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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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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은 책과 함께] 지금 당장, 정의 실현 外

◆지금 당장, 정의 실현 황준서 지음/오월의봄 식물학자 아서 갤스턴은 1943년 '2,3,5-트리오도벤조산'이라는 화합물을 흡수한 식물은 성장이 빨라지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모든 잎을 떨어뜨리며 말라 죽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뜻하지 않게 그의 연구 결과는 인간을 대량 학살하는 무기 개발에 활용됐다. 미국은 베트남전쟁 당시 대량의 '고엽제'를 살포했다. 베트남의 마을 2만여곳에서 약 400만명이 고엽제에 노출돼 40만명이 숨졌다. 자신의 연구로 인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데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갤스턴은 고엽제 무기화 반대 운동의 선봉에 섰다. '제노사이드'에서 착안해 '에코사이드'란 용어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렸고, 미군의 고엽제 살포는 "인류에 반하는 범죄"라고 주장했다. 범죄를 저지른 권력은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빠져나갔다. 책은 에코사이드를 처벌할 근거를 '지금 당장' 마련하는 게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300쪽. 1만8000원. ◆당신은 제게 그 질문을 한 2만 번째 사람입니다 오혜민 지음/날 "제가 여성혐오자라고요? 저 여자 엄~청 좋아하는데", "왜 남자를 잠재적 범죄 가해자로 몹니까?", "미투 때문에 나도 '무고'의 피해자가 되는 거 아닌가요?" 페미니스트라면 지긋지긋하게 들었을 질문들이다. 한국은 여느 나라보다 페미니즘 백래시가 심한 나라다. 자신의 정체성을 페미니스트로 규정하면 삶의 난도가 높아진다. 이유도 모른 채 공격당하기 일쑤고, 질리도록 같은 질문에 시달린다. 질문자들은 정말 궁금해 묻는 걸까. 책은 페미 교수와 반페미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마주한 질답들로 구성된 페미니즘 입문서다. "페미니즘이 남자들을 죽이려 든다"는 해괴한 유언비어를 믿는 이들, 온라인상에 떠도는 실체 없는 '상상 페미'가 남성을 괴롭힌다는 헛된 망상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176쪽. 1만6800원. ◆가족신분사회 가족구성권연구소 지음/와온 2005년 2월 3일, 헌법재판소는 호주제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가장에게 가족 내 친권과 재산권 등을 독점케 하고 그것을 남성 직계 비속에게 우선 세습하는 호주제 폐지로 우리는 조금이나마 평등한 세상을 살게 됐을까. 한국사회 성차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오던 호주제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유산은 수많은 법제도에 남아 변함없이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한국사회는 이성애자로 이뤄진 '정상 가족'을 구성해 사회적 '신분'을 획득할 것을 개인에게 요구한다. '혼인, 혈연, 입양으로 엮인' 관계만을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고, 이에 부합하지 않는 자들은 법망의 보호 밖에서 불평등과 차별, 낙인을 경험한다. 책은 이러한 한국사회를 '가족신분사회'로 명명하고, 호주제 폐지 이후 20년간의 한국가족정치사를 파헤친다. 312쪽. 1만8000원.

2025-02-06 14:26:53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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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은 책과 함께] 여행, 혹은 여행처럼

정혜윤 지음/난다 직장인들은 대개 여행을 지긋지긋한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여긴다. 여름휴가를 떠날 때 기를 쓰고 해외로 나가는 이유는 일상의 상흔이 짙게 남은 '한국이 싫어서'일수도.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저자 정혜윤은 여행을 일상의 탈출로 보는 의견에 반대한다. 그는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의 매 순간을, 여행지에 온 여행자의 태도로 살 것을 권한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목표 따윈 생각 않고 더 알고 더 느끼는 데서 단순한 기쁨을 느낀다. 반면 삶 속에선 수많은 것들을 오로지 수단으로 삼는다. 여행지에서 우린 낯선 사람에게 포기하지 않고 친절을 베푼다. 허나 삶 속에선 친절함을 기대하는 손길을 뿌리치고 타인과 소망을 나누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확실한 길만 찾아가지 않는다. 이와 달리 삶 속에선 확실한 것만 찾는다. 정혜윤은 세상천지 어디를 가더라도 결국은 장소가 아닌 그 자신이 세상에 유일한 여행지인 순간이 있다고 말한다. 그가 여행을 주제로 쓴 인터뷰집 '여행, 혹은 여행처럼'에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고향 땅 밖을 벗어나 보지 못한, 그러나 밤마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혼자 읽기 아까워 소개한다. 사연의 주인공은 충청북도 음성군 노인종합복지관의 시문학 동아리 회원들이다. 시 창작 교실 맨 앞자리에 앉은 한충자 할머니는 일흔두 살까지 문맹이었다. 딸이라 하면 그저 집에서 귀여워하면 되는 줄로 알았던 부모는 여자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25살이 되던 해 그녀는 먼 친척의 중매로 옆 동네로 이사 갔다. 시집은 가난했고, 식구가 많았다. 딸이 굶어 죽을까 봐 출가시킨 후 하루도 편히 자지 못했던 친정 엄마는 딱 한 번 딸네 집에 찾아왔다. 그저 손자만 안고 들여다보고 있다가 얻어다 준 국수 한 그릇을 서서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곤 며칠 뒤 돌아가셨다. 이 일은 평생의 슬픔이 됐다. "이대로 늙을 순 없다!"라는 구호를 노트북 앞에 붙여 놓은 정반헌 할머니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살면서 시 비슷한 것을 써본 적은 없지만, 다른 걸 끼적여 본 기억은 있다. 쇠죽을 끓이다가 막대기로 쇠죽에다가, 밥을 짓다가 부지깽이로 흙바닥에 이렇게 썼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도 교복 입고 학교에 가고 싶다" 부모에게 털어놓으면 속상해할 말, 친구에게 고백하면 미쳤다는 소릴 들을 이야기가 쇠죽의 뽀글거리는 거품 위에, 부엌의 흙바닥 위에 쓰였다가 사라졌다. 정혜윤은 "그녀들이 시를 심는 땅의 이름은 삶이었다. 동시에 그녀들이 뿌리는 씨앗도, 쓰는 시도 삶이었다"고 말한다. 284쪽. 1만2000원.

