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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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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의원 "(JP는) 대한민국 산업화와 민주화에 공헌했던 정치지도자"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별세한 23일 오전부터 빈소가 차려진 서울아산병원 30호실은 조문객 맞이에 분주했다. 이날 현역 정치인 중에서는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빈소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정 의원은 'JP 정치문하생'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 초선의원 시절부터 자민련 대변인을 지냈다. 정 의원은 "지역구 행사를 하다 별세 소식을 듣고 급히 서울로 올라왔다"며 "제가 '준 상주'로서 장례 절차를 함께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빈소 안에서 유가족들과 장례 전반에 관한 상의를 하다가 기자들과 만나 "아직 최종 결정이 난 것은 아니지만 정부에서 현충원에 (JP를) 모시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있었다"며 "우리는 고인께서 평소 조촐하게 가족장을 치르고, 부여에 있는 선산 가족묘원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셔서 고인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모시는 방안을 얘기 중"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고인이야말로 대한민국 산업화와 민주화에 공헌했던 유일한 정치지도자였다고 규정하고 싶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도와 산업화에 기여한 것은 널리 알려진 것이고, 김대중 정부 출범 시 'DJP 연합'을 통해 민주화에도 공헌했다"고 강조했다. 유가족들은 조문객을 오후 3시부터 공식적으로 받기로 했지만 오후 2시께부터 조문객들로 빈소 앞은 북적이기 시작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조문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다. 제가 존경하는 분인데 돌아가셔서 아주 슬프게 생각한다"고 짤막한 소회를 남겼다.

2018-06-23 16:08:01 손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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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일생 '오뚝이 정치인·영원한 2인자'

김종필(金鍾必)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2세. 이로써 김대중·김영삼·김종필 트로이카가 이끌어왔던 '3김(金)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 김 전 총리는 지난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공주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주도하면서 한국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2인자'로 군림하며 당시 정치·경제적 구상을 함께했다. ◆오뚝이 정치인 김 전 총리는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했다. 하지만 공화당 창당과정에서 증권파동을 비롯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에 휘말리면서 63년 2월 '자의반 타의반' 첫 외유를 떠난 데 이어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의 주역으로서 핵심쟁점이던 대일 청구권 문제와 관련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으로 6·3사태가 일어나자 1964년 또다시 2차 외유길에 올랐다. 이후 1971년부터 1975년까지 4년 6개월 간 국무총리를 지내며 승승장구했으나, 1979년 12·12사태와 1980년 5·17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 이후 신군부에 의해 부패정치인으로 낙인 찍혀 재산을 압류당하고 정치활동을 금지당한 채 야인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김 전 총리는 다시 오뚝이같이 일어났다. 1986년 미국에서 귀국한 그는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1987년 13대 대선에 출마해 당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후보 다음으로 4위라는 성적을 거뒀다. 그의 존재감을 드러내기에는 충분한 성적이었다. 이에 바로 다음해 치러진 총선에서 신민주공화당은 충청권을 기반으로 35석의 국회의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 원내교섭단체를 꾸렸다. 이후 그는 1990년 1월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 제2야당인 통일민주당과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하고, 공화계 대표로 최고위원직을 맡았다. ◆만년 '2인자' 1992년 김 전 총리는 김영삼(YS) 당시 대선 후보를 지원해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또 다시 최고정권의 2인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김영삼 정권을 그를 2인자로 놔두지 않았다. 당시 김영상 대통령이 3당 합당의 약속을 저버리고, 당 대표의 권한을 뺏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그는 민자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했다. 여기서 그의 오뚝이 정신이 다시 발휘됐다. 그가 이끄는 자민련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총 50석을 얻으며 다시 정치 중앙에 등장했다. 이후 김 전 총리는 또 다시 2인자를 자청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지원하면서다.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의 탄생이다. 김 전 총리의 선택은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함께 국민회의·자민련 공동정권을 탄생시켰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 후 그는 공동정권의 2인자로 총리직을 역임했다. 