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영덕군 대형산불의 민낯...뒤 늦은 재난문자 피할 곳이 없었다
[기자수첩] 영덕군 대형산불의 민낯...뒤 늦은 재난문자 피할 곳이 없었다 경북 영덕군에서 발생한 대형산불이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영덕군의 재난 대응 시스템에 구조적 허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망자만 10명에 달한 이번 사고는 경보 지연, 비상연락망 불능, 현장 지휘 부재 등 총체적 실패로 귀결됐다. 지난 3월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강풍을 타고 청송을 지나 영덕군 황장재까지 확산됐다. 불길이 영덕에 도달한 시각은 3월 25일오후 5시 54분이었다. 초기 대응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지품면과 달산면에는 불이 감지된 지 6분 만에 대피 명령이 내려졌지만, 이미 화염은 더 빠르게 지역을 덮치고 있었다. 산불은 오후 8시 무렵 영덕읍 노물리와 석리까지 번졌다. 순간 최대 풍속은 초속 27미터를 기록했다. 같은 날 같은 재난 속에서도 지역별 대응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산불이 처음 도달한 지품면은 인명 피해가 없었다. 지품면장은 오후 4시 30분부터 자발적으로 주민 대피를 주도했다. 그는 "진보면에서 불이 시작된 걸 확인하고 곧바로 움직였다"며 "노인들이 늦게 움직이다 큰일 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반면, 영덕군 전체의 대응 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정상 근무 시간이 끝난 이후 비상 인력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고, 김광열 영덕군수는 화재 확산 시점인 오후 6시경 비공식 석상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군 관계자는 "15분 후 보고를 받고 현장으로 이동했으며, 정전으로 무선 통신이 끊겼다"고 해명했지만, 주민들은 무책임한 대응이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 산불 관련 재난문자는 밤 9시가 돼서야 발송됐다. 이미 매정리 등은 화염에 휩싸인 뒤였다. 늦어진 경보로 인해 대피하지 못한 주민 중 일부는 차량으로 역주행하거나 방파제로 도망쳐 간신히 생명을 건졌지만, 요양시설 차량 탑승자 3명과 자택 인근에 머물던 주민 2명은 목숨을 잃었다. 이 산불로 인한 사망자는 총 10명에 이르렀다. 지역 법조계 한 인사는 군수의 비공식 일정 참석은 지방공무원법 제48조 성실의 의무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선출직 공직자인 군수는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책임이 있으며, 공용자원 사용 여부에 따라 법적 책임 가능성도 따를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정치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며, 주민소환 요건에 해당하고 지방의회의 행정 사무감사나 공개사과 요구가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민 김모 씨는 "공직자가 군민의 생명보다 사적 일정을 우선시했다는 점에서 자격을 잃었다"며 "책임자 문책과 재난 대응 시스템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현행 재난안전법은 지자체가 대응 매뉴얼을 점검하고 반복 훈련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산불에서는 그 어떤 매뉴얼도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 주민만이 피해를 감당해야 했다. 산불은 끝났지만 질문은 남았다. 공직자는 어디 있었는가? 시스템은 왜 멈췄는가? 주민은 왜 홀로 목숨을 지켜야 했는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난 경보의 자동화, 비상근무 체계의 상시화, 지자체장의 현장 책임 강화, 노약자 우선 대피계획 의무화 등 제도 전반의 근본적 재설계가 시급하다. 경북취재본부 손기섭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