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우리도 몰랐던 “일본식 지명...언제까지 써야하나?”
향토사가 하억찬(포항일월향문화진흥원장)은 포항의 동명에서 특이하게 나타난 동빈과 남빈에 대한 의문에서 일제식 지명의 표현임을 알아내고 다른 지역과 다르게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음에 안타까움을 나타내어 동명 변경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일제 강점기때 영일만은 풍부한 어족 자원은 일본어민의 포항 진출을 활발하게 하였고 포항으로 밀려드는 일본어선과 거류민의 증가로 인해 선박의 안전과 수출입이 가능한 항구와 거류민 지역의 확대가 필요하였다. 지금의 동빈내항은 원래 형산강 하구지역으로 1910년대부터 일제는 형산강 방사제 공사를 시작으로 형산강 하구지역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동빈항이 건설되었다. 또한 늘어나는 일본 거류민의 정착과 관공서 및 산업시설확장을 위해 칠성강변을 매립하여 남빈정으로 칭하였다. 여기서 빈(賓)이란 지명은 일본식 명칭으로 항구를 의미하고, 정(町)은 일본에서는 '동네'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포항시에서는 1945년 광복 후 일본식 동명과 거리명을 한자식으로 개편하였으나 동빈과 남빈에 대해서는 이것이 새롭게 만들어진 단순한 지역명으로 생각해서인지 변경하지 않았다. 지금의 시도 1917년 지정면으로 승격하면서 일본식 지명인 초음정(初音町), 영정(榮町), 명치정(明治町), 소화정(昭和町), 신흥정(新興町), 본정(本町), 욱정(旭町), 중정(仲町), 남빈정(南濱町), 동빈정(東賓町)1~2 정목(丁目) 등의 11개 구역으로 분할되었고. 광복 후 덕산동, 신흥동, 덕수동, 여천동, 중앙동 등으로 대부분 변경되었으나 동빈과 남빈은 일본식 명칭이 그대로 남아 현재까지 포항의 공식 동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식 지명중 부산에서는 일제 때 부산항 매축(매립)과정에서 북빈, 동빈, 남빈의 항구 명칭이 생겼으나, 1945년 광복을 맞으면서 동빈은 동항, 서빈은 서항으로 개편되고, 남빈은 부산 영도의 남항과 구분하기 위해 우리나라 고유의 한자식 지명인 남포동(南浦洞)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또한, 마산지역도 1908년 일본이 현 창포동 일대의 각국 거류지에 설치된 일본인 마을을 빈정(濱町)이라는 지명을 광복 후 1946년 창포(昌浦)동으로 변경했다. 하억찬 원장은 "포항시도 동명 명칭의 문제는 빈(賓)이란 명칭을 일본식 표현이라고 이해하지 못한 결과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광복 후 일본 제국주의식 명칭을 바로 고치지 못함과 동시에 후손들이 포항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을 반성하고, 광복 77주년 지난 지금이라도 뜻깊은 3.1절 104주년을 앞두고 100년 이상 사용하고 있는 일본이 남겨준 어두운 과거를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행정구역의 명칭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전통을 담은 특성을 살리고 정체성을 담아야며,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는 만큼 충분한 시민의견 수렴과 홍보 등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했다.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의 광복은 정치적 해방일뿐 아니라 정신적, 문화적 해방을 뜻하기도 합니다. 개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성명처럼 지명이란 땅의 변화와 역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일제시기에 침략의 결과로 만들어진 지명을 창씨개명된 이름을 원래의 이름으로 바꾸듯이 땅이름 역시 우리의 이름으로 바꿀 때가 진정한 독립이라 할 수 있다. 땅의 이름이 일본식 명칭으로 존재하는 한 그것은 일본이 우리 민족을 지배하였다는 흔적을 남겨 놓을 뿐 만 아니라 그것을 고치지 않고 있는 우리 민족의 어리석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광복 후 바로 지명 변경을 하지 못한 우리 지역의 지도자들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그동안 인식하지 못하고 고치지 못한 우리에게도 역사에 대한 반성과 이 기회를 통해 바로 잡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에서 결코 일본이 지어준 이름으로 살 필요도 없는 것이고, 알고도 고치지 않는 어리석음은 막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