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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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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카드업계와 역마진

마진이라는 간단한 개념이 있다. 마진은 원가와 판매가의 차이를 뜻한다. 기본적으로 경제활동에서는 마진이 남는 것이 중요하다. 원가와 판매가의 차이가 나지 않으면 경제 활동을 영위할 유인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의 기본 공식은 마진을 남기는 것이다. 카드업계에서 이 공식이 조금씩 깨지고 있다. 여신전문채권(여전채) 금리와 카드론 금리가 엇박자를 내면서다. 여전채 금리는 지속해서 상승중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AA+ 등급 3년물 금리는 3.6%대로 집계됐다. 지난해 10월 말 보다 약 0.6%포인트(p) 상승한 수치다. 카드사의 자금 조달 비용, 즉 '원가'가 지속해서 오르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판매'에 해당하는 카드론 금리는 떨어지고 있다. 국내 주요 카드사 9곳의 2월 카드론 평균 금리는 13.04%~14.21% 사이에서 형성됐다. 13.07%~14.40%였던 지난해 1월과 비교하면 평균 하단은 0.03%포인트(p), 평균 상단은 0.19%p 하락했다. 자연스레 수익성은 악화일로 상태에 빠졌다. 실제 카드업계에서는 현대카드, 우리카드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카드사들의 순이익이 쪼그라들었다. 여기에 가맹점 수수료 수익 제한까지 겹치면서 업황이 지속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마땅한 수익원이 없는데 자금 조달 비용 상승 압박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로 국고채 금리가 급등(채권값 급락)하면서 여전채 금리 상승 압력도 커졌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카드사와 캐피탈사의 자금 조달 비용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달 비용은 계속 늘어나는데 수익원이 없다면 그 역마진의 부담은 결국 고객에게 돌아간다. 카드 이용자 혜택은 축소되고, 대출 금리는 다시 오를 수 있다. 이미 카드사들은 수익성 악화에 따라 혜택이 많은 '혜자 카드'를 단종시키고, 무이자 할부, 적립 혜택 등을 축소하고 나섰다. 핵심은 수익원 창출이다. 카드사들은 규제 완화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수익원 찾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 기존 신용판매 패턴을 유지하며 차별성 없는 카드 상품만 출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안면으로 결제하는 '페이스 페이' 등이 확산되는 등 변화하는 고객 결제 방식에도 주목해야 한다. 결국 카드 산업도 마진이 남아야 지속될 수 있다.

2026-03-05 08:16:25 안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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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환율, 숫자보다 무서운 건 '리듬'

중동 충돌이 격화되자 '달러 쏠림'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확전과 유가 급등 가능성이 겹치면 원·달러 환율은 레벨 자체보다 변동성으로 경제를 흔든다. 유가와 환율은 곧바로 수입물가를 자극하고, 체감물가와 기대심리를 흔든다. 환율 쇼크가 '한 번의 스파이크'가 아니라 '반복되는 흔들림'이 될 때, 기업은 헤지 비용을 가격에 전가하고 가계는 장바구니에서 먼저 체감한다. 한국은행은 지난 2월 26일 기준금리를 연 2.50%로 6회 연속 동결했다. 물가가 목표 수준 근처에서 안정적 흐름을 이어가고 성장도 예상보다 양호하지만, 금융안정 리스크가 지속된다는 판단이다. 한은은 소비자물가와 근원물가 전망을 2.2%와 2.1%로 소폭 상향하면서, 향후 물가 경로가 국제유가와 환율 움직임에 크게 좌우될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강조했다. 여기서 질문이 바뀐다. 지금 한은의 숙제는 '인하할까 말까'가 아니라, 환율 충격이 물가로 번지는 속도를 어떤 기준으로 관리할지다. 금리를 서둘러 내리면 원화 약세가 재점화돼 수입물가를 다시 밀어올릴 수 있고, 반대로 금리를 꽉 쥐면 경기 회복의 숨통이 막힌다. 이 딜레마의 중심에 '환율의 속도'가 있다. 지난 2월 수출이 29% 늘어도(반도체 급증) 위험회피 국면에서는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환율을 지켜주지 못한다. 더구나 곧 발표될 물가 지표는 시장의 '경계심'을 키운다. 환율이 흔들리는 구간에서 물가가 조금만 튀어도, 금리 경로의 불확실성은 증폭된다. 시장이 듣고 싶은 건 '걱정하지 말라'가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다. 필요한 건 방어선 숫자가 아니라 '정책의 룰'이다. 한은이 이번에 도입한 '점도표' 같은 경로 제시는 인하·동결을 찍어주는 도구가 아니라, 금리만으로 해결하지 않고 시장안정 조치와 메시지를 어떤 조건에서 조합할지를 함께 설계해 기대를 관리하는 장치가 돼야 한다. 숫자를 던지면 시장은 그 숫자만 시험한다. 대신 룰을 보여주면, 시장은 '추측' 대신 '예상'으로 움직인다. 환율은 체온계가 아니라 심전도다. 1500원이라는 숫자보다 무서운 건 며칠 사이에 튀고 꺾이는 리듬이다. 1500을 두려워하기 전에, 흔들리는 방식부터 고쳐야 한다.