2025-02-06 14:20:20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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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잘 지내길 바라"

이별은 흔적을 남긴다. 특히 사랑이 짙을수록 헤어짐의 생채기도 깊다. 흔히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는 말로 위로하지만, 사랑하는 이와 작별한 이들에겐 공허함만 부풀릴 뿐이다. 사랑과 상실은 동일한 서사 안에서 반복됨을 모르진 않음에도 그렇다. 프랑스 개념 미술가 소피 칼(Sophie Calle)은 사랑과 이별이라는 일상적 경험을 재치 있는 방식으로 풀어 미술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내용은 이렇다. 그녀는 2004년 연인으로부터 헤어지자는 편지를 받았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사랑한다면서도 갈라서길 원하는 듯한 편지에 칼은 대체 어떻게 답장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마지막에 쓰인 "Take care of yourself(잘 지내길 바라)"라는 문장은 꽤나 혼란스러웠다. 다시 만나자는 것 같기도 하고 떠나겠다는 것 같기도 한, 한마디로 이게 무슨 뜻일까 싶었다. 이에 소피 칼은 그 편지를 문학가, 철학자, 기자, 정신 분석가, 배우, 가수, 변호사, 음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여성 107명에게 각자의 전문적 관점으로 분석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철학자는 사랑과 이별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펼치며 편지 속 문장이 어떻게 윤리적·존재론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살폈고, 정신 분석가는 편지를 보낸 사람의 심리 상태와 무의식적 의도를 추론했다. 이 밖에도 댄서는 춤을, 가수는 노래를, 변호사는 법적인 관점에서 책임과 계약적인 요소를 뽑아냈다. 소피 칼은 그 결과물과 과정을 글과 사진, 영상 등으로 기록했다. 전시를 열고 책을 만들었다. 이후 그의 '이별 극복기'는 거대한 다원 예술 프로젝트로 완성됐다. 바로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 국가관에서 처음 공개된 'Take care of yourself' 프로젝트이다. 개념 미술의 중요한 특징인 텍스트와 다중 해석 가능성에 주목한 이 작업은 '부재'를 화두로 한 전작들의 연장이다. 그녀는 1981년 베니스의 한 호텔 객실 청소부로 일하며 손님이 나간 객실을 촬영해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자취를 담은 'L'Hote'(호텔, 1981)이라는 작품을 만든 적이 있다. 에펠탑에 작은 방을 설치해 놓고, 방문객들과 같이 누워 대화를 나눈 작업 'Room with a View'(전망 좋은 방, 2002)에서마냥 'Take care of yourself' 프로젝트 역시 누군가의 참여로 이뤄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베니스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성을 몰래 따라다니며 그의 행적을 기록한 'Suite Venitienne'(베니스의 추적, 1980)이나, 자신이 타인의 관찰 대상이 되는 경험을 다룬 'The Shadow'(그림자, 1981) 등은 'Take care of yourself'와 마찬가지로 사생활과 공적 영역, 관음과 관찰을 넘나드는 구조로 돼 있다.다만 'Take care of yourself'의 경우 이전 대비 사적인 이야기를 사회적·문화적 담론으로 확장시키면서, 예술과 삶의 경계가 보다 얇아진 측면이 있다. 실재를 벗어나 심리의 부재가 더욱 두드러진다는 점, 예술은 더 이상 작가 개인의 내러티브에 머무르지 않고 집단적 해석을 통해 얼마든지 열린 결말이 가능함을 보여준 사례라는 것도 하나의 차이다. 'Take care of yourself' 프로젝트는 1970년대 이후 지속된 페미니즘 미술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디 시카고(Judy Chicago)나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여성적 경험의 재구성과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의 'My Bed'(나의 침대, 1998)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h)의 'The Artist Is Present'(예술가가 여기 있다, 2010)에서처럼 파국적인 연애와 개인적인 상실을 예술적 문법으로 변환하는 과정은 페미니스트 아트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소피 칼은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이별의 아픔도 무뎌졌다고 했다. 그녀는 가슴 아픈 이별을 객관화해 공유함으로써 마음속 상흔을 완전히 털어냈다. 그리고 편지를 보낸 이의 바람대로 잘 지냈다. 아니, 잘 지내고 있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5-02-05 14:37:01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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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남권 주민 66%, 안전 체험관 필요..."안전 교육 인프라 확충해야"

