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가 만난 기업人]'매화에 푹…' 고향 제주에 3만평 매화농원 만든 한창기업 김동규 회장
91년부터 부지 매입 시작, 매화 3000그루 수놓은 농원 '노리매' 조성
연못엔 대목장이 만든 정자, 육지에 있던 200년 넘은 옛집도 옮겨놔
축구장 13개 넓이에 하귤나무, 녹차밭, 수국, 수선화등도 조연출로
2013년부터 일반에 개방, 2~3월엔 매화축제, 음악회도 따로 열어
매일매일 매화를 보고싶어 아예 고향 제주에 매화농원을 만든 중소기업인이 있다.
땅을 사고,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매화를 옮겨심고, 공원을 가꾸는데만 200억원이 훌쩍 넘는 돈이 들었다.
매화에 푹 빠져서, 아니 매화에 미치지 않고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제주 서귀포에서 레미콘과 아스콘 회사를 3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한창산업 김동규 회장(사진). 김 회장은 한때 한국아스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도 역임하는 등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김 회장이 91년 당시 제주 대정 구억리 땅 1만평을 처음 사들이면서 조성을 시작한 매화농원 노리매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곶자왈 도립공원이 가까이 있다. 노리매는 '놀이'와 '매화 매(梅)'를 합성해 '매화와 놀다'는 뜻을 가진 단어로 김 회장이 직접 지었다.
개인이 사재를 털어 만든 노리매는 현재 2만8500여 평으로 축구장 13개 넓이와 맞먹는다. 늘 매화 향기를 느껴보겠다고 시작한 일이 이쯤되면 매화에 치여살 수 밖에 없을 법도 하다.
"처음 땅을 샀을 때가 평당 1만원이었다. 하지만 이후 20년 넘게 조금씩 사들이는 동안 제주도 땅값이 엄청 올라 부지를 매입하는 데만 적지 않은 돈이 들었다. 지금은 바로 옆에 영어마을이 들어와 땅값이 더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땅값엔 관심이 없다. 마음속엔 오직 매화 뿐이다.
김 회장은 매화테마공원을 만들겠다고 마음먹고 땅을 구입하는 중간 중간에도 전남 구례, 전북 순창, 경남 산청 등 매화가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 달려갔다. 매화나무를 사기 위해서다. 구입한 매화를 배에 싣고 제주도로 갖고 오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그렇게 사들여 노리매에 심어 놓은 매화나무만 약 3000그루에 달한다. 그 중엔 그가 부인에게도 가격을 제대로 말하지 못한 매화분재 300점도 있다.
김 회장은 육지에 있는 옛집도 매입해 이곳 노리매로 옮겨놓았다.
"전남 강진에 있던 이 고옥은 1799년 기미년에 지은 것이다. 집을 해체하고, 안전하게 제주로 운반해 다시 복원하기까지 엄청난 정성을 들였다. 돈도 좀 들어갔다(웃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김 회장이 노리매 한 쪽에 고풍스럽게 자리잡고 있는 고택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설명했다. 가끔씩은 그가 진공관 앰프를 틀어놓고 노래를 듣는 장소로도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노리매 테마공원엔 매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름에 먹을 수 있는 제주도 토종귤인 하귤나무를 비롯해 녹차나무, 수선화, 수국, 조팝나무 등도 공원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연못의 중간에 멋들어지게 서 있는 정자는 서울 창덕궁, 양양 낙산사 등을 신·개축한 강원도 중요 무형문화재 홍완표 대목장의 작품이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제주도 전통배인 '테우'를 타고 들어가 정자에서 노리매의 또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김 회장이 이렇게 수 많은 정성과 돈을 들인 매화농원 노리매는 지난 2013년부터 개방해 지금은 일반인들이 보고 즐길 수 있다.
"한 때는 무료로 개방했었다. 하지만 농원 곳곳이 심하게 훼손되고 화장실 등 건물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더라. 그래서 지금은 최소한의 입장요금만 받고 있다." 노리매는 현재 성인 기준으로 9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김 회장은 많은 이들이 노리매를 보러 오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몇명이라도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매화향을 느끼고, 힐링을 하고 갈 수 있으면 족한다.
매화는 겨울 동백꽃 다음으로 피는 꽃이다. 제주도에선 2~3월이 매화 절정기다. 이때를 맞춰 노리매는 매화축제도 연다. 올해 2월이 7번째 축제였다.
레미콘과 아스콘 등 한평생 건축자재업에 종사했던 그가 이토록 매화에 심취한 이유가 궁금했다.
"모친께서 매화를 무척 좋아하셨다. 앞만보고 달려오다보니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매화가 그립더라. 나무는 죽어도 향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 매화다. 마음이 흔들일 때마다 심지를 곧게 만드는 것이 또 매화다. 그래서 공장보다는 이곳을 더 자주 찾는다."
김 회장이 매화에 빠져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것이 이젠 거스를 수 없는 일이 됐다.
어느새 입소문이 나고 유명세를 타면서 노리매는 주말이면 1000여 명이 훌쩍 넘는 이들이 다녀가는 제주의 명소가 됐다. 지난해엔 제주관광대상 관광자원화기여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노리매가 영원히 이 자리를 지키며 찾으시는 많은 분들에게 매화향을 계속 전달해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재단법인을 만들어 노리매를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 역시 30년 넘게 중소기업을 운영하면서 수 많은 한파를 견뎌왔다. 매화도 겨울을 잘 이겨야 이듬해 향기 가득한 꽃과 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의 매화 예찬가를 듣다보니 그가 이토록 빠져있는 매화는 바로 김 회장 자신과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