2026-03-03 13:58:27 김주형 기자
[기자수첩] 대형주만 밸류업

코스피가 '꿈의 지수'인 6000을 넘어섰지만, 계좌는 그대로라는 투자자들의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정부와 한국거래소가 '밸류업'을 내세우며 증시 체질 개선을 강조했지만, 상승 효과는 일부 대형주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에 상장한 950개 종목 가운데, 지난달 0% 이하의 상승률을 보인 종목은 246개(25.89%)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19.52% 상승했지만, 약 26% 종목들은 지수 상승과 무관하게 횡보하거나 오히려 하락했다. 더불어 수익률이 5% 이하인 종목은 442개(46.53%)로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지수 상승이 시장 전반의 회복이 아니라, 일부 대형주가 만든 '착시'일 가능성을 보여 준다. 실제로 같은 기간 KRX 중대형 TMI(토탈마켓인덱스) 지수는 19.55% 올랐지만, KRX 중형 TMI는 6.63%, KRX 소형 TMI는 4.66%, KRX 초소형 TMI는 3.30% 상승에 그쳤다. 시가총액이 작을수록 상승률이 낮아지는 '역피라미드' 구조가 뚜렷하게 나타난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수급이 대형주에 집중된 결과다. 기관과 외국인 자금은 유동성과 실적이 검증된 종목으로 쏠리고, 개인 투자자 역시 뒤늦게 대형주 추격 매수에 나서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결국 지수 상승은 저평가 해소보다 우량주 재평가에 중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월 기관과 개인은 각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압도적으로 순매수했으며, 외국인도 두산에너빌리티, 삼성SDI 등 대형주를 가장 많이 담았다. 여전히 상당수 상장사는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를 하회한다. 최근 한국기업거버넌스 포럼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PBR 1배 미만 기업 비중은 69%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초저평가 기준인 PBR 0.5배 미만 상장사는 40%에 달한다. 한국 주식시장이 상법개정과 인공지능(AI) 반도체 슈퍼 사이클 등을 통해 저평가 요소를 해소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저평가 구간'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다. 밸류업의 본질은 단순한 주가 상승이나 배당 확대에 있지 않다. 시장 전반의 저평가를 해소하고, 투자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구조적 변화를 만드는 데 있다. 지금처럼 일부 대형주에만 효과가 집중된다면, 시장이 신뢰하는 밸류업을 지속하기는 어렵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때다. 지수를 얼마나 끌어올렸는지가 아니라, 시장 전체를 얼마나 끌어올리고 있는지다. 대형주만의 밸류업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완성할 수 없다.

