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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석방' 이한탁 "25년 옥살이 억울했다"

친딸을 방화 살해한 혐의로 미국 교도소에서 25년간 복역하다 22일(현지시간) 보석 석방된 이한탁(79)씨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남은 인생을 알차고 보람되게 살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해리스버그에 있는 연방법원 중부지방법원에서 최종 보석 석방을 허락받은 이씨는 법원 건물을 나온 뒤 보도진 앞에서 미리 준비한 소감문을 낭독했다. 먼저 이씨는 "아무 죄도 없는 저를 25년1개월이나 감옥에 넣고 살라고 했다. 세상천지 어느 곳을 뒤져봐도 이렇게 억울한 일은 역사에 없을 것"이라며 억울함과 무죄를 거듭 주장했다. 그는 "오늘 드디어 죄 없는 한 사람으로 보석이 됐다"며 벅찬 기쁨과 감사를 한인 교포, 변호사, 구명위원회 등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한 보답으로 "남은 인생 동안 더욱 건강을 지키며 더욱 알차고 보람되게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울러 지금도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동포들이 있다면 용기를 잃지 않고 참고 기다리면 승리의 날이 올 것이라고 희망을 전하기도 했다. 이씨는 일단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한 뒤 구명위원회가 마련해 둔 아파트에 머무를 계획이다. [!{IMG::20140823000005.jpg::C::480::딸을 방화·살해한 혐의로 25년동안 감옥살이를 한 뒤 22일(현지시간) 보석으로 풀려난 이한탁(79, 앞줄 가운데)씨가 법원 건물을 나와 소감문을 읽은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2014-08-23 09:15:44 박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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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딸 살해 혐의' 이한탁씨, 25년 만에 보석 석방

친딸을 살해혐의로 종신형을 받고 미국 교도서에서 복역해 온 이한탁(79)씨가 25년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23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지난 19일 보석이 승인된 이씨는 이날 펜실베이니아주 하우츠데일에 있는 주립교도소에서 해리스버그의 연방법원 중부지방법원으로 옮겨 마틴 칼슨 판사의 주재로 열린 보석 심리에서 최종 보석 석방을 허락받았다. 칼슨 판사는 이한탁구명위원회 손경탁 공동위원장으로부터 보석 석방 이후 이씨가 머무를 장소 등을 확인하고 보석기간 지켜야 할 사항 등을 알려주고 나서 석방시켰다. 이에 따라 이씨는 1989년 구속 이후 처음 교도소를 벗어났다. 그러나 이날 보석 석방으로 이씨가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된 것은 아니다. 지난 8일 이씨에 대해 방화 및 살인 혐의를 적용한 것이 잘못됐다는 연방 법원 본심판사의 판결에 대해 검찰이 120일 이내에 항소하거나 다른 증거를 찾아 재기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점을 들어 검찰 측 대응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날 보석 허가 이후 법원 건물을 나온 이씨는 소감문을 낭독하면서 자신의 무죄를 거듭 주장하고 향후 각오를 밝혔다. 그는 "죄도 없는 저를 25년1개월이나 감옥에서 살게 했다. 세상천지 어느 곳을 뒤져봐도 이렇게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토로한 뒤 "지금까지 도와준 한인 교포, 구명위원회, 변호사 등에게 보답하기 위해 남은 인생을 더욱 알차고 보람되게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씨의 기나긴 감옥살이는 1989년 7월 29일 새벽 발생한 화재로 큰딸 지연(당시 20세)씨가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1978년 미국에 이민 와 퀸즈에서 의류업을 했던 이씨는 화재 발생 하루 전날 펜실베이니아주 먼로카운티의 한 교회 수양관에 지연씨와 함께 도착했다.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던 딸을 수양관에서 돌보도록 권유한 지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다음날 새벽 잠을 자던 이씨는 불기운을 느끼고 건물을 빠져나왔지만 딸은 화재가 진화된 뒤 주검으로 발견됐다. 검찰은 화재 원인을 방화로 결론짓고 이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씨의 무죄 주장에도 검찰은 이씨의 옷에 묻어있던 휘발성 물질들을 증거로 내세웠고 재판부는 가석방없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2014-08-23 08:18:31 이국명 기자
30대 비만 치매 위험 3.5배···당뇨병·심혈관질환 때문