서울 서초·강남·송파·강동구에 사는 시민 10명 중 7명 가까이가 동남권 내 안전 체험관 설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높은 안전 교육 수요에 발맞춰 관련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5일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여론 조사 기관 서던포스트에 의뢰해 작년 10월 18~25일 만 19세 이상 동남권 거주자 1000명 대상으로 벌인 안전 체험관 관련 시민 의식 설문에서 전체 응답자의 66.4%가 동남권에도 안전 체험관이 설립돼야 한다고 답변했다. 특히 자녀가 어릴수록 안전 체험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미취학 아동인 자녀를 둔 응답자 열에 일곱 이상(76.4%)이 동남권에 안전 체험관이 조성돼야 한다고 답했다. 시민 안전 체험관은 소방기본법 제5조에 근거해 시민들의 재난 대처 능력과 안전 의식 함양을 위해 건립된 시설이다. 현재 서울시에서는 광나루 안전 체험관(광진구 능동)과 보라매 안전 체험관(동작구 신대방동)이 운영되고 있다. 서던포스트는 "미혼(66.3%)이거나 자녀가 없는(60.6%) 응답자의 경우에도 과반수가 서울 동남권에 안전 체험관이 설립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며 "어린이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시설의 확충을 희망하는 답변이 많이 도출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안전 체험관이 전 연령을 대상으로 운영 중임에도 프로그램 대부분이 아이들을 타깃으로 운영·홍보돼 성인들도 참가 가능하다는 점이 등한시된 것으로 파악된다"며 "성인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늘리고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동남권에 안전 체험관이 생겨야 한다고 답한 이들은 '재난·안전 체험 활동 공간 필요'(39.7%), '안전 교육에 대한 수요 증대'(32.5%), '학교 안전 교육 자원 부족'(19.1%), '지역적 실태'(8.5%)를 그 이유로 들었다. 서던포스트는 "오늘날 안전 교육에 대한 수요는 점차 증가하고 있으나 교내에는 안전 교육과 관련된 인적·물적 자원 확보가 어려우며 교외에서도 재난 및 안전 체험 활동을 진행할 공간이 부족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동남권 안전 체험관의 운영 방향으로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안전 체험 기회 제공'(52%), '교육 과정과 연계한 다양하고 체계적인 안전 교육 프로그램 개발'(26.5%) '재난·안전 관련 종사자 대상 전문적인 실습형 교육 진행'(12%) 등을 꼽았다. 동남권 안전 체험관 설립에 대한 기대 효과를 살펴보면 '재난 대처 능력 향상'이 78.4점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안전 의식 고취'(77.1점), '가상 재난 체험 기회 확대'(77점) 순이었다. 동남권 안전 체험관 설치와 관련해 전체 응답자 가운데 431명이 주관식으로 답변을 제출했다. '꼭 필요한 시설이며 많이 설립되면 좋을 것 같음'(80명·8%)이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실질적인 안전 교육, 다양한 체험이 진행돼야 함'(74명·7.4%), '이용자를 위한 홍보 확대'(54명·5.4%), '접근성이 좋은 곳에 조성돼야 함'(39명·3.9%)이 뒤를 이었다. 서던포스트는 "동남권 지역의 안전 체험관 설립을 통해 교육 과정과 연계한 다양하고 체계적인 안전 교육이 진행될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 및 관련 프로그램 확보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2025-02-05 14:21:48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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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74)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던 곳...종로 '사직단'