민자당 정권에 이어 또 다시 집권여당의 실권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2000년 1월 총리직에서 물러나 자민련 총재로 복당한 그는 같은 해 실시된 제16대 총선에서 17석을 얻는 데 그쳐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와도 내각제 개헌, 16대 총선 과정에서 쌓인 공동정권 수장 사이의 갈등, 2001년 9월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안 가결을 계기로 결별했다. 그가 평생의 과제로 여겨져 온 '내각제'는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번번이 휴지조각이 된 셈이다. 김 전 총리는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재기를 시도했으나, 자신의 10선 도전 실패와 함께 고작 4명의 의원만 배출하는 참패를 당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김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쿠데타 원조에서부터 중앙정보부 창설자, 풍운의 정치인, 영원한 2인자, 경륜의 정치인, 처세의 달인, 로맨티스트 정치인 등 그에 따라붙는 여러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영욕과 부침을 거듭해왔다. 김 전 총리의 서거로 1960년대부터 우리 정치권을 풍미해 온 '3김 시대'는 실질적 종언을 고하게 됐다.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복리씨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2018-06-23 14:44:28 손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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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러 하원 최초 연설서 "철도등 '9개 다리 전략' 협력 강화" 강조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러시아와 가스, 철도, 전력, 조선, 일자리, 농업, 수산, 항만, 북극항로 개척 등 9개 중점 분야에서 협력을 더욱 강화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지난 9월 러시아 블라디포스톡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강조한 '9개 다리 전략'의 세부 분야다. 이날부터 2박4일간 러시아를 국빈방문한 문 대통령은 첫 날 러시아 하원 연설에서 "러시아와 한국의 협력 확대 방안을 말씀드리고자 한다"면서 극동개발을 적극 추진하자고 러측에 제안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러 하원 연설은 문 대통령이 사상 최초다. 양국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미래 성장 동력 확충 방안도 내놓았다. 문 대통령은 "한국은 국내에 한-러 혁신센터를 설립하고, 모스크바에 있는 한-러 과학기술센터를 확대할 것"이라며 "세계 최고의 원천기술, 기초과학기술을 지닌 러시아와 IT 기술에 강점을 가진 한국이 협력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함께 선도해나가자"고 덧붙였다. 양국 국민의 복지 증진과 교류 강화를 위한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러시아와 한국 기업의 협력으로 스콜코보에 설립하는 최첨단 한국형 종합병원은 암, 신장, 뇌신경에 특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재활을 도울 것"이라면서 "양국의 긴밀한 협력으로 국민들이 더 행복해지길 바라고 양국 관계의 소중함을 국민들이 인상속에서 피부로 느끼게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의 신북방정책과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의 공통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정책은 평화와 공동번영의 꿈을 담은 유라시아 시대의 선언"이라면서 "서구문명이 이룬 장점과 동양문명이 이룬 장점을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담아 인류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려는 웅대한 설계"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한국 국민들 또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넘어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바라고 있어 신북방정책은 (러시아의)신동방정책에 호응하는 한국 국민들의 꿈"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관련 정책을 천명한 이후 대통령 직속 기구로 '북방경제협력위원회'을 설치한 바 있다. 올 1월엔 극동지역을 누빌 쇄빙LNG선 '블라디미르 루자노프'호가 문 대통령의 고향인 거제도에서 시범출항하기로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하원에서의 연설을 통해 한국과 러시아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데도 주력했다. 우리와 러시아간 공통 분모를 찾고, 러시아어로 인사말 등을 전하면서다. 문 대통령은 "한국인들의 서재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의 소설과 푸시킨의 시집이 꽂혀있다"면서 "나도 젊은 시절, 낯선 러시아의 지명과 등장인물을 더듬으며 인간과 자연, 역사와 삶의 의미를 스스로 묻곤 했다"고 전했다. 쇄빙LNG선의 이름도 러시아 북극 탐험가 이름에서 따왔다. 또 "1905년, 한국 최초의 주러시아 상주공사인 이범진 공사는 러시아 땅에서 망국의 소식을 들었다. 그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 러시아 정부였다"며 "안중근, 홍범도, 최재형, 이상설 선생 등 수많은 한국의 독립투사들은 이곳 러시아에 망명해 러시아 국민들의 도움으로 힘을 기르고 국권회복을 도모했다"며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특히 문 대통령은 "한 명의 지혜는 좋지만 두 명의 지혜는 더 좋다(아진 움 하라쇼, 아 드바 롯쉐)"는 러시아 속담을 인용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 속담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면서 "러시아의 지혜와 한국의 지혜, 여기에 북한의 지혜까지 함께 한다면 유라시아 시대의 꿈은 대륙의 크기만큼 크게 펼쳐질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 말미에선 우리 말의 '감사합니다'와 같은 의미를 가진 러시아어 "발쇼예 스빠씨-바!"로 끝을 맺었다. 문 대통령은 22일엔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국빈만찬에 참석한다. 또 순방 마지막날인 23일엔 모스크바에서 로스토프나도누로 이동해 한국과 멕시코전 월드컵 경기를 관람하며 우리팀을 응원할 계획이다.

