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터뷰] '암살' 최동훈 감독 "전작과 비교?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죠"
[메트로신문 장병호 기자] 최동훈(44) 감독의 영화라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어두운 범죄의 세계, 그럼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 매력적인 인물들, 몇 겹으로 쌓인 흥미로운 플롯 등이 그렇다. '도둑들'로 1000만 감독 대열에 합류한 그가 독립군의 이야기를 그린 '암살'을 차기작으로 만든다는 소식이 의외로 다가온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암살'은 '전우치'와 함께 최동훈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그의 장기처럼 여겨진 범죄물과 거리가 먼 장르와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전우치'가 판타지인 반면에 '암살'은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래서였을까. '도둑들'에서 최동훈 감독과 한 차례 작업했던 이정재는 "감독님이 '암살' 현장에서는 전보다 생각을 오래 깊이 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고민이 많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에 대한 최동훈 감독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영화를 찍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또한 최동훈 감독은 "나는 달라진 게 없다. 다만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 같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암살'은 최동훈 감독의 변화가 아닌 발전을 보여주는 징표다. ◆ '암살'의 구상은 '타짜'를 마친 뒤부터 시작했다고 들었다. 독립군의 무장투쟁을 다루고 싶었다. 사실 '타짜'를 마친 뒤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로부터 '각시탈'을 영화로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본격적인 독립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때 떠올랐던 스토리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잠시 미뤄뒀다. 대신 그 비슷한 이야기를 '전우치'에서 염정아가 찍고 있는 극 중 영화로 넣었다. "언젠가 이런 영화를 찍을 것"이라는 신호탄이었다고 할까? (웃음) '도둑들'을 마치고 나니 범죄영화 세 편을 마무리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적인 변화도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해 미뤄뒀던 '암살'을 쓰게 됐다. ◆ 독립군이 활동한 시대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이었나?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시대였다. 그리고 이중적인 시대였다. 한쪽에서는 모던한 문명이 들어오는데 다른 쪽에서는 전쟁 준비를 위한 일제의 수탈이 심해지고 있었다. 또 만주와 상하이에서는 계속해서 무장 투쟁 세력들을 보내 암살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조용한 도가니 같은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 만주와 상하이를 거쳐 경성에 들어와 작전을 수행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영화 속 중요한 시간적인 배경을 1933년으로 설정한 이유는? 1933년은 만주에서의 무장 투쟁의 한 국면이 끝나가던 시기였다. 실제로 그해에 지청천 장군이 대전자령전투에서 중국군과 함께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그 뒤로 마찰을 겪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바로 1년 전인 1932년에는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의거가 있었다. 아시아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더욱 1933년이 중요했다. ◆ '암살'이 흥미로웠던 것은 1930년대를 바라보는 태도였다. 흔히 이 시기를 독립군과 친일파라는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이분법적인 태도로만 이 시대를 바라볼 수 없다는 복잡한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래서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어려웠다. 어떻게 경성을 보여줘야 할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영화에서 오후 6시가 되면 일장기를 보며 고개를 숙이는 장면이 그런 고민의 한 결과였다. ◆ '도둑들'을 마친 뒤 전지현, 이정재에게 먼저 '암살'의 초안을 설명하며 출연 제안을 했다고 들었다. 그때의 초안과 완성된 시나리오는 어떻게 달라졌난? 처음의 시나리오는 가쓰라-태프트 밀약부터 시작됐다. 풍전등화의 운명 앞에 놓인 조선, 그리고 1900년대부터 쿠바와 하와이 등으로 이주해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영화처럼 안옥윤과 염석진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렇게 시나리오를 쓰다 1년 만에 엎어버렸다. 배우들에게도 전화를 걸어서 "언제 시나리오를 다 쓸지 모르니 나를 기다리지 말고 다른 작품이 있다면 먼저 하라"고 말했다(웃음). 다시 쓴 시나리오는 조금 더 낭만적이고 여운이 남는 느낌을 더했다. 스토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플롯과 에피소드를 바꿨다. 속사포(조진웅)의 캐릭터도 더 키웠다. 그렇게 하니 "내가 진짜 만들고 싶은 영화가 돼가는구나" 싶었다. ◆ '암살'의 가장 큰 특징은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타짜'의 정마담부터 여자 캐릭터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도둑들'에서는 10명의 주요 등장 인물 중 4명이 여자였다. 여성 캐릭터들이 많다 보니 이야기를 만드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 그래서 '암살'에서는 아예 여자를 주인공을 내세우게 됐다. 우리끼리는 "아주 조용하고 느린 터미네이터 같은 여성 캐릭터를 만들자"고 말했다. 