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스닥] ④ 한국판 '엔비디아, 애플, MS' 나올 환경 만들어야
'코스피 5000 시대'가 열렸지만, 한국 자본시장의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글로벌 증시를 이끄는 엔비디아·애플·마이크로소프트(MS)와 같은 기업이 발견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지난해 코스피에 집중했던 정부가 올해는 코스닥 시장에 불을 지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한 지수 부양이 아니라, 성장 기업이 태어나고 커질 수 있는 시장 환경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신뢰, 주주 보호, 혁신, 선순환 4가지 핵심 원칙을 중심으로 자본시장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기록적인 코스피 랠리에도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코스닥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코스닥벤처펀드 세제 혜택 확대,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도입, 증권사 종합투자계좌(IMA)를 통한 모험자본 공급 등 환경 조성에 나서고 있다. 상장 유지 요건을 강화해 '다산다사(多産多死)' 구조로 재설계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코스닥을 버티는 시장이 아닌, 성장하는 시장으로 바꾸기 위함이다. 정책 드라이브에 대한 기대감은 즉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6일부터 이날까지 4거래일 동안 코스닥 지수는 17.15% 급등했다. 정부의 코스닥 육성 기조가 본격화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과 자금이 빠르게 쏠리는 모습이다. 시장의 시선이 가장 집중되는 부분은 자금 흐름이다. 정부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의 코스닥 투자 여건을 개선하고, 기업 성장 단계에 투자하는 펀드에 폭넓은 세제 혜택을 부여하기로 했다. 정책 기대가 현실화되면서 투자자들의 자금이 이동하고 있고, 코스닥에도 '불장'이 시작됐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코스닥 시장 섹터 구성이 바이오에서 AI·에너지·우주 산업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하게 될 것"이라며 "특히 코스닥 패시브 수요가 증가하면서 시가총액 상위 종목 대상 기관 자금 우선 유입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최근 4거래일 동안 기관 투자자들은 코스닥 시장에서 8조6200억원을 순매수했다. 이는 정책 효과가 점진적으로 반영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초기 수급 신호로 해석된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노무현·문재인 정부 시절 코스닥 활성화 정책 사례를 보면, 공통적으로 지수가 약 30~35% 상승했다"며 "정부 정책이 가리키는 것이 '중소·중견기업, 벤처펀드 등'이라는 점에서 코스닥 시장에 대한 수급적인 효과가 2026년부터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선임연구원도 "정책적으로 모험자본 활성화의 직접적인 수혜가 기대된다"며 코스피 숨 고르기 국면에서 대안 시장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수보다 기업, 랠리보다 생태계 지난해 12월 19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코스닥 시장 신뢰 및 혁신 제고 방안'은 이러한 정책 방향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AI, 에너지저장장치(ESS), 우주산업 등 3대 핵심 기술 기업에 대한 맞춤형 기술특례 상장 제도를 도입하고, 부실기업 퇴출 기준을 강화하는 한편 기관투자자 참여 확대를 유도하는 내용이 담겼다. 단기 수급 부양이 아닌 산업 경쟁력 강화를 염두에 둔 정책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김종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사례를 보면 코스닥 정책 효과는 단순한 규제 정비나 시장 안정 중심 정책보다는, 정책 자금 유입과 특정 성장 산업 육성을 동반한 경우에 시가총액 확대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며 "특히 자본 공급과 신산업 성장 지원이 동시에 추진될 때 코스닥 시장 규모가 빠르게 확대되는 흐름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현 시점과 가장 유사한 코스닥 활성화 정책 사례는 2017년이다. 당시 코스닥을 혁신기업의 성장 플랫폼으로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세제 혜택 확대와 정책 금융 지원이 동시에 추진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정책이 본격화된 이후 코스닥 시가총액은 64% 증가했다. NH투자증권은 이번에도 2017년과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는 가정 하에, 코스닥의 시가총액이 2025년 12월 기준 약 500조원에서 중기적으로 820조원대 수준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더불어 김 연구원은 "세제 혜택 확대, 공모주 배정 과정에서 코스닥 벤처 펀드 우선배정 비율 상향으로 코스닥 벤처 펀드 상품 판매 증가가 예상되고, 코스닥 시장 자금 유입 증가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코스닥 목표 지수도 기존 1100포인트에서 1300포인트로 상향했다. 한국판 엔비디아·애플·MS는 정책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기업이 등장할 수 있는 토양은 정책을 통해 조성할 수 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에서 중소기업 육성과 내수 기반 확대는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정부의 지원이 본질적인 시장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근본적인 성장이 우선돼야 한다. 지난 12일 한국거래소는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시가총액 기준 등 상장 유지 요건을 강화할 경우, 2029년까지 8.6%의 기업이 퇴출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했다. 이는 단기적으로 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코스닥 추가 상승을 위해서는 코스피 수급 이동이 필요해 상승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염동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데이터상 코스닥 강세 국면에서 코스피가 하락한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며 "코스닥 상승과 코스피 하락은 동치 관계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코스피가 하락하는 가운데 코스닥만 오르는 상황이 3개월 이상 지속된 전례가 없다는 부연이다. /신하은기자 godhe@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