2018-06-21 22:00:00 김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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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균 강남구청장 당선인 '품격강남준비위' 발족

정순균 강남구청장 당선인이 구청업무 인수를 담당할 ‘품격강남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 구성을 완료하고 본격 인수작업에 들어갔다. 준비위는 지난 20일 오전 8시30분 강남보건소 4층 준비위 사무실에서 위촉식을 갖고 오는 29일까지 강남구청 인수업무를 진행한다. 구청업 준비위는 ▲행정·재정·경제 ▲교육·문화·복지 ▲도시·환경·교통 등 3개 분과 16명의 위원들로 구성됐다. 김성욱 더불어민주당 강남갑 위원장과 김동욱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가 준비위 공동위원장으로 위촉됐으며, 장태성 문재인 대통령선거 캠프 국민참여본부 부단장이 사무국장에 선임됐다. 행정·재정·경제 분과는 류병채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를 위원장으로 김평남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 당선자, 박홍순 사단법인 커뮤니티허브 공감 대표, 서쌍원 사단법인 혁신리더협회 회장, 이영목 주식회사 엠데칼 부회장 등 5명으로 구성됐다. 교육·문화·복지 분과는 문경란 국가인권위원회 전 상임위원을 위원장으로 김태호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 당선자, 문성준 지역전략정책연구소 이사장, 김명신 강남교육청 교육발전자문위원장 등 4명으로 진용을 갖췄다. 도시·환경·교통 분과는 진철훈 서울시 DMC 기획위원회 위원을 위원장으로 최용주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 당선자, 강재홍 전 한국교통연구원장, 김은정 강남아이쿱생활협동조합 이사장, 주기용 대한토지신탁 전 사장 등 5명이 참여한다. 준비위는 김동욱(행정), 류병채(사법·재정), 박홍순(주민자치), 서쌍원(혁신), 문경란(인권·여성복지), 김명신(교육), 진철훈(건축), 강재홍(교통), 주기용(주택·토지) 등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2018-06-21 09:43:3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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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자주왔나?"…인민일보, 김정은 방중 보도비중 갈수록 줄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과의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올들어 세번째 중국을 방문했으나 북한을 대하는 중국의 '환대'는 갈수록 식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중국 전문가들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3월 25~28일 베이징을 시작으로 5월 7~8일에는 다롄을, 19일에는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이번 방문은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결과를 전하고, 대미협상에서 중국의 협조나 지원을 구하기 위해서란 것이 외교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잦아지면서 중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도 점차 변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보도사진을 보면, 3월 첫 방문 때에는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만나는 사진 2장을 신문 전체에 배치하며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양국 정상 부부의 사진도 함께 게재하며 두 나라의 끈끈한 관계를 보여줬다. 이는 당시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논의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중국 역할이 위축됐던 상태였다. 이후 양국 관계는 회복됐으며 5월 다렌 방문 때에는 인민일보 1면 4단에 걸쳐 두 정상의 친분을 보여주는 사진을 게재했다. 첫 보도 때보다는 조금 줄어든 비중이다. 그러다가 이번 방중 때에는 3단으로 크기가 줄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 사진 옆에는 볼리비아 대통령의 방중사진을 같은 비중의 3단 크기로 게재했다. 