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석우 前 통일차관 "북한 '비핵화' 진정성이 중요…인권기록 함께 해야"
남북 정상이 다음달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연다. 북한은 우리 측 특사단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알리고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 역시 한국에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북미 대화 가능성이 열리면서 한반도 평화의 전환점이 마련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사단은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북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진단하기 위해 김석우 전 통일부 차관(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을 지난 2일과 7일 만났다. 그는 "비핵화 전제 없는 남북-북미 대화는 대화만을 위한 대화"라며 "북한 인권 실태를 기록해 압박하며 비핵화 전제로 대화하는 투 트랙(Two Track)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은 북한의 이번 '비핵화 의지'에 대해 "과거부터 약속을 깨뜨려온 만큼, 진정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국제 제재를 하는 도중에 자꾸 '숨 구멍'을 만들어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화 위한 대화보다 '비핵화 전제' 진정성 확보가 우선"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달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대화한다. 앞서 북한은 특사단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밝혔는데. "기획재정부 등 자료를 보면, 금년 북한의 총 지출액이 5억불 이하로 떨어질 것 같다. 지난해는 30억불이었는데, 그해 12월과 지난 1월 수출이 전년동기 대비 80% 떨어졌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엄해진 탓이다. 과거에는 중국이 피난처가 됐지만, 미국의 경제적인 압박을 우려한 중국이 12월 유엔 안보리의 제재 방침에 따랐다. 그 결과 북한의 수출이 80~90% 줄어들었다. 그러니 대북 제재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문재인 정부에 희망을 걸고 평창을 찾은 것이다. 북한은 예전부터 비핵화 전제로 협상한다고 했다가 보상만 받고 실제 약속은 깨뜨려왔다. 진정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한국에 사용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이것도 '화전양면(평화적 태도와 위협을 혼용)' 전술인가. "그렇다. 남한 시민들의 불안감 해소 차원이다. 언제 돌변할 지 모른다. 북한이 할 일은 신뢰 확보다." -김정은이 특사단에 보인 태도도 화재였다. 아내를 대동했고, 특사단 방북 첫 날에 만났다. "평화지향적이고 정상적인 국가로 보이려는 의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정부가 '운전대'를 잡았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인가. "북한이 (진정으로) 핵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평화를 위한 진전이고, 운전대라는 표현도 맞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대화만을 위한 대화가 되면 안된다.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미국은 북한의 이번 움직임이 북핵 개발에 시간을 벌려는 의도인지 파악하려 할 것이다. 한미 공조로 (북핵 개발을) 막아야 한다." -미국은 인권문제를 거론하면서 비핵화 전제 없으면 북미 대화를 못 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에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했는데, 북한이 그 약속을 안 지켰다. 한국은 전술핵을 다 빼고 핵 개발을 안 하는데, 북한은 약속을 어기지 않았나. 약속 어긴 건 내버려 두고 대화만 하면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된다. 문제의 시작은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고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도 어긴 점이다." -그렇다고 대화를 끊어도 문제 아닌가. "대화는 해야 한다.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하고, 북한이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받을 것만 받고 약속 안 지키면 문제 아닌가. 그 대화가 상대방에게 핵 미사일 개발 등의 여유를 만들어 주지 않았나." -북한이 비핵화보다 낮은 단계의 약속을 지켜가는 모습을 보이면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고개를 흔들며) 비핵화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 진정성에서 예를 들면, 이산가족 상봉은 가족간 소재를 명확히 알려주지 않고 진행한다는 점에서 비인도적이다. 북한은 국군 포로들 소재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소재 확인하고 서신교환을 해야 한다. 이후 남북이 해당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줘야 인도적인 것이다. 물론 아예 안 만나게 하는 것보다 낫지만, 순서가 틀렸다. 1981년 남북 적십자회담에 관련 내용이 다 들어가 있었다. 소재파악과 서신교환 등 적십자사 원칙에 다 들어가 있다. 전쟁 이산가족은 소재파악부터 하자고 했지만 북한의 거부로 소규모로 진행되어 온 것이다." ◆미국의 '북핵 폭탄 돌리기' 이제 없을 것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북한은 11차례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한 차례의 핵실험을 진행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23일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2397등 국제사회 제재에 대한 돌파구로 북미 대화를 선택했을 뿐, 핵 포기는 물론 남북 관계 개선에는 별 관심이 없는 상황 아닌가. "그럴 가능성이 99% 이상이다. 