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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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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개최국의 침공 일지

12년 전 브라질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축구 참극이 벌어졌다. 2014 FIFA월드컵 개최국 브라질이 4강전 상대 독일에 1-7 패라는 수모를 겪은 것. 당시 전반에만 내리 다섯 골을 꽂아 넣은 독일. 일찌감치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그럼에도 파상 공격은 그칠 줄 몰랐고 후반 들어 두 골 더 보탰다. 브라질은 종료 직전 한 골 만회하는 데 그쳤다. 이를 두고 말이 많았다. 남의 집 안방에서 굳이 그래야 했냐는 것. 축구팬들 사이엔 이른바 '양학'이라는 용어가 자주 쓰인다. 양민학살이란 뜻이다. 브라질은 양민(약체)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앞선 8강전에서 허리 부상 입은 네이마르가 빠진 상태에선 이빨 빠진 호랑이일 수밖에 없었다. 차 떼고 둔 장기랄까. 다만 네이마르가 있었더라도 밀리는 전력이었을 거란 평가가 중론이다. 그 이전 대회 2010 남아공에서도 포르투갈이 북한을 무려 7-0으로 눌렀다. 포르투갈 입장에선 조별리그 골득실 다툼 때문에 그랬겠지만 이는 양학의 전형적 사례로 거론된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했다. 누구의 오폭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수의 초등학생이 희생되고 연일 무고한 시민들이 생을 마감하고 있다. 금세 일단락될 것처럼 말하더니, 아니다. 계속 퍼붓는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의 감언이설에 넘어갔다는 소문, 또 개인 사정이 결부돼 잘못된 정무적 판단을 내렸다는 소문 등이 파다하다. 상대국 최고지도자를 일사천리로 제거했다. 그 이후엔 어떤 다른 목적으로 일련의 사태를 만들어 왔는지 불분명하다. 백악관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전쟁통에서 발을 못 빼고 있다는 견해도 설득력을 얻는다. 타의가 맞다면 이스라엘일 가능성이 짙다. 그럼 이스라엘은 상대 진영 초토화하고 뭘 더 파괴하려는 건지. 이란이란 나라를 지도상에서 없애겠다는 심산인가. 전후 사정이 어떠하든 미국은 이 상황을 자초했다. 상호관세 전쟁을 벌이고 호르무즈 전쟁에 선봉장으로 가담. 이를 바라보는 국제적 시선이 싸늘하다. 해병·육군이 가세하는 지상전은 자국민도 대다수가 결사반대할 것 같다. 미국은 올여름 월드컵을 개최해야 한다. 석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향후 불거질 수 있는 선수·관중·시민 안전 문제 등을 건의해 봄 직하다. 네타냐후한테.

2026-03-19 15:03:43 김연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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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팍스 아메리카나의 실질적 종말

"왜 우리가 다른 나라들을 위해 수년 동안 보상도 없이 해상 항로를 지켜줘야 하는가."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긴 말이다. 당시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 피격 사건이 발생하자 이 같은 글을 남긴 것이다. 2026년 3월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일본 등 5개 국가에 군함을 파견하라고 요구했다. 그의 기본적인 인식을 생각하면 이런 요구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초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의 상선들을 호위해주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조금이라도 오래 관찰했던 사람들은 이 말을 믿지 않았다. 국내 한 중동 전문가는 "분명히 한국이나 일본 등 동맹들에게 군함을 보내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사실상의 '예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요구를 들어줘야 할까.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절 미국이 이란 핵합의 탈퇴가 없었다면, 중동 긴장 상황은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우리는 주유소에 기름 넣으러 가면서 겁 먹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 주식시장 상황을 보며 조마조마할 일도 없었다. 그러니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형적인 책임전가다. 그런데 아무도 선뜻 응하지 않는다. 20여년쯤 전 이라크 파병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다. 그 시절 미국은 '세계의 경찰' 노릇을 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예측 불가능하고, 동맹에는 비용을 전가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 지위를 유지하며 얻었던 지정학적 영향력과 달러 패권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그 유지 비용만을 동맹에 전가하는 것은 지독한 모순이다. '경찰 노릇'은 그만두면서도 '통행료는 내라'는 식의 논리로는 동맹의 호응을 얻을 수 없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이 단순한 논리를 지난해 관세 폭탄 사태를 통해 이미 깨달았다. 미국과 동맹국 간 신뢰가 완전히 붕괴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미국일 수 있었던' 이유도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향한 동맹국들의 망설임과 미적거림은 단순히 국익과 군사적 이익 등을 고려한 판단을 넘어섰다. 이 순간을 통해 우리는 지금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의 권위가 무너지고, 팍스 아메리카나가 실질적으로 종언을 고하는 장면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예진기자 syj@metroseoul.co.kr

