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100대 기업 중 한국은 3개뿐, 팹리스·소부장도 없어…법인세 등 지원 절실
열악한 국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 현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정부 지원 공백 속 경쟁력을 잃어가는 가운데, 여전히 뒤떨어지는 팹리스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도 문제로 지적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올해 9월까지 전세계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한 상위 100대 반도체 기업 경영지표를 비교한 분석 결과를 24일 발표했다. 100대 기업 중 국내 기업은 3개에 불과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그리고 SK하이닉스 지주사인 SK스퀘어다. 사실상 2개에 불과한 셈이다. 그나마도 삼성전자는 3위로, SK하이닉스는 14위로 2018년 대비 각각 2계단, 3계단 하락했다. '칩4'로 불리는 반도체 강국들과 비교하면 크게 뒤쳐지는 수준이다. 미국은 28개로 가장 많았고, 대만도 10개, 일본도 7개나 100위 안에 포함됐다. 중국 기업도 42개나 있었다. 칩4 4개국을 위협하는 수준이다. SMIC(28위)와 TCL(31위), 칭광궈신(32위), 웨이얼반도체(38위) 등 순위가 높진 않지만 거대한 내수시장과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고 전경련은 평가했다. 매출액 증가율도 2018년 대비 2021년 26.7%로 그 밖에 기업(8.2%)보다 훨씬 높았다. 수익성도 떨어졌다. 매출액 대비 순수익이 2018년 16.3%에서 지난해 14.4%로 하락했다. 미국이 3.9% 포인트 상승하는 등 성장한 다른 칩4 국가들과는 다른 분위기다. 투자 비중도 꼴찌였다. 매출액 대비 R&D 투자는 지난해 8.3%로 미국(16.5%), 일본(10.8%), 대만(9.7%) 대비 가장 낮았다. 그렇다고 투자를 일부러 줄인 것도 아니다. 영업현금흐름과 비교해보면 63.1%로 가장 많았다. 대만이 61.4%로 비슷했고, 미국과 일본이 각각 34.9%, 34.6%로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2018년과 비교해도 3.3%포인트나 늘렸다. 매출액 대비로 봐도 1.2%포인트 확대하며 가장 적극적이었다. 최대한 투자를 하고 있지만 매출과 수익이 하락한 탓에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전경련은 법인세 부담이 압도적으로 높은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고 봤다. 국내 법인세 부담률은 26.9%로 칩4 중 1위, 미국(13%)이나 대만(12.1%)의 2배를 넘었다. 2018년(25.5%)보다도 더 늘었다. 반면 미국은 같은 기간 3.4% 포인트 축소하며 부담을 더 줄여줬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시총 순위 하락과 수익성 약화에도 경쟁우위 확보를 위해 매년 대규모 설비투자와 R&D투자를 단행하며 글로벌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반도체 산업 우위를 유지하려면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미국처럼 25%로 높이는 등 공세적인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이 양산에만 치중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전경련은 R&D 투자 비중이 낮게 보이는 이유가 설비 투자 규모가 큰 양산 사업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매출 규모를 키우며 순위를 올린 회사들 역시 엔비디아와 AMD 등 팹리스 중심이었다. 일본도 소부장을 중심으로 여전히 다수 기업을 보유하고 경쟁력을 굳건히 이어가고 있었다. 반도체 100대 기업 중 팹리스와 소부장 부문이 전무한 국가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팹리스인 LX세미콘도 시가총액이 1조3000억원 수준이다. 100위인 SK스퀘어(5조원대)보다 훨씬 적다. 상반기 누적 매출도 1조1800억원으로 SK스퀘어(1조8700억원)에 크게 뒤쳐진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로 봐도 팹리스와 소부장 부문에서 국내 업체 영향력은 미미하다. 대만이 팹리스인 미디어텍과 노바텍 등으로 점유율을 꾸준히 높이고있고, 후공정에서는 점유율 1위인 ASE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특히 팹리스는 파운드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핵심적인 기반 산업으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팹리스산업협회 관계자는 "국내 메모리 산업이 세계 최고로 성장하면서 시장이 더 큰 시스템 반도체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며 "업종 특성상 각자 특기를 살려주며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지원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재웅기자 juk@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