한 중국 전문가는 "중국은 의전으로 철저하게 차별하는 경향이 있다"며 "의전을 까다롭게 생각하는 중국이 당기관지인 인민일보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 사진을 볼리비아 대통령과 같은 크기로 게재했다는 것은 북한을 볼리비아와 비슷한 수준으로밖에 안 볼 정도로 여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8-06-20 17:02:58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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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 21일부터 러 순방…'신북방정책' 구체화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는 신북방정책이 21일부터 2박4일간 러시아 국빈방문을 통해 더욱 구체화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극동지역을 러시아,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협력과 공동번영을 이끌 수 있는 '희망의 땅'으로 정의하면서 신북방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특히 당시 조선, 항만, 북극항로, 가스, 철도, 전력, 일자리, 농업, 수산 분야를 '9개 다리(9-Bridges 전략)'로 칭하고 관련 분야에서 러시아와 긴밀하게 협력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러시아 순방을 하루 앞둔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타스통신 등 러시아 매체들과 합동 인터뷰를 갖고 "러시아가 경제 발전을 위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신동방정책과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가 추진하는 신북방정책은 공통점이 많다"면서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협력 파트너인 만큼 협력 방안을 더욱 구체화하는 논의를 하고자 한다"면서 러시아를 찾는 의미를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푸틴 대통령과는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다. 그동안 전화통화도 세 차례 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러시아 국빈방문은 1999년 김대중 대통령 이후 19년 만이다. 2박4일간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국빈만찬, 메드베데프 총리와의 면담, 러시아 하원 연설, 한·러 우호친선의 밤 및 한·러 비즈니스 포럼 참석 등 숨가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남관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앞서 가진 브리핑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그동안 양 정상 간에 다져진 우의와 신뢰를 더욱 돈독히하고 한·러 양국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순방의 의미를 전했다. '전략적 협력'을 위한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남북러 3각 협력을 통한 극동지역 공동 개발과 인프라 구축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인터뷰를 통해서도 "3각 협력이 빠르게 시작될 수 있는 사업만 들더라도 철도, 가스, 전기를 우선 들 수 있다"면서 한국과 러시아간 협력이 향후 북한의 경제와 국가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철도는 남북철도가 연결되고, 남북철도가 러시아 시베리아철도와 연결된다면 우리 한국으로부터 유럽까지 철도를 통한 물류 이동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가스관을 통해 러시아 천연가스가 북한으로 공급되고, 한국으로 공급되고 나아가선 해저관들을 통해 일본으로까지 공급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도 지난 18일 2차 회의를 열고 한~중~일~러를 연결하는 '동북아 수퍼그리드' 구축을 위한 경제적·기술적 타당성 연구를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러시아의 유망 LNG 프로젝트 관련 정보를 양국간에 공유하고, 남~북~러 가스관 연결을 위한 타당성 검토도 공동 착수하기로 했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판문점회담, 북미정상회담 등으로 남북러 삼각 협력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된 만큼 철도, 가스, 전력 그리고 나진·하산 프로젝트 등에 대한 협력 관계가 (이번 정상회담에서)주요 이슈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번 정상회담에선 지난해 문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톡에서 언급한 '9개 다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양국간 합의될 가능성도 큰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에 러시아의 원천 기술과 국내 기업들간 시너지 창출을 위해 양국에 관련 센터를 설치하고, 국내 주요 병원이 현지에 건강 검진 센터를 설치하는 등 우리의 의료 기술과 인력의 현지 진출도 추가로 모색한다.