북한은 한국을 통해 그런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북한 제재 해제는 불가능하다. 한국과의 관계 개선 분위기로 한국이 '북한이 평화지향적이다'라고 중계를 잘 해준다 해도, 미국은 북한의 핵 포기 없는 대화를 시간 낭비라고 본다. 우리가 과거 25년동안 북한과 대화만 해오다가 핵 개발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클린턴 때는 그 폭탄(위험부담)이 작았는데, 계속 다음 대통령에 폭탄 돌리기를 해왔다. 트럼프는 본인 임기에서 북한 핵 개발이 최종 단계에 들어서면 안 되니까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하겠다는 태도다. 북한이 핵 포기 움직임이 없는데, 남북 관계만 개선되면 북한이 숨 쉴 공간만 넓어진다. 숨을 못 쉬게 해야 핵을 포기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면, 국제사회에서 보기에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이 인권 문제를 대북 압박 수단으로 삼는 상황이다. 한국은 2016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했음에도 여태 북한인권재단을 출범시키지 못했다. 북한 인권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북한인권재단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를 꾸준히 기록하는 한편, 정부는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로 투 트랙 전략을 짜야 한다. 북한 정권과의 대화와 인권 문제 접근을 '순서' 문제로 파악해선 안 된다. '당신들은 주민들을 인권 유린하고 있다'는 기록으로 창피함을 느끼게 해야 한다. 2400만명의 북한 주민을 앞으로 포용해야 할 국민으로 생각한다면, 인권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한다." -경제적 압박에서 빠지지 않는 논쟁이 북한 주민들의 '먹을 권리'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013년 북한 인권 조사 위원회(COI·Commission of Inquiry) 설치를 결정하고, 2014년 2월 보고서를 냈다. 북한 주민들이 먹을 권리를 확보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북한 주민의 먹을 권리를 보장할 1차적인 책임은 북한 정부에 있다. 2억불만 있으면 다 먹여살린다. 그런데 그 돈을 무기 개발에 쓴다. 김일성 시신을 영구 보존하는 금수산기념궁전(금수산태양궁전) 짓는 데에만 8억불 넘게 썼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아무리 퍼줘도 바뀌는 점이 없다." ◆국제 압박에 '숨 구멍' 만들면 안돼 -현재 북한은 '약한 고리'인 한국을 통해 대화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이 연합훈련을 하게 된다면, 해마다 훈련을 비난해 온 북한이 어떤 전략을 펼까. "이전과 같은 대응 태세로 전환할 것이다. 우리 역시 북한 비핵화 보장이 없으니 훈련을 할 것이고. 북한에 대한 압박은 중요하다. 과거 남아연방(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때문에 1964년부터 1988년까지 24년간 올림픽 참가가 금지되었다. 유엔 회원자격도 정지되고 경제제재도 받았다. 남아연방은 이 같은 국제사회의 제재압박에 백기를 들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유엔 제재를 받은 북한이 불과 두 달만에 올림픽 무대에 섰다. 국제적인 압박 속에 우리가 숨 쉴 구멍을 마련해 준 셈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한국에 고마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교류협력사업 재개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는가. "신중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 없이 또 다시 대규모로 현금이 흘러가도록 하는 일은 현명하지 않다. 우리는 이미 두 사업을 통해 북한과의 사업에서 벌어질 문제점을 배웠다. 한국 측 투자자산 회수 문제는 이미 정치적 위험성을 계산하고 투자한 결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정상적인 협력을 모색해야겠지만, 지금 북한은 돈의 90%를 무기고로 쏟아붓는 상황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추진해 청년층의 반발이 거셌다. 남북 대화 분위기나 통일이라는 대의, 즉 국가를 위해 개인이 희생한다는 관념은 물론 젊은이와 통일 간 접점이 많이 사라진 상황이다. 정부의 대북정책과 국민 인식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한국 정부는 비교적 최근까지 상당 기간 분단 상태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제는 정부가 통일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정책을 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할 지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 김석우 전 차관은
충남 논산 출생. 서울대 법대 졸업. 美 프린스턴大 국제정치학 수료후 1968년 제1회 외무고시에 최연소 합격했다. 주미·주일대사관과 본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 초임 사무관 시절 대륙붕 7광구를 기초했다. 아주국장 시절 중국·베트남 수교를 성공시켰다. 1996년 8월부터 1998년 3월까지 통일부 차관을 지냈다. 퇴임 후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원장으로 북한 급변사태를 다뤄왔다.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두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