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간담회 이후 변하는 재계, 멈춰선 정계
재계가 문재인 대통령의 요구에 선물보따리를 마련하고 나섰지만 정작 청와대는 경제 발전을 위한 재계의 간곡한 요청을 외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과 간담회를 가진 기업들이 일자리를 확대하고 상생협력에 나서달라는 청와대의 요청에 적극 응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한화그룹, 롯데그룹, CJ 등은 일자리 확대에 나섰고 SK그룹,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은 협력업체 지원 강화를 추진키로 했다. 삼성전자는 구체적인 채용 인원을 밝히진 않았지만 올해 하반기 신규 채용을 지난해보다 늘릴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하반기 신규 채용 규모가 반도체를 중심으로 20% 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SK하이닉스와 LG그룹도 채용 확대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한화그룹은 비정규직 근로자 85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1일 밝혔다. 한화 호텔&리조트, 갤러리아 등 유통·서비스 계열사 근무자를 중심으로 오는 9월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순차 전환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이번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직무는 향후에도 정규직 또는 정규직 전환형 인턴사원을 채용해 비정규직 비율을 줄여나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롯데그룹과 CJ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 중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달 문 대통령과의 간담회에서 "앞으로 3년 동안 정규직화 전환에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신 회장이 발표한 롯데그룹 혁신안에도 포함된 내용으로 혁신안에는 3년 동안 비정규직 1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 담겼다. CJ는 계열사 내 파견직 30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강화하는 기업들도 있다. SK그룹은 1차 협력업체를 위해 마련한 4800억원 규모 동반성장펀드를 6200억원으로 증액하고 중소 1차 협력업체 현금 지급 비중을 100%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또한 2·3차 협력업체와의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임금공유제 등을 확대 시행할 방침이다. 현대자동차그룹도 1500억원 규모의 상생협력기금을 마련해 2·3차 협력사 지원에 나선다. 최근 상생기술협력자금 1000억원을 조성해 협력사 금융지원을 강화하기로 한 LG디스플레이는 '산업보건 지원보상제도'도 본격 시행한다. 산업보건 지원보상제도는 사업장에서 1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에게 암이나 특이 질병이 발병한 경우 업무연관성을 따지지 않고 지원해주는 제도다. 협력사 직원들도 대상에 포함됐다. 문재인 정부의 요구에 응하고 있는 재계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대통령 간담회에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반도체 인력 수급 문제를, 황창규 KT 회장은 4차 산업혁명 인력난을 언급하며 정부 지원을 요청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도 중요 이슈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2분기 순이익이 급감했고 LG그룹 핵심 계열사인 LG화학은 배터리 사업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계는 대통령 간담회에서 규제 완화를 요청했다. 서비스업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제조업보다 월등하지만 각종 규제에 막혀 육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호소였다. 문 대통령도 "꼭 필요한 규제와 과도한 규제를 잘 구분해야 한다"며 적절한 규제 완화 필요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정작 규제 완화를 위한 법률은 여당 반대로 국회에서 계류 중이기에 청와대가 재계의 어려움은 외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국회에서는 규제프리존특별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U턴 기업지원법 등 규제 완화와 서비스 산업 육성안을 담은 '경제 3법'이 계류 중이다. 이전 정부에서도, 현 정부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논의가 멈춰있는 상태다. 청와대는 되레 세법 개정안을 통해 법인세 인상과 설비투자 등 세액공제 혜택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재벌기업은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라면서도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인다. 기업이 일자리 확대와 상생 경영이라는 요청을 받아들였음에도 청와대와 정치권은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셈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 대부분이 신 산업에서는 미국에게, 기존 산업에서는 중국에게 치이는 상황이기에 대규모 투자나 채용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부 요청에 동조했는데 정작 정부와 여당은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해줄 노력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어려움이 가중되며 기업들이 성장 동력을 잃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