2018-06-20 16:35:56 김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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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없는 한반도] ④<끝> 한꿈학교 김두연 교장 "탈북 학생은 통일한국의 미래"

지난 18일 오전 11시. 경기도 의정부시 발곡중학교 맞은편 상가 지하 1층은 중국어와 북한식 말투로 가득했다. 교실 네 개와 도서실, 교무실과 식당으로 이어진 복도를 걷다 보면, 이곳이 230평 규모의 학교임을 실감하게 된다. '먼저 온 통일'인인 탈북자들의 무료 배움터 한꿈학교 교장 김두연(60) 씨는 "북한 사람 역시 고유의 의사소통 코드가 있다"며 "탈북자들이 훗날 대북사업에서 남북 간 의사소통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교육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35년간 국어 교사로 교편을 잡다 2013년 명예퇴직한 김씨는 이 학교 3대 교장이 된 2015년 1월까지만 해도 '통일 대박론'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때도 북한에 대한 생각은 피상적이었죠. 유니세프 관계자가 '한국인은 북한 사람들이 굶어죽는 문제에 너무 무관심하다'고 지적했을 때에도 귓등으로 흘렸습니다." 당시 팀앤팀 국제개발협력연구소장이던 김씨는 한꿈학교 관계자의 설득에 고민을 거듭했다. "선택을 앞둔 어느날 아침, 누가복음이 책상 위에 펴 있더군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 하니라 하시니라.' 내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이 학교를 외면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에 '마지막 희망' 건 탈북자들 부푼 꿈을 안고 들어간 학교는 첫날부터 그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터무니없이 낮은 학습능력, 지키지 않는 약속들. 학생들은 도움을 줘도 감사할 줄 몰랐다. 하지만 어느날 수업 도중 기절한 학생을 보면서, 자신이 탈북자의 현실에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탈북자는 서울에 살며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싶어한다. 하지만 낮은 학력과 가난, 정신적·육체적 건강 문제가 이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김씨는 학생들이 하루 세 끼를 학교에서 해결하고, 점심 식사 후에는 밖에 나가 햇볕을 쬐도록 한다. 폐결핵 예방을 위해 지역 보건소에서 검진도 한다. 하루 두 번 식기 세척은 기본이다. "멍청한 학생은 없어요. 멍청한 교사가 있을 뿐이지. 학생의 정신과 건강 상태, 재정과 학력에 맞춰 대화하니 아이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어요." 현재 출석하는 학생은 26명이지만, 학교 밖에도 10명이 더 있다. 25세~36세인 이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하기 위해 3~4개월 일해 돈을 벌고 돌아온다. 대학교에 진학 한 뒤에도 과외가 필요한 학생이 더러 있다. 고용노동부 지원으로 협약을 맺은 컴퓨터 교육 기관에서 자격증 공부도 이어간다. 지원금 적용 상한인 24세에 맞춰 학생을 받는 다른 학교와 달리, 김씨는 부임 이후 나이 제한을 없앴다. 절실함엔 나이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정신 건강이 문제죠. 지금 북한은 가정이 파괴돼서 차분히 생각을 정리한 뒤에 새로 학습하는 기재가 없어요. 몸도 건강하지 않죠. 짧게는 3년, 길게는 16년 동안 긴장과 위험에 시달리다 보니, 한국사회에서 우울증에 걸리게 돼죠." 우울증을 겪는 학생들은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대신 모바일 메신저나 전화 통화로 상담과 학습을 이어간다. 후원사가 제공한 인터넷 강의도 활용한다. 정신과 전문의 3명이 심리치료도 한다. ◆"남북 소통 '중추' 될 인재들 적극 지원을" 한꿈학교는 단순한 검정고시 통과가 아닌 수준별 학습에 초점을 맞춘다. 상근 교사 7명과 일주일에 2~3회 찾아오는 전임강사 15명이 과목별 수준에 맞는 수업을 진행한다. 교실이 부족해 교장실에서도 강의가 진행된다. 그 결과, 지난 입시에서 25세 학생 두 명이 각각 홍익대 건축학과와 삼육대 물리치료학과에 진학했다. 37세 학생은 국민대 평생교육원 경영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김씨는 한꿈학교가 "차별화된 교육과정 때문에, 탈북자가 마지막에 찾는 곳"이라고 말했다. 