2026-03-18 15:11:58 서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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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4·7세 고시’는 끝났나

몇 해 전 주말 오전이었다. 학원가가 한가할 시간인데도 유독 그 학원 앞만 북적였다. 엄마 손을 잡은 아이들이 줄지어 들어갔고, 나 역시 아이의 레벨테스트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시험을 마치고 나온 아이는 금세 장난감 얘기부터 꺼냈다. 그만큼 아이는 어렸고, 시험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아이는 그 학원에 들어갔고 영어는 빠르게 늘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초등학교에 간 뒤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영어 학원도, 수학 학원도 입구에는 늘 레벨테스트가 있었다. 학원만 바뀌었을 뿐, 아이들은 분반과 선발의 문턱 앞에서 계속 경쟁해야 했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학원법 개정안은 유아 대상 학원의 입학 전 레벨테스트를 원천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른바 '4세 고시', '7세 고시'로 불리며 조기 경쟁을 부추겨 온 관행에 제동을 걸겠다는 취지다. 방향에는 공감한다. 유아를 시험대에 세우고, 그 결과로 줄을 세우는 관행은 분명 과했다. 문제는 이 조치만으로 경쟁까지 멈출 수 있느냐는 점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내 아이도 유아 시절 레벨테스트를 거쳤고,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금도 사교육에서 자유롭지 않다. 눈에 띄는 성과를 경험한 터라, 사교육의 문턱 앞에서 쉽게 발길을 돌리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가 영유아 레벨테스트를 금지하고 사교육 규제에 나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4·7세 고시'는 이미 지나왔지만, 경쟁이 계속되고 공교육이 그 수요를 충분히 채우지 못하는 한 사교육은 멈추기보다 우회로를 찾고, 결국 더 음지로 스며들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 현장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사교육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다니거나 다닌 적이 있다는 응답은 전체 29%였다. 하지만 서초구는 56%, 강남구는 52.5%로 절반을 넘었고, 강북구는 14.7%, 중랑구는 13.7%에 그쳤다. 같은 서울 안에서도 조기 사교육의 출발선이 다르다는 뜻이다. 선행학습 속도 역시 학군지에서 더 빨랐다. 경제적 격차가 곧 교육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얘기다. 교육부가 이달 발표한 2025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도 곱씹어볼 만하다.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7조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5.7% 줄었고 참여율도 75.7%로 4.3%p 낮아졌다. 겉으로 보면 사교육 부담이 다소 꺾인 듯하다. 그러나 사교육에 참여한 학생만 놓고 보면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60만4000원으로 오히려 늘었다. 서울은 초등학생 60만1000원, 중학생 66만4000원, 고등학생 76만7000원으로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 사교육을 받는 학생 수는 줄어도, 받는 학생에게 들어가는 비용과 경쟁은 더 짙어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 사례는 규제의 한계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몇 해 전 중국 정부는 '솽젠' 정책으로 교과 사교육을 강하게 막았지만, 이후 사교육은 사라지기보다 음지로 파고들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재력과 인맥이 있는 가정은 우회로를 찾았고, 그렇지 못한 가정은 더 뒤처졌다. 경쟁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규제만 앞세우면 사교육은 멈추기보다 더 은밀하고 비싼 형태로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사교육은 금지한다고 곧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부모를 움직이는 것은 시험 자체보다도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이다. 사교육을 줄이려면 사교육만 단속해서는 부족하다. 부모들이 왜 이렇게 이른 시기부터 불안해지는지, 왜 아이 손을 잡고 학원 문 앞에 서게 되는지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4세 고시'를 멈추겠다면, 이제는 시험만이 아니라 그 경쟁을 키우는 구조까지 함께 바꿔야 한다. /이현진기자 lhj@metroseoul.co.kr

