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에 통화가치 낮춰라…글로벌 환율전쟁, 다시 시작되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환율전쟁이 다시 본격화될 조짐이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 일본 등의 경제성장률이 점점 낮아지는 등 경기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이들 국가가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강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결국 저금리, 양적완화를 통해 자국의 통화가치를 내리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내년 외환시장에서 '달러 약세, 엔·유로 강세'를 전망하는 이유다.
환율전쟁이란 수출 경쟁력을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해 자국 통화를 약세로 유지하고 경쟁하는 것을 말한다. 즉 통화·재정정책을 다 썼을 때 내수 부진을 벗어나기 위해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다른 나라의 내수를 뺏어오기 위한 경쟁이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29~30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1.50~1.75%로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앞서 지난 7월 FOMC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여년 만에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고 지난 9월에도 0.25%포인트를 추가로 내렸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1.75~2%다.
미국이 추가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내다보는 주된 이유는 미국 내 경기부진, 대외 불확실성 등이 꼽힌다.
미국의 9월 제조업지수는 47.8을 기록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소매판매도 부진한 모습이다. 금리인하를 통한 유동성 공급으로 경기부진에 대응할 것이란 판단이다.
나중혁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 9월 제조업지수 쇼크와 경기선행지수의 2개월 연속 하락은 우려했던 기업투자 및 수출 부문 위축이 예상보다 심각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기침체 국면 초기에 접어들면서 시장에서는 미국이 환율전쟁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가 침체될 경우 재정·통화정책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했던 것에 비하면 효과가 크지 않은 상황이다. 금융위기 때만큼 금리를 내릴 여력이 크지 않고 돈을 찍어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은 수출을 통해 수요를 부양해야 하는데, 수출된 미국 상품이 가격경쟁력을 갖추려면 달러화 가치가 낮아야 한다. 미국은 달러화 가치를 낮추기 위해 금리를 0%대까지 내리고 양적완화로 돈을 찍어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 과거 사례를 보면 '달러 약세, 엔·유로 강세'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전후에 연준은 기준금리를 5.25%에서 0%까지 인하했다. 이와 더불어 2012년까지 세 차례 양적완화로 3조달러 이상의 돈을 찍어냈다. 이 기간 달러화 가치는 떨어지고 엔화, 유로화 가치는 올라갔다.
엔화 가치 상승은 일본의 디플레이션 압력을 심화시켰다. 결국 일본도 2011년부터 돈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을 2%까지 끌어올려 디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돈을 풀겠다는게 '아베노믹스'의 핵심이다.
당시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도 돈을 풀었다. 미국, 일본이 양적완화에 나선 상황에서 유럽중앙은행(EBC)만 돈을 찍어내지 않을 경우 유로화 가치가 상승해 유로전 국가들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EBC도 2015년 본원통화를 45%까지 늘리며 환율전쟁에 가담했다.
중국도 2015년 하반기부터 위안화 가치를 떨어트리며 환율전쟁에 가담했다. 올해 8월에는 위안·달러 환율 10년 만에 7위안을 넘는 '포치(破七) 현상'도 나타났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5월 이후 11년 만이자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로 처음이다.
미국은 중국을 25년 만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며 미·중 무역분쟁이 환율전쟁으로 격화됐다. 미국 재무부는 곧 반기 환율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중국이 이번에 환율조작국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내년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약세, 엔화·유로 약세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이 통화공급을 늘리며 달러 가치를 낮추는 환율전쟁을 시작하면 일본과 유럽 중앙은행도 가담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환율전쟁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국제사회에서 자국 이기주의가 팽배한 상황에서 다수 국가가 환율전쟁에 동참함으로써 1930년대 대공황 당시의 실수가 반복될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