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깊은 人터뷰]"선함은 반드시 이긴다"..'사랑쟁이' 배기표 대표
시작은 '사랑쟁이 아빠편지'라는 책이었다. 아들 '경빈'에게 쓴 77개의 편지를 엮어 만든 이 책에는 아빠가 아들에게 직접 들려주는 삶의 지혜와 경험 그리고 사랑이 담겼다. 저자를 검색하다보니 더욱 흥미로운 사실들에 눈이 갔다. 경빈이 아빠인 배기표(사진) 작가는 이제까지 8권의 저서를 냈다. 2019년에는 아들을 위해 쓴 동시가 아동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교육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신문에 종종 글을 싣는다. 노래도 한다. 올해 아들과 아내에게 쓴 곡을 담아 3개의 싱글 앨범을 냈으며, 다음 달에는 부모와 친구들을 향한 4개의 신곡이 출시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요즘 말로 '부캐'에 불과했다. 그의 본업은 공인회계사이며 현재 리스크 매니지먼트 코리아(RMK) 대표를 맡고 있다. RMK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장을 위한 최적의 경영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 국내 첫 위기 경영 프로파일링에 특화된 경영 자문사다. 무작정 배 대표를 만났다. 긴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가 홍수처럼 오고갔다. 담고 싶은 이야기가 넘쳤지만 뚜렷한 줄기를 잡기가 어려웠다. '본캐'와 '부캐' 사이에서 방황하는 중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그냥 세상을 따뜻하게 살아가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일 뿐이예요." 그리고 알았다. 그가 하고 있는 모든 일에는 공통적으로 세상과 사람에 대한 '선하고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그가 택한 자신의 진짜 모습은 '사랑쟁이'였다. - 아들에게 편지를 쓰게 된 계기는. "2000년대 초 시카고 출장길에 우연히 아빠와 자녀의 감정교류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무의식이 형성되는 초기, 아빠와 좋은 관계 속에서 사랑과 존중을 받는 아이들은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타인을 위로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란다는 것을 배웠다. 그 때부터 아빠 교육에 관심을 가졌고, 나중에 꼭 아이에게 감성교육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나도 처음부터 좋은 아빠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경빈이가 어릴 때 사업하느라 바빴고, 아내는 독박육아를 했다. 누구나 그렇듯 처음이라 서툴고, 준비도 안된 아빠였다. 하지만 아들을 향한 편지를 쓰며 더 나은 아빠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 부모님의 영향도 있었나. "부모님은 사랑이 넘치는 분이었다. 교장 선생님이었던 아버지와 복지시설 원장님이었던 어머니는 학생들에게도 늘 사랑을 쏟으셨다. 무엇보다 자식을 존재 자체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분이었다. 하는 일이 뭐든 믿어주셨고, 너는 뭐든 될 수 있는 사람이라며 지지해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다양하고 자유롭게 공부했고, 틀에 박힌 형식이나 두려움 없이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 이런 환경이 통합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왔다. 2년 전 배대표는 데이터센터 개발 사업을 새롭게 시작했다. 그가 운영하는 IDC코리아는 부지를 매입하고 데이터센터를 개발해 국내외 판매하는, 국내 몇 안되는 데이터센터 개발 자문사다. 이외에도 그는 국내 처음 주니어 MBA책을 썼고, 아들이 당한 사고를 계기로 '안심유치원 평가인증'을 만들었다. 미국과 유럽 사례를 조사해 한국유치원총연합회와 함께 서울시 350개 사립유치원을 대상으로 만든 국내 첫 통합인증 시스템이다. 지난 달 발간한 'MZ 세대에게 알려주고 싶은 협상의 전략'은 협상교육 시뮬레이션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생생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협상 당사자 모두가 상생하는 협상의 기술을 알려준다. 고(故) 이어령 교수는 이 책의 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이 책에는 협상 파트너에 대한 인간적 존중이 기본적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생명애인 것입니다." 고인은 생전 배 대표를 '삶의 마술사(Life Magician)'라고 불렀다. 자신의 삶을 엮어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내는 힘을 가졌다는 뜻이다. -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 "서로를 대하는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인맥쌓기 노하우 같은 것은 없다. 일로 만나건 친구로 만나건 나는 진심을 다해 상대를 돕고 감동을 주기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마음을 다하다 보면 내가 무언가 필요할 때 모두가 발 벗고 나서준다. 노래를 하고 싶다 생각했을 때는 부탁을 하지 않았는데도 뮤지컬 작곡가 김혜성씨가 적극 나서주며 음반을 내게 됐다. 어느 날은 고객이었던 외국계 지사장이 갑자기 연락이 와 새로운 기회를 제안하며 데이터센터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이어령 교수님을 비롯해 책에 실린 많은 분들의 추천사도 그렇다. 상대를 위하면 마음이 열리고, 서로 돕고자 할 때 윈윈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 어려운 협상과 논쟁도 알아서 해결된다. 그게 살아가는 맛이고 감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삶 속에서 매일 '선함의 힘'을 확인하고 있다. 선하게 살면 더 선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그 선한 영향력은 모두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믿는다. - 베풀다 손해 보고 상처를 받은 적은 없나. "물론 있다. 하지만 그 또한 내 책임이라고 받아들인다. 컨설팅을 하다보니 기업은 욕심을 부릴 때 사기를 당하고 상처를 입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가 상대에게 욕심을 내고 기대를 하는 순간 실망을 하고 상처를 받는다." - 정말 선함의 힘이 있나. "똑똑하게 이익만 쫓는 기업들은 단기간에 잘나갈지 몰라도 결국은 직원들, 하도급 업체들을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기업들이 오래 가고 번창한다. 적당한 손실과 손해를 감수하고 라도 함께 가는 쪽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그런 기업이 결국엔 좋은 에너지를 받고 더 잘된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게됐다. 사람도 그렇다. 선한 사람들은 계속 선한 환경에서 살게 된다. 선하게 살면 더 선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베푼 선함들은 반드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그것이 선함의 힘이다." 그는 선함이 사랑에서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꿈도 '사랑'이다. 어린 아이들에 사랑과 감성을 풍족하게 심어줄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 꿈이 시골학교 교장인가. "시골에 작은 학교 재단을 하나 인수해 사랑이 넘치는 교육 공간을 만들고 싶다. 선함은 사랑에서 나온다.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많이 받으면 따뜻하고 바른 인성이 자라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교육이 중요하고, 부모가 해주지 못한다면 대안 교육으로라로 부족함을 채워야한다. 집에서 사랑을 충분히 받지못한 아이들도 사랑을 받고 감성을 키울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 내가 체험한 아빠 프로그램도 넣을 생각이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교육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스스로의 존재 그대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경험을 한 아이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생긴다." - 마지막으로 세상 아빠들을 위해 조언해준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존재 자체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아이가 하는 말을 끝까지 귀기울여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존중과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아빠가 생각하는 사소한 것이라도 아이와 끊임없이 공유하라고 말하고 싶다. 지인 중에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힘든 시간을 보내며 자신이 겪는 모든 일들을 아이와 공유한 아빠가 있다. 가정은 경제적인 위기를 크게 겪었지만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도 아빠에 대한 존경과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간접 경험을 통해 용기를 갖고 위기를 극복하는 힘도 자연스럽게 얻게 됐다. 사소한 것이라도 아이와 공유하고 교감하며 연결고리를 계속 찾아가는 노력을 한다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세경기자 seilee@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