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호의 龍虎相生 복지이야기] 진정한 지방분권,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성공을 여는 열쇠
외로움과 고립의 시대, 고령화 사회로 급격하게 전환되면서 돌봄의 공공적 책무성이 증대되고 있다. 대안으로 지역사회 통합돌봄이 부상하고 있지만 그 실효적 정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방분권화(地方分權化)'의 제도적·구조적 완비가 선결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권한 이양을 넘어 '자치역량(自治力量)'의 실질적 고양을 전제하는 것으로, 지역이 주체적으로 복지 생태계를 기획·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영국, 독일, 스웨덴 등 복지 선진국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중앙집권적 방식에서 탈피하여, 돌봄 서비스를 지역 단위에서 기획하고 집행하도록 제도화하였다. 특히 영국은 이미 1990년에 「국민보건서비스 및 지역사회돌봄법(The National Health Service and Community Care Act)」을 제정하여, 지방정부가 지역주민의 욕구를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복지서비스를 계획·관리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중앙정부는 소득보장과 같은 보편적 제도에 집중하고, 지역정부는 사회서비스의 실질적 운영 주체로 기능하는 복지책임의 이원화 구조가 정착되어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복지 체계는 여전히 중앙집권적 행정 패러다임에 고착되어 있어서 선진국과 무려 30~40년의 정책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각종 복지사업의 세부 지침을 수직적으로 하달하고, 지방정부는 이를 기계적으로 수용·집행하는 하향식(top-down) 구조가 견고히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행정구조는 지방공무원들에게도 수동성과 행정 편의주의를 내면화시키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주민 중심의 수요자 맞춤형 서비스보다는 민원 최소화에 기초한 관료적 응대 수준에 머무르게 만든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시기의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을 기점으로, 변곡점이 형성되었다. 광주 서구, 부천시, 전주시, 청양군 등 일부 지방정부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자치의제(自治議題)로 명확히 인식하고, 현장 중심의 문제 해결 모델을 구체화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지자체는 기존의 '재정 공급자'이자 '규제 권력'으로서의 우위적 입장을 탈피하고, 민간 제공기관 및 지역 주민과의 '협치(協治)' 구조를 적극적으로 형성해 나갔다. 외부 자원을 유입하고 선진 사례를 학습하며, 실질적인 실행 전략을 마련하는 모습은 매우 고무적이다. 일부 지자체는 보건복지부보다 현실 친화적이고 실행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전문가를 대상으로 사례 공유와 교육을 수행하는 주도적 정책 주체로 도약하고 있다. 이는 지방정부가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으면 충분히 수행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제도 설계와 정책 집행에 있어 여전히 지방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돌봄통합지원법」이다. 이 법은 지자체를 통합돌봄의 책임 주체로 명시하였지만, 실질적 제도 설계 과정의 논의는 매우 미흡했다. 공청회는 단 한 차례로 불과했다. '지방분권'이라는 거시적 틀에 대한 숙의나 사회적 합의는 사실상 부재했다. 이와 같은 왜곡된 현실을 타개하려면 지방정부의 정책 연대화와 세력화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지방정부는 단순한 사업 집행자가 아닌, 정당한 정책 주체로서 의견을 제시하고 이해관계를 제도 안에서 조정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의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할 시점이다. 물론 일부 지자체는 토호세력처럼 행동하는 후진성을 근본적으로 극복하고 주민의 욕구에 적극 대응하는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지방 분권화는 결코 무리한 권한 요구가 아니다. 한국의 복지 행정은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후진적이며, 중앙집권 체계는 각종 비효율과 전달체계 왜곡을 초래해왔다. 이러한 구조적 결함을 개선하지 않는 한, 지자체는 중앙정부의 하명만을 충실히 수행하는 '종속적 공공대행자(從屬的 公共代行者)'에서 탈피할 수 없다. 새 정부는 이념과 행정 편의의 벽을 넘어, 지방분권에 기반한 복지체계의 대전환을 위한 정치적 결단과 제도적 실천을 단행해야 한다. 지방정부는 자치 역량에 기반한 구조 개혁을 능동적으로 요구하고, 특히 돌봄 및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독자적 예산·인력·운영 방식 확보를 위한 정당한 제도 개편 요구를 본격화해야 한다. 지역 돌봄의 수요에 대응하는 '건강한 지역 돌봄 생태계(生態系)'는 지방정부의 실질적 주도하에 구축될 수밖에 없다. 진정한 복지국가란 중앙의 통제적 지침이 아닌, 지역의 현실과 맥락에 기반한 자율적·협력적 복지 체계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용호 국립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