기존 대안학교를 졸업한 뒤 방황하거나, 취업 먼저 했다가 공부 외엔 방법이 없다고 느낀 탈북자들이 문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한국에 정착하는 탈북 여성의 80% 가량이 대부분 일용직을 전전해요. 한 마디로 식당 일이죠. 최대한 벌어도 한 달에 200만원 남짓입니다. 탈북자끼리 직업을 알선한들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요. 실력과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우리가 채워줍니다. 6개월이 지나면 사람이 달라져요. 심신이 다 망가졌던 사람이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고, 1대1로 가르치니 심리적으로 안정돼 대학에 진학하거나, 훗날 독립할 수 있는 분야의 기술직을 얻게 되지요." 최근 이어진 한반도 훈풍은 탈북 학생들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이들은 한국과 북한의 문화를 모두 이해하기 때문에, 북한 곳곳에서 진행될 각종 교류사업에서 의사소통 하기에 적합하다. "대강당에서 학생들과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을 지켜봤습니다. 학생들 의견은 반반이죠. 밝은 미래를 그리거나, 북한 입장에서 우리는 배신자 아니냐는 의견. 저는 정부와 기업들의 지원이 뒷받침되면 아이들은 물론 한반도의 미래도 밝다고 봅니다. 충청도에서도 '글씨유' 하면 서울사람이 그 속을 몰라요. 남북한 중간다리는 탈북자 인재들이 놓을 수 있어요. 언제 수요가 폭발할 지 모르니, 이들을 골치 아픈 존재로 보지 않고 투자했으면 합니다." 미인가 대안학교인 한꿈학교는 지상으로 터를 옮기고, 실력 있는 교사들의 맞춤 수업이 활발한 '통일 한국의 요람'이 되기를 꿈꾼다. "일본의 '가난 때리기'처럼, 지원이 필요한 곳에 열악함의 공식을 적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식당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면 동정심을 얻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곳의 밥은 깨끗하고 맛있습니다. 그럼 지원 안 해줘도 되는 건가요. 더 나은 한꿈학교를 위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2018-06-20 15:33:44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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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없는 한반도] ④<끝> 김승철 북한개혁방송 대표 "北 인권, 더는 외면 말아야"

한국인에게 '휴전선 없는 한반도'는 가상현실(VR) 속 이야기였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는 현실과 상상이 만난 '증강현실(AR)로 다가왔다. 이에 메트로신문은 전문가들을 만나 증강현실로 다가온 한반도의 미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조언을 들어봤다. 마지막 순서로는 탈북자 교육과 대북 라디오 방송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준비하는 이웃들을 만나봤다.<편집자주> 자정을 앞둔 2007년 크리스마스 이브. 서울 답십리의 한 오피스텔에서 중년 남성이 마이크 앞에 앉았다. "존경하는 조선 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서울입니다." 북녘땅에 11년째 희망의 단파를 보내는 대북 라디오방송이 있다. 지난 18일 중구 녹음실에서 만난 김승철(57) 북한개혁방송 대표는 자유를 동경하던 시베리아 벌목공 시절을 떠올리며, 평양에서 방송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덜컹, 덜컹….' 함경남도 함흥 출신 시베리아 벌목공이던 김 대표는 1993년 1월 어느날, 기차에 몸을 싣고 탈출했다. 구소련이 해체된 지 2년. 돈을 벌러 파견 나온 지 1년 3개월 만이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근처에 작은 슈퍼마켓이 있었는데, 식료품을 자유 판매 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 받았습니다. 러시아가 북한보다 훨씬 살기 좋다는 생각에 반년 정도 고심하다 탈출했지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머물던 김 대표는 탈북자를 공개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1994년 5월 1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북한에 아내와 아들이 있지만, 여태 소식을 알지 못한다. 이후 김 대표는 현대전자 A/S 센터와 북한연구소 연구원 등을 거치며 한국에 정착했다. 