2026-03-17 10:32:57 이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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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사다리 걷어찬 AI, 청년의 자리는 없다

인공지능(AI)이 세상을 바꾼다는 장밋빛 전망 뒤에 가려진 서늘한 지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단순히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공포를 넘어, 이제는 '누구의 자리가 사라지는가'에 대한 잔인한 답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보고서는 그 결과가 명확하다. 지난 3년간 청년층 일자리가 21만 개 넘게 증발하는 동안, 50대 고용은 오히려 20만 개 이상 늘었다. 신기하게도 이 격차는 AI 노출도가 높은 금융, 프로그래밍, 전문 서비스 업종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 기술이 발전하면 모두가 공평하게 위협받는 게 아니라, 경험 없는 신입부터 정글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소리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연공편향적 기술 변화'라는 고상한 용어를 쓴다. AI가 도입되는 초기 단계에서는 숙련된 선배들의 노하우와 AI를 결합해 효율을 뽑아내고, 그 과정에서 잡무를 배우며 성장해야 할 신입의 자리는 아예 없애버린다는 뜻이다. 전문직의 상징인 공인회계사(CPA)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어렵게 시험에 합격한 1200명 중 고작 300여 명만이 실습지를 찾았다는 통계는 충격적이다. 과거 신입 회계사들이 도맡던 데이터 검토와 기초 서류 작업을 AI가 가로채면서, 업계는 더 이상 '키워 써야 할' 신입을 반기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1980년대 전화교환원이 사라진 사례를 들며 이를 기술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도태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전화교환원이라는 특정 직무가 사라진 것과, 전 산업군에 걸쳐 '진입로' 자체가 봉쇄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사다리 아래쪽 칸이 통째로 잘려 나가고 있는데, 누군가는 여전히 "그들도 결국 제 갈 길을 찾을 것"이라며 태평한 소리를 한다. 이는 기득권을 쥔 세대가 던지는 무책임한 낙관론에 불과하다. 결국 AI는 기업에는 효율을, 기성세대에게는 업무 경감을 선물했지만, 청년들에게는 노동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조차 뺏어갔다.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속도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속도를 앞지르고, 그 피해가 오로지 사회 초년생에게 집중되는 구조라면 이건 진보가 아니라 재앙에 가깝다. '경력직 같은 신입'을 요구하던 시장이 이제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신입'을 내놓으라며 청년을 벼랑 끝으로 밀어 넣고 있다. 사다리가 없어진 세상에서 청년들이 어떻게 위로 올라갈 수 있을지, 우리는 그 잔인한 질문에 답해야 할 때다. /김서현기자 seoh@metroseoul.co.kr

2026-03-16 14:28:12 김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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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게임사의 ‘AI 선언’…대표들이 직접 말하기 시작했다

