산음료를 가리키는 단어로 변신했을까? 먼저 탄산음료를 뜻하는 사이다는 일본에서 만들어져 전해진 단어다. 그렇기 때문에 사과술인 사이다를 탄산음료라는 뜻으로 쓰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일본에서 사이다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에도시대 말기다. '닛케이(日經) 디자인'이라는 잡지에 의하면 1868년 영국의 무역회사가 요코하마에서 샴페인 사이다라는 음료를 판매했는데 이것을 줄여서 '사이다'라고 불렀다. 샴페인 사이다의 정체는 탄산음료가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사과술로 만든 발포성 알코올 음료, 그러니까 스파클링 와인 종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까지는 사이다라는 이름이 제대로 쓰였다. 하지만 샴페인 사이다를 줄여서 사이다라고 부르는 과정에서 사과술이라는 의미는 사라지고 톡 쏘는 성분만 강조됐다. 1899년 요코하마에서 당시로서는 새로운 음료인 탄산음료가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때 마실 때 톡 쏘는 음료라는 것을 강조하는 뜻에서 사이다라는 상표를 붙였고 이 음료가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팔리면서 사이다가 사과술 대신 탄산음료를 뜻하는 단어로 굳어졌다. 우리나라에는 한일합방 이전인 1905년, 조선 거주 일본인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탄산음료가 처음 들어왔다. 그리고 해방될 때까지 일본인들이 탄산음료를 독점 생산하면서 역시 사이다가 탄산음료를 가리키는 단어가 됐다./음식문화평론가

2013-08-21 13:02:10 안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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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식후에 왜 사탕을 먹을까?

보통 식후에는 먹는 디저트로는 과일이나 초콜릿, 사탕처럼 달콤한 음식이 많이 나온다. 특히 따로 후식을 내오지 않는 대중음식점에서는 식후 입가심하라고 계산대에 박하사탕 종류를 놓는다. 밥 실컷 먹었는데 살찌게 왜 또 사탕이냐며 타박하는 사람까지 있는데, 왜 하필 사탕을 주는 것일까? 단순하게 입가심하라거나, 아니면 소화를 돕는다는 이유가 전부일까? 사탕의 역사를 알면 음식점에서 왜 사탕을 주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요즘 사탕은 아이들의 충치를 유발하고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눈총을 받고 있지만 옛날 사탕은 원래 약이었다. 건강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지켜주는 식품이었다. 게다가 요즘은 아이들 군것질거리에 불과하지만 옛날에는 귀족이나 부자 아니면 언감생심, 감히 먹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고급 사치음식이었다. 때문에 설탕이 처음 유럽에 소개됐을 때는 값이 비싸 주로 약국에서 의료 목적으로 쓰였다. 유럽에서는 주로 기침, 감기, 가슴 통증, 오한 등 겨울철 감기치료에 특효가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부자들의 식후 소화제로도 사용했다. 유럽의 귀족들은 배불리 먹고 난 후에는 소화를 시킨다며 사탕이나 설탕에 절인 과일을 침실로 가져가는 풍속이 있었다. 남미에서 초콜릿이 전해진 후에는 사탕 대신 초콜릿을 먹었으니 요즘 디저트로 초콜릿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사탕과 약은 발달의 역사가 같다. 중세 의사들은 약의 고약한 맛을 없애기 위해 설탕을 입혀 딱딱하게 만들었다. 현대 당의정(糖衣錠)의 뿌리이자 사탕의 원조다. 약초의 쓴 맛을 없앨 뿐만 아니라 설탕 자체가 약이었으니 일석이조였던 것이다. 사탕과 당의정은 뿌리가 같은 셈이다. /음식문화평론가

2013-08-08 09:10:38 안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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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 스토리]불도장, 스님이 담장을 넘었다?

불도장, 스님이 담장을 넘었다? 불도장은 중국의 여름 보양식이다. 길 가던 스님이 집 건너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담장을 뛰어넘고 파계했다는 음식이다. 부처 불(佛)·뛸 도(跳)·담장 장(墻)자를 써서 '스님이 담장을 넘었다'는 희한한 요리 이름이 여기서 비롯됐다. 불도장은 어떤 음식일까? 제대로 만들면 모두 서른 가지의 재료가 들어간다. 샥스핀·전복·해삼·사슴꼬리·생선입술·자라 등의 고대 산해진미와 버섯· 죽순·구기자 등 각종 약재를 전통 명주인 소흥주 항아리에 담아 연잎으로 밀봉한 후 다섯 시간 넘게 고아 만든다. 불도장은 왜 유명해졌을까? 부자들의 값비싼 음식 때문도 아니고, 스님이 파계할 만큼 맛있기 때문도 아니다. 분명한 사실은 음식 때문에 담장을 넘은 스님은 없었다. '항아리 뚜껑 여니 음식향기 사방에 진동하고/길 가던 스님, 참선도 포기하고 담장을 넘었다네.' 맛에 반한 손님이 지었다는 시로 불도장이라는 이름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문학적 창작의 결과다. 널리 알려진 중국 요리 치고는 역사도 짧다. 기껏 백년을 조금 넘었을 뿐이다. 청나라 말기 푸젠성의 금융기관 책임자가 상급 감독관청 관리를 접대하려고 만든 것이 효시다. 지방요리에 불과한 불도장이 세계적 명품 요리가 된 직접적 계기는 중국 외교 덕분이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만찬음식으로 불도장을 준비했다. 여기에 스님이 담을 넘었다는 허구의 스토리까지 더해져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이 됐다. 불도장 이야기에서 중국의 문화와 역사가 만들어 내는 소프트파워가 느껴진다. 앞으로 다가 올 차이나 쇼크는 중국의 경제력이 아니라 문화의 힘이 아닐까 싶다.

2013-08-01 11:34:22 허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