그는 1997년부터 일하던 연구소에서 수많은 자료를 읽으며 결심했다. '북한 엘리트, 이들의 생각을 바꿔야한다.' ◆'북한 엘리트 변화' 11년째 무한도전 2년간의 준비 끝에 2007년 말 첫 녹음을 한 그는 2008년 3월 퇴사를 한 후 본격적인 방송 생활을 시작했다. 목표 청취자는 군 간부와 장교들이다. "기존 민간 방송들이 있었는데, 저는 엘리트를 위한 방송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북한에 있을 때부터 정치와 제도가 일반 주민이 아닌 권력층만을 위한 것이어서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으로 살아왔죠." 한국에서는 직접 대북방송 전파를 보내지 못한다. 한국 정부가 송출 허가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방법은 중앙아시아의 송신소 임대 뿐이었다. mp3 파일로 녹음한 방송을 서버에 보내면, 업체가 방송을 다운로드해 북한에 송출한다. 김 대표는 3800만원을 대출받아 방송을 준비했다. "첫 녹음 때 심정요. 미쳤죠. 그냥 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 하나 뿐이었어요." 현재 북한개혁방송은 평일 밤 11시 30분~12시 30분 단파7590㎑에서 방송된다. 재방송은 새벽 5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 단파 7500Khz에서 이어진다. 편성은 뉴스와 날씨, 한반도 정세 분석, 클래식 음악과 단편소설 낭독 등 다양하다. 방송국은 김 대표를 포함해 5명이 이끈다. 탈북자 아나운서가 팀장을 맡고, 기자, 편집, 칼럼니스트가 일당백을 이어간다. 북한개혁방송을 듣고 탈북을 결심한 사람은 현재까지 파악된 수만 7명. 그 중 한 명은 중국에서 방송을 들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에 시작된 방송이 북한 주민에게 선물이 된 셈이다. 하지만 주된 목표 청취자인 엘리트가 들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이곳은 북한 주민의 인권 의식 자각과 엘리트 인식 변화를 위한 방송임에도, 한국 정부의 지원은 아직 없다. 대신 미국 국립민주주의기금(NED)과 국제민주주의연구소(NDI)가 재정을 지원한다. 김 대표는 대북방송이 '극우단체'로 몰리고,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가 외면받는 현실을 개탄했다. 정부의 북한인권재단 사무실 폐쇄도 안타까워했다. ◆"각자 잘 살다 만났으면…北 노동 착취 더는 없기를" 그럼에도 김 대표가 희망을 거두지 않는 이유는 북한에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 바보 아닙니다. 독재에 반대해 싸우는 사람도 있어요. 한국의 민주화가 강조되는 것처럼, 북한의 인권 문제도 많은 관심을 받았으면 합니다." 그는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 구조를 한국 기업의 경쟁력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걱정스럽다. 대북 사업을 '블루오션'으로 보는 관점에는 임금이 노동자에게 전달되지 않는 구조적 착취 문제가 담겨 있어 위험하다는 분석이다. 그래서인지 김 대표는 "(당장)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과 북한이 각자 잘 살고, 특히 북한 사람들이 그 안에서 민주화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해요. 그러다 통일하자면 하는 것이지." 북한개혁방송은 지난해 7~8월 러시아와 몽골, 중국 등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 30명을 인터뷰했다. NED와 진행한 이번 취재는 지난달 미국 워싱턴 DC에서 '해외파견 북한 근로자 임금착취 실태조사 보고서'로 발표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의 임금 90%가 국가계획분과 충성자금, 생활비 등 각종 명목으로 착취돼, 최종 수령액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16개 국가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 규모는 최대 14만7600명에 이른다. 김 대표는 안타까운 마음에 취재원에게 돈을 쥐어주고 돌아서던 상황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취재 내용을) 직접 말하기가 좀 그래요. 불쌍하지. 슬퍼…." 답답한 현실에 냉철한 분석을 이어가던 김 대표는 녹음실로 향하기 전, 가슴 한 켠에 묻어둔 소망을 조심스레 꺼냈다. "통일이 되면, 평양 가서 방송 해야죠. 라디오로 할 지, TV로 할 지 모르겠네요. 생각해 둔 첫 멘트…. 그것도 아직은, 하하."

2018-06-20 15:33:06 이범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