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집단 동일인에 '자연인 회피요건' 신설… 쿠팡 김범석 지정 무산되나
대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동일인(총수)에 자연인이 아닌 법인을 지정할 수 있는 예외요건이 마련된다. 미국 국적으로 동일인 지정이 무산된 김범석 쿠팡 의장의 경우 이같은 예외요건을 충족하면 동일인 지정을 피할 수 있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7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내년 2월 6일까지 입법예고하고, 그 구체적인 판단 기준 및 절차 등을 정한 '동일인 판단 기준 및 확인 절차에 관한 지침'을 내년 1월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시행령 개정과 지침 시행은 동일인 2·3세로의 경영권 승계가 본격화하고, 외국 국적을 보유한 동일인 및 친족의 등장 등 동일인과 관련한 경제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명확하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동일인을 판단하기 위해 마련됐다. 시행령 개정안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 있는 경우에도 법인 등을 동일인으로 볼 수 있는 예외요건을 신설하는게 골자다. 즉, 동일인 판단 원칙은 기존처럼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으로 보되, 그러한 자연인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해당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국내 회사나 비영리법인 또는 단체를 동일인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동일인 판단 기준은 ▲기업집단 최상단회사의 최다출자자 ▲기업집단의 최고직위자 ▲기업집단의 경영에 대해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 ▲기업집단 내·외부적으로 기업집단을 대표하는 자 ▲동일인 승계 방침에 따라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결정된 자 등 5가지다. 다만, 동일인을 자연인으로 보든 법인으로 보든 국내 계열회사의 범위가 동일한 경우,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 최상단 회사를 제외한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지 않고 ▲해당 자연인의 친족이 계열회사에 출자하거나 임원으로 재직하는 등 경영에 참여하지 않으며 ▲해당 자연인 및 친족과 국내 계열회사 간 채무보증이나 자금대차가 없는 경우 등 예외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법인을 동일인으로 판단할 수 있게 했다. 예외요건 미충족 시에는 설령 외국인이더라도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번 제도개선을 촉발한 쿠팡 김범석 의장의 경우도 이같은 예외조건을 충족하면 동일인 지정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로 보면, 그 가능성은 커 보인다. 우선 김 의장은 현재 기업집단 최상단 회사인 쿠팡Inc를 제외한 국내 계열사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김 의장 동생 부부가 쿠팡 계열사에 재직하고 있지만, 임원에 해당하는 직급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의장 동생 부부가 24만주가량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쿠팡Inc는 미국 시장에 상장된 미국 법인으로 '국내 계열회사 출자'를 금지한 조항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향후 알려지지 않은 자금 대차나 지분 보유가 향후 드러날 경우 김 의장의 동일인 지정이 가능하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새로이 확인해야 될 사실관계가 여러 개가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쿠팡의 경우에 동일인이 누구로 지정될지에 대해서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하든 법인을 동일인으로 하든 기업집단 범위에 차이가 없고 사익편취에 규제 공백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라면, 대기업집단 억제시책의 효과 면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공정위는 입법예고 기간동안 이해관계자, 관계부처 등 의견을 수렴한 후 법제처 심사 등 관련 입법절차를 거쳐 2024년 상반기 중 신속하게 시행령 개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세종=한용수기자 hys@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