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리뷰] 어촌 배경 삼색 스토리 '다른 나라에서'
홍상수 감독의 13번째 장편영화 '다른 나라에서'는 아기자기한 퍼즐의 조합을 맞춰보는 재미를 지녔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이 모든 퍼즐을 맞춰야지 하고 본다면 감상의 참맛을 잃을 것이다. 그냥 마음 느긋하게 놓칠 건 놓치고, 느낄 수 있는 만큼 느끼면 된다. 모항이라는 작은 해변 마을에 빚에 쫓겨 모녀가 내려온다. 그곳에서 영화과 학생 유미(정유미)는 세 편의 단편 시나리오를 쓴다. 세 편 모두 안느(이자벨 위페르)란 이름의 여인이 등장한다. 첫 번째 안느는 실력 있는 영화감독이고, 두 번째 안느는 한국 영화감독 종수(권해효)와 바람난 유부녀, 세 번째 안느는 한국 여자에게 남편을 뺏긴 이혼녀다. 세 명의 안느는 한 펜션에 머물고, 주인집 딸에게 모항의 볼 만한 곳을 물으며, 해변에서 안전요원(유준상)을 만난다. 총 3부의 옴니버스 구조를 지닌 이 영화는 세 편 모두 다른 인물과 다른 이야기를 다루지만 각 영화는 공통으로 등장하는 인물과 소품, 대사가 안느를 중심으로 연관 관계를 맺으며 예사롭지 않은 한 편의 완결 구조를 이룬다. 소주병, 우산, 등대, 안전요원, 주인집 딸의 모습을 기억하면 퍼즐 맞추기의 주요한 단서가 되고, 안느가 등대를 찾기 위해 삼거리에서 택하는 길의 방향은 퍼즐의 출구가 된다. 낯선 땅 모항에서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안느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인 안느의 시각으로 본 한국 사람들의 군상이다. 외국인들에게 유난히 친절하다거나 유준상·권해효·문성근을 통해 드러나는 전형적인 한국 남자들의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씁쓸하기도 하다. 혈혈단신으로 한국을 찾아 2주간 촬영을 마친 프랑스의 명배우 이자벨 위페르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물론 국내 출연진의 생활 연기가 빛을 발한다. 홍 감독 특유의 매력이 듬뿍 담긴 '다른 나라에서'는 올해 칸의 선택이 현명하다는 걸 느끼게 만든다. 18세 이상 관람가. 31일 개봉. /이혜민 영화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