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M]①삶과 사람의 향기가 물씬…그곳 광장시장에 가면
[!--{BOX}--] '스토리 M'은 대도시(Metropolitan) 서울의 이야기입니다. 서울의 역사, 문화, 사람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또는 우리가 알고 있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또 알고 싶어하는 서울의 여러 모습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BOX}--] [스토리 M]①삶과 사람의 향기가 물씬…그곳 광장시장에 가면 "나는 광장상가 상인들이 얼마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잘 안다. 그들은 단순히 돈을 벌려고 장사를 하는게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에 맞는 최선의 방식으로 값진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나도 그런 장사꾼으로 살 생각이다. 고객을 늘 배려하는 장사꾼, 장사 자체에서 보람과 희망을 찾아내는 장사꾼. 내 인생의 제2막이 시작되었다. 여기 광장시장에서." 소설가 김종광씨가 지은 '광장시장 이야기'(샘터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상설시장 광장시장의 100년 역사를 다룬 소설가의 소설 아닌 실제 이야기다. 일본은 1905년 을사조약을 체결한 뒤 강력한 경제침략정책을 폈다. 조선화폐를 없애고 일본화폐를 유통시켜 경제적 침탈을 쉽게 하기 위해 추진한 화폐정리사업이 대표적이다. 남대문시장 경영권도 장악했다. 광장시장은 이같은 일본의 경제침략으로 궁지에 몰린 조선 상인들이 스스로 힘을 모아 설립한 광장주식회사에서 출발한다. 경제 국권을 회복하자며 뜻있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당시 광장주식회사의 발기인에는 배오개(지금의 종로4가)에서 '박승직상점'이란 이름으로 장사를 하던 박승직씨도 참여했다. 박승직은 광복 직후 상점 이름을 '두산상회'로 이름을 바꾼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할아버지가 바로 박승직이다. 한성은행(옛 조흥은행) 은행장을 역임한 김한규씨도 광장주식회사의 4대 대표이사를 맡았다. 옛 조흥은행은 2006년에 신한은행과 통합했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경영권을 행사하던 다른 시장과 달리 순수한 조선인의 자본으로 시작한 곳이 바로 광장주식회사, 그리고 광장시장인 셈이다. 배오개시장에서 영업하던 객주,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던 상인들, 서울 동부에서 행상을 하던 사람들이 모두 광장시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렇게 광장시장의 역사는 시작됐다. 동대문시장이란 이름을 사용하다 지금의 광장시장이란 이름으로는 1960년대부터 불렸다. 종로와 청계천 일대를 아우르는 현대판 동대문시장의 효시가 바로 광장시장이다. 광장시장의 '광장'은 당초 광교(너른 다리)와 장교(긴 다리)의 첫 머리를 따서 한자로 '廣場'이라 썼다. 하지만 지금은 '廣藏'으로 쓴다. '널리 모아 간직하다'란 뜻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서 광장시장을 만든 광장주식회사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다. 회사의 설립일자는 무려 1911년 2월21일이다. 설립 당시 자본금이 얼마였는지는 알길이 없다. 하지만 재무제표상 현재 자본금은 1억원이다. 이후 증자 등을 통해 1억원으로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도 그 넓은 광장시장을 관장하는 광장주식회사의 자본금이 단 1억원이라니 아이러니하다. 광장주식회사는 현재 회장을 맡고 있는 송호식 회장이 50.01%의 지분으로 대주주다. 이름으로 봐선 송 회장의 형제인 듯한 송명식씨가 35.17%의 지분율로 2대 주주다. 그외 기타특수관계자가 13.55%, 기타주주가 1.27%를 각각 갖고 있다. 송 씨 가문은 1970년대 초부터 광장주식회사를 이끌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7대 대표이사가 송 회장의 부친인 송학순 씨였다. 광장주식회사는 2014년에 약 95억원, 2015년엔 약 9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런데 주주들에게 돌려준 배당 내역이 놀랍다. 96억5601만원의 매출을 올린 2015년 당시 영업이익은 32억5024만원, 당기순이익은 33억1966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자투리 돈을 뺀 나머지 33억원을 주주들에게 배당했다.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현금으로 지급된 배당금 총액 비율)이 무려 99.41%인 셈이다. 대주주인 송 회장이 2015년에 받은 배당금이 약 16억5000만원에 이른다는 이야기다. 광장시장의 역사는 이쯤에서 접기로 하자. 한이 없다. 요즘 광장시장은 어떤 모습일까. 한마디로 인산인해다. 서울 시내 중심부에 있다보니 다른 시장에 비해 접근성이 좋은 것도 한몫한다. 특히 중국인이 몰려오면서 광장시장은 평일, 주말할 것 없이 발디딜 틈이 없다. 광장시장에서 관광통역안내를 하고 있는 (사)서울특별시관광협회 박정현씨는 "1~2년 전까지만해도 일본인 관광객이 많았지만 지금은 중국인으로 바뀌었다. 