최근 게임업계의 메시지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인공지능(AI)이다. 신작 발표나 기술 소개 자리에서 AI가 언급되는 일은 이제 낯설지 않다. 게임 개발 자동화와 이용자 행동 분석, 콘텐츠 제작 효율화 등 AI 활용 범위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AI 자체가 새로운 화두는 아니다. IT 업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술 혁신의 핵심 키워드로 꾸준히 언급돼 왔다. 다만 최근 들어 게임업계가 이를 기업 전략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끌어안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한 변화다. 단순한 기술 트렌드를 넘어 게임 개발 방식과 콘텐츠 생산 구조를 바꾸는 도구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주목할 부분은 '내용'만이 아니다. '누가 말하느냐'도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게임의 방향성을 설명하는 역할이 주로 개발 조직에 있었다. 개발 총괄이나 디렉터가 신작의 콘셉트와 시스템을 설명하고 기술 변화 역시 실무 조직을 통해 전달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AI 전략과 기술 투자 방향, 게임 개발 방식 변화 같은 메시지를 최고경영진이 직접 설명하는 장면이 늘고 있다. 기업의 장기 전략을 설명하기 위해 대표들이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게임 산업을 둘러싼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모바일 시장 성장세는 둔화했고 글로벌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개발 비용은 크게 늘었고 신작 흥행의 불확실성도 커졌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개발 효율을 높이고 콘텐츠 제작 구조를 바꿀 새로운 수단이 필요해졌고 그 해법 가운데 하나로 AI가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주요 게임사들은 AI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 자동화와 이용자 데이터 분석, 서비스 운영 효율화 등을 잇달아 강조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콘텐츠 생산 속도를 높이기 위한 도구로 AI 활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결국 AI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기 위한 기술이라기보다 게임사 본업인 신작 개발과 서비스 운영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기반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표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게임 산업의 방향을 설명하는 목소리가 개발 조직에서 경영진으로 이동하고 있다. 기술 변화가 기업 전략과 연결되면서 최고경영진이 직접 메시지를 내고 시장과 이용자를 설득하는 모습도 점점 늘고 있다. 물론 AI가 게임 산업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결국 게임 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여전히 재미있는 콘텐츠다. 그럼에도 분명한 변화가 있다. 게임업계의 전략은 여전히 게임에서 출발하지만 그 방향을 설명하는 목소리는 점점 경영진이 직접 전달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게임은 개발자가 만들지만, 산업의 방향은 이제 대표가 말하기 시작했다.

2026-03-15 11:07:51 최빛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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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AI 인재 유출, 늦기 전에 막아야

"AI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면 테슬라에 합류해라"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SNS를 통해 한국을 콕 집어 인재 영입 메시지를 던졌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한국 인재를 향해 직접적인 '러브콜'을 보내는 모습이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퀄컴 역시 한국 반도체 연구 인력을 주요 영입대상으로 보고 3D D램 연구개발 전문가 확보에 나섰다. 문제는 이런 움직임이 단순한 채용 경쟁을 넘어 인재 유출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 기업들은 파격적인 연봉과 연구 환경, 글로벌 프로젝트 참여 기회를 내세워 한국의 우수 인력을 흡수하고 있다. 실제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4년 미국 취업이민 비자(EB1·EB2)를 받은 한국 고급 인재는 5847명으로 7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의 핵심 두뇌들이 조용히 해외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국내 기업들도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LG는 사내 대학원을 설립해 직원들을 석·박사급 AI 전문가로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대학과 협력을 확대하며 인재 선점에 나섰고, SK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AI 조직을 챙기며 젊은 인재를 전면에 배치하는 등 인재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인재 유출의 뿌리는 훨씬 깊은 구조적 문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대표적인 것이 이공계 인재의 급격한 감소다. 한국에서는 상위권 학생들이 공학보다 의대를 선택하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재 유출까지 겹치면 산업 경쟁력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AI와 반도체, 로봇 등 첨단 산업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인재는 더 이상 기업의 자산만이 아니다.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자원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인재 확보 경쟁은 기업의 몫으로만 남겨져 왔다.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한국 기업이 인재를 지킬 수 있느냐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가 인재를 붙잡을 수 있느냐의 문제다. AI 인재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그 대가는 생각보다 훨씬 클지 모른다.

2026-03-12 16:12:00 차현정 기자
[기자수첩] LFP 주도권 쥔 중국…K-배터리 전략 시험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둘러싼 배터리 업체 간 기술 경쟁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문제는 그 경쟁의 중심이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점이다. LFP 기반 배터리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우리 업체들이 강점을 가진 삼원계 배터리를 밀어내고 중국 시장에서 대세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도 보급형 모델을 중심으로 채택이 늘어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전기차 캐즘 국면에서도 완성차 업체들이 차량 가격을 낮추기 위해 LFP 채택을 확대하는 분위기다. 최근 중국 최대 전기차 제조사 BYD는 고도화한 새로운 기술인 '차세대 블레이드 배터리와 초고속 플래시 충전 시스템'을 공개했다. 발표에 따르면 배터리를 10%에서 70%까지 약 5분 만에 충전할 수 있고 약 9분이면 거의 완전 충전 수준에 도달한다. 영하 20도 환경에서도 20%에서 97%까지 약 12분 만에 충전이 가능하고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약 777km 수준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반면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대응은 다소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전기차 수요 둔화와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 부담이 겹치면서 전기차용 LFP 시장보다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을 중심으로 전략을 펼치는 모습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7년 양산을 목표로 충북 오창 공장에서 ESS용 LFP 배터리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으며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 공장에서도 일부 전기차 배터리 생산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삼성SDI 역시 북미 배터리 생산라인 일부를 ESS용 LFP 생산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SK온도 북미 에너지 기업과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ESS용 LFP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K-배터리 기업들은 두 가지 난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전고체 배터리라는 미래 기술을 선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LFP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현재 수요가 형성된 보급형 전기차 시장에 대한 대응 전략을 보다 빠르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LFP 분야에서 후발주자인 K-배터리 기업들이 기술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도록 정부 지원과 함께 산·학계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관희기자 wkh@metroseoul.co.kr

