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규모 635조 굴릴 '자본시장 대통령' 누가 될까
- 짧은 임기, 낮은 보수, 정치적 외압에도 30명 몰린 국민연금 CIO - 정치권·삼성 '하수인' 이미지 벗으려면 무게감 있는 인물 나서야 짧은 임기, 낮은 보수, 정치적 외압 등으로 기피하는 자리로 꼽혀온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공모에 예상보다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는 데다 한차례 청와대 인사 개입 논란으로 재공모 절차를 밟은 만큼 투명하되 무게감 있는 인물이 선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5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지난 19일 마감한 국민연금 CIO 공개모집에 총 30명이 지원했다. 올해 2월 진행됐던 1차 공모(16명)보다 두 배 가까운 지원자가 몰린 셈이다. 이번 재공모에는 정재호(58) 전 새마을금고 CIO, 김철범(53) 전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안효준(55) BNK 글로벌총괄부문장 등 자산운용사, 공제회 출신 CIO들이 대거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금운용본부장 공모는 1999년 11월 출범한 이후 8번째 본부장이다. 기금이사로는 9번째다. 국민연금 CIO는 지난해 7월 강면욱 이사장이 사퇴한 이후 1년 넘게 공석이었다. 본부장 직무대리를 맡아온 조인식 해외증권실장도 지난 4일 사의를 표하면서 공백 장기화를 막기 위한 노력이 시급한 상황이다. 올해 4월 말 기준 635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 CIO는 국민의 노후자금을 책임지는 '자본시장 대통령'으로 불리지만 그동안 짧은 임기, 낮은 보수, 3년간 취업 제한, 정치적 외압 등으로 기피하는 분위기였다. 국민연금 CIO의 연봉은 성과급을 합쳐도 3억원이 안 된다. 주요 운용사 30개 CEO의 평균 연봉이 3억7000만원, 성과급을 더해 4억6000만원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임기도 '2+1년'으로 짧다. 게다가 정보를 다루는 자리인 만큼 퇴임 후 3년 동안 취업이 제한된다. 정치적 외압이 기피에 가장 큰 이유다. 보건복지부, 감사원 등 정부 부처와 기관에서의 간섭이 심하다. 국내 주요 상장사들에 대해 상당한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보니 투자보다는 정치적 결정을 강요받는 경우도 많다. 홍완선 전 본부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 논란으로 구속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2월 진행된 1차 공모에서도 국민연금 CIO 자리가 정치적 외압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당시 공모에 총 16명이 지원해 8명이 1차 서류전형을 통과했고 면접을 거쳐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 윤영목 제이슨인베스트먼트 부사장, 이동민 전 한국은행 외자운용원 투자운용부장 등 3명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곽태선 전 대표를 낙점해 놓고 형식적인 공모 절차만 진행했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이 배경에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개입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국민연금은 기금이사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자 3명 중 "적격자가 없다"며 이달 6일 재공모에 나섰지만 여전히 정치권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의혹 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4일 민병두 정무위원장(더불어민주당) 주재로 개최된 정무위원회에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정무위 차원의 장 실장에 대한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 조사 촉구와 수사기관에 대한 고발을 요청했다. 업계에서는 국민연금 CIO가 정치적 외압에서 벗어나 투명하고 운용되기 위해서는 무게감 있는 인물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 CIO는 엄청난 자금과 정보를 관리하는 자리지만 낮은 연봉 등으로 사실상 '명예'로 가는 곳"이라며 "특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 이후로 정치권과 삼성의 '하수인'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무게감 있는 인물들이 나서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 CIO는 기금 '사이즈'에 비해 매력적인 자리가 아닌 것이 사실"이라며 "공백이 길어진 만큼 국민연금 정상화를 위해 투명한 인물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금이사추천위원회는 서류심사와 면접심사를 거쳐 후보군을 추린 이후 인사검증을 거쳐 최종 후보를 골라낼 계획이다. 최종 후보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국민연금 이사장이 임명한다. 기금이사추천위원회 소집 이후 CIO 선임까지 통상적으로 2개월여가 소요되는 만큼 최종 임명은 빠르면 9월 말 또는 10월 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