30대에 비만이 시작되면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데일리 메일은 옥스퍼드 대학의 마이클 골드에이커 박사가 30~39세에 비만이 된 사람은 같은 연령대에 체중이 정상이었던 사람에 비해 나중 치매를 겪을 위험이 3.5배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999~2011년 사이에 전국 의료기관에 입원한 남녀환자(이중 45만1232명은 비만환자)의 의료기록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는 설명이다. 결과에 따르면 40대에 비만이 시작된 사람은 나중 치매 위험 증가가 70%, 50대는 50%, 60대는 40%로 점차 낮아진다. 70대에는 제로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80대에 비만이 된 경우는 오히려 치매 위험이 22%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골드에이커 박사는 "30~40대 비만일 때 치매 위험이 가장 높은 것은 이 시기의 비만은 당뇨병과 심혈관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당뇨병과 심혈관질환은 치매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만과 함께 위험이 높아지는 치매의 종류도 연령대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30대 비만의 경우는 알츠하이머 치매와 혈관성 치매 위험이 모두 높았다. 이에 비해 40~60대 비만의 경우는 혈관성 치매 발생률이 높고 60대 이후 비만의 경우는 알츠하이머 치매 발생률이 낮았다.

2014-08-22 11:12:22 이국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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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얼음물 샤워' 열풍에 '찬물' 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세계에 불어 닥친 '얼음물 뒤집어쓰기' 열풍에 '찬물'을 끼얹었다. 동참대신 성금 내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21일(현지시간) 보스턴헤럴드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루게릭병 환자 돕기 기금 모금 운동인 '얼음물 샤워'(Ice Bucket Challenge) 참여를 사양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지목을 받더라도 얼음물을 뒤집어쓰지는 않겠다는 뜻을 이미 밝힌 바 있는 오바마 대통령은 실제 유명 가수 저스틴 비버와 케네디 가문의 맏어른 격인 에델 케네디(86)가 지목하자 얼음물 샤워 대신 '적당한 금액'의 성금만 냈다. 이는 미국 연방 정부의 방침과 보조를 맞춘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연방 하원은 이에 앞서 소속 공무원과 외교관, 군인, 하원의원 등에 공직자의 민간 자선기금 모금 행사 참여는 '선호와 편애'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행사 참가를 금지한다고 알렸다. 게다가 이 행사에 대한 역풍도 감안했다는 분석이다. 가톨릭 신시내티 대교구는 루게릭병 치료에 가톨릭이 교리상 반대하는 배아줄기세포가 사용된다는 이유로 관할 113개 학교 학생들에게 행사 참여 중단을 요청했다. 또 이날 켄터키주 캠벨스빌대에서 소방관 4명이 학생들이 참가한 '얼음물 뒤집어쓰기' 현장 정리를 하다 감전돼 2명이 중태에 빠지는 사고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언론의 반응은 차갑다. AP 통신은 '오바마 대통령이 찬물 샤워 운동에 진짜 찬물을 끼얹었다'는 제목을 붙였고, 보스턴헤럴드는 '오바마 대통령이 찬물 샤워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보도했다. '얼음물 뒤집어쓰기'는 한 사람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이벤트를 벌인 뒤 3명을 지목하면 24시간 이내에 3명도 얼음물을 뒤집어쓰거나 루게릭병 환자 돕기 성금 100달러를 내야 한다. 대개 지목된 사람은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다. 지금까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미국 차기 대통령 후보로 유력한 크리스 크리스티(공화당) 뉴저지 주지사,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립자 등이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인증 동영상을 공개했다.

2014-08-22 10:03:51 이국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