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는 던져졌다'...탄소 중립 과제는 탈탄소와 정책일관성
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8일 국회에서 2021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그동안 정부가 에너지전환을 강력하게 추진했으나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면서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 뉴시스 주사위는 던져졌다. 대한민국은 탄소 배출 제로 사회를 위한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한다. 중국의 추격으로 제조업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한국 경제에도 탄소 중립은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중요한 기회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그린 뉴딜' 정책을 발표하고 '탄소중립 2050' 선언을 하며 시기와 방법은 설정한 모습이지만 구체성은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탈탄소와 정책일관성에 집중해야한다고 말한다. 탄소중립은 인류가 달성해야 할 21세기 새로운 목표다. 기후변화에 관한 협의체(IPCC)의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는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로 제한해야 지구의 지속가능한 삶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경제대국의 대응도 발빠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는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1조 7000억 달러(1880조원)를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그는 취임과 동시에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했다. 유럽연합(EU)은 그린리모델링·재생에너지·수소·전기차 등 친환경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그린딜' 정책을 내놨다. 파리기후협정에 가입한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5억 3600만톤으로 낮춰야한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전방위적 통상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임소영 산업연구원 통상정책실 연구위원은 17일 "미국,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의 이산화탄소 배출은 2000년대부터 감축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성과는 특히 총배출량보다 GDP당 배출량 감축에서 더욱 두드러진다"며 "총배출량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도 GDP당 이산화탄소 배출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후 전남 신안군 임자2대교에서 열린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 48조 투자협약식'에서 김영록 전라남도 지사 등 참석자들과 풍력발전기 모형을 단상에 꽂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전남도청 제공 ◆한 번도 가지 않은 길 한국에서도 '친환경 성장'은 낯선 개념이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취임사에서 '녹색성장'을 국가 발전 패러다임으로 발표하며 새로운 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배출권거래제 도입, 단기 고용 증가 등 성과도 있었지만 녹색성장 사업 예산 50조원 중 32조원을 4대강 사업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에 투입했고 산업 생태계 형성, 관련 기술 개발에는 미흡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해 7월 한국형 뉴딜 정책의 한 축으로 '그린 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인프라 구축·저탄소 에너지·생태계 구축에 73조 4000억원을 투자하고 65만 9000개의 관련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이후 10월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의 80%를 화석에너지를 태워서 만들기 때문에 에너지 구조 자체의 '탈탄소' 전환이 없으면 달성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은 전남 신안 대규모 해상풍력단지 조성 행사에 참석해 "우리나라가 2030년에 해상풍력 세계 5대 강국으로 도약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사업에는 한전·SK E&S·한화건설·두산중공업 등이 참여하고 원전 8기 규모의 8.2GW의 전력을 생산할 예정이다. 전력량으로 2020년 기준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인 영국 Horn Sea (1.12GW)의 7배 이상의 규모다. 민간에서 47조 6000억원이 투자하며 약 12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예정이다. 환경부는 올해부터 2030년까지 적용되는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 허용 기준을 앞으로 10년 간 기준을 27.8% 강화한다. 10인승 이하 승용·승합차의 배출 허용 온실가스 기준은 올해 ㎞당 97g에서 2025년 89g, 2030년 70g으로 낮아진다. 내연기관의 시대는 가고 친환경 차량 보급이 가속화 될 전망이다. 그린뉴딜의 3대 목표. / 국토연구원 제공 ◆엇갈린 평가 수소경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중희 전북대 교수는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이 신재생에너지 보급 계획이나 수소경제 계획들이 잘 작성되어 있다"며 "그린 뉴딜은 단순하게 경제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인류의 생존에 관계되는 일로써 미래 한국에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고재경 경기연구원 생태환경연구실 연구위원은 "그린 뉴딜 정책이 단기 사업 위주로 들어갔고, 유럽처럼 중장기 전략으로 수립한 것이 아니라 한국판 뉴딜 안에 한 축으로 들어가다 보니 미흡했다. 에너지에 치우쳐 있어 생태계 보전·식량·농업은 정책에서 빠져있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말했다. 국가 온실가스 총배출량 및 증감률. /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제공 20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안)'에 따르면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까지 달성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신재생에너지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도입한다. / 뉴시스 ◆관건은 탈탄소와 정책일관성 대통령이 나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탈탄소' 정책은 불가피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발전 용량에서 재생에너지의 낮은 비율, 신규 인력 양성 및 기존 화력 발전 인력 재배치 문제,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에너지 가격인상까지 만만치 않은 과제가 놓여있다. 2019년 에너지원별 발전 용량은 원자력 25.9%, 석탄 40.4%, 가스 25.6%, 신재생 6.5%로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2017년 발표한 '재생에너지 3020'에서 나온 2030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발전 비율 20%에는 한참 모자란 수치다. 녹색전환연구소 이유진 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19년 국내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은 715백만톤COeq로 2030년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국가 배출량이 연평균 2.0% 감소해야한다. 이중희 교수는 "비싼 전기요금을 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어느 정도 까지는 신재생에너지의 비용이 많이 들지만 이미 독일 같은 선진국에서는 그 단가가 상당 수준으로 내려가 석탄에 비해 경쟁력을 가질 정도"라며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어느정도 충분한 세금을 부가하여 신재생에너지 발전자에게 보조하고 이것들을 포함한 전기료를 책정해야 하고 온실가스 미 배출 분산형 발전에 대한 국가적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재경 연구위원은 탈탄소 정책에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일관성이라고 말한다. "그린뉴딜은 대규모 재정투자가 수반되는데 2~3년 투자가 20~30년 간 유지된다. 이 예산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쪽에서 탄소 중립을 이야기하는데 한쪽에서 개발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책 일관성의 부족을 초래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탄소 인지예산제도이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은 1호 법안으로 탄소 인지예산 제도 도입을 위한 '국가재정법', '국가회계법'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탄소 인지예산제도란 탄소인지예산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해가 되는 지출과 수입이 어디서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쉽게 판별해 유해 보조금과 세금을 줄이는 대신 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예산 비중을 높이고, 인센티브를 재설계하여 시장 주체의 온실가스 감축 투자를 유도하는 제도다. OECD에 의하면 GDP의 약 40%가 공공지출에 사용되므로 국가 예산이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일관된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의 일관성과 통합성 확보 수단으로 예산이 탄소배출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탄소인지예산' 도입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선 도입 초기 단계로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비례) 의원이 1호 법안으로 '국가재정법'과 '국가회계법'을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며 입법을 추진 중이다. 탄소인지 예산서와 결산서, 기후변화인지 예산서와 결산서 작성을 의무로 하는 내용이다. 고 연구위원은 "탄소인지예산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도 운용을 위한 역량과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수반되어야 한다. 또한 탄소인지예산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여러 정책 수단 중 하나이므로 탄소세를 포함한 에너지 가격 및 세제 개편,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재생에너지 사용 의무화, 에너지성능 기준 강화 등 경제적 인센티브 및 규제 수단의 녹색개혁과 함께 추진되어야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에서는 탄소인지 예산제 도입을 시험하고 있다. 서울시는 기후예산제 도입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며, 경기도는 작년에 2021년 일부 예산사업을 대상으로 체크리스트 형태의 탄소인지예산제를 시범적으로 적용하고 이를 토대로 올해 구체적인 기준을 개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