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20년, 기업에서 미래를 찾다] '신세계 유니버스' 따로, 또 같이 걸은 20년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 신세계가 진단하는 지금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온·오프라인 채널의 완전한 통합, 즉 '디지털 피보팅(pivoting)'만이 신세계가 미래 승자가 될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역설적으로 신세계는 수많은 유통기업들이 '온라인'에 집중할 때, 홀로 오프라인 채널 확장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이런 역설적인 발걸음은 '고객의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는 것', '온·오프 구별없이 고객이 우리의 공간에서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 즉, '신세계 유니버스'에서 나온다. 지난 20년간 신세계가 걸어온 길의 요약이기도 하다. 신세계그룹은 1991년 삼성그룹에서 독립 후 2000년부터 본격적인 초대형 유통 대기업 그룹으로 발걸음을 시작했다. 1999년 12월 있었던 경영이념 및 새 CI 선포식은 신세계의 새로운 시작, '신세계'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2009년 문을 연 부산 '센텀시티점' 정경. 센텀시티점은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 으로 월드 기네스에 등재됐다. /신세계 ◆'최고급'으로 비상하기 위한 2000년대…신세계로 이마트를 키우다 신세계는 지난 20년 간 제품을 구입하는 데에 타인과의 차별화를 꾀하는 '스노브 효과(snob effect)'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2000년 8월 국내 최초의 럭셔리 편집숍 '분더샵'을 시작으로 '럭셔리'를 브랜드 중심가치로 키웠다. 당시 신세계의 고급화 전략을 향한 의지는 현재 신세계의 핵심 점포인 서울 서초구 신세계 강남점 개점 때부터 집요했다. 2000년 10월5일 문을 연 강남점은 스포츠 매장에 골프 스윙 진단실을 설치하고 연 2000만원 이상 구매 고객이 이용하는 VIP전용 휴게실을 50평 규모로 여는 등 부유층을 위한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김진현 백화점부문 대표는 개점 당일 언론 인터뷰에서 "강남점은 영국 헤롯 등 유럽풍의 고급 백화점을 지향한다"며 "13만평의 센트럴시티 내방객과 메리어트호텔의 헬스클럽 고객, 강남.서초구의 고소득층 고객을 유치해 내년 50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이런 전략이 맞아떨어지면서 개점 첫날 47억2000만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2010년 신세계 사상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세계 최대' 타이틀도 이 시기 거머쥐었다. 2009년 센텀시티점을 열면서 신세계 백화점은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으로 월드 기네스 인증을 받았다. 2010년 이전 신세계가 대대적으로 자금을 쏟아 부은 사업에는 '이마트'도 있다. 1993년 서울 도봉구 창동에 1호점을 개점한 후 2000년 1월 21호점을 열며 2000년대를 시작했다. 백화점부문 매출을 이마트 점포수 확장 자금으로 활용하면서 신세계는 2003년 12월 60호점을 열었다. 60호점을 연 2003년에 신세계는 1981년 롯데쇼핑에 매출 기준 유통업계 1위 자리를 내준 지 22년 만에 역전에 성공했다. 2003년 신세계는 순매출 5조8038억원을 올려 롯데쇼핑의 3조5418억원을 훌쩍 앞질렀다. 주력사업인 이마트가 유통가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마트는 같은 해 19조2150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는 전체 백화점 매출 17조1980억원을 처음으로 추월한 것이기도 하다. ◆정용진의 '이마트' 정유경의 '신세계' 2009년 11월 신세계는 구학서 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키고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을 총괄 대표이사로,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를 신세계 부사장으로 선임했다. 정용진 총괄대표 이사는 백화점과 이마트 총괄업무를, 정유경 부사장은 백화점과 이마트의 마케팅, 인테리어, 디자인 등을 책임지기 시작했다. 정용진과 정유경 남매가 2010년대 포문을 열면서 증권가에서는 신세계가 백화점 부문과 마트 부문으로 분할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가능성은 현실이 됐다. 신세계는 2011년 1월 기업을 이마트 부문과 백화점 부문으로 나누겠다고 밝히고 같은 해 5월 '신세계'와 '이마트'로 분할했다. 이 때부터 이른바 '남매 경영'이 시작됐다. 한발 더 나아가 2016년 정 총괄대표 이사와 정 부사장은 각자 보유 중이던 신세계와 이마트 지분을 맞교환 하며 분리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이 시기 이명희 신세계 회장도 두 사람에게 대대적으로 지분을 증여했다. 여전히 그룹 총수로 이명희 회장이 자리를 유지하며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가운데 일어난 일이었다. 2016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17개월의 증축·재단장을 마무리하고 정식오픈했다. 