2026-03-02 09:52:26 신하은 기자
[기자수첩] "라이브니까 환불 불가?" SNS 판매의 무책임

라이브커머스는 분명 유통의 진화다. 실시간 소통, 즉각 할인, 한정 수량이라는 요소는 소비자에게 '현장감 있는 쇼핑 경험'을 제공한다. 문제는 일부 SNS 판매자들에게는 책임 회피의 방패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기반 개인 방송 판매에서 그 폐해가 두드러진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라이브커머스 관련 소비자 상담은 2022년 259건에서 2025년 9월 누적 1489건으로 급증했다. 피해 유형 1위는 환불·반품 거부(35.3%)다. "라이브 특가라 환불 불가", "방송 중 구매는 예외" 같은 안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실시간 판매라는 형식은 법적 청약철회 예외 사유가 될 수 없다. 상당수 판매자 안내 자체가 사실상 위법 소지가 있다는 의미다. 방송 중 진행자는 "전문의 인증", "부작용 없음", "시술급 효과" 같은 과장되거나 허위 표현을 쏟아낸다. 분쟁이 발생하면 판매자는 "개인 의견이었다"고 물러선다. 플랫폼은 "우리는 중개자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판매는 하되 책임은 회피하는 구조 자체가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설계돼 있다. 특히 SNS 기반 라이브 판매는 플랫폼의 자율 규제에 의존하는 구조로, 홈쇼핑처럼 상품이나 표현에 대한 사전 심의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다. 방송 편성 심사나 효능 표현 검증 같은 절차가 제도적으로 마련된 영역과 달리, 개인 판매 중심 라이브 시장은 사후 신고와 자체 정책에 기대는 측면이 크다. 플랫폼은 방송 노출과 결제 시스템 등 거래 인프라를 제공하며 거래 과정 전반에 영향을 미치지만, 법적으로는 통신판매중개자 지위에 머물러 분쟁 발생 시 1차 책임은 판매자에게 귀속되는 구조다. 시장이 확대될수록 피해 역시 반복·누적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유통 혁신은 소비자 신뢰 위에서만 지속된다. 신뢰가 무너지면 시장도 무너진다. 지금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책임 설계다. 플랫폼과 판매자가 영향력만 누리고 책임은 피하는 구조를 방치한다면, 라이브커머스는 '미래 유통'이 아니라 '무책임 유통'으로 기억될 것이다.

2026-02-26 17:23:20 신원선 기자
[기자수첩] 환율에 울고 웃는 면세점과 백화점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 막대한 무역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강제로 엔화 가치를 끌어올리는 이른바 '플라자 합의'를 단행했다. 엔화 가치가 치솟자 일본 수출품 가격은 큰 폭으로 뛰어올랐고, 결국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뜻밖의 이득을 본 건 한국이었다.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았던 한국은 원화 가치 하락으로 막대한 가격 경쟁력을 얻었다. 저금리, 저유가, 저환율이라는 '3저 호황'과 맞물려 한국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역사에 남을 어부지리였다. 오늘날 대한민국 유통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강달러 현상으로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유통 채널 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면세점은 환율 상승 직격탄을 맞았다. 상품 가격이 달러화를 기준으로 매겨지다 보니 세금을 면제받아도 가격 메리트가 떨어져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면세점 4사(신세계, 신라, 롯데, 현대) 모두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신통치 못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길 잃은 소비자들이 향한 곳은 백화점 명품관이다. 원화 기준으로 가격이 고정된 백화점은 가만히 앉아서 저렴하다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 결과 올해 백화점 4사(신세계, 현대, 롯데, 갤러리아)는 나란히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올랐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 매출 증가세가 매섭다. 롯데백화점은 2016년 이후 외국인 매출 역대 최대치를 달성했으며 올해는 1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전년 대비 25%, 신세계백화점은 3.5배나 외국인 매출이 급증하며, 면세점 대신 백화점을 선택한 '외국인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그러나 백화점이 이 횡재에 마냥 취해 있어서는 곤란하다. 1980년대 한국 경제가 3저 호황의 단물만 빨아먹는 데 그쳤다면 오늘날의 번영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 기업들이 벌어들인 막대한 자본을 반도체와 자동차 등 산업의 기초 체력을 키우는 데 아낌없이 투자했기에 고환율 시대가 끝난 뒤에도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현재 백화점 업계를 맴도는 훈풍에는 환율이라는 외부 요인이 짙게 깔려 있다. 하지만 환율은 언젠가 제자리를 찾기 마련이다. 면세점이 다시 가격 매력을 되찾았을 때도 고객의 발길을 붙잡아두려면, 단순한 환율 차익을 넘어 오프라인 공간만이 줄 수 있는 압도적인 큐레이션과 특별한 경험을 증명해 내야 한다. 면세점 역시 돌아올 손님을 찾기 위해 자체 제작 상품 등 눈길을 끌 요소들을 발굴해내야만 한다. /손종욱기자 handbell@metroseoul.co.kr

