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독일 제조업 구조+고령화에 경기침체 우려↑
"독일 사회 전체가 너무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했다. 우리 앞에 변화가 닥쳤는데, 모두 이걸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겪는 문제는 그간 누적된 결과다." 독일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화학기업 바스프(BASF)의 마틴 브루더뮐러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올해 2분기 독일의 경제성장률은 0.0%. 20년 전 세계최강의 제조 경쟁력과 노동개혁의 성과로 선진국 중 최고인 2.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독일 경제가 수렁에 빠진 데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수급불안과 ▲제조업중심의 산업구조 ▲고령자·비숙련 비중이 큰 노동시장 구조가 가장 큰 요인이다. 문제는 독일의 이 같은 문제점이 우리나라에도 고스란히 배어 있다는 점이다. 산업구조를 다변화하고, 노동력의 양과 질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해외경제포커스: 국제경제리뷰 최근 독일경제 부진배경과 시사점'에 따르면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에 의존하던 가스와 석유수입을 줄이면서 화학, 금속 등 에너지 집약 산업생산이 크게 위축됐다. 가스, 석유 수입이 줄면서 가격이 올랐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금리인상 등이 더해지면서 자금부족에 시달리던 기업들이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 독일, 제조업·고령화 비중 높아 여기에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도 한몫했다. UN산업개발기구에 따르면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 지수는 1위 독일, 2위 중국, 3위 아일랜드, 4위 한국 등이다. 2000년대 독일의 제조업 비중은 20% 수준으로 1970년대 30% 수준에서 10%포인트 안팎 떨어졌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의 기계장비, 고급소비재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중국 수요가 둔화되고, 미·중무역 갈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확대되며 산업재편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투자성과는 자동차, 전자기계 등 기존산업에 집중돼 있다"며 "디지털 경쟁력 또한 전통적 제조업에 비해 취약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독일의 특허상표청에 따르면 운송 36%, 전기기계, 장치 및 에너지는 26% 수준이지만 컴퓨터 기술은 12%에 불과하다. 디지털 경쟁력은 전 세계 19위, 인공지능 관련 투자는 7위에 그치는 등 디지털 전환 기반도 전통적 제조업과 비교해 취약한 상황이다. 고령자·저숙련 노동자 비중이 커지는 노동시장도 문제다. 앞서 독일은 2000년대 중반부터 동유럽 및 고령층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고용형태를 다변화했다. 그 결과 일시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지만, 고령층이 은퇴세대로 변하면서 노동력 부족문제는 더욱 커졌다. 은퇴연령에 도달한 독일인 수는 2023년 1600만명에서 2030년 최소 2000만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여기에 독일은 중위임금을 올리고 상위 10% 임금은 유지시켜 이들 임금이 중위임금의 2.1배 수준으로 되게 했다. 미국(2.7배), 캐나다(2.5배)보다 낮은 수준이다. 노동력을 안정시키기 위해 이민자를 유입시킬 수 있지만, 데이터 전문가 등 디지털 경쟁력에 대비할 수 있는 고숙련 노동자를 유치하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 韓, 중국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 다변화해야 문제는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우리나라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021년 기준 27%로 1991년 27.6%와 다를 바 없다. 영국이 1991년 16.3%에서 2019년 8.7%로 낮아지고, 일본이 1994년 23.5%에서 2018년 20.7%로 낮아진 것과 다른 모습이다. 일시적으로 중국경제가 부상함에 따라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가 유지됐을 수는 있지만, 중국 수요가 둔화되고 산업재편이 이뤄지면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 경쟁력이 뒤떨어질 수 있다. 고령화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도 빨라지고 있다. 올해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3637만2000명으로, 2019년 3762만8000명보다 125만명 줄었다. 반면 65세 이상인구는 늘고 있다. 2025년 65세 이상 비중은 20.6%로 5명중 1명은 65세 이상일 전망이다. 한은 관계자는 "양호한 고숙련 근로자 기반을 활용해 첨단산업의 생산성을 제고하고, 산업 다변화와 친환경 전환을 성장잠재력 확충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외국인 노동자 유입 등의 정책방안을 마련해 고령화에 따른 노동공급 부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유리기자 yul115@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