신세계백화점 명품관에서 직원이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당시 신세계백화점측은 "3년내 내 매출 2조 원의 글로벌 트랜드세터가 찾는 국내 1위 백화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2021년, 연매출 세계 1위의 백화점으로 거듭났다. ◆정유경이 구축한 '선택과 집중의 신세계' 2010년에 접어든 후 신세계는 본격적으로 각 백화점의 경쟁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역 1번점 전략'이 바로 이것이다.신세계는 앞선 2000년대 몸집 불리기를 위한 점포 확장보다는 신사업인 이마트에 투자를 하고 백화점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에 집중했다. 신세계를 이끄는 정유경 총괄사장(당시 부사장)은 특히 신세계 백화점에서 럭셔리 경쟁력을 중시했다. 명품과 럭셔리를 통한 지역 1번점을 노린 셈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신세계 강남점에 마침내 명품 3대장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가 입점한 사건이다. 루이비통과 에르메스를 입점시킨 후 마지막으로 남은 샤넬을 정 총괄사장이 심혈을 기울인 끝에 '매장 인테리어 전액 부담' 등 조건으로 유치하는 데에 성공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비굴하기까지 하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그러나 이 때 정 총괄사장이 공들인 에·루·샤 유치는 신세계 강남점을 결국 2020년 매출 세계 1위 백화점으로 올리는 데 이바지했다. 그의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자체 화장품 브랜드 '뽀아레' 출시도 같은 맥락이다. 정 총괄사장은 '명품 브랜드 샤넬을 넘겠다'는 의지로 뽀아레를 론칭했다. 2016년 서울 중구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에서 열린 '신세계면세점 명동점 오픈식'에 참석한 당시 최홍성(왼쪽부터) 신세계인터내셔날 사장, 성영목 신세계면세점 사장, 문세영 면세점협회 운영본부장, 임종하 남대문경찰서장, 나선화 문화재청장, 최창식 중구청장, 이경일 중구의회의장,최영길 남대문시장상인회 상무, 장재영 신세계백화점 사장, 윤기열 신세계건설 대표이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2010년대 중반까지도 신세계의 행보에 먹구름은 없었다. 신세계는 2016년 면세점에 관한 특허를 획득했다. 오랜 백화점 사업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신세계면세점은 빠르게 시장에 안착했고 업계 3위를 차지하며 '면세점 빅3'가 됐다. 유관 사업도 그럭저럭 호조를 보였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2012년 비디비치를 인수하고 화장품 사업에 나섰는데, 실적부진에도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한 결과 이익이 크게 늘며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정용진이 외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도전하자' 결과는? 이마트 정용진호(號)는 2010년대 내내 부침이 이어졌다. 이마트는 그동안 신세계그룹의 내외실적을 모두 견인하던 핵심 사업이었지만 생존을 위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 부회장이 연달아 벌인 무리한 사업과 실패도 문제가 됐지만, 빠르게 변화한 유통산업 동향도 직격타를 날렸다. 2020년 당시 이마트가 예측한 분기별 전문점 영업적자 및 추이. 이마트는 코로나19를 맞으며 2020년부터 심각한 적자에 시달렸지만, 이미 팬데믹 이전에도 적자를 기록했다. /이마트 2012년부터 연달아 개정안을 내놓으며 규제가 강해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이마트의 성장에 제동을 걸었다. 개정안은 대형마트 영업규제 10년과 출점제한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이마트로서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2018년 헌법재판소까지 갔지만 헌재는 유통산업발전법을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합헌 결정했다. 여기에 더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오프라인 유통채널의 온라인화도 넘어야 할 산이 됐다. 쿠팡과 마켓컬리 등이 떠오르며 '신선식품은 직접 보고 사야 한다'는 선입견을 깼다. 소비시장에서 오프라인 매장 매출 비중은 2015년 70%에서 2020년 50%까지 뚝 떨어졌다. 이마트 PB브랜드 '노브랜드'. 정용진 부회장의 주도로 시작한 노브랜드는 이마트의 효자로 거듭났다. 출범과 동시에 버터쿠키 등 수많은 상품이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얻었다. /신세계 이마트는 '노브랜드'를 앞세운 PB상품을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 정 부회장 주도로 2015년 시작한 PB브랜드 '노브랜드(Nobrand)'는 출범과 함께 큰 호응을 얻었다. 감자칩, 버터쿠키 등 인기 상품이 등장했다. 그러나 PB브랜드만으로는 부족했다. ◆SSG닷컴의 시작, 신세계 유니버스 2010년대 중반 SSG닷컴(SSG.COM)의 시작은 신세계 유니버스의 시작이었다. SSG닷컴은 2018년 신세계와 이마트의 백오피스까지 통합해 통합법인을 설립해 이마트에서 빠져나왔다. 그룹 차원에서 SSG닷컴을 전폭지원하면서 SSG닷컴은 연 20~30%의 성장세를 이어나갔다.SSG닷컴은 신선식품 새벽배송에 뛰어들면서 이마트의 일부를 물류센터로 활용하는 등 효율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SSG닷컴은 이번해 상장을 앞두고 있다. 마침내 2019년 SSG닷컴은 연간 거래액 2조 8732억원을 기록하며 2020년대를 맞았다. /김서현기자 seoh@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