2026-03-11 15:08:14 원관희 기자
[기자수첩] K제약 "깎느냐 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약가제도 개편안을 놓고 정부와 충돌하고 있다. 정부는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약가 산정률을 하향 조정한다고 하고, 업계는 산업 성장 가능성을 약화시키는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약가 관련 사안은 사실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논쟁이 이전과 다른 이유는 글로벌 바이오 산업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제약 업계를 대표하는 미국제약협회는 의미심장한 보고서를 내놨다. 미국이 수십 년간 첨단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유지하고 있는 혁신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였다. 그 배경에는 중국이 있다. 글로벌 데이터에서 미국 기업의 혁신신약 임상시험 점유율은 2015년 46%에서 2025년 33%로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중국은 4%에서 30%까지 급증했다. 10년 전만 해도 42%포인트에 달했던 양국 격차는 이제 3%포인트 수준까지 좁혀졌다. 임상시험 속도도 중국이 앞선다. 단일 국가 기준 임상 1상과 2상은 미국보다 평균 50% 가까이 빠르게 진행되고 비용도 훨씬 낮다. 한때 '복제약 국가'로 불리던 중국이 주요 경쟁 상대로 떠오르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비해 국내 제약 산업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실적으로만 살펴봐도 국내 상위 100대 제약사의 영업이익률은 4.8%, 순이익률은 3% 수준에 불과하다. 제약 업계는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안이 시행될 경우 연간 최대 3조6000억원 규모의 매출 감소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정책 논쟁이 비용 관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나아가 혁신을 촉구하기 위한 보상 강화라는 구태의연한 틀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연구개발을 위한 규제, 보조금 등에 대한 논의 역시 마찬가지다.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산업 전략'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신약과 바이오 신기술을 내놓는 경쟁은 이미 가속화됐다. 업계 또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발전한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미래 시장을 주도할 빅파마로 도약하거나 대형 품목을 보유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 제약 업계 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제약사, 신약개발, 하긴 하나"라는 질문은 늘 있었고 "그 의구심만큼 수많은 실패에도 끊임없이 도전해 왔음"을 강조했다. 그 노력이 평가절하 되어서는 안된다. 다만 말보다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정부와 산업계 모두 냉정한 진단 위에 다음 단계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청하기자 mlee236@metroseoul.co.kr

2026-03-10 15:51:57 이청하 기자
[기자수첩] 미국 지수 ETF는 초저보수 경쟁, 코스피 ETF는?

