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⑦두산그룹] 100년 제조 내공, AI로 다시 쓴다
두산그룹이 100여 년간 쌓아온 중후장대 제조 역량을 무기로 '인공지능(AI) 제조'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AI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치솟고 산업 현장의 자동화 요구가 커지면서 발전설비와 건설기계를 만들던 두산에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어서다. 박정원 회장은 올해 AI 전환(AX)을 그룹의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발전기자재와 건설기계, 로봇, 전자소재 등 주력 사업에 AI를 입혀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는 데 그룹 역량을 모으고 있다. ◆ 박정원의 피지컬AI 승부수…AI 팩토리와 맞물린 제조 역량 박 회장은 신년사에서 AI를 갖춘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격차가 곧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벌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두산이 발전기자재와 건설기계, 로봇에 걸쳐 세계적 수준의 제조 역량과 방대한 하드웨어 데이터를 갖춘 만큼, AI가 실물 장비와 결합하는 '피지컬AI' 시대를 앞서갈 수 있다고 봤다. 두산의 방향은 AI 팩토리 시장 확대와도 맞물려 있다. AI 팩토리는 AI 모델을 학습·운영하는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전력 인프라, 서버, 냉각 설비, 로봇, 산업장비가 결합된 산업 생태계다. 엔비디아가 GPU 공급을 넘어 AI 팩토리 구축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가운데 두산은 발전기자재 계열사 두산에너빌리티, 건설기계 계열사 두산밥캣, 로봇 계열사 두산로보틱스, ㈜두산 전자소재 사업을 통해 전력·첨단소재·로보틱스·산업장비를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 전력 인프라 수요 확대…원전·가스터빈·연료전지 기회 두산에너빌리티는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커지는 전력 인프라 수요에 대응하는 핵심 계열사다. AI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면서 발전설비를 공급하는 두산에너빌리티의 사업 기회도 확대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해 신규 수주 14조728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두 배 넘게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수주 확대는 대형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 가스터빈 사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단기 실적을 뒷받침하는 분야는 가스터빈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북미 가스터빈 수주와 복합화력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수주잔고를 늘리고 있다. 전력 수요 증가로 글로벌 발전기자재 시장에서 공급 역량을 갖춘 기업의 협상력이 커지는 점도 긍정적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가스터빈을 통해 단기 전력 수요에 대응하는 동시에 대형 원전과 SMR을 중장기 성장축으로 키우고 있다. 올해 에너빌리티 부문 수주 목표는 13조3000억원이다. 원전 사업에서는 한미 협력이 기회로 꼽힌다. 미국이 원전 건설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핵심 기자재 공급망은 아직 충분하지 않아 한국 기업의 역할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 핵심 주기기를 제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고, 웨스팅하우스 AP1000용 기자재와 테라파워 나트륨 SMR 부품 등 해외 원전·SMR 프로젝트에서도 공급 기회를 넓히고 있다. 에너지 솔루션 협력도 넓어지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퓨얼셀은 엔비디아의 AI 팩토리 플랫폼과 연계해 전력 공급 설계, 발전설비 효율화, 저탄소 전원 확보 등에서 협력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다.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전력 공급과 에너지 효율 관리가 함께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발전설비와 연료전지 사업도 AI 인프라 확장 과정에서 활용될 수 있다. ◆ 로봇·전자소재·산업장비로 확장…수익성 입증은 과제 로봇 계열사 두산로보틱스는 협동로봇 단품 판매에서 벗어나 AI 기반 지능형 솔루션으로 사업 구조를 바꾸고 있다. 두산로보틱스는 엔비디아와 AI·로보틱스 분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AI 기술을 자사 에이전틱 로봇 운영체제에 적용해 지능형 로봇 솔루션을 고도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산업용 휴머노이드 시장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2027년에는 에이전틱 로봇 운영체제 기반 지능형 로봇 솔루션을, 2028년에는 산업용 휴머노이드 제품을 순차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매출 성장세는 뚜렷하지만 수익성은 아직 풀어야 할 과제다. 두산로보틱스는 올해 1분기 매출 153억원으로 1년 전보다 189.7% 증가했지만 선행 투자 비용이 늘면서 적자를 이어갔다. 협동로봇 단품 판매만으로는 수익성 개선에 한계가 있는 만큼 두산로보틱스는 AI 로봇 기반 솔루션과 고부가 서비스로 사업 구조를 바꾸며 흑자 전환 기반을 다지고 있다. 전자소재는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확대와 연결된다. ㈜두산은 인쇄회로기판(PCB)의 핵심 소재인 동박적층판(CCL)을 기반으로 엔비디아와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양사는 엔비디아의 MGX 플랫폼 등 차세대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협력 기회를 모색하기로 했다. AI 가속기의 성능이 높아질수록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고속 신호 전송을 뒷받침하는 소재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두산은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태국에 약 1800억원을 들여 AI 인프라·네트워크 장비용 고성능 CCL 공장을 짓기로 했다. 건설기계 계열사 두산밥캣도 피지컬AI 전략의 적용 대상이다. 두산밥캣은 건설·농업·조경 장비에 엔비디아의 피지컬AI 기술을 접목해 장비의 자율성과 작업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단순 자동화 수준을 넘어 장비가 작업 환경을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해 움직이는 방향으로 고도화하겠다는 것이다. 두산의 AI 전환 전략은 계열사별 성장 기회에 그치지 않고 실제 수익성으로 이어져야 한다. 로보틱스와 퓨얼셀 등 일부 신사업은 아직 수익성 확보가 과제로 남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AI 확산으로 전력과 자동화 수요가 동시에 커지면서 제조 기업의 경쟁력도 단순 설비 공급을 넘어 AI를 결합한 솔루션 역량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두산이 강점인 제조력을 AI와 얼마나 매끄럽게 잇느냐, 그리고 그 성장성을 안정적인 수익으로 바꿔낼 수 있느냐가 앞으로 기업가치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관희기자 wkh@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