2026-02-25 14:39:32 손종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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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출규제와 생산적 금융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강화되자 은행의 자산 포트폴리오는 빠르게 기업 쪽으로 이동했다. 지난해 4대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증가세로 돌아섰고, 겉으로만 보면 금융의 무게중심이 '생산'으로 옮겨가는 듯한 모습이다. 정책 당국이 강조해온 생산적 금융 확대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가계에서 기업으로의 자금 이동은 정책 의도와 부합하는 흐름처럼 보인다. 그러나 증가한 숫자만으로 금융의 방향 전환을 단정하기는 이르다. 세부 흐름을 보면 대출 증가분은 주로 대기업과 수도권 기업에 집중됐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은행은 리스크 관리에 더욱 민감해진다. 담보가 충분하고 재무구조가 안정된 차주에게 자금이 몰리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연체율 관리와 건전성 지표가 중요한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기는 쉽지 않다. 문제는 정책의 의도와 자금의 실제 흐름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다. 금융당국은 포용과 혁신을 강조하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문턱은 여전히 높다. 지방 중소기업이나 기술 기반 기업들은 대출 심사 과정에서 여전히 담보와 과거 실적을 요구받는다. 미래 성장 가능성보다 현재의 안정성이 우선되는 구조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자금이 필요한 곳과 실제 자금이 향하는 곳 사이의 간격은 여전하다. 가계대출을 억제하자 기업대출이 늘었다는 단순한 수치 변화는 정책 성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경제 전반의 활력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취약한 기업이 자금을 통해 도약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기업대출 확대는 결국 안전한 차주 중심의 자산 재배치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총량 관리가 아닌 방향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특히 지방 중소기업과 기술 기반 기업에 대한 금융 접근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설계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생산적 금융'은 구호에 머물 수 있다. 기술평가의 실효성을 높이고, 담보 중심 심사 관행을 보완하며, 일정 부분 위험을 분담하는 정책적 장치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의 자율에만 맡기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분명하다. 대출의 총량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기업대출 증가가 통계상의 성과로 남지 않으려면, 자금이 실제로 성장 잠재력이 있는 기업과 지역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금융정책이 되어야 한다. 생산적 금융은 말이 아니라 흐름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2026-02-24 14:01:19 나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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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판교, 더 이상 같은 질문을 받지 않는다

판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한때 이곳은 국내 IT 산업의 성장 신화가 응축된 공간이었다. 높은 연봉과 파격적 보상, 공격적 채용과 대규모 투자. 이른바 '판교 모델'은 확장과 낙관의 상징이었다. 판교에 둥지를 틀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업은 미래 가치를 인정받았고, 개발자는 커리어 상승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변화는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판교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성장세가 주춤해진 이후, 낙관 대신 신중함이 스며드는 과정이 이어져 왔다. 최근 만난 한 게임사 대표는 "판교 개발자들의 분위기도, 판교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질문도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과거가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느냐'를 묻는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얼마나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느냐'를 먼저 따지는 분위기라는 설명이다. 현장의 변화는 프로젝트 운영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과거에는 긴 호흡을 전제로 수십 명의 개발자가 하나의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회사 역시 그 과정을 미래를 위한 투자로 여겼다. 완성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방향성이 맞다고 판단하면 밀어붙였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시장 반응을 보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빠르게 정리한다. 효율과 속도를 앞세운 전략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리스크 관리일 수 있지만, IT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불안 요소로 다가올 수 있다. 언제든 프로젝트가 접힐 수 있다는 인식은 곧 고용과 커리어의 불확실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기 드라마틱한 성장을 경험했던 게임사들에는 이런 변화가 더욱 예민하게 감지된다. 단기간에 몸집을 키웠던 조직일수록 성장 둔화 이후의 긴장감은 더 크게 체감될 수밖에 없다. 공격적 채용과 대규모 프로젝트 확장이 일상이었던 시절과 지금의 온도 차는 분명하다. 투자 시장의 태도 역시 냉정해졌다. 성장 서사만으로는 자금을 끌어오기 어렵다. 현금 흐름과 수익 구조, 지속 가능성이 먼저 거론된다. 판교라는 지리적 상징이 투자 판단의 우선 조건이 되던 시기는 옅어지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인식이다. 판교를 향한 시선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기업들이 얼마나 명확히 받아들이고 있느냐다. 속도전만으로는 산업의 신뢰를 지키기 어렵다. 개발자의 안정감과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은 단기 효율과는 다른 문제다. 판교 기업들은 여전히 국내 IT 산업의 중심에 서 있다. 달라진 환경에 맞춰 전략을 유연하게 조정하되, 인재와 산업 기반을 함께 키우는 방향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성장의 판교가 생존의 판교로 이동하는 이 시기, 기업의 선택은 곧 산업의 방향이 된다. '판교의 신화'는 끝난 것이 아니라 시험대에 오른 것인지도 모른다.