이는 비단 광장시장 뿐만이 아니다"고 전했다. 광장시장이나 서울시내 주요 관광지에서 만날 수 있는 빨간색 티셔츠 또는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관광 통역 안내사들을 보면 웃는 얼굴로 "수고하세요"라고 한 마디씩 건네보자.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를 알리는 민간외교사들이다. 이들 가운데 정식 직원이 아닌 안내사들은 순수하게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돈을 받지 않고도 봉사가 좋아, 사람이 좋아, 일하는 것이 좋아 택한 기쁨이다. 재래시장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먹거리'다. 그것도 싸고 푸짐한…. 요즘 말로 하면 가성비가 짱인 음식은 시장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광장시장도 마찬가지. 특히 '마약김밥'과 '육회'는 광장시장의 대표적인 먹거리다. 김밥과 마약이라~ 이름에 왜 '마약'이 붙었을까 궁금했다. 대뜸 "먹어봐야 마약인지 아닌지 안다"는 말이 주인장 입에서 튀어나왔다. 집어 먹었다가 중독이라도 되면 어쩔까나. 일반 김밥보다는 작게 말린 크기의 김밥. 먹는데 부담이 없어 하나 먹으면 또 하나 먹고 싶고, 또 하나 먹고 싶고, 그래서 마약이란다. 마약을 안해봤으니 그 느낌을 알 턱이 있나. 하긴 꼭 해봐야 알것도 아니다. 돈을 내지도 않았는데 인심좋은 한 아주머니가 맛이나 보라며 김밥을 건네준다. 깻잎이 들어간 또 마약김밥이다. 여긴 사방이 '마약'이다. 워낙 마약김밥집이 많고, 상인들끼리 인정하는 원조도 따로 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깻잎이 들어간 마약김밥은 '자신이 원조'라며 활짝 웃는다. 깻잎의 알싸한 맛과 참기름, 적당한 간이 어우러진 깻잎마약김밥의 맛.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씨와 음식 솜씨가 어우러져 입안에 한 가득이다. 착하게 생긴 엄마와 엄마를 닮은 아들이 운영하는 생과일주스 가게도 눈에 띈다. 하루 종일 몇잔이나 파는지 세는 것도 힘들단다. 여름철에는 그 인기가 가히 끝내준다. 물도 거의 타지 않은 생과일주스가 한 잔에 단돈 3000원이라니. 더운 여름 수분과 당을 보충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릴 법도 하다. 손님들에게 과일주스를 만들다보니 주인장 아들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엄마는 그런 아들의 모습을 안쓰럽게 쳐다본다. 바다 좋고, 산 좋은 전북 부안이 고향인 김복순 할머니(72)를 만났다. 그래서 전집 이름도 '부안집 복순네'다. 그녀는 스물여덞살때부터 광장시장에서 장사를 했다. 곱디 곱던 젊은 여인은 어느새 사십년 세월이 훌쩍 넘어 할머니가 됐다. 내 청춘 돌리도~ "약수동 집 한 채가 100만원이던 시절 1200만원을 주고 여기를 샀지. 엄청 비쌌던 거야. 그래도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게 집을 사는 것보다 낫겠다고 생각했어. 매일 매일 들어오는 돈으로 이자를 갚을 수가 있었으니 집에다 돈을 묻어놓는 것보다 잘했다고 생각해. 자식 셋도 다 전을 팔아서 키웠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칠순 노모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오히려 사진기를 둘러메고 다니는 날보고 "먹고 살수는 있겠어"라며 걱정을 해주신다. 내가 그렇게 불쌍하게 보이셨나. 지금은 힘에부쳐 일하는 시간을 줄였지만 아침 9시 가게를 열고, 새벽 3시에 문을 닫았다는 부안집 복순네. 잠은 언제 잤을까 상상이 안간다. 한편으론 자식들 키울 걱정에, 한편으론 돈 버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독하게 앞만보고 달려왔다. 그래도 복순네 부침개 맛이 그리워 찾아와 막걸리 한 사발 기울이는 손님들 만나는 맛에 하루, 하루를 산다. 물론 광장시장엔 먹거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광장시장은 1층과 2층으로 이뤄져 있다. 들어갈 수 있는 문도 총 7군데다. 북1문과 북2문은 종로에서, 남1~3문은 청계천에서 광장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여성의류부터 침구·커튼, 의류부자재, 삼베·모시, 한복, 장신구·기념품, 농수산물 등 없는게 없는 곳이 또 광장시장이다. 중국 상하이 남쪽 이우시장에 가면 이런 이야기 있다. "이우에 없으면 세상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동대문시장의 60~70배 크기인 이우시장은 중국에서 만드는 모든 공산품이 다 몰린다. "광장시장에 없으면 세상에 없다?" 2층에 가면 구역별 이름에서 광장시장의 오랜 역사를 잠시 엿볼 수 있다. 별관한복부, 구관한복부, 특관한복부, 수도직물부, 대한직물부, 특관식품부 등이 대표적이다. 이름만 들어도 일제시대 냄새가 물씬 풍긴다. 1905년에 문을 열어 110년 넘는 세월을 지나온 광장시장의 역사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셈이다. 오늘은 식구들과,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과 종로 광장시장으로 달려가보자. 물론 혼자가도 누가 뭐랄 사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