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침체에 쌓이는 재고, 골머리 앓는 산업계…중국 회복에 희망
산업계가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로 재고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격을 크게 낮춰도 좀처럼 수요가 살아나지는 않는 분위기, 봉쇄를 풀기 시작한 중국 시장이 해결해줄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15일 증권가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연말 재고 자산 회전 일수는 280일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재고가 판매되는데까지 10개월이 걸린다는 얘기다. 3분기(189일)보다 3달 이상 늘어난 수준이다. 100일을 웃돌았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늘었다. 2019년 '다운사이클'에 진입했을 때도 150일을 넘지 않았다. 삼성전자 반도체 재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도체 재고 일수는 가격을 결정하는 핵심 수치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생산량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는 탓에 재고를 빨리 처리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가격을 내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D램 가격은 지난해와 비교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DR4 8Gb 가격은 지난해 말 3달러 중후반대, 그러나 최근에는 2달러를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한국은행 수출입 물가지수에 따르면 11월 D램 수출 가격도 전년 동기 대비 28.7%가 감소했다. 반도체 업계 4분기 실적 악화는 기정 사실화됐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가 수천억원 규모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 DS부문 영업이익도 7분기만에 10조원을 밑돌 전망이다. 반도체 업계는 생산성을 높이는데 집중하며 원가 경쟁력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위기를 벗어난다는 계획이다. 투자도 최소화했다. 이에 더해 SK하이닉스는 내년부터 감산까지 준비 중이다. 비용을 최소화하는 등 충격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병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장 침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어서 얼마나 실적 악화를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때문에 주가 하락도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주요 배후 산업인 철강도 재고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3분기 재고 자산은 포스코 홀딩스가 13조6024억원, 현대제철이 7조600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늘었다. 제철소 역시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가동을 멈추기 쉽지 않다. 재고가 쌓이면 판매가격이 내려가는 것도 같다. 가격 협상도 불리해진다. 이에 따라 연말 실적 전망도 전년 대비 20~30%대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 등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거나 신제품을 출시하는 등으로 활로를 개척하려는 모습이지만, 당장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는 게 문제다. 반도체나 철강 등 재료 산업 침체의 주요 원인은 가전 시장 침체다. 가전 업계도 올 들어 코로나19 엔데믹에 이어 시장 침체로 늘어난 재고 처리 성과에 따라 연말 실적이 달라질 전망이다. 지난 3분기 보고서를 보면 LG전자 재고 자산은 11조2071억원으로 전년 말(9조7540억원)보다 15% 가량 증가했다. 4분기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월드컵 효과로 특히 저조했던 TV 판매량이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기대만한 특수를 누리지는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가전 양판 업체들은 올들어 심각한 적자에 시달리며 희망퇴직과 경영진 교체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까지 추진 중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가전 업계는 공장을 멈출수는 있다. LG전자는 이미 3분기 세탁기와 영상기기 평균 가동률을 각각 88%, 81.1%로 크게 줄였다. 삼성전자도 TV를 75.4%, 휴대전화를 72.2%만 생산했다. 4분기에도 공장 가동률을 더 줄였을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가전 업계는 연말 '역대급' 프로모션을 단행하며 재고 소진에 주력하고 있다. 양판업계는 물론 가전사들까지 온오프라인 채널을 모두 동원해 다양한 할인 행사를 진행 중이다. 원가 상승으로 할인 판매 부담이 더욱 커졌음에도 수요를 회복하기 위해선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다만 이같은 전략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기 침체 수준이 예상보다 심각한데다가 판매량에 큰 영향을 끼치는 부동산 경기까지 악화하면서 시장 반응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분위기다. 위기 탈출 희망은 중국에 있다. 전쟁과 금리 인상이 앞으로도 이어지면서 글로벌 시장 침체는 지속될 전망, 대신 코로나19로 봉쇄를 이어왔던 중국이 모처럼 빗장을 풀기 시작하면서 소비도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전자제품 소비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반도체 수요도 회복된다. 현지 부동산 시장도 '바닥'을 찍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철강 수요도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다. 한편 자동차 업계는 다소 다른 이유로 프로모션에 나섰다. 해를 넘기면 가치가 떨어지는 자동차 시장 특성 때문에 재고를 남겨두지 않겠다는 이유다. 악조건 속에서도 대부분 차종이 여전히 대기 물량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지만, 수입차 업계를 중심으로 일부 차종에 대해 대규모 할인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웅기자 juk@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