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도, 숨겨도 문제…문턱 높아진 보험가입
#. A씨는 지난 2018년 가나보험사에서 간편가입 실손의료비보장보험에 가입했다. 그러나 가나보험사는 지난 4월 A씨가 병원 치료 후 보험금을 청구하자 고지의무 불이행으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며 계약을 해지했다. A씨가 고지하지 않은 질병은 '베체트병(만성 혈관 염증)'. A씨는 "청약서 질문표에 '단순 처방을 위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경우는 포함하지 않는다'고 기재돼 있어 고지하지 않은 것"이라며 "계약해지는 부당하다"고 했다. 고지의무 미이행에 따른 소비자 피해구제 신청 현황/한국소비자원 보험 가입 시 과거 질병 이력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경미한 이력까지 알릴 경우 심사에 걸려 보험가입 자체가 어려워 질 수 있다는 것. 소비자 입장에선 알려도, 알리지 않아도 보험 이용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질병 알리지 않아, 못받는 보험금 늘어 14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3년 6개월동안 보험가입자가 고지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발생한 피해구제 신청은 총 195건이다. 구제신청은 2017년 51건에서 2018년 54건, 2019년에 55건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 상반기에만 35건이 접수됐다. 신청현황을 보면 소비자가 의도치 않게 고지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발생한 피해는 124건(63.6%)으로 가장 많았다. 보험설계사의 '그 정도는 괜찮다'는 말에 고지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발생한 피해는 35건(17.9%), 보험사고와 연관이 없는데도 고지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험사가 지급을 거절한 사례도 23건(11.8%)이었다. 이 같은 이유로 지급이 거절된 보험금은 평균 2480만원이다. 금액대별로는 1000만~3000만원 미만이 46건(33.6%)으로 가장 많았고, 100만~1000만원 미만 34건(24.8%), 100만원 미만 24건(17.5%)이 뒤를 이었다. 이 중 합의가 이뤄진 것은 52건(26.7%)으로 전체의 절반이상이 해결되지 못했다. 통상 소비자는 보험 가입 시 청약서에 포함된 질문표를 통해 자신의 건강상태, 직업, 운전 여부 등 계약 체결 및 계약 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을 기재한다. 상법 제651조와 655조에 따르면 이 같은 내용을 고지하지 않을 시 보험사는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으며 이미 보험금을 지급했더라도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고지의무 불이행 관련 피해 사례 건수/한국소비자원 ◆ 질병 알리면 보험 가입 어려워… 그러나 소비자들은 최근 경미한 질병 이력이라도 알리면 보험가입부터 막힐 수 있다고 말한다. 감기나 두통 같은 단순한 증상으로 진료받았더라도 추후 암·뇌졸중·심근경색증 등 치명적인 질병을 얻게 될 수 있다고 판단해 보험가입이 거절될 수 있다는 것. 예컨대 B씨가 과음한 뒤 목에서 뻐근함을 느껴 동네 내과를 찾아 혈압약 7일치를 처방 받은 내역이 있다면 추후 뇌출혈 발생 가능성을 이유로 거절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최근 실손보험은 심사가 더욱 까다로워져 가입이 더욱 어려워진 상태다. 서류제출 외에도 간호사의 방문 진단을 통해 혈압을 재고, 피를 뽑고, 소변 검사를 해야 가입할 수 있다. 이전에는 일부 보험사에 한해 장년층에 한해 방문심사를 진행하던 것을 상대적으로 건강한 20대까지 확대했다. 과거 질병 이력뿐만 아니라 현재 질병 여부까지 상세하게 확인해 병원에 덜 갈 사람만 보험가입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소비자들이 질병이력을 알려도, 알리지 않아도 보험 이용이 어렵기 때문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맹수석 충남대 교수는 "현행법은 보험계약 체결시 보험계약자에게 알아서 중요한 사항을 고지토록해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비중으로 따지면 설계사를 통한 대면 가입이 많다. 상대적으로 고지선을 알고 있는 보험설계사에게 보험계약자 고지내용 전달 권한을 부여해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아직까지 고지의무는 법에 정해진 보험계약자의 의무이기 때문에 불이행할 경우 보험금을 받기 어려워 질 수 있다"며 "보험설계사에게 과거 현재 질병을 알리는 것뿐 아니라 직접 청약서에 상세하게 기재해 달라"고 말했다. /나유리기자 yul115@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