2026-02-19 09:31:39 최빛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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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출규제와 2금융 '풍선효과'

풍선효과. 풍선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는 현상을 빗댄 표현으로, 어떤 현상이나 문제를 억제하면 다른 현상이나 문제가 새롭게 불거져 나오는 현상을 뜻한다. 풍선의 튀어나오는 곳마다 모두 누르면 어떻게 될까. 풍선은 결국 터지고 만다. 2금융권의 가계대출 풍선효과 역시 마찬가지다. 1금융권의 대출을 규제하자 2금융권으로 가계대출이 쏠렸다. 지난달 한 달 새 2조 4000억원의 가계대출이 증가했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제2금융권의 가계대출은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째 증가하고 있다. 풍선효과가 장기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상호금융권이 가계대출 증가세가 특히 화두다. 지난해 통틀어 상호금융권에서만 가계대출이 10조5000억원 증가했다. 27조6000억원 가계대출이 감소했던 지난 2023년과 4조 6000억원 감소 폭을 보였던 2024년과는 상반되는 흐름이다. 금융당국은 부푼 풍선을 또다시 누르기 시작했다.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상호금융권을 소집해 대출 영업 자제를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의 압박에 새마을금고와 신협은 대출모집인을 통한 가계대출 영업을 한시 중단했다. 공격적인 대출 영업을 자제하고 있는 것. 문제는 상호금융은 대표적인 지역·서민금융기관이라는 점이다. 무작정 대출을 조이면 지역 서민들이 대출 활동을 통해 자금을 융통할 길이 사라진다. 무주택 서민·청년·자영업자 등 대출이 절실한 실수요자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보게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무작정 눌러서만은 안 된다. 가계대출이라는 큰 틀을 다시 쪼개야 한다. 실제 업계 관계자는 "가계대출 중에서도 신용대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주택담보대출을 또 다시 세분화하면 아파트 구입을 위한 주담대와 과거 분양을 받았을 때 입주 잔금 대출 등이 있다"면서 "과거 분양 시 받았던 입주 잔금 대출이 가계대출을 견인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상호금융권 별 가계대출의 세부적인 항목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신용별로 차주를 세분화해 대출 규모를 조정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하다. 양적 규제로 풍선을 누르기만 하면 언젠가 터지고 만다. 질적 고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6-02-18 12:50:45 안재선 기자
[기자수첩]혁신과 혁명, K제약 딜레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약가제도 개편안이 논란이다. 논란 중심에는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약가 산정률을 기존 53%대에서 40%대로 하향 조정하는 방안이 놓여 있다. 정부의 논리는 명확하다. 약값을 낮춰 국민 부담을 줄이고 국내 제약 회사들이 복제약에 안주하지 않고 신약 개발로 나아갈 수 있도록 변화를 이끌겠다는 것이다. 구조 전환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도 존재한다. 방향만 놓고 보면 틀리지 않다. 다만 국내 제약 산업이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 속도와 방식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이를 '혁신'이라 부르지만 현장에선 '혁명'에 가깝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현재 국내 제약사 평균 영업이익률은 5%에도 못 미친다. 그마저도 제네릭이라는 '캐시카우'가 버팀목이 돼왔다. 이 현금 흐름을 끊어내면서 동시에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라는 주문은 혁신이 될 수 없다. 혁신의 사전적 정의는 바꾸거나 고쳐 아주 새롭게 함이다. 파괴가 아니다. 국어사전에서 혁명을 찾아보면, 관습, 제도 등을 단번에 깨뜨리고 새로운 것을 세움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약가제도 개편안이 국내 산업을 밀어붙이는 '혁명'이 된다면 그 뒤에 남는 것은 경쟁력이 아니라 공백일 수 있다. 물론 같은 제약 업계 내부에서도 일각에선 "살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각오하며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산업 체질 개선은 선언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신약 하나가 나오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큰 비용이 당연히 필요하다. 어쩌면 국내 제약사에게 제네릭 의약품의 존재는 혁신 자체일 수 있다. 기존 방식을 개선해 새 가치를 만드는 힘은 오리지널 특허가 만료된 약을 복제해 안정적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기반으로 산업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을 때 발휘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신약 개발은 혁명과 같을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고 실패를 감수하지 않으면 성공 또한 기대할 수 없다. 결국 정부는 제약 산업에게 제네릭 의약품이라는 캐시카우 없이, 즉 혁신 없이, 신약 개발이라는 창조를 위한 혁명만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공적인 신약개발 그리고 국가 미래와 K제약 생존을 위해서는 절감 재원을 재투자하는 기업의 능동적인 방안과 개별 기업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이 뒷받침되길 기대한다.

