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원전 1호기 역사속…수면위로 떠오른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
부산 기장에 있는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가 역사속으로 사라질 예정인 가운데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할 조짐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사용후 핵연료 관리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터라 마침 고리 원전 1호기 영구 정지와도 맞물리면서 향후 정부, 정치권, 시민단체, 학계, 원전 지역 주민 등 이해 당사자간 공론화가 향후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11일 정부와 정치권, 한국수력원자력 등에 따르면 지난 9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58만7000㎾급의 고리 1호기를 오는 18일 24시에 영구 정지한다고 확정했다. 고리 1호기는 1978년 5월 말 국내 최초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원전으로 영구 정지되는 첫 원전에도 이름을 올렸다. 영구 정지되는 원전 해체는 약 2년간의 준비 기간과 사용후 핵연료 냉각 및 반출(최소 5년), 오염·비오염 시설이나 건물 등 제염 및 철거(약 6년), 부지 복원(약 2년) 등에 적어도 1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수원은 원안위의 최종 의결에 따라 가동이 멈춘 고리 1호기의 핵연료를 냉각한 뒤 2022년부터 본격적인 해체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앞서 한수원이 내놓은 고리 1호기 해체사업 주요 일정에 따르면 영구 정지 이후 2022년 6월 해체승인을 목표로 방사능오염현황조사, 주민공청회, 사용후 핵연료 냉각 및 이송 등 해체를 위한 사전준비에 들어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25년께는 사용후 핵연료 반출을 끝내겠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충분히 예견된 고리 1호기의 영구 정지가 아닌 원전에서 쓰고 남은 핵연료 처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문제가 핵심인 셈이다. 원전의 방사성 폐기물은 위험수준에 따라 가장 낮은 극저준위부터 가장 높은 고준위까지 네 단계가 있다. 그런데 사용후 핵연료는 방사능 오염도가 가장 높은 고준위에 포함된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고준위 방폐장)이 없는 우리나라는 현재 사용후 핵연료를 원전 바로 옆의 임시저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고리 1호기의 사용후 핵연료도 마찬가지다. 한수원측은 고리 1호기의 해체작업을 하면서 저장고에 있는 사용후 핵연료를 고리 2~4호기의 저장고로 옮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24년께엔 이들 저장고가 꽉 찬다. 이는 비단 고리 원전뿐이 아니다. 2019년엔 월성, 2024년엔 고리뿐 아니라 영광이, 그리고 2037년과 2038년엔 울진과 신월성에 있는 원전의 저장고가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란 관측이다. 우리나라가 올해로 원전 가동이 꼭 40년을 맞는 가운데 '1호 영구정지' 원전이 나왔음에도 고준위 방폐장 하나 없이 '원전 옆 임시저장고'로 버텨왔지만 더 이상 공론화를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정부는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3년 10월에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킨 바 있다. 또 지난해엔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절차를 담은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진척된 것은 없다. 원전을 반대하는 시민단체 등이 '공론화'없이 '위원회'만 남았고, '땜질식 처방'이라고 정부의 원전 정책을 비난했던 이유다.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부산 남구을)은 "지금까지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질 못했다. 고리 1호기의 임시저장고에 남아 있는 핵연료에 대해서만이라도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 최우선적으로 공론화를 시작해야 한다. 현재의 임시저장고가 핵폐기물의 최종 목적지가 돼선 안 된다. 고리 1호기에 대해 먼저 논의하고 다른 원전에 대해선 추후 공론화하는 것으로 실마리를 우선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원자력연구원 백원필 부원장은 지난 8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고리 원전 1호기 퇴역기념 심포지엄에서 "고리 1호기를 해체하기 전에 원자력 안전 연구개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제시하고 "장기가동에 따른 콘크리트 열화 성능 평가, 사고대응 로봇의 현장 운용성 시험, 중대사고용 계측기 실증시험, 사고 시나리오에 따른 주요기기 성능 시험, 사용후핵연료 건식 저장기술 실증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