그 여성이 끝까지 살아남아 이 모든 걸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모든 일이 끝나도 삶은 지속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함이었다. 감성적이고 미묘한 세계를 전달하는 데에는 남성보다 여성 캐릭터가 더 잘 어울린다. 일반적인 사람이지만 그들이 용기를 내 암살 작전을 수행한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의 전체적인 '톤 앤 매너'였다. ◆ 하와이 피스톨도 인상적이다. 역사적 사실이 지닌 무게감을 희석시키는 느낌이 있다. 시나리오 처음부터 있었던 인물인가? 그렇다. 일종의 배가본드 스타일의 캐릭터다. 처음에는 아주 생뚱맞고 우연처럼 이야기에 끼어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야기 중심에 있게 되는 인물이다. 밝고 유쾌하면서도 어깃장을 놓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진심을 보여줄 때 관객이 그를 사랑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 '도둑들' 때 첸과 씹던껌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멜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데 '암살'에서도 안옥윤과 하와이 피스톨 사이에 멜로 아닌 멜로가 있다. 멜로보다는 로맨틱한 관계 아닐까? 연민이나 동지애 의식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멜로의 향기만 풍기고 끝나는 게 좋다. 감정을 해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좋은 기억으로 헤어지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 속사포를 연기한 조진웅과의 작업은 어땠나? 연기를 찰지고 맛있게 하는 배우다. 뺀질대는 성격이지만 영화 후반에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절실한 액션을 보여준다. 조진웅은 지금도 잘 되고 있지만 앞으로 더 잘 될 것 같다. ◆ 오달수가 연기한 영감도 인상적이다. 심지어 멋있다는 느낌도 든다. 이 영화의 목표 중 하나는 '오달수가 멋있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웃음). 영감이 달고 있는 수염은 다른 사람에게는 안 어울려도 오달수 선배에게만큼은 가장 잘 어울리는, 카이저 소제 같은 수염이었다. ◆ '타짜'에 이어 다시 만난 조승우는 어땠나? 조승우에게 "영화에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중요한 인물"이라고 부탁했다. 조승우도 흔쾌히 수락해줬다. "시나리오가 별로면 안 할 것"이라고 말은 했지만 말이다(웃음). 9년 만에 다시 만나 영화를 같이 찍는데 옛날 생각이 정말 많이 났다. 그런데 조승우가 "감독님, 영화를 왜 이렇게 열심히 찍냐"고 하더라. '타짜' 때도 열심히 찍었는데 말이다(웃음). 생각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똑같다. 그런데 보는 사람의 입장이나 시선이 달라진 게 아닌가 싶다. ◆ 이정재도 인터뷰에서 "감독님이 '도둑들' 때보다도 오래 그리고 깊이 생각했다"고 달라진 점을 말하더라. '도둑들' 때보다 '암살'이 더 힘들었다. 영화를 잘 구현해내고 싶었다. 그리고 인물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래서 '암살'의 톤은 '도둑들'과 달라야 했다. '암살'의 인물들은 고독하다. 쾌활하고 낭만적인 모습도 있지만 사선에서 적이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도 있다. 그런 모습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질주 본능을 자제하고 브레이크를 많이 밟았다. 그런데 그런 작업이 오히려 더 재미있었다. ◆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본 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암살'은 '바스터즈'와는 다른 영화다. 그것은 그만큼 한국영화에서 일제강점기를 가볍게 다루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 같다. 그것이 이 영화의 뜨거운 감자인 것 같다. 가볍게 다루지 않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무겁게 다루면 안 되는, 일종의 줄타기와도 같았다. 영화적 무게에 대한 저울추를 잘 움직여야 했다. ◆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암살'의 인물들도 각자 나름의 사연과 비밀이 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사람들은 다 그렇지 않나? 나는 누구나 하나씩은 거짓을 감추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영화도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반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비밀이 있다면 먼저 폭로하는 편이다. ◆ '암살'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엇갈린 반응을 받았다. 이런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만든 영화는 언제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사실 칭찬을 많이 받은 적이 없다. '도둑들' 같은 경우는 한국에서 할리우드 영화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LA에서 상영할 때는 할리우드에서는 못 찍는 영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재미있는 점도 비판할 점도 많은 영화를 찍는 것 같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영화를 재미있게 찍느냐'이다. 보통 3년 동안 한 편의 영화 만을 생각하고 산다. 그래서 작품이 그만큼의 집중도로 나를 빨아들이는 지가 중요하다. 내가 재미를 느껴야 관객도 내 영화를 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 때가 재미있다. '암살' 같은 경우는 후반작업으로 100번 정도 영화를 봤는데 '도둑들'보다 더 재미가 있었다. '도둑들'보다 조금 더 섬세한 영화이기 때문인 것 같다. ◆ 매 작품마다 전작과의 비교를 피하지 못한다. 최동훈 감독 최대의 적은 결국 '전작'이 아닐까 싶다(웃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영화를 많이 찍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비교할 작품이 많아지면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 (웃음). 전작과의 비교는 피하면 안 될 것 같다. 굴레가 되면 힘들어 지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