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고민, 충당금에 울고 vs. 역마진 공포까지
"KT ENS 등 간간이 터진 기업 리스크는 버틸 만했다. 앞으로가 더 불안하다.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대손충당금을 얼마나 더 쌓아야 할지 가늠조차 어렵다."(A은행 기업 대출 임원) "마른 수건을 짜는 것도 한계다. 금리는 내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이익의 85~90%를 어떻게 설명할지 답답하다"(B은행 여신담당 부행장) 시중 은행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해운·조선 등 기업 구조조정이 속도를 내면서 은행권의 '충당금 공포'가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조선 6사에 대한 6대 시중은행 여신은 15조원이나 된다. 한쪽에선 역마진 공포의 추억 되살아 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리면 순이자마진(NIM)이 하락할 수밖에 없어서다. 신용등급까지 추락해 조달 비용은 늘고 있다. ◆6대은행 익스포져 15조...추가 충당금은?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진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조선 6사에 대한 6대 시중은행의 익스포져는 15조 2565억원 가량이다. 이중 대우조선의 익스포져는 2조2365억원 규모다. 하나은행(4389억원), 국민은행(6298억원), 우리은행(4924억원), 외환은행(3861억원) 신한은행(2838억원), SC제일은행(55억원) 등 총 2조2365억원 가량이다. 6대 시중은행이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 빌려준 돈도 각각 4조2911억원, 4조8252억원에 달한다. 빚 규모만 23조원에 달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3년 간 영업 활동을 통해 이자비용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인 '한계기업'인 것이다. 다시 말해 그동안 빚을 내 은행 이자를 낸 셈이다. 이 회사의 무보증 회사채 신용등급도 'BB+'로 투자 부적격 등급을 받았다. '수주절벽'도 지속되고 있다.올 1·4분기 대우조선의 수주량은 16만8000CGT로, 현대삼호중공업(16만9000CGT)보다도 적었다. 이처럼 '경고음'이 잇따랐지만 국민은행(요주의)을 제외한 채권은행들은 대우조선의 여신을 대부분 '정상'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 시장에서는 구조조정에 속도가 붙을 경우 시중은행들이 이들 여신을 '요주의' 또는 '고정이하'로 다시 분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요주의는 대출 자산의 7~19%, 고정은 20~49%, 회수의문은 50~99%, 추정손실은 대출액의 100%를 충당금으로 쌓아야 한다. 하나금융투자는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에서 시중은행이 추가로 쌓아야 할 충당금이 2조원에서 최대 2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은행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울며 겨자먹기'로 쏟아부은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경기 우려로 대출액을 회수할 가능성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어서다. 실제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5년 말 국내은행의 부실채권 현황(잠정치)을 보면 지난해 12월 말 현재 은행권 부실채권비율은 1.71%로 2014년 말보다 0.16%포인트 상승했다. 기업여신 부실이 26조4000억원으로 전체 부실채권(28조5000억원)의 대부분(92.6%)을 차지했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부실 계열사에 대해 지원을 해야 하는 기업의 주주, 채권자로서는 달가울 리 없다"면서 "특히 몇몇 대기업의 경우 지배구조 특성상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어 부실 계열사 지원을 위한 의사결정이 역설적으로 다수 주주, 채권자의 부를 침해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금리인하 점증, '역마진 공포' 흑자는 냈지만 은행들은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사상 초유의 저금리로 인해 주 수입원인 이자마진이 곤두박질치면서, '역(逆)마진'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국내은행의 1·4분기 중 영업실적(잠정)'에 따르면 1분기 순이자마진(NIM)은 1.55%로 전년 동기(1.63%) 대비 0.08%포인트 하락해 역대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점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통화정책과 관련해 "물가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에 안착할 수 있도록 보다 완화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진단했다. 하나금융투자 한정태 연구원은 "그동안 은행들은 NIM 하락에도 불구하고 대출증가와 비용안정, 유가증권 이익 등으로 이익을 늘려왔다"면서 "하지만 이제 비용이 더 내려갈 여지가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금리가 하락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금리가 하락하면 NIM도 떨어지게 된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비이자이익 비중이나 해외 수익 비중이 매우 낮아 천수답처럼 NIM만 보고 있는 상황에서 장기금리가 지속 하락한다면 수익성 악화는 불을 보듯 빤하다"면서 "일본의 90년 중반보다 좋은 환경이 결코 아니다"고 걱정했다. 자금 조달 환경도 썩 좋지 않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우리은행의 신용등급을 기존 'A1'에서 'A2'로 한 단계 낮추고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국내은행들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신용등급이 내려가면 은행들은 웃돈을 주고 돈을 빌려야만 한다. 신한금융투자 김수현 연구원은 "이자부문에 편중된 이익 구조의 다변화가 시급하다"면서 "일본의 경우 '주식→국공채→해외증권'으로 투자의 운용 변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