상장지수펀드(ETF)는 같은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상품일수록 성과 차이가 크지 않다. 결국 투자자들이 비교하게 되는 것은 비용이다. 그래서 글로벌 ETF 시장에서는 수수료 인하 경쟁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미국 지수를 추종하는 ETF 시장이 대표적이다. 국내에 상장된 S&P500 ETF의 총보수는 0.0047~0.0068% 수준까지 내려왔다. 운용사들이 투자자 유치를 위해 보수를 잇따라 낮추면서 사실상 '초저보수' 체제가 자리 잡았다. 하지만 국내 대표 지수를 추종하는 ETF 시장의 풍경은 조금 다르다. 코스피200 ETF 가운데 시장 점유율 1위 상품인 삼성자산운용의 'KODEX 200' 총보수는 0.15% 수준이다. 반면 한국투자신탁운용 'ACE 200'과 KB자산운용 'RISE 200'은 약 0.017% 수준으로 가장 낮고, 미래에셋자산운용 'TIGER 200'은 약 0.05% 수준이다. 동일한 코스피200 지수를 추종하는 ETF임에도 운용사별 보수 격차가 상당히 크게 나타난다. 수익률 차이는 크지 않다. 같은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인 만큼 ETF 간 성과 격차는 제한적인 수준이다. 결국 투자자가 체감하는 차이는 비용으로 귀결된다. 장기 투자일수록 수수료의 복리 효과가 누적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격차는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해외와 국내 시장의 온도 차이다. 해외 지수 ETF에서는 초저보수 경쟁을 벌이면서 정작 국내 지수 ETF에서는 경쟁이 미지근한 모습은 투자자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국내 ETF 시장은 이미 400조원 규모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다. 개인 투자자들도 개별 종목 대신 ETF를 통해 시장에 투자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ETF는 이제 국내 자본시장으로 자금을 끌어들이는 주요 투자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흐름을 고려하면 대표 지수 ETF의 보수 구조에 대한 논의도 시장 성장 속도에 맞춰 이어질 필요가 있다. 투자자의 비용 부담이 합리적으로 낮아질수록 장기 투자 매력은 높아지고, 이는 ETF 시장 확대와 자본시장 활성화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용사 입장에서도 시장 저변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TF 시장이 빠르게 커진 지금, 비용 구조에 대한 고민은 특정 운용사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전체의 경쟁력과 연결된 문제다. 투자자와 운용사, 그리고 자본시장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에서 균형 잡힌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6-03-09 14:36:16 허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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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언발에 오줌누기' 중·대형 전기트럭 보조금 현실성 떨어져

"정부의 2050 넷제로 목표에 맞춰 수천억 원 규모의 개발비를 투입했지만 정부 지원 부족으로 시장 자체가 고사 위기에 빠졌다." 국내 상용차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만난 상용차 업계 관계자는 1천억원이 넘는 개발비를 투자해 중대형 전기화물차를 만들었지만 정부의 '생색내기식' 보조금 지원 규모 등의 벽에 막혀 위기감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특히 전기화물차와 수소전기트럭에 대한 보조금 형평성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26년 전기자동차 보급사업 보조금 업무처리지침'을 확정하고, 국토부 차급 기준 중형(적재중량 1.5~5톤)과 대형(5톤 이상) 전기화물차를 보조금 지원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중형급에는 최대 4000만원, 대형급에는 최대 6000만원의 국비 보조금이 책정됐다. 소형 전기화물차 중심이던 상용차 전동화 정책이 중대형 영역으로 확대됐다는 점에서 제도적 변화는 분명하다. 하지만 중대형 전기화물차 시장의 가장 큰 장벽은 여전히 가격 구조다. 중대형급 전기 화물차 기준 5톤 적재 카고 내연기관 차량은 약 8000만~9000만원 수준인 반면, 최대 보조금 적용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삼원계 배터리를 적용한 전기화물차는 차량 가격이 3억 1000만원에 육박한다. 여기에 중앙정부 보조금 최대 6000만원과 지자체 보조금 최대 6000만원을 모두 적용하더라도 1억원 이상의 차이가 있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시장에서의 선택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번 개편을 통해 중대형 전기화물차 시장을 육성하겠다는 분위기지만 정책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또 정부가 수소전기트럭에 2억500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한 것과 관련해 정책 형평성 논란도 일고 있다. 여기에 지자체 보조금이 추가되면 실제 혜택은 더 커진다. 동일한 상용차 영역에서 운행 목적과 기능이 비슷한 수소전기트럭과 비교해 보조금 격차가 크다는 지적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 충전 인프라와 소비 형태를 보면 수소전기트럭보다는 전기화물차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게 시장 변화를 빠르게 가져올 수 있다. 배출하는 오염물질의 비중이 높아 '도로 위 미세먼지 공장'으로 불리는 중대형 디젤트럭이 친환경 트럭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보다 정교한 정책 조정이 어느때보다 필요하다.

2026-03-05 15:41:43 양성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