2026-02-12 16:24:45 이청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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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내 아이의 은밀한 친구

최근 미국에서 이른바 '캐릭터 인공지능(AI)'으로 불리는 캐릭터 AI 챗봇을 이용한 뒤 청소년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다. AI 챗봇 서비스 '캐릭터.AI(Character.AI)'를 이용하던 10대 청소년 두 명이 약 3개월 간격으로 사망했는데, 이들은 모두 유서에 'I will shift'라는 문구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표현은 현실 세계를 떠나 캐릭터 AI가 존재하는 가상 세계로 이동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보도에 따르면 두 청소년은 캐릭터 AI와의 대화에서 "만나고 싶다",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등의 호소를 반복했으며, 이에 대해 캐릭터 AI는 "제발 와 줘"와 같은 반응을 보이며 이들의 비현실적 인식을 제지하기보다 오히려 부추기고 동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화 과정에서는 성적 착취에 가까운 부적절한 내용도 오간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캐릭터.AI 운영사와 두 청소년의 유족은 지난 1월, 회사 측의 일정 부분 책임을 전제로 한 비공개 합의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일까. 불행히도 아닌 듯하다. 최근 계명대 조수현 교수 디지털상담연구실이 국내 한 언론과 전국 초·중 교사 및 상담교사에게 사례를 수집한 결과, AI 챗봇과의 대화로 인한 문제적 상황이 다수 발견됐다. 대부분 장시간 사용과 정서적 의존이 또래 관계를 단절시키고 현실 회피 성향을 가중시켰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을 지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AI는 교육 보조 도구로써 사용이 장려되고 있고, 아동 청소년이 개인 휴대폰을 이용해 장시간 부적절한 대화를 하더라도 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례에서 발견된 청소년들 중 상당수는 캐릭터 AI 챗봇이 아닌 챗GPT와 같은 범용 AI를 활용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AI 챗봇이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아동·청소년 보호 체계 전반의 공백을 드러내는 신호라고 지적한다. 기술 기업의 자율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한 만큼, 연령별 접근 통제 기준을 명확히 하고 교육·가정·플랫폼을 아우르는 다층적 안전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AI가 일상 속 대화 상대로 깊숙이 들어온 지금,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대응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경고가 커지고 있다. /김서현기자 seoh@metroseoul.co.kr

2026-02-11 14:25:58 김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