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패권의 최전선, 이제는 전력 전쟁"
생성형 AI(인공지능)의 확산이 불러온 폭발적인 전력 수요가 세계 기술 패권 경쟁의 변수로 떠올랐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이 최근 발간한 'IITP 디지털 아웃룩 8월호' 보고서에 따르면 알고리즘과 반도체 성능이 좌우하던 경쟁의 무게추가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역량으로 이동하면서, 에너지 인프라 확보가 곧 AI 기술 주도권을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됐다. 올 4월 국제에너지기구(IEA)가 공개한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2020년 250테라와트시(TWh) 수준이었던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오는 2030년 1000TWh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그래픽처리장치 등 AI 특화 연산 서버의 비중이 크게 늘며,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 증가 폭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미국은 지난 7월 'AI 액션 플랜'을 발표하며 에너지와 AI 정책을 통합한 국가 전략을 본격화했다. 연방 인허가 절차 간소화로 데이터센터·반도체 제조 시설·에너지 인프라 건설을 가속하고, 소형모듈원자로(SMR)·지열·핵융합 등 차세대 에너지원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SMR는 AI 데이터센터 운영에 최적화된 설비로, 'AI 시대의 핵심 안보 자산'이자 장기적 전력 안정성 확보의 열쇠로 꼽힌다. 중국은 대규모 잉여 전력을 흡수하는 국가 주도의 인프라 체계를 무기로 내세운다. 석탄과 재생에너지를 병행 확충해 전력망 예비율을 80~100% 수준으로 유지하며, 민간 중심의 미국과는 구조적으로 다른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도 전력 전쟁의 전면에 나섰다. 아마존은 SMR 개발사 엑스-에너지에 5억달러(약 6956억원)를 투자하고, 구글은 원자력 스타트업 카이로스와 차세대 원전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핵융합 발전 스타트업 헬리온 에너지와 계약을 맺었고, 메타는 원자력·재생에너지 동시 확대 전략을 추진한다. '에너지 기업화'를 통해 자사의 AI 경쟁력을 스스로 뒷받침하는 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세계 주요국은 에너지 공급망을 공고히 하기 위한 외교적 연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일본·영국·호주와 SMR 기술 공동 개발에 착수하고, 인도·태평양 지역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에너지 기술을 수출하며 '탈중국' 공급망 전략을 구사하는 중이다. 에너지를 매개로 한 국제 공조는 단순한 기술 협력 차원을 넘어, 지정학적 동맹 구도를 강화하는 새로운 패권 경쟁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전력 인프라가 부족한 현실에서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몰리면 전력망 불안정, 물 부족, 환경 훼손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IITP는 차세대 원자력 상용화 속도, AI 기반 스마트 그리드 확산을 향후 경쟁 구도를 좌우할 중요 요소로 지목했다. 한국이 AI 주도권 싸움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에너지 확보를 국가 차원의 전략으로 격상하고, ICT와 전력 인프라를 결합한 혁신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SMR 등 차세대 원자력 기술의 상용화 속도와 AI 기반 스마트 그리드 기술의 발전 및 확산이 향후 경쟁 구도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며 "에너지 공급 역량이 AI 기술 발전의 필수 조건이자 국가 경쟁력의 핵심 동력으로 기능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