"궐 안에 역도들이 창궐해 나라가 누란지세에 처했다. 그대들은 과인을 도와 역도들을 몰아내고 종묘와 사직을 바로 세우겠는가?" 지난해 MBN에서 방영된 사극 '세자가 사라졌다'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드라마나 영화 등에는 '종묘'와 함께 '사직'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저 두 개념이 국가의 근본을 상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종묘는 사람을, 사직은 신을 모시는 공간이라는 차이가 존재한다. ◆조선의 근본 상징하는 공간, 사직단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사직단을 방문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로 나와 독립문 방향으로 약 337m를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한양 천도를 단행하며 1395년 경복궁 동편에 종묘를, 서편에 사직단을 조성했다. 사직은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며, 사직단은 임금이 토신과 곡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을 의미한다. 사직단 동쪽엔 사단이, 서쪽엔 직단이 설치됐다. 두 단은 한 변의 길이가 7.65m인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는 약 1m다. 이중의 담이 단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안에는 '유'라고 불리는 낮은 담을, 바깥에는 4개의 신문이 세워진 담을 둘렀고, 그 외부엔 제사 준비를 위한 부속 시설을 뒀다. 1910년 전후 일제에 의해 제사가 폐지됐고, 부속 건물들이 헐려 두 단만 남겨진 상태에서 공원으로 조성됐다. 사직단은 1963년 사적 제121호로 지정됐으며, 1980년대에 담장과 부속 시설 일부가 복원됐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은 1988년부터 매해 이곳에서 사직 대제를 거행하고 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안향청 일대는 현재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안전 가림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거대한 회백색 장벽을 지나 샛길로 들어서 사직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문 맞은편에 자리한 동신문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남신문, 서신문, 북신문이 설치됐다. 다른 홍살문과 달리 바깥 담장의 북문만 3개의 문으로 이뤄졌다. 신이 드나드는 문이라 격을 높인 것이라고. 안팎의 두 북문 사이엔 제례 중 국왕이 서 있는 자리인 판위가 있었다. 유의 북문과 담장의 북문을 잇는 건 향축로(향과 축문이 이동하는 길)이고, 여기서 서신문으로 어로(임금이 다니는 길)가 나 있다. 유의 바깥 서남쪽에 위치한 건물이 신위를 모시는 신실이다. 제사를 지내던 곳을 한 바퀴 휘 둘러본 뒤 전사청으로 갔다. ◆제례 음식 준비하는 곳, 전사청 제례를 총괄하는 전사청은 사직단 서쪽에 자리했다. 전사관은 전사청에서 제사 음식을 점검했다. 전사청 양옆에는 제물이 될 소, 양, 돼지 등을 잡는 재생정과 제사용 그릇을 보관하는 제기고가 배치됐다. 이외에 주요 시설로는 일하는 사람이 머물던 수복방, 절구를 두고 곡식을 찧던 장소인 저구가, 우물 등이 있다. 전사청 일대의 시설은 일제강점기 때 전부 철거돼 공원으로 이용되다가 2021년 복원됐다. 이날 전사청 권역에선 제사 때 쓰인 각양각색의 그릇을 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술잔으로 사용된 제기 '작' ▲메조와 차조를 담는 제기 '궤' ▲제례시 신을 맞이하기 위해 향을 피우는 제기 '향로' ▲간을 한 소, 양, 돼지고깃국을 담는 제기 '형' ▲산과 구름, 우레를 새긴 술항아리 '산뢰' ▲쌀과 수수를 담는 제기 '보' ▲코끼리 모양의 술항아리 '상준' 등이 전시됐다. 제기들 가운데 상준이 가장 눈에 띄었다. 부처님 귀처럼 아래로 길게 늘어진 귀와 고슴도치 가시마냥 삐쭉 솟은 상아를 가진 코끼리의 등에 화장품 용기를 얹은 형태였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술항아리를 쥐고 제사에 올릴 술을 따라야 했던 조상님들은 엄숙한 분위기에서 웃음을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감히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당시 치러진 제례를 상상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전시물이 하나 더 있다. 사직 제관의 복식이 바로 그것. 제례에 참여하는 제관들은 검은색 계열의 제복을 입었고, 머리엔 제관을 썼다. 속에는 중단을, 겉옷으로는 흑색 의(衣)를 입었으며 그 위에 상, 대대, 수, 폐슬, 패옥, 품대, 방심곡령을 착용했다. 사극에 종종 제복이 나와서 특별히 새롭게 느껴지진 않았는데 제관에 부착된 세로선의 개수가 다르다는 사실은 이날 처음 알게 됐다. 이 세로선(양)의 수를 통해 신분을 나타냈다고. 사직단 안향청 권역 복원 공사는 연내 마무리될 예정이다. 국가유산청은 "일제강점기 민족 정체성을 훼손하기 위해 공원으로 격하한 국가 최고의 의례 시설을 되살려 사직단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회복할 것"이라며 "국민 문화 향유권 신장과 관광 자원 창출에 기여하겠다"고 전했다.

2025-02-04 13:48:50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