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노이드 시대가 온다-상] 神의 영역에 도전하다
2005년 개봉했던 영화 '아일랜드'에는 복제인간이 등장한다.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보험 상품으로 실험실에서 탄생한 복제인간은 상품에 가입한 사람들의 아이를 대리 출산하거나 손상된 장기를 새롭게 교체하는 용도로 쓰여진다. 많은 충격을 불러왔던 이 SF영화는 20년이 채 되지 않아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2022년 현재 오가노이드 기술은 장(腸)을 시작으로 뇌와 위, 간, 췌장, 신장 등을 실험실에서 키워내고 있으며, 이를 통한 신약 개발과 맞춤 의약품 제공은 물론 재생치료제 개발까지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오는 2027년 5조원 규모의 시장으로 급성장하며 장기 교체를 통해 생명을 연장하는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된다. ◆오가노이드, 5년 후 5조원 시장 예상 오가노이드라는 개념은 지난 1957년 에띠엔느(Etienne Y.)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실제로 오가노이드가 개발된 것은 2009년 경이다. 네덜란드 후브레흐트 연구소의 한스 클레버 박사가 장 줄기 세포를 추출해 배양한 결과 실제 장 조직을 정교하게 모사한 장 오가노이드를 개발한 것이다. 연구팀은 네이처지에 연구 결과를 공개했고 이를 기점으로 전 세계 오가노이드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오스트라 분자생명과학연구소 쥐르겐 노블리취 박사가 모든 종류의 세포로 자랄 수 있는 전분화능줄기세포를 3차원으로 분화해 인간 뇌의 특이 구조를 모사하는 방법을 발표하며 뇌 오가노이드의 길을 열었다. 이렇게 시작된 글로벌 오가노이드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오가노이드 시장 규모는 2019년 이후 연평균 22.1%로 증가해 2027년 약 34억달러(약 4조889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장으로 시작된 오가노이드는 뇌를 거쳐 현재 망막, 갑상선, 장, 위, 간, 신장, 췌장, 유선, 자궁 오가노이드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오는 2027년 간(22.9%)과 장(22.8%) 오가노이드가 가장 큰 시장을 점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오가노이드 시장은 2027년 북미(41%)와 유럽(36.9%)이 전체 80% 가까이를 점유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시아·태평양 시장 역시 23.1% 성장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전 세계가 주목 장 오가노이드를 세상에 처음 선 보인 클레버스 박사 연구진은 3년 후인 2012년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재생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제시했다. 클레버스 박사와 일본 와타나베 마모루 연구진은 장 오가노이드를 염증성 장질환 쥐에 이식해 치료하는 논문을 네이처지에 다시 발표한다. 논문에 따르면 염증성 장질환 쥐의 대장에 장 줄기세포를 주입하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 관찰한 결과, 이식된 줄기세포가 장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로 분화해 손상된 조직을 재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다량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장 뿐 아니라 간, 췌장 등 손상된 장기에 이식할 경우 손상 부위를 되살려 영구적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재생치료제를 비롯, 오가노이드가 활용되는 범위는 점차 넓어지고 있다. 오가노이드는 동물 시험을 미니장기로 대체해 전임상 단계에서 약물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또 임상 예측률을 높여 신약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암 치료도 가장 전망 있는분야로 꼽힌다. 종양 오가노이드는 정상 세포의 오가노이드와 비교할 수 있고 다양한 암 단계에서 종양이 발생하는 매커니즘에 있는 개인의 차이를 연구하는 데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오가노이드를 개인별 진단 목적으로 사용하는 맞춤의학도 각광받는 분야다. 개개인의 줄기세포에서 분화한 오가노이드를 활용해 약물테스트를 미리 시행할 경우, 발병의 다양한 원인에 대한 시험이 가능하여 불필요한 약의 복용을 막아 효과를 높이고 치료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오가노이드는 감염병 대응으로 위한 새로운 기회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감염병 연구 및 신약 후보물질 개발 과정에서 폐, 장 오가노이드를 활용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줄기세포융합연구센터 손미영 박사는 "오가노이드는 질환 모델링부터 유효물질 탐색, 선도물질 발굴을 위한 유효성 및 독성평가에 이르는 신약개발의 전임상 모든 과정에서 활용이 가능하다"며 "미니 장기는 인체의 실제 장기와 같거나, 유사한 방식으로 약물에 반응해 신약개발과 제약 산업에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세경기자 seilee@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